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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몬산을 정복하자(025.2011.12.25) 시133:1-3
상주감리교회 성도는 형제간에 우애있게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뜻이 맞지 않아 형제간에 불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생각하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설 수만 있다면 형제들이 서로 화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영적으로 한 형제 자매가 되었는데 우리가 서로 화목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단장이 끊어지는 슬픔을 갖게 될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고 자라면서 자식들간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형제간에 평생 우애있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모두 한 배에서 낳은 자식이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자식이 없는데, 형제끼리 우애하지 못하고 싸움을 하는 가정은 복된 가정이 아닙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방법이 많지만 그중에 하나가 바로 형제끼리 우애있고 화목하게 평생을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보다 힘써야 할 것이 형제 화목입니다. 서로 화목하면 살인도 피할 수 있다 했습니다. 형제와의 화목은 심지어 예배보다 더 중요하다고 산상수훈을 통해 주님께서는 가르칩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드렸던 예배의 핵심입니다.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을 들을만한 일이 생각이 나면 그 예물을 드리던 것을 중지하고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만일 지금 우리 머릿속에서 다른 사람과 불화한 일이 있으면 먼저 화목하고 난 연후에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는 곧 우리 생활과 신앙이 분리된 예배에 대한 주님의 경고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예배 잘 드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지만 그보다 먼저 세상에서 화목한 사람이 되어 예수님을 삶을 통해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는 평상시에는 온갖 불의를 저지르고 사람들로부터 원망 들을만한 일들만 하다가 주일에만 경건한 체하며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기회가 있습니다. 혹 불화하고 있다면 지금은 화해할 때입니다. 화해하지 않고 세상 끝 날이 되어 재판관에게 넘겨지고 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우리 생명이 붙어 있다는 것은 아직 정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데까지 가고 나서야 후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맙니다. 요셉이 원수 같은 형제를 용서하고 사랑한 것처럼 지금은 급히 사과하고 화해하여 형제와 화목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 본문은 형제가 연합하는 것에 대한 말씀도 있지만 오늘은 헬몬산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헐몬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처럼 북쪽의 경계산입니다. 헐몬산은 ‘거룩’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최고봉인 헬몬산은 그 정상 높이가 2814m입니다. 헬몬산이 높이 융기되면서 동반적으로 주변에는 계곡이나 분지 등과 같은 낮은 지역이 생겼습니다. 즉 북서쪽의 리타니계곡, 남서쪽의 이온계곡, 남쪽의 훌레계곡, 그리고 북동쪽의 다메섹분지 등은 모두가 헬몬산 주변에 위치한 낮은 지역들입니다. 헬몬산과 지형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곳은 북쪽의 안티레바논산지에 속하는 산지의 한 지류입니다. 헬몬산의 폭는 약 30km이며, 연중 약 1500mm 이상의 강우량이 기록되는 지역입니다.
헬몬산의 강우량은 대부분이 눈으로 내리는데, 겨울 동안 내린 눈은 이른 여름철까지도 녹지 않고 쌓여 있습니다. 여름이 되면서 서서히 녹은 헬몬산의 눈들은 지표면 아래로 스며들어 헬몬산 주변의 샘들을 통하여 다시 분출됩니다. 이러한 샘들은 남쪽의 요단강, 북쪽의 리타니강, 그리고 동쪽의 다메섹으로 흐르는 강의 수원지가 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헬몬산은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를 이루는 지역입니다.
모세나 여호수아에게 헬몬산은 눈 앞에 두고 있는 가나안 정복의 최북단 지역이고요(신 3:8; 4:48; 수 11:17; 삿 3:3) 아모리사람들은 헬몬산을 ‘스닐’(Senir)이라고 불렀으며, 시돈사람들은 이 산을 ‘시룐’(Sirion)이라고 불렀습니다.(신 3:9) 이러한 지명들은 이집트의 저주문서나 우가릿 문서에서도 자주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기원전 1330년경 히타이트왕과 수리아왕 사이에 체결된 어느 계약 문서에는 계약 체결 증인으로서 레바논의 신들과 시리온의 신들과 더불어 헬몬산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헬몬산 주변의 우거진 숲들, 산기슭에 위치한 여러 수원들, 그리고 눈으로 덮여있는 정상의 모습 등은 고대 시대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적인 경외심을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헬몬산과 관련하여 유명한 성소들이 자주 언급됩니다. 사람들이 신탁을 얻으려고 찾아 왔던 ‘벧마아가 아벨’(삼하 20:15, 18)도 헬몬산 근처의 지역이고, 여로보암 시대에 거대한 신전이 세워진 단(왕상 12:29; 왕하 10:29; 암 8:14)과 헤롯이 아우구스터스를 위하여 세운 로마 황제 숭배 신전이 있었던 가이사랴빌립보 등도 모두가 헬몬산과 관련된 지역들입니다.
장엄하게 북쪽에 위치한 헐몬산은 그줄기는 동서남북으로 30Km가량이나 뻗어 있습니다. 일년내내 흰눈으로 덮여 있습니다. 그래서 아랍사람들은 이 산을 은발의 산, 설산이라고도 불렀습니다. 타는듯한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열대에서 그 눈덮인 산을 바라볼 때마다 사람들은 시원한 감을 느낄 것입니다. 190Km되는 먼거리에서도 그 시원한 산의 모습를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흰모자를 쓴 것 같은 헐몬산의 모습이 갈릴리호수에 비친 모습은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헐몬산 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골고다 하면 제일먼저 생각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세종대왕 하면 제일먼저 연상되는 것은 한글입니다. 시내산하면 모세의 십계명이 제일먼저 생각이 날 것입니다. 헐몬산의 이름을 들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슬’입니다. 헐몬산에서 떠오르는 이슬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 헐몬산에서의 이슬을 생각해야 하고 이 이슬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헐몬산에 올라 이슬을 맞아야 합니다.
본문에 시133:1-3절‘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했습니다.
1.이슬은 축복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축복은 꼭 받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슬은 축복을 상징합니다. 에서와 야곱쌍둥이가 있었는데 이삭이 두 아들에게 축복기도를 하는데 이슬처럼 되라고 축복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이슬의 축복을 오늘 헐몬산에서 배우고 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하고 받아서 누리도록 신앙생활에 성공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는데 이렇게 축복기도를 합니다. 창27:27-28절‘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축복기도해 줄 때에 이렇게 축복기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삭이 에서를 축복할 때에는 이렇게 축복기도를 했습니다. 창27:39-40절‘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 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요셉지파를 축복할 때에도 신33:13-14절‘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컨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 저장한 물과 태양이 결실케 하는 보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보물과’그랬습니다. 모세가 아셀지파를 축복할 때에도 신33:27-28절‘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했습니다. 이같은 이슬은 축복과 관계가 있습니다. 헐몬산은 이슬이 많은 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기에서 복을 본문 3절에 명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들은 것이 복입니다. 성도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잇기 때문입니다. 이슬과 같은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미국의 대재벌 록펠러가 하루는 목사님을 찾아와서 낡은 책을 보여주며 신앙간증을 했습니다. 펼쳐보니 그의 사업장부입니다. 첫장을 넘겨보니 첫수입이 5달러였고 십일조가 50센트였습니다. 마지막장을 넘겼습니다. 십일조가 수백만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축복해 주신 흔적을 그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축복받을 일을 해야 하고 축복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주고 싶어도 그릇이 깨어져 있으면 다 새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릇을 잘 준비해서 헐몬산에서의 이슬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복받고 싶으시지요. 복받을 말과 행동을 하시고 복을 받을 그릇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헐몬산의 이슬과 같은 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콜게이트 치약을 종종 사용할 것입니다. 웰리암 콜게이트는 영국사람으로서 가정이 너무 가난해서 미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몰래 미국가는 배를 탔습니다. 오랫동안 가다가 보니 배도고프고 더 이상 숨어있을 수가 없어서 먹을 구하러 갑판위로 나왔다가 선원에게 붙들렸습니다. 선원은 물에 빠트려 죽이려고 하는데 선장을 그것을 보고는 불렀습니다. 사정야기를 다 들은 선장은 내가 미국에 데려다줄테니 두가지 약속만 지키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주일이면 교회에 꼭나가거라. 십일조는 꼭 드리라. 이두가지를 약속하고 게이트는 뉴욕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선장과의 약속을 잘 지켰습니다. 처음에 비누공장에 들어가서 막노동을 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치약, 비누를 만드는 대회사의 사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복 받을 그릇이 되어 있어야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2.이슬은 기도의 응답을 말하는 것입니다.
헐몬산의 이슬은 기도응답을 말합니다. 성도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며 늘 응답을 체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응답을 꼭 받습니까? 어떤분이 기도하면 다냐라고 하는데 그러면서 자기는 금식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한심한 사람의 기도를 응답해 줄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부르짖음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이 응답을 바라고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사기에 보면 기드온이 양털을 제시하며 기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는 여기서 양털카드를 제시하라는 설교제목이 있는데 이 카드를 제시하면 하나님은 결재를 안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카드이기에 꼭 응답을 하십니다. 기드온이 밀타작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큰 용사여’하며 부릅니다. 이스라엘의 원수인 미디안을 치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기드온은 도저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양털카드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삿6:37절‘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때 삿6:38절‘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취하여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해서 응답을 받았습니다. 신기한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또 말하기를 삿6:39절‘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나로 다시 한 번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하고 두 번째 양털을 제시합니다. 그대에도 하나님은 기드온의 기도를 들으시고 삿6:40절‘이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했습니다.
이슬은 응답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헐몬산에서 만나야 하는 것이 이런 하나님을 믿고 헐몬산에 힘이 들어도 올라가서 만날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가 제시하는대로 응답을 해 주시지 않습니까? 오늘부터 이런 기도를 드리셔서 응답받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응답입니다. 성도는 기드온의 이슬같은 응답을 헐몬산에서 받아야 합니다. 헐몬산은 축복의 산이요 응답의 산입니다. 이 산에 여러분은 날마다 올라가서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시고 날마다 양털카드를 제시해서 응답받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3.이슬은 하나님의 은총과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이슬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입니다. 잠19:12‘왕의 노함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에 이슬 같으니라’했습니다. 헐몬산은 이슬이 많은 산이고 이슬은 하나님의 은총을 의미합니다. 즉 성도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거절하는 사람들은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은총이 얼마나 귀한 것인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은총을 거부하여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말씀을 들어야 영이살고 영이살면 모든 것이 형통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슬과 같은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고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슬은 아름다움입니다. 아침이슬이 초롱초롱 풀잎에 매달려 햇살에 빛나는 모습은 정말 장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사26:19절‘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 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했습니다. 헐몬산은 이슬로 가득차 있는 아름다운 산입니다. 성도는 아름다워야 합니다.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해야지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도 세상것을 그대로 하고 있으면서 교회올 때만 거룩한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노인이 7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한일이 없었습니다. 묘비에 무어라 기록할 말이 없어서 빈 비석에 생년월일과 죽은날자만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신학생들의 학비를 돕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마전에 젖갈장사해서 번돈을 장학금으로 내놓은 할머니도 보았습니다. 그 할머니는 돈을 악착같이 벌었는데 쓸줄을 아는 할머니였습니다. 사회에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믿는 사람들 중에도 많이 있습니다만 옷 로비사건 등을 보면 그게 다 교회의 중직자들이었습니다. 돈을 쓸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백의의 천사로 알려진 나이팅게일이 간호원이 된후였습니다. 전쟁이 터졌습니다. 그는 가족의 극구반대에도 불구하고 20세에 자원하여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부상병들을 돌보았습니다.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부상병들뿐 아니라 군인들이 나이팅게일이 지나가기만 하면 ‘보시오 저기 그리스도가 지나가오’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삶입니까? 이런 아름다운 삶을 우리도 살아야 합니다. 이슬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헐몬산의 이슬은 햇빛에 빛났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라도 삶의 의미를 깨닫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4.이슬은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슬은 생명입니다. 우리나라의 이슬과 전혀 다른 이슬입니다. 비한방울 오지않는 이스라엘의 건기에 아침이슬은 온 만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생명이랍니다. 만일 이때 이슬마져 없으면 모든 생물들을 말라죽을 것입니다. 이슬은 생명입니다. 그래서 헐몬산은 유독 푸른 것입니다. 죽어가는 식물에 이슬이 떨어지면 다시소생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바로 이슬같은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죽은 물고기가 물을 따라서 둥둥 떠내려가는 것 같은 삶이 아니라 물줄기를 향하여 팔팔거리며 뛰어오르며 거슬러 올라가는 고기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슬같은 은혜를 받으면 그렇게 살아움직이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해보려고 노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꿈틀 대는 것입니다. 봉사하는 것입니다.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봉사하고 희생했다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천국에 올라가 예수님과 함께 흰옷을 입고 천국을 거닐게 되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천국문을 열고 저밑을 내려다 보라고 하시면서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자기고향입니다. 고향사람들이 모두가 다 장님이었습니다. 그들이 모두 낭떠러지기를 향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너는 낙원에 머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나는 다시 세상으로 내려가겠습니다. 그리고 저 낭떠러지기로 떨어지고 있는 사람들을 건져내는 안내자가 되겠습니다. 저를 빨리 보내주세요’라고 발버둥을 치다가 꿈에서 깨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 일을 했다고 합니다.
생명을 얻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명을 살려내는 일을 해야 합니다. 생명을 죽이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슬은 생명인데 바로 이 헐몬산에 우리가 오늘 올라와보니 생명을 살리는 이슬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영혼구원을 위해서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전도는 교회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특별히 형제의 연합과 그의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찬양도 있습니다. 본문이 보여주는 이러한 연합과 사랑은 서로를 증오하고 미워하며 분열하기 좋아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척이나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본문에 나오는 아름다움은 가정과 교회에 국가에 이룩해야 할 것입니다. 서로의 목적과 사상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신앙인이 나누려고 하는 것은 이기주의 일것입니다. 협동이나 사랑 하나됨은 같은 목적과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분리주의자는 분리주의라는 말한마디로 추방받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분파주의도 사탄의 무리라고 말을 들어 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양보라는 것을 해야 합니다. 협동은 양보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자유로움이 보장되어야 하고 생명이 역사하는 협동이 되어야 합니다.
참된 협동의 아름다움은 2절에 말씀처럼 향기가 납니다. 악취를 제거하며 메마른 마음에 신선한 기쁨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3절에 메마른 대지위에 촉촉히 적셔주는 이슬의 풍요로움 이것이 협동의 아름다움입니다. 서로를 향한 간절한 사랑은 그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생명은 생명이 없는자에게 생명을 전해줍니다. 형제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생명을 전하고자 하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제 헐몬산에서의 이슬의 교훈을 우리는 오늘 받았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로서 이슬같은 축복을 받으셔서 분열하기를 좋아하는 이 시대에 협동하려고 애를 쓰시고 아름다움의 향기를 발휘하시고 양보에서만 이루어지는 협동의 단결을 하셔서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슬같은 축복을 받으시고 여러분의 자녀들에게도 이런 이슬같은 축복이 임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슬같은 응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말씀을 사모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시기를 축원합니다.
1999.9.15 수--------2011.12.25..주일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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