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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보름 문무님의 글을 봐 왔는데...
제 환타지도 그리 많이는 틀리질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도 좀 들게 하시는
깜짝 놀랄 정도의 글 들 이 많더군여...
특히, 돋보이는게
원전분석에서...철저히 객관적이어서...
마냥 조선영토가 중앙아로 지중해로 아메리카로..한국인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으로만 가질 않으신단 겁니다.
당 연구회의 원전분석 필진님들이 몇 안 남으셔서...
수준높은 원전분석이 저 스스로로 목말러...문무님의 글을 슬쩍 훔처와 봤습니다.
중심잡힌 균형감각...객관성...
참으로 흔치 않으신 대륙조선 연구학자 분이십니다.
물론, 펌 글은 제 맘에 젤 감동먹은 것 위주로 펌 하겠습니다.
제 맘이니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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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조선(大陸朝鮮)의 사실적 관계 (회남자 전)
○ 대륙조선(大陸朝鮮)! 많은 근거(根據)와 증거(證據), 그리고 그것을 고증(考證)할 수 있는 많은 기록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理解)하지 못하고, 더러는 이해(理解)하지 않으려 한다. 반도(半島)조선(朝鮮)에 대한 미련(未練)과 향수(鄕愁) 때문이다. 또한 익숙하지 못한 탓이며, 어릴 적부터 받아온 공교육(公敎育)속의 반도조선(半島朝鮮)에 대한 역사교육(歷史敎育) 때문이기도 하다. 코흘리개 어린 아이들에게 역사교육(歷史敎育)이란 미명(美名)하에 근거(根據), 고증(考證), 증거(證據)없는 교육을 시켜, 그 왜곡된 사고(思考)는 어른이 되어도 변할 수 없는 세뇌(洗腦)과정을 거친 탓이리라.
○ 어떤 이들은 <조선(朝鮮)의 중심지>가 대륙의 중심지 땅이라는 주장에 대해 증거(證據)나 고증(考證)없는 역사서(歷史書)는 쓸모없는 것처럼 말하기도 하며, 더 나아가 또 다른 부류들은 근세기의 기록이나 여행기 등에서 중요한 자료를 찾으려한다. 이러한 주장에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는 <그곳 중국(中國)지방을 철저(徹底)하게 파괴(破壞)시킨 자들이 그까짓 기록 몇 점을 조작(造作)할 수 없었을까?>하는 점은 생각지 않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 수천 년 전의 기록들도 조작(造作)하는 마당에 근세기 기록을 왜곡(歪曲), 조작(造作)하는 일은 더더욱 쉬울 수밖에 없는 것임을..........모르고 하는 소리는 아닐 터.........!!!!!!!!! 대륙조선(大陸朝鮮)에 관한 옛 기록들은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답답한 현실은 그 기록서(역사서)의 진본(眞本)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試行錯誤)가 있다는 점이다. 만약 “조선(朝鮮)”의 영토(領土)가 대륙(大陸)이 아닌 “반도(半島)”였다고 하면, 옛 역사서(歷史書)들이 혼란을 줄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 압록강(鴨綠江)과 두만강의 동류(東流) / 백두산(白頭山)과 불함산(不咸山)의 대 황(大荒)지대 / 개마대산(蓋馬大山)과 평양(平壤)과 옥저(沃沮) / 패수(浿水)의 동류(東流) / 요동(遼東)요서(遼西)지방과 요수(遼水) 및 도요장군(度遼將軍) / 대동강의 동류(東流) / 낙동강 / 동도(東都)와 서도(西都) / 개경(開京)과 개봉(開封) / 평양(平壤)과 경주(慶州) / 부여(夫餘)와 금강(錦江)의 동류(東流) / 조선의 사막(沙漠)지대 / 철륵(鐵勒)과 고려(高麗) 태조(太祖) / 고구려(高句驪)의 북쪽 변경 용 황(龍荒)지대 / 조선의 잃어버린 땅 하황(河湟)지대 / 말갈(靺鞨)과 고구려(高句驪). 신라(新羅). 백제(百濟) / 등등 본인이 소개한 것만 해도 수백(數百) 가지도 넘는 지리(地理), 지형(地形), 방향(方向)적인 문제점의 『조선(朝鮮) 영토(領土)는 반도(半島) 땅의 면적(面積)으론 <몇 개 군(郡)이나 몇 개 주(州)의 땅도 담을 수 없다.>』 조선(朝鮮)의 영토는 거대(巨大)한, 광활(廣闊)한 땅이었기 때문이다.
○ 회남자(淮南子)전 속에 기록(記錄)된 몇 가지를 가지고 왜 조선(朝鮮)의 영토(領土)가 대륙(大陸)이어야만 하는 이유(理由)를 설명(說明)하려한다. 산해 경(山海經)속에 기록된 “조선(朝鮮)”과 연관되는 기록 역시 후대(後代)의 기록과 연계(連繫)되는 점으로 중요하다. <왜곡(歪曲) 또는 조작(造作)되었다>는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필요한 것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또 어떻게 왜곡(歪曲)되고, 조작(造作)되었는지를 고증(考證)할 수 있어야 한다. 『주장만 할 뿐 논거(論據)가 없다면, 사상누각(砂上樓閣)이 될 뿐이다.』 자신이 최고(最高)인척, 자신의 논리(論理)가 가장 이상적(理想的)이라는 독선(獨善), 자신의 주장과 배치(背馳)되는 것들은 이해하려 않는 분, 이런 분들은 결코 조선(朝鮮) 역사(歷史)를 논할 수 있는 자격(資格)이 없다. 조선(朝鮮)이란 나라의 역사 줄거리 하나 제대로 찾지 못하면서, 자신의 주장만이 최고, 유일한 것이라 하는 것은 “조선사를 찾지 말자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 내면(內面)에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 다른 것이 존재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순수(純粹)을 가장한 자들이라 할까!
조선(朝鮮)역사(歷史)를 찾는 데에 <그 어떤 제약(制約)도 없어야 된다.> 또한 <자신(自身)의 선대(先代) 조선(朝鮮)의 역사(歷史)를 논(論)하는데 학사니 석, 박사니 하는 자격(資格)이 별도로 주어질 수 없다.> 또한 <같은 조선사(朝鮮史)를 공부, 연구하는 곳에서 서로의 주장(主張)과 논리(論理)가 조금 다르다고 해서 배척(排斥)하는 일등은 없어야 한다.> 여러 주장과 여러 논리가 있다함은 너무도 자연스런 현상(現狀)일진대, 이것을 강제로 한 주장(主張)으로 묶으려하는 행위는 독선(獨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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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남자(淮南子)전 / 추 형 현 (墜 形 訓)을 보자. 자세한 번역(飜譯)과 해설(解說)은 본인(本人)의 실력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아주 난해(難解)한 내용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조선(朝鮮)”과 관계되는 지명(地名), 하천(河川), 종족(種族) 등 몇 가지만을 골라 설명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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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地之間,九州八極,土有九山,山有九塞,澤有九藪,風有八等,水有六品 : 하늘과 땅 사이에, 9주와 8극이 있고, 땅에는 9산이 있으며, 산에는 9 새(塞)가 있고, 택(澤)은 9藪가 있고, 바람은 8 등이 있으며, 물은 6 품이 있다.》이 중에서 <물은 6품이 있다>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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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何 謂 六 水 - 曰 河水. 赤水. 遼水. 黑水. 江水. 淮 水. 闔 四 海 之 內》하 하였다. 곧, 사해(四海)의 안에는 여섯 물줄기가 있다는 말이며, 그 물줄기는 하수(河水). 적수(赤水). 요수(遼水). 흑수(黑水). 강수(江水). 회수(淮 水)라는 설명(說明)이다. 현재의 역사해설로 보면 ; “요수(遼水)”를 제외한 다섯 물줄기는 현 대륙(大陸)안에 있는 것이며, 단 한 물줄기인 “요수(遼水)”는 당시 사해(四海)라는 곳을 벗어난 곳인 반도(半島)의 북방에 있는 물줄기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대륙(大陸)안에는 “요수(遼水)”보다 크고, 넓은 하천이 즐비하게 많음에도 굳이 “요수(遼水)”를 “사해(四海)안에 있는 큰 물줄기”로 보고, 기록까지 해놓았다고 볼 때, 현재의 “요수(遼水)”보다는 반도(半島)의 압록강(鴨綠江)이나 한강(漢江), 낙동강(洛東江)이 더 크고, 수량도 많으며, 또한 남부 및 서남부지방의 월남지역, 타이지방, 인도지방 등에도 큰 강들이 많다. 따라서 당시의 “요수(遼水)”는 현재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륙(大陸)안에 있었으며, 그 물줄기는 대단히 큰 규모를 자랑했던 것으로 유추(類推)할 수 있다. 또한 회남자(淮南子)전이 기록될 때쯤의 시기인 전한(前漢)과 후한(後漢)등의 역사서는 말하기를 “요수(遼水)”는 중원(中原) 서북방 지대를 흐르는 하천(河川)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당시 역사서의 본기(本紀)와 열전(列傳)등에 기록된 것으로 전혀 하자(瑕疵)가 없는 것이다. “요수(遼水)”의 위치가 왜곡된 것이라면, 기록된 위치에서 본래는 더 서쪽지방에 있었다는 것이기 때문에 대륙조선(大陸朝鮮)을 주장하는 것에는 아무런 흠이 될 수 없다. 【 요수(遼水)의 위치가 전한(前漢) 또는 후한(後漢)시절에 말하던 중원 서북방 하천이 아니라면, 요수(遼水)의 본래 위치는 서(西)쪽 지방으로 옮겨져야 하며, 대륙조선(大陸朝鮮)을 주장하는 본인의 조선(朝鮮) 영토(領土)는 그만큼 서(西)쪽 지방으로 이동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근거(根據), 증거(證據)를 찾기 전까지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왜곡되었다는 근거(根據)나 증거(證據)가 없는 한 주장만을 한다고 해서 믿을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 【2】《河 水 出 崑 崙 東 北 陬, 貫 渤 海 入 禹 所 導 積 石 山:『하수(河水)는 곤륜산(崑崙山)의 동북(東北) 모퉁이에서 나와, 발해(渤海)를 관통(貫)하여 우(禹)가 통하게 한 적석(積石)산을 통과 한다.』》 ● 위 글에서 보면, “발해(渤海)”는 『타클라마칸 사막(沙漠)의 동쪽지방인 포창해(蒲昌海)지방과 적석(積石)산 사이에 있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은 이미 산해 경(山海經)과 또 다른 대륙(大陸)측의 기록을 여러 차례에 걸쳐 소개하고 설명한 것이다. ● 현재의 역사해설에서 “발해(渤海)”는 『하 북(河北)성과 요 녕(遼寧)성 남쪽 바다를 칭한다. 』이러한 “발해(渤海)”의 위치 결정은, 조선(朝鮮)을 반도(半島)로 만들기 위한 지명(地名)의 이동(移動)이다. 회남자(淮南子)전은 전한(前漢)때의 회 남 왕(淮 南 王)이었던 “유 안(劉 安)”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이때의 “발해(渤海)”는 당연히 『타클라마칸 사막(沙漠)의 동쪽지방인 포창해(蒲昌海)지방과 적석(積石)산 사이에 있었다.』고 본다. 회 남(淮南)왕이었던 “유안”이 없던 것을 고의적으로 있다고 기록할 명분도 타당한 이유도 없다. 이것은 발해(渤海)의 북방(北方)과 동북(東北)지대가 바로 ”만주(滿洲)지방“이기 때문에 조선(朝鮮)의 영토(領土)를 찾고자 하는 여러분에게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발해(渤海)지방과 만주(滿洲)지방은 당연히 조선영토(朝鮮領土)다.』 왕조(王朝)의 흥망성쇠(興亡盛衰)로 인한 영토의 확장(擴張), 축소(縮小)는 기정사실화 되는 것이니, 더 넓어질 수도, 축소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은 미리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전한(前漢), 후한(後漢) 이러한 나라는 고구려(高句驪)일 수밖에 없으며, 고구려(高句驪) 내의 조그마한 제후국이었을 것이며, 『조선(朝鮮)은 현재 대륙의 대부분 땅을 영토로 하였다.』고 보면 무리 없는 역사해설일 것이다. ------------------------------------------------------------------------- 【3】《乃有八極.自東北方,曰方土之山,曰蒼門.東方曰東極之山,曰開明之門,東南方曰,波母之山,曰陽門,南方曰南極之山,曰暑門,西南方曰編駒之山,曰白門.西方曰西極之山,曰閶闔之門,西北方曰不周之山,曰幽都之門.北方曰北極之山,曰寒門. : 이에 8극이 있다. <동북(東北)엔 방토(方土)산이, 이르기를 蒼 門이며>, <동방엔 동극(東極)산이, 개명(開明)문이다>. <동남방엔 파 모(波母)산이, 양문(陽門)이다>. 남방엔 남극(南極)산이, 서문(暑門)이다>. <서남방엔 편구(編駒)산이, 백문(白門)이다>. <서방엔 서 극(西極)산이, 창개(閶闔)문이다>. <서북방엔 불 주 (不 周)산이, 유도(幽都)문이다>. <북방엔 북극(北極)산이, 한문(寒門)이다.》 ● 위와 같이 조선(朝鮮)과 관계되는 기록(記錄)을 찾아내, 왜 “조선(朝鮮)과 관계되는 것인지를 설명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저 “조선(朝鮮)”이 대륙에 있었다고 무작정 주장한다고 해서 이해(理解)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 글 중에서 《西 北 方 曰 不 周 之 山, 曰 幽 都 之 門 : 서북(西北)방엔 불 주 (不 周)산이, 유도(幽都)문이다.》라는 내용을 보자. 『유도(幽都)는 유릉(幽陵)이며, 유주(幽州)라는 사실이며, 이는 북해(北海)내에 있다.』 이는 “회남자(淮南子)”전 기록의 중심부에서 서북(西北)지방을 말하는 것이다. 기존의 역사해설에서 전한(前漢)은 장안(長安)을 중심으로 한다. 따라서 당시는 기록 중심은 “장안(長安)”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 유도(幽都)가 어디인지를 좀 더 알아보기로 하자. (1) 천관서(天官 書) : 미(尾), 기(箕), 유주(幽州)라 했고, (2) 사기(史記) 오제(五帝)본기(本紀)에서는 : <舜 流 共 工 於 幽 陵>라 했으며, 집해(集解) 에서는 ; 마 융이 이르기를(馬 融 曰), 『유릉은 북 예이다』라 했고(幽陵, 北 裔 也). 정의(正義)에서는 ; 상서와 대 재 례에서 모두 “유주”라 하였다.(尙 書 及 大 載 禮 皆 作“幽州”), 괄지 지에서 말하기를(括地志云), 옛 습성은 단주 연락 현 지경에 있다.(故 襲 城 在 檀 州 燕 樂 縣 界)고 하였고, 옛 노전에서 이르기를(故 老 傳 云) ; 순류 공 공 유 주(舜 流 共 工 幽 州)라 하였으며, 이 성에서 살았다(居 此 城)고 하였다. (3) 유도(幽都)는 ; 요의 명으로 화숙(和 淑)이 북방에서 살았는데, 이르기를 유도(幽都)이다. (堯 命 和 淑 居 北 方, 曰 幽 都)라 했으며, 색은(索隱)의 말에 ; 생고해보면, 산해 경에서 이르기를, 북해 안에 산이 있는데 유도이다.(案, 山 海 經 曰, 北 海 之 內 有 山 名 幽 都) (4) 안(按) ; 유릉, 유도는 모두 말하기를 그 북쪽에 있다. 유주(幽州)의 이름이다.(幽 陵, 幽 都 皆 言 其 在 北, 幽 州 之 名)라 하였으며, (5)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는 ; 유릉은 곧 유주이다. 유도(幽都)현은 서(書)순전에, 택 삭 방, 왈 유도라 하였다.(幽陵, 卽 幽州. 幽都 縣 ; 書 舜 傳 - 宅 朔方, 曰 幽都) ● 많은 사람들은 『천관서(天官 書) : 미(尾), 기(箕), 유주(幽州)』에 기록된 이 글을 가지고 동북방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회남자(淮南子)전에서는 분명하게 말하기를 『《西 北 方 曰 不 周 之 山, 曰 幽 都 之 門 : 서북(西北)방엔 불 주 (不 周)산이, 유도(幽都)문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현재의 역사해설은 방향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서북(西北)과 동북(東北)의 방향』은 전혀 다른 곳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에서 인용한 “천관(天官)서” 기록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예로 보면, 대륙(大陸)중원(中原)에서 동북(東北)방에 설치했다는 “유주(幽州)”는, 본래 “서북(西北)”방 지대에 설치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천관(天官)서 기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현대(現代)의 역사해설이 잘못된 것이다. ------------------------------------------------------------------------ 【4】凡 海 外 三 十 六 國 (해외 서른여섯 나라) 凡 海 外 三 十 六 國, ➊自西北至西南方,有修股民,天民,肅愼民,白民,沃民,女子民,丈夫民,奇股民,一臂民,三身民. : 서북(西北)에서 서남(西南)방에, <수고 민, 천민, 숙신 민, 백민, 옥 민, 여자 민, 장부 민, 기고 민, 일비 민, 삼신 민>이 있다. ➋自西南至東南方,有結胸民,羽民,讙頭國民,裸國民,三苗民,交股民,不死民,穿胸民,反舌民,豕喙民,鑿齒民,三頭民,修臂民. : 서남(西南)에서 동남(東南)방에, <결 흉 민, 우민, 근 두 국민, 나국 민, 삼 묘 민, 교고 민, 불사 민, 아 흉 민, 반설 민, 시훼 민, 착치 민, 삼 두 민, 수비 민>이 있다. ➌自東南至東北方,有大人國,君子國,墨齒民,玄股民,毛民,勞民. : 동남(東南)에서 동북(東北)방에는, <대인 국, 군자국, 묵 치민, 현 고민, 모민, 노민>이 있다. ➍自東北至西北方,有蚑踵民,句嬰民,深目民,無腸民,柔利民,一目民,無繼民. : 동북(東北)에서 서북(西北)방에는, <기종 민, 구 영 민, 심목 민, 무장 민, 유리 민, 일목 민, 무 계민>이 있다. ○ 위 회남자(淮南子)전은 현재로부터 2,000 년 전의 것이다. <물론 이것이 당시의 원본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본인 역시 답을 줄 수 없다.> 이러한 곳에 “숙신(肅愼)의 나라”가 『서북(西北)방향에서 서남(西南)방향 사이에 있었다.』는 것은 오늘 우리가 반성(反省)해야 할 사건이다. ※ 수없이 반복(反復)되는 이야기이나, 현재의 『반도사학(半島史學)과 대륙(大陸)의 허울 좋은 민족사학(民族史學)과 열도(列島)의 사학(史學)에서는 반도(半島)를 기준, 그 동북(東北)지대에 “숙신(肅愼)의 나라”가 있었다고 해설(解說)하고 있는 지가 100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숙신(肅愼)의 나라는 동북(東北)지대에 존재(存在)할 수 없다.”는 이유(理由)와 근거(根據)와 증거(證據)를 고증(考證)하여 설명한 것이다. 회남자(淮南子)전을 기준으로 볼 때, 그 중심은 “장안(長安)일 것이다.”라는 내용은 이미 설명하였다. 그곳(장안)으로부터 “서북(西北)에서 서남(西南)방 지방에 ”숙신(肅愼)의 나라“가 있었다는 것은 곧 전한(前漢)이나 후한(後漢)은 존재할 수 없는 황제(皇帝)국이다. ● 이러한 기록은 후대(後代)의 역사서 기록과 맞물려,『 말갈(靺鞨)종족 역시 서북(西北)방 지대에 있었다.』는 기록이 이를 증거(證據)하고 고증(考證)이 된다.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설명한 것이다. 숙신(肅愼)의 후대는 읍루(挹婁)요, 그 후대는 물길(勿吉)이요, 말갈(靺鞨)이요, 여진(女眞)이기 때문이다.) ● 위와 같은 지리(地理). 지형(地形)적인 면으로 “조선(朝鮮)의 영토(領土)”을 보면, 그 숙신(肅愼)의 남쪽으로부터 동방(東方)의 땅은 모두 “조선(朝鮮)”의 땅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더하여 “중국(中國)지방의 『화하(華夏) 또는 중화(中華) 곧 화(華)는 바로 조선(朝鮮)의 황제 직할통치령』을 말하는 것이며, 조선(朝鮮)은 다민족(多民族)사회였기 때문에, 한족(漢族)이란 근세기의 민족사학(民族史學)이 만들어낸 괴물(怪物)일 뿐이다.” 2011년 10월 18일 <글쓴이 : 문 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