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훈 감독 '사랑이 이긴다', 이탈리아를 만났다
가족은 한 인간의 행복과 사랑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처와 아픔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한 양날의 칼이다
기대가 없는 곳에는 상처와 아픔이 없지만
기대가 크면 상처와 아픔도 크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나고 민병훈 감독이
영화 ‘사랑을 이긴다’를 문화원에서 제일 먼저 상영하고 싶다는
바람에 따라 주일날 이 영화가 문화원에서 상영됐었다
민병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민병훈필름-한국가톨릭 문화원이 제작한
영화 ‘사랑이 이긴다’는 학교 성적을 매개로 상처 입은 가족의
증상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동시에 ‘잘못된 사랑에 의해
상처받은 가족들이 ‘바른 사랑’을 통해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감독이 어떤 의도로 작품을 만들었던지 간에 감독의 손을 떠난 작품에
대한 해석과 의미부여는 관객의 몫이다
관객의 입장에 선 나는
학교성적이 주된 문제가 아니라 학교 성적이 가족의 아픈 증상들과
이 사회의 병든 모습을
드러내는 단초가 된 것이라고 보고 싶다
마치 여성들의 성이 억압되었던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했던 프로이드에게
여성들에게 억압의 문제는 다른 무엇이 아닌 성이라고 보았듯이 말이다
아빠와 택시 운전사
엄마와 딸의 구도에서 보듯이 누구도 거짓이 아니다
둘다 진실하다
다만 그 진실이 표출되는 방법이 틀렸을 뿐이고 소통의 부재가 있을 뿐이다.
전래 동화 ‘여우와 두루미’에서 입이 뾰족한 두루미에게 접시에 음식을 담아 주고
입이 뭉툭한 여우에게 목이 긴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주듯이 상대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듯이 말이다
대부분의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자식 성적에 목을 맨다.
혹자는 그런 상황에서 모든 화살을 엄마 개인에게 돌린다
그러나 이 상황을 조금 더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반은 맞는 말이고
반은 틀렸다고 본다
엄마와 딸의 인생이 분리가 안 되는, 나와 너의 경계가 없이 밀착된,
자식은 곧 확대된 자신이기에 자식의 실패는 곧 나의 실패라고 여기는 엄마는
자식의 공부에 목을 맨다
자존감이 낮고 열등감이 팽배할 때 자신의 열등감을 자식을 통해
보상받고 싶은 엄마도 자식에 공부에 목을 맨다
자신의 불안도가 높아 자식이 가만히 있는 꼴을 보지 못하는 엄마도
공부에 목을 맨다
남편과의 갈등을 자식으로 인해 보상받으려는 엄마도 자칫 자식공부에 목을 맨다
이 외에도 엄마의 많은 개인적인 이유들이 자식공부에 목을 매게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
하루가 멀다하고 빛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
어제의 지식과 지혜가 폐기처분되고 새로운 것들이 들어서는 세상
사회의 안전망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해 자신의 문제는 오롯이 자신이 책임져야하는 세상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신분상승(?)이 어려운 세상
아니 신분상승은커녕 연애도 결혼도 아이도 포기해야할 만큼 힘든 세상
중요하고 아름다운 모든 가치는 사라지고 오로지 스펙 하나로 줄세우는 세상
자본주의적 효율성과 시장성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
그 속에서 내 자식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위치를 점해 잘 살게 하고 싶은
엄마의 소망
이런 엄마의 소박한(?)사랑을 엄마 개인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
개인과 사회가 서로 맞물려 빚어놓은 풍경이다
영화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보다는 ‘잘못된 사랑’으로 망가진 가족을
‘올바른 사랑’으로 치유하고 다시 세워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 중간 중간에 삽입된 상징을 통한 처리는 상징의 의미를 모르는 관객에겐
다소 어려울 수 있으나 그건 관객의 역량인 것 같다
좋은 영화 한편은 기도의 힘과 맞먹는다. 최소한 나에게 있어선....
그런 의미에서 민병훈 필름-한국가톨릭문화원이 제작한 영화 ‘사랑이 이긴다’
는 ‘문화의 복음화 삶의 복음화’의 기치를 내세우고 있는 한국가톨릭문화원에겐
대중성 높은 영화를 통한 문화의 복음화를 위한 상징성 짙은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젊었을 때는 영화 한편을 보기 위해선 오랜 시간 차를 타고 갔어야했지만
지금은 집에서 오분 거리에 있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해졌다
우리의 문화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거 아니냐는 염려의 말이 나올 정도다
그것은 뒤집어 말하면 영화가 주는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영화, 나쁜 영화가 뒤엉켜 우리의 마음을 잠식해 들어올 때
착하고 좋은 영화를 고집스럽게 만들고 있는 민병훈 감독은 우리 시대의
귀한 문화적 자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민병훈 감독이나 한국가톨릭문화원 같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더 많아질 때
우리의 문화와 사회는 더 건강해질 것이다
9월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