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커튼을 얇게
통과하던 날이었다.
창가의 오래된 나무 탁자 위에는
펼쳐 놓은 성경 한 권이 있었다.
밤새 닫혀 있던 책장이 빛을 받아
조금씩 환해지고,
창밖의 나뭇가지 그림자는 바람을
따라 말씀 위를 천천히 건너갔다.
나는 한 문장 앞에 오래 머물렀다.
"서로 사랑하라."
짧은 말이었다.
너무 짧아서, 오히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그 말이 책 속에만
머물지 않고 내게로 걸어
나오는 것 같았다.
서로 사랑하라.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사랑은 대개 가까운 곳에서
먼저 시작된다.
나를 반겨 주는 사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내가 힘들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일은
어렵지 않다.
마음은 자신에게 따뜻한 쪽으로
자연히 기울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의 이름 아래에도,
아주 가는 계산의 실이
숨어 있을 때가 있다.
내가 이만큼 마음을 썼으니
저 사람도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내가 먼저 다가갔으니 이번에는
저 사람이 내게 가까이 오겠지.
그 계산은 소리 없이
마음의 바닥에 선을 긋는다.
넓고 차가운 공간의 양쪽 끝에
두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본다.
서로를 바라보고는 있지만,
그 사이에는 너무 많은 빈 공간이
놓여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바닥에는
희미한 눈금들이
새겨져 있는 듯하다.
얼마나 가까이 가야 할까.
얼마나 주어야 할까.
저 사람이 내게 무엇을 돌려줄까.
우리는 그렇게 사랑의 거리도 잰다.
그러다 어느 날,
그 거리를 재는 일보다 먼저
한 걸음 내딛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나를 향해 움직일지
알 수 없어도,
그 사람이 지금 도움이 필요하다면
먼저 걸어가 보는 것.
내게 남는 것이 없더라도
그에게 필요한 일이면
조용히 손을 보태는 것.
그것이 사랑의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얼마 전부터 작은 실험을 하듯
그렇게 살아 보기로 했다.
누군가 부탁해 오면,
그것이 내게 번거로운 일인지부터
헤아리기보다
그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일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았다.
대단한 희생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전보다 조금 더 시간을 내고,
조금 더 귀를 기울이고,
한 번 더 마음을 써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건넨 작은 도움이
마음에 남았다며,
그 사람이 내게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놀랐다.
선물을 기대한 적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내 마음을 오래 붙든 것은
선물 그 자체가 아니었다.
내가 건넨 마음이 그 사람 안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사랑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건네고 끝나는 물건이 아니었다.
어떤 사랑은 한 마음에 닿아,
그 안에서 다시 따뜻해진다.
그리고 언젠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또 다른 사람에게 건너간다.
해 질 무렵의 넓은 물가를 걷는
한 사람을 생각한다.
멀리 또 한 사람이 서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물처럼
넓은 침묵이 있고,
하늘은 아직 완전히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먼저 걷는 사람은 상대에게 무엇을
받아 내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저 먼 곳에 누군가 서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걸어간다.
사랑도 그런 걸음일 것이다.
보답을 약속받지 않은 걸음.
감사하다는 말을 듣지 못해도
멈추지 않는 걸음.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
내 안의 편안한 자리를
잠시 떠나는 걸음.
그러나 사랑은 마음만으로
건너가지 않는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날은
사람의 가슴에 오래 남고,
어떤 날은 문 앞에서 되돌아간다.
같은 도움이라도 어떤 손길은
오래 따뜻하고,
어떤 손길은 이상하게 차갑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사랑에도 포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물을 준비할 때 우리는
내용물만 챙기지 않는다.
종이를 고르고,
모서리를 반듯하게 접고,
풀리지 않도록 끈을 묶는다.
선물보다 포장에 더 오래
손이 머무는 날도 있다.
그 손끝에는 받을 사람을 향한
생각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사랑도 그러하다.
주님의 사랑은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미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아왔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힘을 받았고,
외로울 때 곁에 남아 준 사람들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순간마다,
나는 나보다 먼저 다가온 사랑에
기대어 살아왔다.
그러므로 내가 할 일은 사랑을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내게 도착한 사랑이
나에게서 멈추지 않도록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두운 곳에서 두 손이
작은 빛을 감싸고 있다.
손바닥 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듯하지만,
손과 손 사이에는 희미하고
따뜻한 빛이 머문다.
너무 세게 쥐면 사라질 것 같고,
너무 무심히 놓아두면
흩어질 것 같은 빛이다.
나는 그것이 사랑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조금 더 오래 들어주는 일.
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한 번 더 기다려 주는 일.
상대가 말하지 못한 사정을
헤아려 보는 일.
바쁜 하루의 한 조각을 떼어 내어
그 사람에게 건네는 일.
그것들이 사랑을 감싸는
포장지인지도 모른다.
값비싼 종이는 필요하지 않다.
화려한 리본도 필요하지 않다.
다만 진실한 마음이 필요하다.
형식만 남은 친절은 이상하게도
전달되는 동안 조금씩 새어 나간다.
말은 다정한데 마음은 닿지 않고,
손은 내밀었는데 상대는 혼자
남아 있는 듯할 때가 있다.
포장한 모양은 갖추었으나,
정작 안에 담긴 사랑은 도착하기
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무엇을 주느냐보다,
어떻게 건네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내 시간으로 감싸고,
내 수고로 묶고,
내 진심으로 조용히 건네는 것.
그것이 사랑을 포장하는 일이다.
그리고 포장한 사랑을 건넨 뒤에는,
놓아주어야 한다.
흙 위에 작은 씨앗 하나가 놓여 있다.
손가락 끝만 한 씨앗은 너무 작아서,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 그 씨앗을 흙에 묻고
조심스럽게 흙을 덮는다.
그다음부터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씨앗을 심었다고 해서
곧바로 싹이 나는 것은 아니다.
비가 와야 하고,
햇빛이 머물러야 하며,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사랑도 그렇다.
내가 건넨 사랑이
누구의 마음에 어떻게 닿았는지,
나는 다 알 수 없다.
그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아픔과 만나고,
어떤 기억과 섞이며,
어느 날 어떤 모습으로
싹을 틔울지는 내가 결정할 수 없다.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 열매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사랑의 목적은 열매를
확인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을 심은 사람이 매일 흙을 파헤쳐 씨앗을 확인할 수 없듯이,
사랑을 건넨 사람도 상대의 마음을
붙잡고 결과를 재촉할 수는 없다.
포장하여 건네는 데까지가
나의 일이라면,
그 사랑이 어느 마음 밭에 떨어지고
언제 발아할지는,
주님께 맡기는 일이 나머지일 것이다.
넓은 흙밭에는 한동안
아무 변화가 없다.
하늘은 흐리고,
바람은 낮게 분다.
땅은 그저 검고 조용하다.
씨앗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땅속에서는 어쩌면 아주 느린 변화가
시작되고 있을 것이다.
단단했던 껍질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보이지 않던 뿌리가 어둠 쪽으로 먼저 뻗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명은 언제나 눈에 띄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오래 준비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내가 건넨 한마디가,
내가 기다려 준 한 시간이,
내가 묵묵히 감당한 작은 수고가,
누군가의 마음 어둔 곳에서
오래 머물다가
어느 날 그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할지도 모른다.
그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사랑은 결과를 얻어 내는
기술이 아니라,
내게 온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도
닿도록 길을 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어느 아침,
흙을 밀어 올린 작은 싹 하나가
햇빛을 향해 고개를 든다.
너무 작아 가까이 보지 않으면
지나칠 만한 초록이다.
그러나 그 작은 초록은 긴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나는 이 작은 싹을 보며 생각한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거대한 일을 해내라는 명령만은
아닐지 모른다.
누군가의 마음 밭에
무엇인가를 심고,
그 씨앗이 자랄 시간을 믿어 주라는
초대일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새로운 취미를
하나 갖고 싶다.
사랑을 포장하는 취미.
누군가 내게 도움을 청하면
잠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번에는 주님의 사랑을
어떻게 포장해서 건네면 좋을까.
조금 더 진실한 마음으로.
조금 더 오래 들어주는 시간으로.
조금 더 따뜻한 손길로.
그렇게 사랑을
한 사람에게 건넨 뒤에는
조용히 놓아주는 것이다.
그것이 어디에 떨어질지,
언제 싹을 틔울지,
어떤 열매로 자랄지는
묻지 않으면서.
오늘보다 조금 더 진실하게.
내일은 조금 더 정성스럽게.
그렇게 내가 받은 사랑이
내 안에서 멈추지 않게 하는 것.
어쩌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서로 사랑하라" 는 삶은
거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돌려받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도착한 사랑이
나에게서 멈추지 않게 하는 것.
나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그 사랑을
잘 포장하여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