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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에서도 당당했던 요셉” 창39:1-6
새동산교회 주일낮 예배 Apr/03/2005 황종상 목사
성경에서 고난을 당했던 대표적인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욥입니다. 그러나 욥 못지않게 요셉도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었고, 형들의 미움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그가 열일곱 살 때 형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구덩이에 집어넣는 죽음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나중에는 이스마엘 상인에게 팔려서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런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꼭 한번 만나고 싶다’라는 프로가 있는데 한결같이 어려운 형편에서 헤어진 가족을 찾는 내용입니다. 우리나라사람들이 왜 다들 그렇게 어렵게 살았는지 거기에 게스트로 출연한 사람들은 늘 손수건으로 눈물 닦기에 바쁘던데요. 요셉이 그랬을 것입니다. 어린나이에 남의 집에 팔려가서 자유도 없이 그 긴 세월동안 머슴으로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옵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인생을 살다보면 요셉만큼 심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지도 않았던 비극 가운데 놓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이런 고난이 왔을 때 다시 일어나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재기할 수 있는가?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행동지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고난이 있다면 이 말씀을 통해서 요셉과 같이 다시 일어서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떻게 고난 속에서도 당당하게 살 수 있었을까요?
첫째,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2절을 보니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남의 집에서 머슴으로 살았지만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마귀가 목표로 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끊어버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을 합니다. 기도도 못하게 하고 교회도 못 가게 합니다. 마귀가 쓰는 대표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오늘이 아니라 내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가려고 하면 괜찮아 내일 가, 오늘 기도하려고 하면 내일 해, 오늘 헌금하려고 하면 다음 주에 해, 자꾸 내일 내일로 미룹니다. 그러면 평생 내일 내일하다가 못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마귀는 얼마나 영리한지 늘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다닙니다. 조금만 틈을 주면 그 틈새를 공략합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와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의 기도 줄을 놓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통신망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시험 당하고 어려움 당할 때일수록 더 많이 엎드려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기도의 줄이 끊어지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고난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강원도에는 탄광촌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 관광타운이 들어섰지만 과거에는 석탄을 캐다가 매몰되는 사고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지하 500m 1,000m 내려가서 일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찔합니다. 정말 그런 사람들은 돈 많이 벌어야 합니다. 지하 갱 속에서 매몰되거나 바다 한 가운데서 고기를 잡는 사람들은 참 힘든 일입니다. 갱 속에 갇혀있거나 바다가운데 표류할 때 며칠씩 견뎌서 살아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견딜 수 있는 것은 통신이라는 것 때문에 가능합니다. 바깥사람과 연락할 수 있는 선이 있기 때문에 견디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 하나님과의 연락망을 끊어버리면 안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기도의 줄만은 끊어져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잡아야합니다.
요셉이 노예생활 가운데 있었지만 당당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그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당당했습니다. 결국 일어섰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고난이 오면 올수록 하나님과 교제의 끈을 더욱 굳게 만들어야 합니다. 혼자기도하기 힘들면 기도의 체인을 만들어서라도 하십시오. 기도의 동역자를 만들어서 같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삼겹 줄을 만들어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계속되는 한 요셉은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의 당당함이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요셉이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맡겨진 일에 충성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 사람은 당당해집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당당해질 수 없습니다.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요셉은 노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했습니다. 주인을 잘 섬겼습니다. 고난이 올 때 나타나는 증상이 있습니다. 고난이 우리를 마비시킨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으면 멍하게 지냅니다. 참 일도 잘하고 능력도 있는 사람인데 일도 못하고 멍하니 시간을 보냅니다. 그래서 재기의 기회를 놓칠 때가 있습니다. 고난이 오면 올수록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이냐 하면, 작은 일 부터라도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그 일을 하다보면 또 다른 좋은 일들이 생깁니다. 사람을 붙여주시고 또 다른 길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안하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도 왕 김기동 집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가면 있고 안 나가면 없다. 나가면 전도할 대상자가 있고 안 나가면 전도대상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가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고 안 나가면 하나님의 역사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은 아무 일도 안하고 가만히 있을 때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고 나갈 때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셉은 노예의 신분으로 있었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보더니 일을 잘하거든요. 부인 빼고는 다 맡긴 것입니다.
수원 중앙 침례교회 원로목사인 김장환목사님이 어렸을 때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 미군 하우스 보이를 했습니다. 광교산에 나무하러 왔다가 미군들을 만나서 구두도 닦아주고 물도 길러주고 했더니 그만 미군들 눈에 들어서 ‘내일도 와라’ 그러더래요. 그래서 내일도 가서 일을 했답니다. 나무하러 와서 돈을 버는 것 보다 미군들을 도와서 일을 했더니 더 많은 수입이 생겼습니다. 어린아이가 아주 총명하고 일을 잘하니까 너 미국가자!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가서 영어도 배우고 신학도 공부하고 미국여자를 만나서 오늘날 세계적인 목회자가 된 것이 아닙니까? 맡겨진 일에 충성하다보면 더 좋은 일이 생깁니다. 그리고 배우는 것은 부모가 하지 말라고 해도 때를 써서라도 배워야합니다. ‘너는 공부하지 말고 나가서 돈이나 벌어 와라’ 이렇게 말한다 해도 포기하지 말고 공부해야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더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래보면 무엇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나중에 잘됩니다.
지금 우리가운데 고난이 있습니까? 움직이십시오. 가만히 있으면 병납니다. 자꾸 우울한 생각만 듭니다. 그러다가 자살합니다. 이 살기 힘든 세상 죽자, 그러면서 자살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만 1년에 만 오천 명입니다. 일이 없다면 집안 청소라도 하십시오. 지금까지 정리하지 않고 먼지 묻어있는 것들 다 꺼내서 다시 한 번 정리하십시오. 봄도 되었으니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해보십시오. 일이 있다고 하는 것은 삶의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일이 있어야합니다. 집안청소를 다했다면 그 다음은 교회청소를 하십시오. 목사님 제가 할 일이 없습니까? 저한테 물으면 얼마든지 제가 일거리를 드리겠습니다. 묻지 않아도 오셔서 하시면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힘들까봐 봐주려고 일을 안 시킬 뿐이지 일거리는 언제든지 있습니다. 다시금 내가 일할 수 있는 존재로 서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이런 점에서 강했습니다.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일하는 자는 죽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심령을 자꾸 약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동을 마비시키려고 합니다. 절망 가운데 빠진 사람 있습니까? 지극히 작은 일부터 시작하십시오.
통계에 의하면 목사들이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보다 오래 산다고 합니다. 그이유가 무엇인가 하니 목사는 일이 많습니다. 늘 설교준비 합니다. 주일설교를 마쳤는가 싶으면 금방 수요일이 돌아옵니다. 수요일이 지나면 또 주일이 돌아오고 수요일 주일 만 있습니까? 매일 새벽기도회 설교도 해야지요. 목사는 성경을 읽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있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지 않으면 강단에 설수 없습니다. 어떻게 성경 읽지 않고 설교할 수 있겠습니까? 목사가 오래 사는 이유는 바로이것입니다. 계속적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목사가 오래 사는 것은 새벽기도 때문입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주어진 일이 있지 않습니까? 내일은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할 이유가 없습니다. 새벽기도가 늘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 합니다. ‘새벽기도를 하는 사람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마귀가 비극의 화살을 쏜다고 할지라도 다시금 기도를 통해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들 삶속에서 그래도 시험이 비교적 없다고 한다면 기도 때문입니다. 영적인 일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가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교회도 일을 해야 합니다. 선교도 해야 하고 봉사도 해야 하고 성경공부도 해야 합니다. 왜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매일 술 먹고 싸웁니까? 일거리가 없으니까 힘을 쏟을 때가 싸우는 일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싸울 힘이 없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머리를 붙이기가 무섭게 곯아떨어집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 도다. 날씨가 따뜻해지니까 동네 분들이 거리로 나옵니다. 저는 여자 분들이 모여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모르지만 낮에 할 일없이 밖에 나와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그리 예쁘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다른 사람 얘기를 할 때 칭찬을 더 많이 할까요? 흉을 더 많이 할까요? 분위기로 봐서 남의 흉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할 일이 없으니까 모여서 남의 흉이나 보고 없는 말 지어서 나쁜 소문을 내고 그렇게 지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은 좀 덜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부지런하니까 남의 험담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일하면 당당해집니다.
제가 네팔이라는 나라를 가보았는데 길거리에 보면 젊은 청년들이 모여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다. 가까이서 가보니까 미니 당구대 비슷한 것을 놔두고 거기서 예쁘게 만든 작은 돌로 상대방 돌을 맞히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놀음이라는 것입니다. 거리를 다니면 그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낮 시간에 사람들이 다 보는 거리에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일거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시간을 탕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일이 없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다닐만한 아이들이 학교에 안가고 돌을 깨고 있습니다. 머리만한 돌을 작은 망치로 잘게 부수는 일인데 초등학교아이들이 학교에 안가고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번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가난하니까 그런 것이지요. 공부 할 나이에는 공부해야하고 일할나이에는 일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미래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하지 않으면 낙심이 옵니다. 일하지 않으면 작은 고난에도 생활이 마비되어 결국은 영적인 마비현상까지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할 때에 일어섭니다. 고난 때문에 무너졌습니까? 일어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둑질 빼고는 무슨 일이든 해야 합니다.
저는 다윗이 참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무너졌을 때 빨리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라는 여인과 범죄 했습니다.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징계의 의미로 그 아들을 죽입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기도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죽였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다윗의 행동을 보십시오. 아이가 죽고 난 다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일어나서 밥을 먹고 새롭게 일을 합니다.
사람들이 의아해 합니다. 임금님, 어찌된 일입니까? 식음을 전폐하시고 기도하시더니 아이가 죽었는데 어찌 그리 안색이 좋아지십니까? 다윗이 대답합니다. 이제 아이가 죽었는데 내가 더 기도할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인지 모릅니다. 이제는 미래의 일에 정진해야지 내가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서 일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빨리 내가 하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박차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것이 다윗의 강점이었습니다. 우리사람은 실수할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 때문에 현재를 죽이지 않습니다. 과거의 비극 때문에 현재를 낭비하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 나에게 주어진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13을 보니까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바로 오늘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오늘이라고 일컫는 동안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어려움 때문에 오늘 일을 제대로 못한다고 하면 문제입니다. 과거의 잘못 때문에 오늘 일하지 못한다고 고민만 하고 슬퍼하기만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살아남은 자는 또 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다시 일어나야합니다. 과거의 아픔 때문에 오늘 아무 것도 못한다고 하면 이것은 재기할 수 없는 인생입니다. 고난 가운데 있다하더라도 오늘에 대해서 충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요셉이 고난 속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수시로 요셉을 유혹합니다. 요셉이 잘생겼으니까 계속적으로 손짓을 합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남자들은 대체적으로 보면 충동적입니다. 이성의 지배를 받기보다는 감정의 지배를 더 빨리 받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젊은 남자였지만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고난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도덕성에 대해서 무디게 만듭니다. 내가 노예로 전락했는데 이제는 인생 끝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다 무너졌는데 이제는 막가는 인생이다. 그래서 막가파가 나오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우리가 가난한데 몸이라도 팔아서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집창촌으로 가고, 가정을 가진 엄마들이 남자들을 만나고 그러지 않습니까? 고난은 죄를 합리화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마귀가 유혹을 합니다. 돌로 떡을 만들라고 합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40일 굶었으니 얼마나 배가 고프겠습니까? 그런 상황이지만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전부 합리화시키려고 합니다. 내가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가난 때문에...,
그러나 요셉은 자기의 신분은 노예였지만 절대 노예같이 살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말에 잘 입은 거지가 얻어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얻어먹을수록 잘 입고 다녀야합니다. 요즘은 냄새나고 거지행세하면 사람들이 피해 다니지 도와주지 않습니다. 잘 입고 다녀야 도와줍니다. 자기 신분은 노예였지만 노예같이 살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같이 살았습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무너지게 만듭니다. 돈에 대해서 비굴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 앞에서 자존심을 버리게 만듭니다. 고난이 오면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요셉은 비록 남의 집에서 노예로 일을 했지만 그 당당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온다 해도 하나님의 자녀들답게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 나오라고 하면 내 처지가 좀 좋아지면 교회에 나가지요. 안 좋아져도 부끄러워할 것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 다 고만고만합니다. 인생이 펴지기 전에 나와서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이 하시지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일어난다 해도 하나님과 교제의 끈을 놓지 말아야합니다. 다시 일어나야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충성하십시오.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요셉처럼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용장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