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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산 (聳巖山 544m).도덕산(365m).맹일산.(323m).작약봉(281.5m). 그리고 운주사--전남 화순
산행일자 : 2015. 2. 26 (목). 날씨: 맑음. 산행거리; 12.9km. 산행시간: 3시간50분.
교통편; 새마포산악회 및 현지 택시. 비용; 2만원(하산후 찰밥및 주류제공)+택시비(능주~용암사11,000원+ 불암사자락우봉리~덕고개 안성저수지15,000원)
산행코스 : 능주농촌기술센터.논재갈림길.용암산장갈림길~(택시이동)~용암사~능선삼거리~도덕산 왕복~420봉~금오산성~칠형제바위~용암산~510봉~ (암릉)~불암사~도로~논재갈림길 ~(택시이동)~818번도로.천태산입구이정표~안성저수지~ 맹일산~안부~작약봉~안성저수지.
2015.2.22(일)은 경북 영주에 있는 용암산(龍巖山633m)을 갔는데 2015.2.26(목)은 전남화순에 있는 용암산(聳巖山547m)에 듭니다. 경북 영주 용암산(龍巖山633m)은 용용(龍)자 용암산이고 전남화순의 용암산(聳巖山 544m)은 솟을용(聳)자 용암산 입니다. 같은 용암산이라도 그뜻이 많이 다르듯 찾게된 연유도 다릅니다.
2015년 2 월 26일 (목요일) 07;00 여느때 목요일 처럼 합정역 8번출구 LIG생보 앞에서 새마포산악회 1호차에 탑승합니다. 설 연휴중에 목요일이 끼어있어 산악회 행사가 없었던 탓으로 1주를 쉬다보니 오랜만(2주)에 오는 것 같습니다. 만차입니다. 많은 반가운 대원들 만납니다. 오늘 새마포산악회는 전남화순에 있는 A코스‘화학산(615.7m).금성산(468.1m).깃대봉(496.2m).개천산(497.2m).천태산(482.5m).작약봉(281.5m).맹일산(323m) (12 km /5시간30분)’와 B코스 ‘내촌-화학산(615m)-접팔재-금성산갈림-금성산(468.1m)-갈림길빽-깃대봉(496.2m)-개천산(497.2m)-홍굴재-개천사(8km/4시간)’를 갑니다.
그런데 A코스중 “금성산(468.1m).깃대봉(496.2m).개천산(497.2m).천태산(482.5m)‘은 ‘2015년 2월15일(일)/ 날씨; 흐린후 세우/산행거리; 12.1km/산행시간; 4시간./교통편; 청마산악회. /비용; 38,000원(선입금35,000원) /산행코스: 청풍리-임도-화학산-접팔재-금성산왕복-깃대봉왕복-개천산왕복-홍굴재-천태산왕복-홍굴재-거북바위-개천사-주차장’으로 기 답사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개인적으로 1)화순에 있는 왜 100대 명산에 들지 않았을까? 싶은 아름다운 암릉산인 ‘용암산(聳巖山 544m)’과 2)지난번 답사때 천태산에서 이후 빠진‘작약산(281.5m).맹일산.(323m)’ 도 하고 3)무엇보다도 가보고 싶었던 화순의 명물 ‘운주사 와 천불천탑’을 목표로 합니다. 택시비는 문제가 안되지만 빠른 준족의 새마포 산악회 인지라 주어진 시간(5시간30분)전에 마무리가 될것이고 주어진 시간대로 진행하면 1).2).3).이 가능하겠지만 그리되면 민폐가 될듯하여 2).3)중 어느 하나는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대로 운주사 탐방이 마음 뿐이었습니다.
■전남 화순은 자연과 문화유적이 많은 고장이다.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 유적지가 있고 최근 제한적으로 개방된 화순적벽은 중국의 적벽(赤壁)에 버금갈 만큼 이름난 경승지다.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쌍봉사는 철감선사탑비로 유명하다.
화순의 산 중에서는 최고봉인 모후산(919m)과 바위가 아름다운 백아산(810m)이 잘 알려져 있다. 용암산(聳巖山 544m)도 왜 100대 명산으로 지정되지 않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빼어난 산세의산이다.
전남 화순군 한천면과 춘양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용암산(聳巖山547m)은 일반적인 화순지방의 유순한 산세와는 달리 마치 용암이 솟아 오른 듯 날카롭고 거칠게 보이는 산이다. 용암산의 용자도 솟을 용(聳)을 쓴다. 정상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뻗은 능선은 바위들로 연봉을 이루고 있는데, 특히 정상을 비롯한 3개의 봉우리는 날카로운 암봉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상을 향한 길목에는 고려 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축성했다는 금오산성 터의 흔적이 듬성듬성 남아 있다. 명물인 칠형제바위 및 정상에서 바라보는 금전 저수지 주변의 풍경과 북쪽의 무등산 조망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용암산은 원래 금오산이라 불렸는데 언제부터인지 산에 솟은 바위가 있다고 하여 용암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용암산(聳巖山)의 한자어는 통상적인 ‘용’ 용(龍)자가 아닌 ‘솟을’ 용(聳)자를 쓰는데, 이는 산세가 용의 형상을 닮은 게 아니라 높이 우뚝 솟아 있다는 의미다.
■도덕산(325m)은 용암산 북쪽의 능선에 있는 나지막한 산이다.
■맹일산(323m)과 작약봉(281.5m)은 전남 화순군 도암면 천태리 에 소재한 산으로 천태산 암릉자락이 끝나고 안부를 지난곳에 다시 솟은 산이다. 작약봉(281.5m)은 어떤 지도에는 맹일산(323m)과 다른 곳에 이름이 나오지만 실체가 없는 산이다. 그런 탓으로 동아지도에는 작약봉(323m)으로 다른지도에는 맹일산(323m)으로 표기되어 있어 같은산의 다른 이름으로 봄이 옳을 듯 싶다.
■전남 화순에는 우리나라 사찰들 중 수수께끼가 가장 많은 천불산 운주사가 있다.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천불산 기슭에 위치한 운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의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서 나지막한 산속에 들어앉아 있다. 절 이름을 ‘배주(舟)’로 삼은 것은 ‘중생은 물이요, 세계는 배’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물방울 같은 중생이 모여 바다를 만들고 세계라는 배가 그 중생의 바다 위에 비로소 뜨는 것이며, 역사는 중생의 바다에 의해 떠밀려가는 것이라는 깊은 뜻이 운주사의 주(舟) 자에 숨어 있다.
창건 당시 운주사의 명칭은 『동국여지승람』에는 운주사(雲住寺)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 후 중생과 배의 관계를 의미하는 운주사(澐舟寺)로 바뀌었다가, 다시 훗날 그 두 가지를 섞어서 운주사(雲舟寺)가 되었다. 그러한 이름 때문인지 이 절을 처음 지을 때 해남의 대둔산이며 영남의 월출산 그리고 진도와 완도, 보성만 일대의 수없이 많은 바위들이 우뚝우뚝 일어나 스스로 미륵불이 되기 위하여 이 천불산 계곡으로 몰려왔다고 한다.
창건 설화는 신라 때의 고승인 운주화상이 돌을 날라다주는 신령스러운 거북의 도움을 받아 창건하였다는 설과 중국 설화에 나오는 선녀가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운주화상이 1000일 동안 기도를 하여 흙 같은 것으로 탑을 쌓았는데 탑 1000개가 완성된 다음 천동선녀(天童仙女)로 변하여 불상이 되었다는 설도 있고, 거의 똑같은 솜씨로 만든 돌부처들의 모습을 보아 한 사람이 평생을 바쳐 만들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석공들이 석탑과 석불을 만들었던 연습장이었을 것이라는 허황한 설도 전해진다.
설화나 문학에 앞서서 운주사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다.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약 1000개씩 있고 또 석실이 있는데, 두 개의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 개천사는 천불산에 있다”라고 쓰여 있는 것인데, 이것은 현재 천불산 좌우 산등성이에 석불과 석탑이 산재한 것과 일치하며, 석불 둘이 등지고 있는 것과도 일치한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이었던 도선 국사는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자 중국에서 사자(使者)를 보내왔는데, 옥룡(玉龍 - 도선 국사의 어렸을 때의 이름)은 이를 미리 예측하고 자기 어머니에게 “어머니 깨끗한 옷 한 벌을 준비해 주십시오. 이제 어머니와 헤어질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중국으로 갔다.
중국에서 그는 중국의 일행 선사(一行 禪師)로부터 음양술수와 풍수지리설을 배우는데, 일문천오(一聞千悟)라 하나를 들으면 천을 깨우치는 능력을 보여 더 이상 일행 선사로부터 배울 것이 없어 조선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귀국길에 일행 선사는 도선 국사에게“그대도 알다시피, 세계에서 제일 높은 히말라야 산에서 시작한 정기는 곤륜산에 뭉쳤다가 다시 조선의 백두대간을 타고 한반도 전역에 미치는데, 그래서 조선의 지혈 몇 개를 끊지 않으면 조선의 기운이 너무 높아져 중국과의 관계가 좋아지지 않는다. 그러니 조선에 가거든 몇 개의 지혈을 끊어 달라”고 부탁했다. 도선은 조선에 와서 스승의 말대로 지혈 몇 개를 끊어 놓으니 능주 지방에서 땅이 피를 토했다.
이런 참상을 목격하고 잘못을 깨달은 그는 중국에 보복을 하려는 결심을 하고 천태산에 올라 돌방아를 만들어 방아고(머리)에 철마를 붙여 철마방아를 만들었다.
이 방아를 당나라를 향해 설치한 다음 도선은 매일 산에 올라 방아를 한번씩 찧으니, 중국의 황실에 국가의 큰 인물들이 매일 한명씩 죽는 괴변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런 괴변에 황제는 급히 일행 선사와 상의하여 그 연유를 알아내고 급히 사자를 보내 도선 국사를 만나게 했다. 사자는 황제의 명임과 동시에 일행 선사의 부탁이라면서“제발 이 일만은 중지해 주십시오. 그러면 국사의 그 어떤 청이라도 다 들어주겠습니다.”라고 하자, 도선 국사는 “이곳 운주사는 땅기운이 약한 곳이어서 일본의 침입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형이니 이곳에 천불천탑을 세워 일본의 기운이 승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중국이 이곳에 천불천탑을 세워주었는데, 산 정상에 있는 와불 만큼은 못 일어나도록 조성하였다. 왜냐하면 이 와불이 일어나면 그 방향이 정면으로 중국의 곤륜산을 향하게 되어 있어 중국의 정기를 전부 흡수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운주사의 전설:
도선이 절을 세우기 위해 머슴을 데리고 와서 천상(天上)의 석공들을 불러 용강리 중장터에 몰아놓고, 단 하루 사이에 천불천탑을 완성하고 새벽닭이 울면 가도록 일렀다. 천상에서 내려온 석공들은 절 위의 공사 바위에서 돌을 깨어 열심히 일했으나, 도선이 보기에 하루 사이에 일을 끝내지 못할 듯싶으므로 이곳에서 9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일괘봉에 해를 잡아놓고 일을 시켰다. 해가 저물고 밤이 깊었지만 천상에서 내려온 석공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이때 이들의 일손을 거들어주던 도선의 머슴들이 지쳐 꾀를 생각해냈다. 어두운 곳에 숨어서 닭 우는 소리를 흉내 낸 것이다. 꼬끼오~! 일을 하던 석공들은 가짜로 우는 닭 울음소리를 듣고 모두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이 때문에 운주사에는 미처 세우지 못한 와불이 생겼고, 6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화순군 도암면 봉하리의 하수락(下水落, 아릿무지개) 일대의 돌들은 천상의 석공들이 이곳으로 돌을 끌고 오다 버려두고 가서 중지된 형국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운주사의 구층석탑]은 높이 10.7미터의 고려시대 석탑이다. 칠성바위 앞의 칠층석탑 역시 고려시대의 것으로 커다란 암반 위에 있다. 탑의 전체 높이는 7미터다.
운주사 와불 아랫자락에는 칠성바위가 있다. 얼핏 보면 원반형 칠층석탑의 옥개석으로도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북두칠성이 땅에 그림자를 드리운 듯한 모습과 흡사하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운주사 탑들의 배치가 하늘의 별자리와 같다고 보기도 하며 운주사가 고려시대 칠성 신앙의 근거지였다고도 본다.
한편 [운주사에 과연 천불천탑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불교에서는 1000이라는 수를 만수, 즉 무량무수의 여래를 표상하고, 천불 신앙은 과거의 장업겁, 현재의 현겁, 미래의 성수겁의 3세 3000불 가운데 현재의 현겁에 대한 신앙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천불천탑을 세운 것이 아니라 천불 신앙에 의한 천불천탑이었을 것이고, 그것도 하룻밤 새 도력으로 세운 것이 아니고 11세기 초반에서 15세기에 걸쳐 만들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운주사가 간직한 설화의 백미는 와불에 있다. 절에서 왼쪽 능선으로 오르면 천불산 왼쪽 기슭에 와불이 모셔져 있다. 높이 12미터, 폭 10미터에 이르는 크기로 산등성이를 뒤덮을 만큼 커다랗다. 그 옆으로 좌상과 입상을 한 돌부처 2기가 나란히 누워 있다.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전설이 있다. 와불 밑으로 북두칠성을 본떠 만들었다는 칠성바위가 있다. 원형으로 깎아놓은 일곱 개의 돌로, 큰 것은 지름이 3미터 가까이 된다.
산악회버스가 화순을 지나 능주에 도착하기에 용암산을 답사코져 하는 준족인 김규진님 . 고은주총무님 그리고 나 세사람은 먼저 내립니다. 농촌 개발센터 앞입니다. 너무빨리 내린 듯 싶습니다. 택시로 용암산 들머리 용암사까지 편하게 들어갑니다. 통상 산행들머리는 한천면 금전리 금전저수지 옆 논재 갈림길에서 금오암과 용암산장 이정표를 보고 안으로 들어섭니다. 고마운 택시기사님 배려로 용암사까지는 도로 확장 공사중인 비포장길을 운행해준 덕분에 편하게 용암사 주차장에 11;20 도착 간단히 산행준비하고 산행 시작합니다.
0km 0분[용암사주차장](11;20)
용암사 주차장이다.이정표(정상2.2km/한천면)서있다. 용암사 경내로 들어간다. 마당 좌측은 종무소, 우측은 대웅전과 산신각이 있는데, 마당 좌측 종무소 주춧돌이 집의 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의 형상이다. 용암사 마당 가운데를 지나 뒤쪽으로 등산로다. 이정표(용암산정상2.1km)서있고 등산로는 잘 정비 되어있다. 용암사에서 700m를 오르니 능선 삼거리다. [0.7km][15분]
0.7km 15분[능선3거리](11;35)
이정표(정상 1.5km)서있다. 좌측에 있는 도덕산 방향은 아무런 표시가 없다. 좌측에 있는 도덕산을 왕복한다. 분명한 길을 따라 가다가 길없는 우측의 능선 쪽 으로 붙는다.(cf 분명한 길은 도덕산으로 이어지지 아니하고 정상을 우회한다) 능선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희미한 흔적의 길이다. 이내 도덕산 정상이다.[0.2km][6분]
0.9km21분[도덕산](327m)(11;41~46)
정상석도 삼각점도 아무것도 없다. 한현우님의 조그만 정상표지판과 어떤 선답자가 수기로 쓴 도덕산(327m) 돌맹이가 정상석을 대신한다.(11;50)능선 삼거리로 Back 제법 가파른 경사면을 오른다.(12;00)이정표(정상0.9km/금오산성0.4km/용암사1.3km)서있다. 금오산성 0.4km/정상0.9km 이정표를 뒤로하고 능선을 따라 가다가 (12;05) 능선 3거리 이정표(정상0.7km/금오산성0.2km/전망대)만난다. 우측 전망대 바위에 오른다. 조망이 양호하다. 금전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전망대에 오르니 북쪽으로 무등산(1,187m)이 조망된다. (12;05~12;07)
되돌아 내려와 능선길 조금 이어가니 허물어진 성곽터 나타나고 이정표 금오산성(정상0.5km/용암사1.7km)서있다.
금오산성은 산성 터의 흔적만 남아 있다. 원래 성곽의 길이는 1.6km 정도였으나 현재는 약 100여m 정도의 허물어진 성터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빠른 복원이 아쉽다. 금오산성은 용암산의 자연암벽과 작은 계곡을 이용하여 축조한 포곡식 산성으로서, 서남쪽에 위치한 예성산성과 함께 능주읍을 방어하는 산성 이다. 고려 때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축성되었고, 조선조 병자호란 때 다시 수축해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금오산성터를 지나 조금 진행하니 용암산의 이름을 낳게한 칠형제 바위의 장관이 나타난다.
칠형제 바위가 빤히 보이는 암봉에 서면 일렬로 도열한 칠형제 바위가 하늘로 뻗을 듯 솟아 있다. (12;16)칠형제 바위의 형님바위 위에 올라 서서 조망의 진수를 만끽한다. 북쪽으로 우뚝 솟은 무등산을 중심으로 좌측으로는 금전저수지 그리고 우측으로는 모후산의 산줄기가 펼쳐져 있다. 모후산에 있는 기상관측 레이더용 안테나가 희미하게 보인다. 칠형제 바위에서 일망무제(一望無際) 의 조망을 즐기다가 정상을 향한다. (12;20)가파른 철제계단을 올라 조망이 확 트이는 능선을 따라가니 용암산 정상이다. [1.7km][44분]
2.6km 65분[용암산聳巖山] (544m)(12;25)
아담한 오석 정상석이 반긴다. 이정표(불암사1.4km/용암사2.2km)가 통신철탑앞 세워져 있는 정상에서 남쪽의 510봉은 위험해 오르기는 힘들어 보인다. 불암사 방면으로 하산 길에 든다. 510봉 옆으로 난 길을 돌아가니 바위와 바위사이에 철제다리다. 철제다리를 건넌다. 암봉을 내려와 고도를 낮추니 (12;38) 기암이 있는 곳에 묘지 1기가 있다. 묘지를 지나면서 바위구간의 하산길도 끝나고 산길은 부드러운 흙 길로 변한다. 가파른 구간을 피해 지그재그로 길이 이어진다. 도로에 내려선다. 불암사 갈림길이다.[1.4km][30분]
4.0km 95분[불암사 갈림길](12;55)
이정표(불암사/정상1.4km)서있고 용암산 등산 안내도 서있다. 불암사 길림길에서 오른쪽 높은 곳에 위치한 불암사는 구경하는 것을 생략하고 그냥 도로를 따른다. 도로 따라 내려오다가 아침에 타고온 택시를 콜하고 계속 도로따라 내려온다. 용암산에서 이어진 능선의 고개인 논재 와 금오산성(음식점 이름)가는 임도 갈림길도 지나면서 계속 우봉리를 향해 도로따른다. 콜한택시가 도착한다.[2.4km][25분]
6.4km 120분[우봉리](13;20)
콜한 택시타고 새마포산악회 날머리인 안성저수지 앞 천태산 등산로 이정표 3거리에 13;30도착 합니다.
6.4km 130분[안성저수지 천태산 등산로 이정표 3거리](13;30)
맹일산과 작약봉 산행에 들어간다. 도로 따르다가 저수지 뚝방을 지나니 임도가 나온다. 임도따라 우측으로 진행한다. 산세를 보니 우측능선에 길이 있을듯 판단되어 도로따르니 (13;42)원천태길67번지 산간마을 집앞 문패다. 동네3거리에서 좌측임도를따른다. 생각밖으로 길이 양호하다. 주민들이 많이 다니는지 아니면 한전 임도인지는 잘모르지만 길이 고속도로다. 간혹 선답자 표지기도 있다. 3거리에서 우측능선으로 붙어 마지막 오름을 극복하고 너덜지대 지나 급경사 오름길 오르니 돌탑3기가 있는 맹일산이다.[2.0km][35분]
8.4km 165분 [맹일산323m](14;05~14;10)
정상에는 일렬로 돌탑 3기가 서있고 '2천태산'이라 쓰인 넓적한 돌도 보인다. 삼각점도 정상표지판도 없다. 잠시 안성저수지와 도암면 일대를 내려본다. 무사 산행을 기원하는 의미로 고총무님 준비해온 술 잔 부어 고시레한다. 동아지도 네비에는 이곳이 작약봉(323m)으로 표기되어 있다. 다른지도에 표기된 작약봉(281.5m)을 찾아 천태산 방향으로 능선길 이어가다가(14;15) 너덜지대로 내려선다. 너덜지대를 우측으로 지나 능선길 이어가니 이제 길이 없다.
앞에 봉이 보여 혹시 작약봉일까 싶어 쓰러진 녹슨 철망을 넘어 잡목 가시의 저항을 혜치고 봉에오르니 아무것도 없다. 일단 선두주자를 만날때까지 천태산을 목표로 명감넝쿨과 가시와 잡목의 저항을 뚫고 길없는 사면을 치고 내려서 좌측 내림능선에 붙어 희미한 길 만나 안부에 내려선다.[1.0km][20분]
9.4km185분[안부](14;25)
좌측으로 하산길 예정한다. 우측으로 희미한 길 있고 직진 능선 오름길은 길이없다. 가시와 잡목의 저항이 너무심하다. 10여분 사투하고 오름길 올라서는데 임비호님 만난다. 모두들 천태산 암릉. 잡목. 명감덩쿨 하산길을 포기하고 헬기장에서 안성리로 하산하고 혼자 온단다. 선두 만나면 돌아 설려 했는데 마침 그만 오르라는 임비호님 권유다. 같이 안부로 내려와 임비호님은 맹일산으로 가고 우리는 안부에서 우측 임도따라 내려 하산길에 든다.
긴 임도따라 내려서(중간에 장마때 패인 곳도 있음) 마을 도로에 내려서고 아스팔트 도로따라 안성저수지 지나 안성저수지 천태산 등산로 이정표 3거리에 도착 산행종료 한다.[3.5km][45분]
12.9km 230분[천태산등산로이정표3거리](15;10)
도로 한켠 공원옆 공터에 서있는 1호차에서 옷보따리 꺼내 근처 묘지 뒤로 가서 새옷 갈아입습니다.바람이 많이 붑니다. 남쪽지방이라도 날씨가 쌀쌀합니다. 새마포 산악회에서 제공한 따끈한 찰밥 배급 받고 집에서 보온통에 준비해 온 따끈한 된장국 말아 조촐한 반찬에 식사 즐깁니다. 새마포산악회에서 제공하는 막걸리 몇잔으로 테이불 메이트끼리 무사산행 건배합니다.
항상 늦어 트러블 메이커가 된 그 한분이 오늘도 늦어 40여명의 대원들의 불평의 기다림 끝에 그분도 도착되어 17;00경 전남 화순 도암면을 떠나 21;30 합정역 도착 2/9호선으로 귀가합니다. 운주사를 탐방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