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정문을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니 주차장 사이로 언론사 이름을 새긴 여러 대의 차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웅장한 타원형 병원 건물 넓은 창 유리에 반사된 신촌의 파란 하늘이 손짓하듯 반겨준다. 병동 현관에서 출입자 확인을 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 병동에 내리니 꽃그림 배경의 VIP병동 안내판 앞에서 낯선 사람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며 막무가내로 질문을 한다. “오늘 가족을 만나신 분들입니까?”, “어머니를 만나게 되는데 기분은 어떻습니까?”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질문에 정신이 없다. 잠시 후 병원 직원들이 와서 별도의 공간으로 기자들을 안내하고 부들댁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기자 두 명만 취재를 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한다.
병실안으로 들어온 미숙은 침대를 세우고 기대어 앉아있는 부들댁을 보자마자 부둥켜 안은 채 “엄마! 엄마! ~”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한참 후 미숙은 어머니의 얼굴을 두 손으로 만지며 “엄마! 엄마! 얼마나 엄마를 보고 싶었는데... TV를 보다가 안동이라는 말만 나와도 눈물 흘리며 살았어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 고마워요” “동생에게 들은 엄마 이야기에 너무 가슴이 아파요” 말없이 눈물만 흘리던 부들댁은 “아가~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휴~ 한숨을 내쉬더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어” “못난 애미 때문에 고생 많았구나”
병실 안 풍경은 가족과 취재진 모두 눈물과 기쁨이 뒤섞인 모녀간의 상봉에 아무도 끼어들지 못하고 진정해지길 바랄 뿐이었다.
그사이 바깥 취재진들이 모인 휴게실에서는 광홍이와 하람이가 빅데이터를 통한 프로젝트의 과정을 노트북으로 화면을 보여줘 가며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제까지 시도해보지 않았던 「빅데이터를 활용한 DNA 분석」이라는 이산가족 찾기 프로젝트에 국내외 언론들이 앞다투어 관심을 가지는 것은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빅데이터가 실생활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가? 를 세계가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병실 안의 풍경도 이제 진정이 되어 부들댁의 병상 가까이에 앉고 서서 감격의 순간을 이어간다. 한명 한명 가족 소개가 끝나고 나지막한 소리로 부들댁이 딸 미숙을 부른다. “야야 네 가족들은 잘 있나, 어떻게 살았노” 딸을 만난 기쁨에 미숙의 가족들을 미처 물어보지 못한 부들댁은 딸의 손을 꼬~옥 잡고 궁금한 생활 형편을 물어본다. “야야 니 얼굴을 보니 젊을 때 내 사진 보는 것 같다.” 부들댁의 한 마디에 온 방에 웃음이 가득하다.
병실엔 부들댁의 저녁식사를 알리는 잔잔한 음악 소리와 함께 큰 식판 위에 밥과 국, 반찬들이 꽃무늬 두껑을 덮은 채 들어온다.
미숙은 “어머니께 밥 한끼 해 드리지 못했는데”라며 훌쩍인다.
광율이와 큰며느리 미영은 바깥 식당에 예약을 해 놓았으니 식사를 하고 오자고 미숙을 재촉하니 미숙은 오늘은 안 먹어도 배부르고 어머니 맛있게 드시는 것 보고 가겠노라고 이야기 한다.
할 수 없이 어머니의 식사를 돕는 미숙을 기다렸다가 가족들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엔 퇴근하고 급하게 찾아온 미숙의 남편 최서방과 딸 나리도 함께했다. 훤칠한 키에 듬성 듬성 머리칼이 빠진 최서방은 눈도 부리 부리하게 서글 서글한 사람이었다. 만면에 웃음 띤 최서방은 처음 보는 처남들과 처가 식구들이었지만 오랫동안 만났던 사람들처럼 가깝게 다가온다.
그래도 큰아들 김광율 언론을 통해 가끔씩 보던 얼굴이 아니든가
좌중을 이끌어 갈 지도자 김광율이 식당 별실에 마련된 식탁 가운데로 나간다. 마이크는 잡지 않았지만 그의 풍채와 근엄한 모습이 모두를 압도한다.
“오늘은 우리 가족이 하나 된 날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머니를 더 편히 모시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지만 앞으로 저부터 우리 가정의 화목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애써 눈물을 참는 광율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다음은 빅데이터 도사가 된 광홍이가 일어나 “감사합니다! 제 일이 너무 바빠 가족을 가까이하지 못했던 지난 날을 회개합니다!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 모두가 박수를 치며 울다가 웃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다음 최서방이 인사할 차례가 되었는데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잠시를 기다려 음식이 정리된 후 최서방이 일어서 90도에 가깝게 허리를 숙여 속칭 폴더형 인사를 한다. “저는 아내의 아픔을 알기에 오늘이 더 소중한 날입니다” “시간만 나면 컴퓨터로 안동신시장을 검색하고 라디오 방송의 딸을 찾는 어머니 사연을 빠지지 않고 듣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누추하지만 빠른 시일내 저희 집으로 장모님과 함께 모시겠습니다.”
우렁찬 박수가 한참 이어진 뒤 화려한 색상의 임금님 밥상처럼 정갈하게 차려진 퓨전한정식에 모처럼 밝은 얼굴로 젓가락을 바쁘게 움직인다.
길어진 식사 시간이 끝나갈 무렵 벽걸이 TV의 화면에 저녁 뉴스가 나온다. 식상한 정치 뉴스들이 흘러간 뒤 큰 자막이 뜬다. 『빅데이터가 찾은 모녀』 그리고 병실의 상봉 장면과 광홍이의 인터뷰 장면이 자세하게 전달된다. 기자는 이산가족 찾기의 신기원을 세운 사례라고 김광홍박사를 치켜세운다.
뉴스를 보고 쑥스러운 듯 광홍이 “아니 어머니와 누나가 주인공인데 왜 나를 띄워” 겸연쩍게 웃으며 저녁 식사자리는 끝이 났다.
다시 병실로 돌아온 가족들은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끝이 없다. 아이들 이야기며 고향집에 관한 이야기 비록 기억은 없으나 듣는 이야기를 머릿속 그림으로 그리며 미숙은 고향집의 빈 공간을 채워간다.
부들댁은 딸을 만난 기쁨에 쑤시고 결리던 통증이 싸~악 사라진 듯 하다.
병상을 내려와 걸어보니 비록 링거는 치렁 치렁 달려 있으나 몸이 가볍다. 아니 그 옛날 미숙이를 데리고 명절 장날 신시장에 타임머신을 타고온 듯 과거로 떠난다.
모두가 행복한 밤이 지나간다. 그러나 부들댁의 병실은 불이 꺼질 줄을 모른다.
오늘 밤은 딸 미숙이와 단 둘이 있고 싶은 마음에 부들댁은 큰아들 광율이를 향해 “애비야 니가 너무 피곤하니 오늘은 집에 가서 푸~욱 쉬거라”
어머니의 마음을 읽은 광율은 웃으며 “예 그렇게 할께요”
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병실 침대 위 작은 등 하나를 켜둔 채 부들댁과 미숙의 잔잔한 대화가 이어진다.
어머니는 말을 아낀 채 딸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고 싶어 재촉한다.
애써 눈물을 참고 담담히 그리고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딸의 삶의 흔적들이 한 편의 소설 같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고생 마이했다” “안해도 될 고생을 애미 잘 못 만나 했구나” “쯔쯔쯔...”
부들댁의 딸을 향한 안타까움은 한참을 이어졌다.
미숙은 “아니예요 엄마! 지금이라도 엄마를 만났으니 얼마나 행복해요”
“이제 빨리 나아서 저하고 여행도 하고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요”
살갑게 다가오는 딸의 말이 부들댁에게는 어느 치료제보다도 더 병을 낫게 하는 것 같다.
부들댁이 딸에게 “야야 저기 옷장에 있는 내 속바지 좀 다오”
갑자기 속바지를 찾는 어머니가 의아했지만 미숙은 옷장의 속바지를 꺼내 어머니에게 건넨다.
어머니는 어둔한 손으로 속바지의 삔침을 열고 꼬깃 꼬깃 싸인 종이를 꺼낸다. 미숙이의 손에 꼬~옥 쥐여 주며 “야야 내가 니한테 진 빚이 많은데 그 빚은 우예 갚겠노 별을 따주고, 달을 따 줘도 못 갚는다. 적지만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도록 해 다오”
“아니예요 엄마, 엄마 얼굴 보는 것이 제겐 천금보다 소중해요” “그런말 하지 마세요” 부들댁이 내민 꼬깃 꼬깃 접힌 종이를 펼친 미숙은 화들짝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