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4장 강하고 담대하게 직분을 감당하는 목사와 부모: 담대함의 세 가지
이유
2015-1-19 가정기도
찬송- 41장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고린도
후서 전체는 직분에 대해 가르친다. 13장의 1-7장, 10-13장은 사도의 직분 말씀 전하는 목사의 직분을 말한다. 중간에 8-9장은 일반 성도들이 헌금하는 직분을 말한다. 하나님이 직분들을
주셨다.
3장은 은혜로 받은 직분, 그래서 영광이 있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된다고 한다. 4장은 직분 받은 자로서 어떻게 낙심하지 않고 강하고 담당하게 담당할 것인가,
신실하게 직분이 사명을 다할 것인가를 말한다. 3장은 직분 그 자체의 영광을 말하고, 4장은 직분자 그 자신이 어떻게 할까를 말한다. 사도의 직분을 배움을
통해 목사, 성도, 부모의 직분을 신실하게 하는 종들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1. 순수하게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이 영광의 능력을 성도들에게 비춘다 (1-6절)
1절,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는 직분을 수식한다. 긍휼은 불쌍하게 여긴다는
의미 라기 보다, 자격 없는 사람에게 공짜로 주신 은혜를 말한다. 사도는
은혜로 직분을 받았기에 낙심하지 않는다. 낙심한다는 이 단어는 4장에서
한 번 더 나오고 (16절) 같은 뜻 다른 다른 단어 (8절)까지 합치면 3번
나온다.
사도는 은혜로 직분을 받았기에 담대하다. 낙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천한다.
즉 스스로 추천서를 쓴다. 3장에서는 붓으로 쓴 추천서를 쓰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고린도 성도들 자신이 복음을 받은 그 자체가 사도 바울의 추천서라고 말했다.
같은 취지로, 4:2에서는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해 스스로 추천서를 쓴다.”고 한다.
그래서 하지 않는 일이 있다고 2절에서 말한다. 첫째 숨은 부끄러움이 일을 버린다. 둘째, 궤휼, 즉 남을
조작하는 교묘한 수법 가운데 행하지 않는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한다. 혼잡케 한다는 것은 장사치들 자기 물건을 실제보다 값비싼 것처럼 속이는 것을
말한다. 2:17에서의”혼잡케 한다.”와 단어는 다르지만 뜻은 비슷하다. 2:17에서는 “혼잡케 하는 것”은
흥정하듯이, 즉 물건 값을 많이 받기 위해 흥정하듯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고 했다. 4;2에서 혼잡케 하며 속이는 것은 궤휼, 즉 속이는 것과 연결되어
말한다.
칼빈 목사님은 이것을 “창녀들이
계속 자기 얼굴을 화장하듯이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복음
자체가 아주 순수하므로 복음 자체만 나타내야 한다. 마치 화장하듯이 거기에 무엇을 더하는 것은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부패시킨다. 현숙한 여인은 진실하고 순수한 얼굴로 남편을 대한다. 남편을 섬기는 데 필요한 만큼 얼굴을
단장한다. 그러나 창녀들은 얼굴 화장을 짙게 하여 거짓된 얼굴로 다른 사람을 만난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순수한 복음으로 그리스도만 섬긴다.
그래서 사도는 각 사람의 양심에 복음을 나타낸다. 사도의 추천서에 들어가는 그 자격은 순수한
복음을 전하는 그 자체요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알 수 있다. 마지막 날에 더 확실이 드러날 것이다.
그런데, 3절,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웠다. 사도가 복음을 순수하게
전하는데도 다른 장식물을 더해 줄 것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철학적 내용을 섞어 줄 것을 기대했다. 혹은 아주 찬란한 수사법을 쓰면서 장식해 주기를 기대했다. 고린도
교회에 이런 기대를 가진 성도들에게는 사도 바울의 순수한 복음이 가리워 졌다. 그 태도를 계속 가지는
사람은 그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할 것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 중 재산이 많아 첩을 두면서 죄를
짓는 그 사람에게는 복음이 가리워 졌다.
양심에 나타나지만, 망한다. 망한다는 단어는 2:15에 “우리는
구원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다.”에서 나온 것이다. 복음이 전해 지지만, 하나님이 멸망하기로 선택한 자들에게는 복음이
마음에 흡수되지 않고 가리워 졌다.
요즘 목사들의 잘못된 것도 있지만, 성도들이 목사들이 바른 말씀을 전할 때, 순종하기가 싫어서 목사를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교회에서는, 장로 한 사람이, 목사님을 쫓아내려 했다. 당신이 잘못해서 교인 수가 줄었다고 비난했다. 복음을 바로 전하면 귀신의 영향에 있는 사람이 교회를 떠나게 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때문에 교인 수가 줄어들 때가 있다. 우리 시대도 탐욕 때문에 복음 사역자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지 않는가 돌아 볼 때이다.
4절,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복음이 자신의
영혼 깊이 비추이지 않을 때 우리는 위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목사가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 그런 현상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으로 복음을 거부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일 수 있다. “이 세상 신” 즉 마귀의 유혹 때문이다. 눈이 가리워 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화에어 사도는 담대하다. 복음을 순수하게 전하는 사도로서는 자신을 변호해야 복음 광채가 비치기 때문이다.
5절, 사도는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한다고 한다.
6절,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빛을 받은 “우리”는
사도를 말한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에게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어서 성도들에게 가게 하신다. 지금도 말씀 사역자인 목사에게 먼저 복음 빛이 비치고 그것이
목사의 말씀 선포를 통해 성도들에게 비치게 하신다.
2. 복음을 전할 때, 고난 가운데 생명을 나타냄 (7-절)
7절, 능력의
복음을 가지고 있지만, 사도 그 자신은 질그릇이다. 약하고, 사람들에게 아무렇게나 취급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8절, 사도는 많은 핍박을 당했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10절, 사도
바울의 몸 안에서, 예수 죽인 것, 죽음을 짊어지면서 복음
전할 때, 예수님의 생명이 또한 그의 몸에 나타났다.
12절, 그
목적은 사도 안에 있는 죽음과 생명의 경험 중, 죽음은 계속 사도 안에서 일하고, 생명은 성도들에게 일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는 그리스도의 중보사역도 부분적으로 감당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죽음을 가져 가시고 생명을 주셨듯이, 사도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능력 안에서 죽음의 고통은 자기가 짊어 지면서 생명은 성도들에게 전달해 주는
그리스도적 중보 사역의 도구가 된다. 물론, 결코 사도 자신의
공로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그의 안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
사도와 마찬가지로 목사도, 복음
아닌 것, 악한 것, 죄와 싸울 때 죽음과 같은 어려움을
당한다. 그러나, 그 결과로 체험한 생명을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을 살아가도록 전달한다.
사도는 14절은, 시편 116:10을 인용하여 말한다. “우리가 믿는 고로 말한다.”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하여 말한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것이라.” 로마서 8:11은 모든 성도를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다고 했는데, 고린도 후서 4장은 같은 사역을
위해, 사도가 그 전달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예수님과
성도들 사이에 끼어서, “예수와 함께, 성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죽음 가운데 생명을
경험하는 일이 일어나도록 전달자의 역할을 한다.
그 목적은 많은 사람이 감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사도의 복음 말씀을 통해 생명의 능력을 경험한 성도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3. 내세의 영광의 소망
때문에 현재의 고난 가운데서 낙심하지 않음 (16-18절)
14절, 그래서
낙심하지 않는다. 환난이 있지만, 이것을 통해 영원한 천국의
영광을 이룬다는 사실 때문에 즐거워 한다.
직분의 영광스러움은 “가지고
있다”는 것의 목적어를 통해 잘 나타난다. 사도는 직분을
가지고 있다 (1절), 직분이 담고 있는 복음은 보배인데, 질그릇 같은 직분자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 (7절). 직분자는 성령을 가지고 있으므로, 성령 안에서 (13절), 하나님이 그 죽음의 고난에서도 살리신다.
<요약과 순종>
첫째. 직분자는
복음 말씀을 전하고 직분에 충실한다. 그러할 때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의 광채를 사도를 통해 교회에 전달하신다.
둘째, 말씀의 직분자는
고난 가운데, 죽음과 같이 힘든 일을 가운데, 그리스도의 풍성한
생명을 경험하고, 그 생명을 성도에게 나누어 준다.
셋째, 천국 소망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
목사는 이런 사명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 부모로서 우리도 이렇게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직분을 신실하게 다할
때 하나님이 일하신다. 부모의 직분에도 큰 고난이 있다. 그러나
천국 소망 가운데서 이 사명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