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
내가 세 들어 사는 집은 한길에서 골목길을 세 번이나 ㄱ자로 꺾어 접어 들어가 있었다. 게다가 골목이 좁고 깊고 어두워서 밤이 늦어서 다니기에는 여간 불편한 곳이 아니었다. 더구나 요즘 서울과 같이 강도 절도 깡패들이 득실거리는 이 판에 밤마다 그것도 대개는 술까지 좀 취해서 이곳을 지나다녀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랬겠지만 나는 아무리 술이 취했을 때라도 이 골목을 지나는 동안에는 정신이 바짝 긴장되곤 했다. 더욱이 품안에 현금이라도 좀 낫게 가졌을 때엔 우정 동행이 될 만한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 이라도 기다렸다가 같이 골목으로 들어서곤 했다.
이와 같이 불안과 불편이 극성한 골목이건만 나같이 좀체 집을 옮길 수도 술을 아니 마실 수도 없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어두운 골목이 그대로 운명같이 나에게서 떠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또 설상가상이라더니 그래 봄에는 그 골목 속의 한 집에서 아들이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서모)를 권총으로 쏘아 죽인 일까지 생기고 보니 그곳이 더욱 몸서리나게 싫고 무섭고 거북하기만 했다. 그 뒤부터는 한길에서 그 어두운 골목으로 접어들 때마다 두 눈을 꽉 감으며 혼자 속으로 될대로 되어라고 뇌이는 버릇까지 붙게 되었다. 그러한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 밤에도 술이 얼근했었고 품에는 현금이 한 이만 환 들어 있었다. 시간은 통행금지 준비 사이렌을 들은 지도 한참 지난 뒤였다.
품안에 현금을 지닌 나는 그 어두운 골목으로 접어들었을 때 부지중 머리끝이 쭈뼛해짐을 느꼈다.
나는 두 눈을 꽉 감으며 혼자 속으로 될 대로 되라고 뇌까렸다. 그리고서 몇 발을 떼어 놓았을 때였다.
그때 나는 언젠가 권총 사건이 났다는 집 가까이 와 있었다. 갑자기 내 뒤에서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쩌벅쩌벅 들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온 몸에 소름이 쭉 끼쳤다. 이제 당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당장 내 등에는 단도가 날아와 꽂히든지 권총알이 날아와 박힐 것 같이만 느껴지며 양쪽 옆구리가 짜릿짜릿 조아드는 듯하였다.
그러는 중에서도 나는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것은 그 어두운 골목을 얼른 빠져 나가야 한다는 목적의식에서보다는 지금까지 걷고 있던 행동에서 멈추어 선다는 것은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라고 무의식 중에 헤아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곧 뒤의 놈에게 어떤 행동의 기틀을 끼치는 것이 된다고 역시 무의식 중에서도 헤아려졌기 때문이었다.
걸음을 멈출 수도 없는 그때의 나로서는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더욱 생각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걸음을 멈추는 것보다는 훨씬 더 대담하고 위험한 짓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나는 달릴 수도 없었다. 그냥 걷다가 달음박질을 시작한다는 것도 또한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직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처음엔 지금까지 걸어오던 바와 같은 그만한 속도와 자세로써 걸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 걸음 걷는 동안에 나의 걸음걸이는 나도 모르게 점점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뒤에 오는 자의 발자취 소리도 꼭 그만치 빨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빨리 걸어야 하였다.
그리하여 내가 두 번째 ㄱ자를 꺾어 접어들었을 때부터 나의 힘과 재주가 허락하는 한껏까지 나는 빨리 그리고 멀리 발을 떼어 놓고 있었다. 그러면 뒤에 오는 자도 역시 그만치 빨리 발을 떼어 놓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것은 늘 그만치 가까운 거리에서 발자취 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드디어 나는 우리 집 대문 앞에 닿았다. 나는 쓰러질 듯이 손으로 대문을 짚으며 목이 찢어지도록 높은 목소리로 큰 애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동시였다. 바로 내 뒤에서 나를 추격하던 자가 내 곁을 휙 지나쳤다. 그러나 그것은 여학교 제복을 입고 한쪽 손에 책가방을 든 열 예닐곱 살 나 뵈는 단발머리의 여학생이었다. 우리 집 대문이 열리기 전에 아까의 그 소녀가 자기네 집 대문을 두드리며 자기네 아주머니를 부르는 새된 목소리가 이웃에서 들렸다. (김동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