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것을 느끼게 한 배낭 여행(캄보디아,베트남)
(김기일, 이영순 글)
팩키지 해외 여행에 길드려진 나의 습관을 바꾸어 놓은 배낭 여행의 또 다른 느낌을 적어 본다.
2005년 1월 12일 인천 공항으로 가는 노선 버스를 타기 위해 밤 잠을 설치며 5시10분에 구선생님 내외분과 집 앞에서 만나 택시를 타고 시외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인천행 버스 표를 12,400원을 주고 샀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일찍 정류장에 도착해 있었고 버스는 정원을 가득 채우고, 2시간 30분 정도 지난 뒤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항공표를 찾기 위해 미팅 장소로 갔다. 우리는 항공표를 찾아 베트남 항공 체크인 코너를 찾아 보딩패스를 받고 세관 심사를 거쳐 입국 심사대에서 출국 스탬프를 받고 타고 갈 게이트를 찾아 가는데 긴 줄이 있어 아무 생각 없이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리다 구선생님께서 잠간 기다라고 한 후 앞으로 가 보시던이 출국 할 호치민 줄이 아니고 방콕행 게이트 줄이란다. 다시 베트남 항공 게이트를 찾아 10:30분 출발하는 베트남 VN 939편 항공기에 몸을 싣고 설렘임 반 두려움 반으로 배낭 여행으로 미지의 땅(캄보디아,베트남)을 향해 출발하였다. 지금부터 35년전 1968년도에 첫 발령을 받고 부임하여 6개월 동안 학교 생활을 하다 군에 입대 하였다. 군 생활을 할때 월남전이 한참 진행 될 때이다. 그 시절에 한달 봉급이 내 기억으로는 8,000원 정도 받은 것으로 기억 된다. 그러나 월남 파병을 하면 한달에 40,000원을 받는 것으로 기억 되어 돈을 벌 욕심으로 파병을 하려고 여러번 노력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월남 땅을 가보지 못하고 있던차 구선생님께서 배낭 여행 준비를 하시며 함께 참여 하자고 권유 하시기에 내 나이에 배낭여행은 생각도 할 수 없는 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동의를 하였다. 그 후 구선생님 내외분과 여행 정보를 수집하고 계획를 세워 2005년 1월 12일 출발하게 되었다.
♣. 여행 첫날(2005, 1. 12 (수)
☛. 캄보디아 : 여행 이동경로
캄보디아는 금세기 현대사에서 내전과 부패로 얼룩진 지구상의 빈곤한 나라 중에 한 나라 이지만 앙코르 유적이 발견되어 외부 세계에 알려 지면서 많은 나라에서 유적을 찾아 밀려 오고 있는 신비의 나라로 말하고 싶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행복 지수는 세계 최고라는 말이 있듯이 웃음의 나라 때묻지 않은 소박한 삶의 진실이 있는 나라이다.
캄보디아 하면 크메르 루즈군의 풀폿 정부가 200만명을 살생한 생각 하고 싶지도 않는 끔찍한 일(킬링 필드)을 저지른 곳, 부패가 만연하고 아직 GNP 500$이 되지 않는 나라 그러나 그 옛날 앙코르 제국을 건설하고 호령 하든 풍요의 땅을 갖고 있는 나라 앞으로는 관광 자원을 이용하여 꿀이 흐르는 풍요의 나라가 되리라고 나는 믿고 싶다.(어업자원의 보고 : 똔레삽 강, 넓은 평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열대 우림에서 생산되는 과일 ) 프랑스 식민지에 이어 30년의 내전과 세계사의 아픈 현대사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나라이다.
5시간 비행을 한 비행기는 호치민 떤션넛 국제공항은 메콩 델타가 펼쳐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호치민은 S자모양의 메콩강이 만들어 놓은 쌀의 생산이 세계 3위로 풍요로운 곳이다. 떤션넛 공항은 우리가 캄보디아로 넘어갈 경유지 공항으로 2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우리는 캄보디어 씨엠립 공항으로 갈 비행기로 갈아 타고 1시간 정도의 비행끝에 캄보디아 씨업립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 도착한 후 배낭 여행객들은 입국 비자를 내기 위해 카드(이름.국적,여권번호,여권유효일,여행목적등 간단한 내용 : 내용은 보지도 않고 )를 작성하고 준비해 간 비자 사진을 붙이기 위해 풀을 요구하니 작성한 카드와 사진을 받고 지철기로 찍은 다음 1$를 달라고 한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1$를 내고 비자 작성카드와 여권, 입국 비자 수수료 (20$) 받고 여권을 내준다. 입국 심사대에서 스탬프롤 찍고 나오니 국내에서 인테넷으로 예약한 한국 게스트 하우스에서 픽업을 나온 분이 '구안서'라고 쓴 피켓를 들고 있었다. 우리는 픽업 나온 택시를 타고 공항에서 가까운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 하였다. 픽업 나온 아저씨는 한국 말을 조금하기 때문에 간단한 대화를 하며 미지의 땅 캄보디아에 첫 발을 밟게 되었다.
방 배정(더쁠 침대, 핫샤워 없음)을 받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시내 곳곳은 우리나라 60, 70년대 라도 생각하면 되고 이동 수단이 뚝뚝이(4명정도 탈수있게 오토바이 )와 오토바이, 씨클로등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가이드북에서 정보를 얻은 것을 토내로 주민들의 삶이 짙은 재래시장을 찾아 구경을 하였다. 길거리 음식을 팔고 더운 지방이라 아침 일찍(7시) 일과를 시작하고 더운 시간에 씨에스타(낮잠)을 즐긴다. 캄보디아 화폐는 리엘 (1$=4000리엘) 처음 대하는 것이라 적응이 되지 않아 과일이나 물을 구입 할 때 손해를 보았다. 우리 생각으로 거스름 돈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해, 현지에서는 달러(1$)를 현지돈으로 환전하여 사용하는 것이 손해 없음 : (호텔숙소,금은방 곳곳에 환전 가능함 )
바나나 한송이(작은것):1$, 재래시장 0.5$ 물작은(0.5l) 것 :2000리엘 등 슈펏마켓트(캄보디어 씨엠리업, 프놈펜 등)
세상은 지구 촌이라 했듯이 무섭다고 하는 캄보디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니 이상한 느낌이 든다. 내일은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앙코르 유적을 관람하기 위하여 숙소에서 택시 이용료 30$씩 2일 사용 하기로 하고 투어 계약을 했다. 숙소 주인의 이야기는 소순환 코스 와 대순환 코스가 있는 데 두코스를 묶어 처음에는 높은 가격을 요구 한다 우리가 계약을 하지 않으니까 하루 30$씩 계약 했지만 좀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20불 정도면 적당(가격은 계약할 나름)하다고 한다
시내 구경을 하다가 길 거리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주문해서 먹었다. 음식 문화를 조금 알고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여행 둘째날(2005.1.13.(목)
☛. 앙코르 유적
앙코르 제국(프랑스 고고학자 앙리무오 발견)을 건설하고 부귀 영화를 누리고 살던 왕들이 정권이 바뀔때 마다 왕들의 영역을 마련하여 왕궁과 사원을 건설하며 영화를 누린 앙코르 유적들은 매우 넓은 지역에 분포 되어 있었다. 이곳 앙코르 유적을 대충 보고 온다 해도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우리는 2일 동안에 앙코르 유적을 맛만 보고 갈 생각으로 계획을 세워 투어를 시작했다. 아침 7시에 택시 투어가 시작 되었다. 앙코르 유적 매표소 입구에서는 입장권을 코팅을하여 갖고 다녀야 한다. 입장하는 곳마다 검표원이 검사를 한다. 입장권에는 본인 사진을 넣어야 하는데 사진이 없으면 무료로 현장에서 사진 찰영을 하여 입장권(1일=20$,3일=40$,7일=60$)을 만들 수 있다. 세계에서 입장권을 판매하면서 본인 사진을 넣는 곳은 이곳 뿐이 없을 것으로 생각 된다. 좀 입장료가 비싼 듯 한데 입장료로 복원 공사를 한다니 할 수 없지요
앙코르 유적(7대불가사의)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사원으로 인도의 힌두교 영향을 많이 받아 힌두의 역사를 알고 관람를 하면 도움이 많이 된다. 넓은 밀림지대 어디서 운반해 왔는지 모르지만 앙코르 유적을 건설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백성들의 노력이 필요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일 사원으로 앙코르 유적과 같은 유적이 전무 할 것이다. 석조로 된 부분은 몇 백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 있지만 목조로 된 부분은 모두 없어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복원이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앙코르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보존 할 가치가 있다
오전 07:00숙소 출발 앙코르톰 남문에서 입장카드 발급 -바욘 - 바푸온 - 피미아나까스 - 문둥이왕 테라스(라이왕)-코끼리 테라스-주변 사원 관람 및 유적 감상(나무그늘에서 쉼 -현지인 씨에스타) -중식 겸 휴식 오후 14:30 숙소출발 -쁘리아칸-니악뽀안- -따솜- 동메본 - 쁘레룹에서 일몰 감상 후 - 숙소귀한.(쁘레룹에는 현지 어린아이들이 살아 남기 위한 판매 수단으로 필요한 생활 영어를 잘함(앙코르 맥주. 음료수판매, 선물을 달라는 어린이:남선생님 캔디 선물) - 야간 시장 구경 : 현지 랜드사에 프놈펜 보트 투어신청(22$)
♣. 셋째날 (2005. 1. 14 (금)
☞. 앙코르 유적 둘째날 투어
오전 5시 일출 광경을 관람하기 위해(5$) 앙코르에서 제일 좋다는 연못가에 자리를 찾아 손 전등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앙코르 돌 다리를 건너 앙코르 전경이 물에 비치는 연못가에 앉아 있는데 우리 말이 들려 여기 앉으세요 하니 속초에서 온 선생님 내외분이 였다. 반가운 마음에 여러 가지 정보를 듣고 일출 시간을 기다리는 데 먼동이 트면서 우리가 원하든 해는 보이지 않고 구름만 끼어 일출 광경을 볼 수가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데 일출을 보기 위해 찾아 온 관광객이 인산인해 였다. - 숙소도착후 조식 - 반디아이 쓰레이 - 따쁘롬(밀림의 사원-명주섬 나무 뿌리로 사원 붕괴) - 프놈바켕 - 쁘레아 꼬 - 승리의 문 - 오후 중식후 휴식 14:30 오후 투어 - 앙코르 유적의 하이라이트 앙코르왓 - 정문에서 오른쪽 회랑으로 돌면서 부조 내용
♠.유액(젖)의 바다 휘젖기(유해교반) : 이 흰두교 신화는 신과 악마들이 죽지 않고 썩지 않는 불로 장수의 영약을 만들기 위하여 1,000년 동안 젖의 바다를 휘젖는다는 전설이 담긴 부조(동쪽의 회랑)
♠. 마하바라타 : 마하바라타는 친족간의 왕권 다툼에 관한 대서사시이다.
♠. 앙코르 건축의 특징
바야바르만 2세가 건축한 사원의 중앙탑은 크메르 사원의 포인트며 항상 동쪽을 바라보게 지어졌다 벽돌이나 사암으로 정방향으로 만들어 벽의 네 면이 네 방위를 보게 지었는데 동쪽에만 출입 문을 두고 나머지는 벽에 부조를 한 벽으로 막았다. 아래가 4각으로 올라가지만 천정 높이에서 탑 정상 까지는 원추형을 만들어서 연꽃 봉우리를 형상화 했다. 탑의 구조는 3단구조로 현상계와 지옥계 및 천상계를 의미한다
앙코르 톰(위대한 도시)에는 탑에 큰 얼굴을 조각한 것은 크메르만의 독특한 디자인이다.
캄보디아인들은 높은 산을 하늘과 가깝다고 믿었고 신은 메루산(히말라야산)의 정상에 있다고 생각했다. 메루산으로 형상화 되는 중앙탑의 성소의 높은 탑으로 올라가는 계단(70도)은 매우 가파르며 계단 폭이 좁은데 그 길은 인간이 이용 하는 것으로 지은 것이 아니고 신이 이용 하도록 지었기 때문이다. 동쪽은 생명과 창조, 서쪽은 죽음과 끝, 북쪽은 히말라야를 남쪽은 자연이라고 생각했다.
♠. 앙코르 왓 남쪽 회랑에는 32개의 지옥과 각 죄에 따른 처벌을 묘사한 부조가 있으며 지옥은 단계적으로 점점 더 무서워진다.
♠. 12세기 이후에는 나가(머리가 7개달린 뱀)의 부채꼴 머리 악마와 신이 큰 머리 탑에 거대한 머리의 조각 등이 특징이다. 풍요의 상징 링가(남자의 성기 모형) - 힌두교 영향 -(캄보디아 재래 시장 : 앙코르 사진첩구입)-감보디아 정식(짐승을 무서워하는 아내가 식사 도중 고양이를 보고 매우 노람) - 숙소도착 (석조 문화의 앙코르 유적을 보고 느낌은 비슷한 사원이 많아 그 곳이 그 곳같아 구별하기가 어려워 사전 지식을 많이 알고 관람을 해야겠다)
♣.네째날 : 2005.1.15 (토)
☛. 씨엠립 - 프놈펜으로 이동
두 도시를 잇는 보트는 씨엠립에서 건기 때는 6시간 정도 똔레삽(캄보디아 면적의 15%) 강을 이용하여 운행된다. 아침 일찍 프놈펜으로 이동하기 위해 6시에 픽업 약속이 있어 편의점에서 빵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픽업을 기다려지만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아 숙소 주인에게 연락을 부탁하니 우리들이 편의점에 간 사이에 다녀 갔다는 연락을 받고 어리둥절 했다. 7:00 출발하는 보트를 타야하는데 7시가 가까워질때 오토바이 2대와 쎄옴이 한대 왔다. 여자들은 쎄옴에 타고 남자들은 오토바이에 타고 10분 정도 걸린다는 보트 선착장이 30분을 가도록 나오지 않고 보트 선착장 가까이는 도로 사정이 엉망이다 길거리에 옆에 살고있는 서민들의 생활상은 매우 열악한 환경이다 그러나 따듯한 지방이라 추위에 따른 고생이 없어서 다행 이었다. 똔레삽강은 캄보디아의 어업자원의 보고이다. 호수라고 했지만 바다와 같이 넓은 지역도 있고 좁은 수로도 있어서 풍부한 어족자원(850종류 물고기)의 보고라고 한다. 이 곳을 활용하여 생활하는 수상 가옥들과 주민들의 상점도 있고 학교도 있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존재하고 있다.
다행이도 우리가 타고 갈 보트는 7:30분에 천천히 수심이 깊은 호수까지 작은 배가 끌고 가서 프놈펜을 향해 배고동을 울리면 출발했다. 배에는 여러나라 배낭족, 승객이 만원이였다. 똔레삽 강의 고기의 종류도 많고 산란하는 장소로 적당하여 고기가 많이 있다. 평생을 물과 가까이 하는 생활에 익숙한 어린이들은 작은 쪽배를 이용하여 학교가는 어린이 쪽배를 타고 이웃에 놀러가는 어린이 작은 그릇을 타고 생활하는 수상 가족들의 생활 모습을 보면서 6시간 정도 지나 프놈펜 보트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선착장에는 미리 예약한 호텔에서 픽업을 나와 있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코리아 호텔(20$)에 도착하여 방 배정을 받고 휴식을 가졌다. 오후 시간이 있어 주변 관광을 하기로 하였다. 우리가 투숙한 주변에는 캄보디아 올림픽 스타디움이 있는 곳이다. 어디를 가나 시장에 가면 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4명이 탈 수 있는 세옴을 타고 중앙 시장을 가는 도중 5$를 바람에 날려 달리는 교통 흐름이 멈추면서 오토바이 아저씨가 5$를 주워 우리에게 돌려주어서 봉사료1$를 주었다. 프놈펜의 중앙시장도 규모가 매우 크고 다양한 물품이 있었다. 나는 배낭이 작아 큰 배낭을 사고 숯불에 구은 오징어를 맛있게 먹고 저녁은 숙소로 돌아오는 쎄옴은 우리의 숙소는 코리아 호텔인데 골디아나호텔로 가서 우리가 코리아 호텔로 가작고 하니 요금을 더 요구하여 1$를 더 주기로하고 숙소도착(코리아나 호텔) 주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과일 왕 두리안(방귀 냄새나는 과일)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 다섯째날 2005.1.16 (일)
☛. 프놈펜 시내 투어(택시 하루사용 25$)
킬링 필드(쯔앙 아악) - 뚜얼슬렝 박물관(2$) - 왕궁 - 실버파고다 회랑 벽화 - 캄보디아의 의상 생활관 - 점심식사후 휴식 - 독립 기념탑 - 왓 프놈 - 왓 우날롬 - 메콩강 수상가옥 - 메콩강 만남의 잔디 광장 - 러시아마켓 - 대형 슈퍼마겟(광주 RCY 단체 만남) -숙소 휴식
☀. 킬링필드(2$) : 쯔응아익은 프놈펜 근교와 뚜얼 슬렝의 사람들을 고문한 후 처형 한 곳으로 이용 되었던 곳 8900여구의 시신이 집단 매장 되어 있던 곳 크메르 양식으로 지어진 위령탑이 있다. 폴폿의 만행을 고발 하면서 훈센정부가 해골만 모아서 80m의 탑을 만들어 해골을 전시한 곳(캄보디아인들은 소승불교 국가로서 해골을 전시해 놓은 것은 혼이 구천을 떠돈단고 생각하여 화장을 하여 극낙으로 가게 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 뚜얼 슬렝 박물관 : 뚜얼슬렝 쁘레아 고등학교였던 곳을 크메르루즈가 보안대 건물로 바꾸어 사용한 곳. 전 정권의 관리들에 대한 심문 장소와 고문 장소 그리고 정적들을 숙청하기 위한 곳으로 이용함. 크메르루즈 통치기간(1975.1 - 1979. 1) 200만 명이 죽어 간곳(캄보디아의 아픈 역사)
☀. 왓 프놈 : 27m 언덕 위에 있는 절 큰 물난리가 났을 때 펜이라는 여인이 강가에 떠내려 온 부처상을 발견하여 이 절에 봉안 하였는데 이 여인 이름과 사원의 이름을 합쳐서 지금의 프놈펜이 되었다.
☀ 왕궁. 실버파고다 : 황금 색으로 빛나는 건물 중앙 건물은 대관식을 하던 곳. 똔레삽 강을 마주보고 있다. 실버파고다 사원은 바닥이 은으로 된 타일이 5천개가나 깔려 있서서 그렇게 부른다. 중앙의 불상(피곤한 몸을 쉬기 위하여 불상 앞에 편히앉아 휴식을 함)에 다이아몬드가 9584개 제일 큰 것은 25캐럿트이다.
♣. 여섯째 날 : 2005. 1.17 (월)
캐피탈 오픈 버스를 타고 베트남 묵바이(국경 도시로 입국 수속장 건물짓고 있음) 국경을 넘는 날이다.
캐피탈 오픈 투어버스를 타고 프놈펜을 떠나 베트남 묵바이로 출발 했다. 포장은 되어 있으나 상태는 좋지 않다. 넓은 평원을 가로 질러 달린다 어느 휴게소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메콩강을 배로 건너서 국경도시 묵바이에 도착했으나 누구 하나 안내도 없고 허름한 캄보디아 초소에서 출국 수속을 하고 베트남 입국 관리소로 걸어 갔다. 날씨가 매우 더워 배낭 여행객들은 힘들었다.
베트남 입국 수속에서 후진국의 모습이 였보였다. 급행료를 지불 하면 먼저 입국 수속을 해준다. 그리고 배낭객들이 입국카드 얻는 데도 시간을 오랜 지연 시키는 일이 너무 이상하다. 그러나 외국인 배낭가족들은 누구하나 서두르는 사람 없이 입국 수속 차례를 1시간 이상 기다려 입국 수속을 하고 신카페 오픈 투어 버스로 갈아타고 베트남 호치민을 향해 출발했다. 3시간을 주행한 후 호치민 신카페 사무실 앞에 하차 했다. 신카페 뒤쪽 골목에 미니호텔이 많다.
. 여행이동 경로 :
배낭 여행자들의 거리인 빰웅우라오 와 벤탄 시장 부근은 정말로 활기 넘치는 씨클로, 자동차,오토바이의 물결은 정말로 베트남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 그대로 였다. 무질서 속의 질서 교통 흐름이 물결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잘 운영 되고 있다. 처음 보는 나로서는 신기 할 정도이다. 오랜 전쟁으로 인한 운명적인 여인들의 생활 모습은 근면하고 친절하며 소박한 생활을 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 여자 학생들은 교복이 하얀 아오자이였으며 등 • 하교시 아오자이를 입고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는 모습을 정말로 아름다웠다.
♣. 일곱째 날(2005. 1. 18(화)
벤탄 시장을 지나 - 통일궁으로 - 전쟁 기념관을 거처 - 노틀담 성당 관람후 - 중앙우체국 - 다이아 몬드 프라자(호치민에서 제일 큰 건물 : 우리나라 포스코에 건축) - 중식 후 휴식 - 호치민 동상(택시1$) - 시민극장 - 동코이거리 - 사이공 강 휴식 - 택시(1$)로 숙소 도착
⁍. 벤탄시장 : (퍼2000아침식사 : 클린턴이 식사 한 곳)사이공 지역 최대 시장 일상 용품, 과일, 야채, 의류, 모자, 고기, 건어물 등 저렴한 기념품을 구입 할 수 있음(부르는 가격은 2/1가격 부터 흥정) 짠응웬한 기마상 감상
⁍. 통일궁 : 북 베트남군이 사이공을 점령 할 때 대통령이 거주하는 이 건물에 탱크가 정문을 부수고 들어와 4층 국기 게양대에 금성 홍기가 게양 됨으로서 전쟁이 종료 되고 통일이 이루어진 것을 상징하여 통일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정문 옆에는 당시에 정문을 부수고 들어온 탱크와 똑같은 탱크를 전시하고 있으며 지하에는 당시 티우대통령이 사용하던 승용차도 전시 되어 있다. 옥상에는 티우대통령이 타던 헬기가 있다. 옥상에서 호치민시 전경을 보고 음료수도 먹고 쉬었다. 4층에는 기념품 판매장이 있고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베트남 관리인들이 우리를 보고 아리랑을 연주(손뼉을 치며 공명을 이용한 연주) 해 주었다.
⁍. 전쟁 기념 박물관 : 통일궁 옆으로 돌아 가면 전쟁 기념 박물관이 있다. 월남 전쟁시에 참혹한 내용들의 사진과 전쟁에 사용 하던 물품이 전시 되어 있다. 고엽제로 인한 기형아 양민 학살 미군의 끔찍한 만행을 고발 하고 있다.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을 비록하여 그 때의 참상을 볼 수 있었다.
⁍. 노틀담 성당 : 프랑스 식민 통치의 상징으로 호치민시의 프랑스 건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평가한다. 건물 내부가 어두운 것은 전쟁 당시 창문이 파괴 되었기 때문이다.
⁍. 중앙우체국 : 노틀담 성당 옆에 위치해 있으며 홀 중앙에는 호치민 대형 초상화가 있다.(프랑스 식 양식으로 건축한 건물) : 우표구입(72$)
⁍. 다이아 몬드 프라자 : 포스코 개발이 철골로 4년 11개월 만에 완공한 건물이다. 주상 복합 건물로 백화점, 우리나라 항공사,삼성화재 보험, LG, SK 입주해 있다. 13층 스카이라운지가 있다.
⁍. 인민위원회, 시립 극장 및 호치민 동상 : 호치민 무릎 위의 돌은 건국의 기초이고, 오른 손의 펜과 돌판 위에 종이는 모든 제도와 문물을 성문화 시킨 것을 뜻하고, 왼편의 여자 아이는 어린 베트남을 상징하고 아이가 들고 있는 꽃은 베트남의 문화를 상징한다. 시간이 있으면 시립 극장에서 상영되는 연극,영화 감상도 할 수 있다.
⁍. 동코이 거리 및 사이공 강 : 제일 번화한 거리이며 기념품도 구입 하고 아이 쇼핑도 하며 사이공 강가에서 저녁 디너쇼도 보며 크루즈도 할 수 있음.( 신카페에서 구찌 투어 계약후 숙소에 도착 휴식)
♣. 여덟째 날 (2005. 1. 19 (수)
☞. 구찌터널 - 카오다이교
구찌터널은 호치민시에서 100Km 떨어진 곳에 있다. 월남전 당시 미군을 집요하게 괴롭힌 남 베트남 해방 민족 전선의 지하 기지가 자리 잡고 있었던 곳으로 베트남인의 자부심이 짙게 배인 곳이다. 구치로 가는 길 옆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조성해 놓은 고무 나무 농장이 끝 없이 펼쳐저 있다. 고무나무 농장을 지나면 고엽제와 B52 폭격기로 융단 폭격으로 2차 세계 대전에 사용한 량의 몇배를 사용했지만 승리하지 못하고 거인 미국도 손을 떼어야만 한 곳이다. 프랑스 식민지 통치때 부터 구축한 좁은 통로로 만들어진 터널은 지하20m-30m에 있으면 그 길이가 250Km가 된다니 불가사의 한 일이다. 터널 구조는 병원, 식수, 식당, 회의장, 전쟁무기 수리장,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갖추워져 있으며 생활 수칙도 소리내지 않고 움직이기. 소리내지 않고 이야기하기, 연기 나지 않게 요리하기, 등 살아 남기 위한 지혜를 이용하여 베트남 체형에 맞는 좁은 터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미군들은 움직 일 수 없도록 되어있다. 열대 우림 정글 지대로 그 옛날 전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움직이다 멈추어 있는 탱크, 폭탄이 투하 되어 푹 패인 웅덩이 안내원을 따라 투어 코스를 돌아 보고 체험을 하는 코너에서는 터널속에서 비상 식량으로 먹든 알뿌리(고구마 맛이나는 식물) 터널 통과하기 컴컴한 터널을 기어서 20m-30m 정도 체험을 해 보았다. 신기하기도 하고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하기도 하였다.
☀. 다음 베트남 토속 종교인 카오다이교(유교,불교,기독교,도교가 혼합된 종교)는 우리나라 천도교와 비슷한 민족 종교이다. 예배는 6,12,18,24시에 한다. 방문객은 짧은 바지나 소매 없는 옷을 입어서는 안 되며 경건한 태도를 유지하고 여자는 왼쪽 남자는 오른쪽 문으로 신을 벗고 들어가 2층 난간에서 참배 할 수 있다. 사람의 눈으로 상징 되는 구세주를 믿는 데 이 눈은 인간 본연의 선한 마음과 평등 성을 나타내며 이를 바탕으로 대동 사상에 의한 이상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은 채식주의 자들이며 흰 옷을 입는다.
건물 안 중앙에 지구가 있고 눈을 신성시 하게 믿는다. 맨 앞쪽 남여 1명이 있고 파랑,노랑, 주황 ,흰옷을 입은 신자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한다.(2층에서는 악기로 연주를 한다.)
나짱으로 이동은 야간 오픈 투어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신카페 앞에서 20:00 출발 했다.
♣, 아홉째 날 (2005. 1. 20 (목)
나짱으로이동 (야간이동) : 신카페 오픈 투어버스를 이용하여 20:00호치민을 출발하여 야간 이동을 4시간 정도 주행후 12:00 경 므이네 휴식(간단한 간식)을 한 후 나짱을 향해 출발 어둠속을 향해 달리든 차는 곳곳에 요금소가 있어서 통행료를 내고 다닌다. 새벽녘 해변가에 차는 정차한 후 1시간 휴식을 하는 동안 지평선 부근에 십자성 별을 보며 전쟁 당시 우리 나라 젊은이 들이 십자성을 바라보며 부르던 노래 글귀를 생각나게 한다.
먼 동이 트는 시간 다시 버스는 나짱을 향해 출발 전쟁 당시 미군 기지 및 우리나라 파병 부대를 지휘하던 곳이 이곳 나짱이다. 지금은 해변 휴양도시로 바뀌어 많은 나라 휴양객들이 휴식을 하는 곳이며 따이한 2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12 시간의 버스 이동을 한 후 나짱에 도착하여 미니이호텔에 여정을 풀고 8:30 분에 보트 트립을 시작했다. 많은 외국 배낭 여행객들이 스노클링을 즐기는 보트 투어다. 배를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작은 섬이 있는 데 파도가 없는 날에는 배를 접안하고 바위를 올라 갈 수 있으나 오늘은 배를 접안 할 수 없어 주변 해안을 돌아 보며 크루즈를 했다. 나짱의 해안은 오염 되지 않은 곳으로 산호도 볼 수 있는 환상적인 바닷 속을 구경 할 수 있는 곳 이라고 하는데 나는 수영을 할 수 없어 바닷물에 들어 가지 못 했다. 안내자는 여행객 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11시 정도가 되이 배 위에서 점심 식사가 제공 한다. 젓가락 사용이 서투른 외국 인들은 매우 어렵게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다시 수영을 즐기고 나서 Tam섬에 정박하여 자유 시간을 1시간 30분 정도 즐긴다. 우리는 비치 체어 사용료를 주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전형적인 남국의 해변으로 바다를 배경으로 고운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다시 배에 올라 과일 파티와 각국의 노래 자랑을 하며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한국인 학생이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아리랑 노래를 불렀다. 보컬 밴드를 만들어 흥겨운 시간을 보낸 다음 나짱으로 돌아 왔다. 나짱의 최대의 시장 담 시장에 택시(2$)를 타고 갔다. 먹자 골목에 가서 바다 가재(랍스타)를 먹기 위하여 찾아 갔지만 아무리 찾아 보아도 없어 다시 숙소 부근 해변가에 있는 식당에서 왕새우를 맛있게 먹고 숙소로 돌아와 휴식 (숙소에서 훼로 가는 오픈 투어버스 티켓을 구입9$)
♣. 열번째날 (2005. 1. 21. (금)
나짱에서 호이안으로 출발(7:30) 구간 별로 투어버스 티켓을 구입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고 하며 골탕을 먹이는 군요 5시간 정도 주행을 하면 우리 맹호 부대 장병들이 활동 하던 뀌년을 지나 간다. 시간이 있으면 하루 쯤 쉬어 갔으면 좋으련만 차창 밖으로 시내 구경하는 것으로 뀌년을 지나 호이안으로 출발 점심 때가 되어 달리던 버스는 작은 음식점에서 점심 식사(꽃게,스프링 롤)후 호이안을 향해 출발 5시간 정도 1번 국도를 따라 북으로 우리를 태운 버스는 주행을 하던 차들이 모두 정차(공사구간) 꼼짝도 하지 않고 1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경찰 차량이 오던이 정체 구간에서 교통 정리를 하고 정체가 풀렸다. 저녁 8:00경에 호이안에 도착하였다. 오픈 투어버스가 신카페 사무실로 가는 버스인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곳에 내려 놓았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호텔(HANH VAN)을 정하고 시내 구경을 하였다. 옛날에는 해양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으로 유네스코에서 보존 해야 할 인류의 문화 유산으로 지정하기 도 한 역사의 향취가 그윽한 마을이다. (우리나라 청룡부대가 주둔했던 지역이다(해병대) 훼로가기 위해 경유만 했다
♣. 열 하루날 : 2005. 1. 22. (토)
아침에 일어나 호이안의 별미 죽을 찾아 호텔 주변을 돌아 보았지만 찾지 못하고 간단히 식사를 한 후 7:30에 훼로 가는 투어버스를 탔다. 베트남 중부의 최대 도시인 다낭(청룡부대 활동지역:한강)을 지나 베트남의 드라이코스로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하이번 고개가 있다. 구름도 쉬어 간다는 하이번 고개를 넘어 어느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없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현지 월남인이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우리를 안심 시킨다. 1시간이 지난 뒤 차가 왔다. 다시 버스를 타고 1번 국도를 따라 베트남의 고도 훼로 향했다.(우리들이 알고 있는 안남(강남)지방이다 :안남미 쌀) 13:30 정도에 훼에 도착하여 신카페를 찾아 쎄옴을 타고 신카페(사거리 주유소부근) 주변에 미니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휴식을 하였다. 훼에서는 베트남 문화의 진수를 감상 할 수 있다. 황궁과 황제들의 능을 보면 베트남의 문화에 압도감이 느껴 질 정도이다. 훼는 향강에 의해 양분되는데(구시가,신시가) 이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는 밤에 오색 찬란한 조명을 밝혀 낭만을 더해 준다. 과일을 구입하기 위해 과일 시장을 찾아 과일을 사고 만두도 사먹고 시내 학교에서 체육(제식훈련:못다이) 수업도 구경하고 동바시장도 구경하고 향강의 수상 가옥도 보고 훼의 야경을 보면서 다리를 건너 숙소로 귀환
♣ 열 이튼날 (2005. 1. 23 (일)
훼 투어는 택시(25$)로 하였다.
베트남전 당시에는 격전지로 아픔을 경험하기도 하였던 이 곳은 현재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훼의 역사와 함께 유유히 흐르는 향강을 바라보며 옛 영화를 느껴 보자.
☞. 뜨득 황제의 능 : 병풍 처럼 주위를 둘러싼 낙락 장송과 이끼가 덕지덕지한 자스민나무가 뜨득 황제의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겸궁 문을 지나면 노란색 지붕의 웅장한 황궁이 나타나며 맞은 편에는 연꽃이 가득한 루키엠 연못이 나타난다. 뜨득황제가 후궁들과 노닐던 정자가 있다. 황제를 추모하는 사원이 있고 황제가 기거 하던 곳이며 겸궁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공덕비와 돌탑으로 장식한 묘지가 있다. 실제 뜨득 황제의 묘는 많은 보물과 함께 아무도 모르곳에 매장되었고 이것을 아는 200명의 일꾼들은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모두 참수 되었다고 한다.
☞. 동칸 황제의 능 : 뜨득 황제가 후사가 없어 조카들이 등극 했지만 독살 되거나 쫓겨나게 된다 이런 불안한 기간이 지난후 4년간 통치하고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황제 능 중에서 가장 작다.
☞.카이딘 황제의 능 : 건축은 11년 걸렸는데 다른 능과는 달리 유럽식으로 석조와 콘크리트로 된 현란하고 섬세한 고딕식의 첨탑들은 마치 커다란 성당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궁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정문에서 기념 사진만 찍고 민망황제의 능으로 갔다.
☞.민망 황제의 능 : 민망 황제는 20년간 통치 했던 황제로 그 무덤은 가장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민망이 생전에 설계하여 황제의 사후 세계를 위해 이토록 규모있는 아름다운 능을 만든 것이 불가사의 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민망 황제의 거대한 공덕비, 여러 문무석과 동물들의 모습들은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정자 뒤편 숭은전으로 민망황제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뒤편 연못에는 세 개의 다리가 있는데 가운데 다리는 황제 전용 양옆은 무문의 신하용이란다. 명루정자는 황제의 놀이 터로 세상을 지배하는 모든 힘을 뜻하는 3단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주위에는 소나무와 여러 나무들이 호수와 어우러져 뛰어난 경관을 이룬다.
이 정자 뒤에 정대광명이라고 쓴 문을 지나 호수의 다리를 지나면 황제의 묘소가 있다. 소나무 주변의 아름다움 경관과 스스럼 없이 어우려져 마치 자연 그 자체에 민망황제의 능은 베트남 건축물의 진수라 할 수 있다. 뒤 돌아 나오는 중 정자 입구에서 독일인 노부부를 만났다. 20년전 우리나라를 다녀갔다는 내용 독일 축구 골키퍼 칸 이야기를 하며 짧은 대화를 나누고 민망황제능을 돌아보았다.
☞.티엔무사 : 입구에 붉은 벽돌로 된 21m의 7층 팔각 탑은 매우 아름다운 훼를 대표하는 유적중 하나이다. 그러나 지금 보수 공사로 자세히 보지 못하였다. 이 탑은 자비탑 이라고도 하며 각 단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 이 사원의 뒤뜰의 정원은 매우 아름다운데 이 절에서 수도를 하고 응오딘지엠 정권에 항거하여 분신한 스님이 당시에 사용하던 자동차가 전시돼 있다.
☞. 훼성 : 응웬 황실을 회복한 황제에 의해 외성과 내성으로 축조 되었고 황제의 거처인 홍국으로 나누어지는데 외성은 10Km 내성은 2.5Km의 길이에 5m 높이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 깃발탑 : 성과 향가의 사이에 장엄한 위용을 자랑하는 깃발탑이 매우 인상적이다. 약 30m 높이의 깃발탑 주변의 공원은 주민들의 운동이나 연날리기를 즐기는 곳이기도 하다.
♦. 대포 : 외성을 들어가는 문은 광적문이다. 거대한 대포는 우주를 구성하는 5요소(木,火,土,金,水)를 상징하고 있다. 이 대포들은 지아롱 황제의 명으로 주조되었는데 그 무쇠가 매우 시원하여 행인들이 살을 대고 낮잠을 즐기기도 한담니다.
♦. 정오의 문 : 내성에는 4개의 문이 있는데 동문은 인간의 문,서문은 미덕의 문, 남문은 정오의문,북문은 평화의문 우리는 정오의 문위에 망루에 올라 편하게 휴식을 가졌다.
♦. 태화전 : 정문을 들어서면 태화전이 눈 앞에 펼져지는데 지아롱 황제가 대신들로 부터 문안을 받거나 여러 행사를 치르던 궁전이다. 태화전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연못이 있고 그 위에는 금수교가 놓여 있는데 옛날에는 황제만이 건널 수 있다는데 나는 황제가 된 기분으로 다리를 건너 태화전으로 들어갔다. 태화전 지붕은 중국의 자금성과 같이 노란색이고 내부는 온통 금장식으로 돼있어 당시의 호화로움을 알 수 있다. 자이롱 황제의 위엄있는 의자는그 권세와 영화를 짐작케 해 준다. 곳곳에 의상과 모형을 만들어 놓고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놓고 사용료를 받고 있다. 나는 자이롱 황제의 모형 의자에 앉아 보았다. 관리하는 안내인이 깜짝 놀라면서 손짓을 한다.
♦. 황실박물관 : 큰 규모는 아니지만 황실에서 사용되던 자기 각종 가구, 의상 침대 가마 등이 전시되어 있다. 황궁 뒤뜰 연못에서 향어에게 먹이를 주고 잠시 휴식을 하고 오늘의 황궁 관람을 마치고 오후3시에 숙소로 돌아 왔다. 오늘은 오후 5시에 하노이로 오픈 투어 버스를 타고 야간 이동을 해야 한다.(9$) (훼 - 하노이 구간 소요시간 12시간)
신카페 오픈투어버스로 오후 5:30 훼에서 하노이로 출발
♣. 여행 열 사흘날 : 2005.1.24. (월) 하롱 베이 투어
♣. 여행 열 나흘날 : 2005.1.25. (화) 하롱 베이 투어
야간 오픈 투어버스는 2명의 기사가 교대하면 운전을 한다 1번 국도의 상태는 좋지 않고 주민들 여행객을 함께 태우고 이동하는데 버스 바닦에 자리를 깔고 한명의 기사는 잠을 잔다. 물론 교통비는 외국인은 배이상을 받는다. 주변 농촌 풍경은 벼를 수확하는 곳 모를 심는 곳 다양한 모습이며 중국의 영향을 받아 조상을 숭배하는 마음은 우리보다 높다 묘지(석관을 사용)는 마을 주변에 있다 12시간의 주행을 한 후 하노이 신카페(79거리 프린스미니호텔) 도착했다. 06:00경 도착 한 후 하롱베이 투어(16$) 1박2일 코스를 신청하고 08:00 출발하는 투어버스에 몸을 싣고 4시간 정도 소요되는 하롱베이 선착장을 향해 출발 가는 도중에 한번의 휴식을 가졌다. 하노이 주변은 홍강이 만들어 놓은 평야 지대이며 2번의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휴게소는 전통 민속 자수를 놓아 작품을 만들고 있으며 이 곳의 수입금은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 기금으로 사용 한다고 함. 바이차이에 도착한 후 점심을 먹고 하롱베이 섬을 구경하기 위해 배에 올랐다. 날씨는 쾌청 하지는 않았지만 섬들이 3000개가 모여 제각기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바닷물이 닿은 부분을 모두가 움푹 패여 있었다. 4시간 정도의 하롱베이 비경을 돌아보고 캇바섬에서 1박을 하였다. 국립공원인 캇바 섬은 아름다운 운치를 보여주고있었다. 시간이 있으며 트랭킹(4시간코스 10$)도 하고 여유로운 휴식을 할 만한 곳이다. 1박을 한 뒤 다시 하롱베이 비경을 돌아보면서 바이차이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비경을 돌아보는 시간에는 주민들의 수상가옥 생활모습 여러 가지 해산물을 여행객들에 파는 모습 쪽배를 타고 조개 껍질을 파는 어린이 등 인상적이였으며 우리 일행은 맛있다는 랍스터(용하 : 양식이 되지 않는다 모두 자연산)는 아니지만 바다게를 사서 선상 주방에서 요리(수고료 3$)를 해주어 맛있는 게 맛살을 먹으며 여유로운 비경을 구경하였다. 배의 주방 일을 하는 청년과 오랜 시간을 구선생님은 영어로 서로 의사표현 하면서 보낸 시간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12:00 바이차이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하노이를 향해 오픈 투어 버스는 출발하였다. 여행객을 상대로 물건 팔기위해 접근하는 이동 상인들의 값은 부르는 금액의 3/1부터 흥정을 해도 손해를 보기가 쉽다. 오픈 투어버스는 우리가 원하는 하노이 신카페에 가지 않고 중간에서 여행객들을 내려 놓고 찾아 가란다. 갈 때 다르고 올때 다른 상황 우리는 택시(2$)를 타기고 신카페로 가기로했다. 신카페 2층 미니호텔에 9$에 값을 정하고 휴식을 가졌다. 저녁때는 하노이 구시가 거리를 구경하였다. 거리마다 특색있는 상품을 취급하기 때문에 간단한 기념품을 살 수도 있다. 거리 건물은 오랜된 건물이며 어두운 느낌이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매우 분주 하였다. 호암낀엠 호수까지 거리를 거릴며 소핑을 하였다. 티샤스(14$), 운동화(8$)를 구입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길을 잃어 시간을 많이 보냈다. 숙소 명함을 가지고 있어 현지 인에게 도움을 청하여 숙소를 찾았다.
♣ 여행 열 닷새날 : 2005. 1.26. (수)
★. 하노이 : 강의 안쪽이라는 뜻이다.
하노이는 인구 약 4백만명 정도이고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이며 그 옛날 홍강이 범람하여 만들어지 삼각주에 많은 호수가 있는 곳이다. 호암끼엠 호수 주변으로 많은 여행사가 모여있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구시가지는 다양한 물건이 판매하는 특색 있는 거리로 구성 되어 있다. 랜드사 선택은 여행자가 여러 가지 조건에 맞는 곳을 택하면 되고 여행비도 여러 곳을 비교해 보고 적당한 것으로 택한다. 물론 여러 랜드사들이 많이 있기때문 소구룹(2-3명) 대구룹(8명이상)별로 가격이 천차 만별이다.(신카페 상품 권장함)
☞. 호치민 묘(택시2$:4명) : 1969.9.2에 사망한 호치민의 묘는 11:30까지 만 개방 함 입장 할 때는 꽁안(경찰)이 2줄로 서서 여행객이 모이면 인솔 함(참배 도중 사진 찰영 금지. 엄숙하게 행동 함 옷도 짧은 바지 않됨,카메라 가방은 보관소에 보관 해야 함) 호치민 시신은 미라로 만들어 사회주의 공화국에 스타일로 보존하고 있다. 붉은 조명을 받고 편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모습은 섬찟 하다. 2-3분 돌아나와 대통령궁을 보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소박한 호치민의 생가와 일주사, 호치민 박물관이 있으며 박물관에는 현대식으로 호치민을 민족의 영웅으로 표현하고 있다. 생전에 호치민은 목민심서를 즐겨 읽고 잘 때도 베고 잘 정도였다고 하니 다시 한번 목민심서를 생각해 보게 한다.
☞, 군사 박물관 : 호치민 묘에서 도보로 10분정도 레닌 동상이 있는 공원 건너편에 있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점심 시간이라 들어 갈 수 없었다. 안마당에는 B-52등 전쟁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 문묘 : 공자 등을 모신 유교 사원이자 베트남 최초의 국립 대학이며 건물은 전통적인 베트남 양식으로 비교적 잘 보전돼 있다.사원은 5개 공간으로 나뉘져 각기 아름다운 정원으로 단장돼 있다. 본당 중앙에는 붉은 옷을 입은 공자가 있다. 주변에는 82개의 비문이 있는데 이 곳에서 공부하고 박사가 된 사람들의 공적이 적혀 있다. 우리와 같이 부모들이 자식들이 공부잘 해 달라고 이 곳에 와서 지성을 드린다고하네요. 기념품점에서 기념우표구입(5$)
☞. 동스언 시장 :하노이 최대의 재래 시장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좋다. 쇼핑을 하고 구시가지를 구경하며 호암끼엠 호수 주변 수상인형 극장으로 갔다.
호암끼엠 호수 주변 화룡관에서 저녁을 먹고 호수 주변에서 휴식을 가졌다. 기회가 좋아서 오후 5:30 상영하는 수상 인형극을 관람하게 되었다. 관람객이 많으면 1일 4회 공연 그렇지 않은면 2회를 한다고 한다. 수상 인형 공연 장소를 정확히 몰라서 현지 학생에게 도움을 요청하니 친절하게 안내(외국어 대학 학생)를 하여 주었다. 수상 인형극 테마는 모두 17가지이며 10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베트남의 자랑거리라고 하는군요. 내용은 용춤, 사자춤, 봉황새 춤, 농촌의 전원적인 풍경, 민담 등 내용에 맞게 소품을 잘 만들어 능숙한 솜씨로 수상 인형극을 장막뒤에서 여자들이 조작을 하고 있다. 수상 인형극을 마지막으로 하노이 투어을 마치고 시내에서 35Km 거리에 있는 노바이 공항으로 갔다. 00.30 베트남 항공 VN936편을 타기 위해 공황에 휴식을 가졌다. 저녁을 먹고 베트남 항공 체크인 코너에서 보딩패스를 받고 출국 티켓(14$)를 구입하여 출국 심사를 받고 베트남항공 탑승 게이트(2번) 앞에서 탑승 시간을 기다리면 면세점에서 쇼핑을 하였다. 두려움 반 셀레임 반으로 출국한 지 15일을 캄보디아, 베트남을 여행하고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배낭 여행을 마치고 ∙ ∙ ∙ ∙ ∙
1. 여행하기 전에 가이드 북, 인터넷, 경험한 동료들의 여행 경험을 꼼꼼히 듣고 활용하자
2. 캄보디아, 베트남 화폐에 익숙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위를 미리 연습하자
(단위가 높아 적응이 잘 되지 않음
☛. 베트남 : (200동, 500동, 1000동, 2000동, 5000동 10000동, 20000동, 50000동이며 1$=15000동)
☛. 캄보디아 : 1$ = 4000리엘, 100리엘, 500리엘, 1000리엘,
3. 쇼핑을 할 때는 서두르지 말고 금액의 3/1에서 시작하여 흥정을 하고 결정 한다.
4. 캄보디아 , 베트남 음식에 대하여 사전 정보 및 내용을 알고 갈 것(향이 너무심하다)
5. 현지에서 이동 할 때에 목적지, 가격을 저렴하게 결정하고 출발 한다.(택시,세옴.씨크로 등)
6. 길을 잃어 쓸때 당황 하지 말고 숙소 명함을 이용하여 현지 인의 도움을 청한다.
(이동시는 숙소 명함, 이동 중 이정표가 될만 건물을 꼭 기억한다.)
7. 현지 랜드사 상품의 가격은 너무나 다양 하다. 소구룹, 대구룹 등 상품을 취급하는 카페 마다 가격이 천차 만별이다. 요령 것 여러 곳의 상품을 비교해 보고 서두르지 말고 결정 할 것.
8. 어려운 일을 당하며 절대로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대치하는 능력을 찾는다.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 한다.
9. 캄보디아, 베트남은 우리보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세계에서 제일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매우 빠른 경제 성장이 기대 된다.(6,7십년대 미제를 우리가 좋아했듯이 우리나라 물건을 매우 줗아 한다)
10. 여행을 좋아하는 모든 분들에게 배낭하나 둘레 메고 가이드북 하나 들고 입은 대로 떠나 보자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경험하는 것이 인생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 한다 ( 집에 필요 없는 작은 물건들을 배낭에 담아 현지 인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11. 늦었다고 생각 할 때가 좋은 시간이다. 글러벌 시대에 영어 공부를 시작해야 하겠고, 수영도 배우고 싶고, 호치민이 즐겨 읽어던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정독해 볼려고 한다. 뜻대로 될지는 모르지만 시작을 해 본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저도 52인데... 가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패키지로 신청 해두었는데 언젠가..이러다 더 늙으면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유익한 정보 알고 갑니다. 감사~~~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여행후기 감사드립니다.
여행기 감사히 잘읽엇습니다. 여행을 제가 하는 기분이 드네요 ㅎㅎㅎ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