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선친 기일(음력 5월23일)에 연석 형님이 족보를 보시고 정리한 내용을 쇠똥구리마을에
올립니다. 혹시 누가 물어보면 간략하게 집안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17. 雲(운)
16. 孟英(맹영)
15. 敬命(경명)1533~1592:제봉(霽峯) 할아버지, 임진왜란 발병 시 전라도 의병장
선조 때의 의병장으로 호가 제봉이며, 중종 28년에 광주에서 대사간 고맹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명종 13년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 호조 좌랑, 홍문관 부교리를 역임했다. 명종 17년 과거 시험관이 되어 정철을 장원으로 뽑았고, 영암군수, 순창군수, 동래부사를 거쳤다. 동래부사 재임 중 간관들이 정철을 배척하면서 정철을 선발한 제봉을 탄핵하자, 왜란이 일어나기 전 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왜란이 일어나자 전라감사 이광에게 군대를 일으키도록 권고했으며, 박광옥과 더불어 의병 봉기를 논의했다. 5월 29일 담양에서 의병 봉기를 선언하고 유팽로, 안영, 양대박을 종사관으로 삼았다. 고경명은 6천여 의병을 거느리고 태인을 거쳐 전주를 지나 은진에 도착했다. 왜군이 금산을 넘어 전주를 향한다는 급보를 들은 고경명은 조헌과 연락하여 전주를 구하기 위해 금산으로 들어갔다. 금산성에 주둔한 왜적을 관군과 함께 공격했다. 관군이 무너지자 고경명의 6천 의병도 무너지고, 고경명 의병장을 비롯 선봉장 유팽로, 후군장 안영과 아들 고인후도 모두 현장에서 순국했다. 금산 전투에서 순절한 고경명은 뒤에 좌찬성에 추증되고 충렬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포충사에 배향되어 그의 높은 충절을 기리고 있다. 아들 인후도 예조참의에 추증되고 의열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져 부친과 함께 포충사에 배향되었다. 지금 남광주역 사거리에서 시작되어 광주역에 이어지는 제봉로는 그를 기리기 위해 이름 붙인 거리이다.
14. 둘째 아들 학봉(鶴峯) 인후(因厚), 큰아들 준봉(▩峯) 종후(從厚) : 우리는 둘째 학봉 할아버지 자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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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傅輯(부집)
12. 斗煥(두환)
11. 世亨(세형)
10. 應壽(응수)
9. 萬擧(만거)
8. 碩謙(석겸)
7. 時顯(시현)
6. 惠鎭(혜진) : 5대조 할아버지
5. 濟洪(제홍) : 고조 할아버지
4. 亨柱(형주) : 증조 할아버지
3. 光七(광칠) : 할아버지
2. 均(균) / 吉(길) / 克(극)/ 義忠(의충)/ 재렴
1. 승석, 홍석, 전석/ 連錫(연석), 敏銚(민조), 至鎬(지호) / 원종, 인수/양수, 준수/채수
참고로
고씨의 시조는 '고을나'이고 《제주고씨세보(濟州高氏世譜)》에 의하면 탐라는 고을나로부터 45세 자견왕(自堅王)까지 대대로 고씨가 세습 통치해 오다가 46세 말로(末老)가 고려에 입조(入朝)하였으니 이가 곧 모든 고씨의 중시조라고 밝히고 있다.
고씨는
중시조(中始祖) 말로(末老)의 15세손(世孫) 인단(仁旦)을 파조(派祖)로 하는 성주공파(星州公派), 13세손(世孫) 신걸(臣傑)을 파조(派祖)로 하는 전서공파(典書公派), 15세손(世孫) 득종(得宗)을 파조(派祖)로 하는 영곡공파(靈谷公派), 11세손(世孫) 경(慶)을 파조(派祖)로 하는 문충공파(文忠公派), 10세손(世孫) 중연을 파조(派祖)로 하는 장흥백파(長興伯派), 11세손(世孫) 인비(仁庇)를 파조(派祖)로 하는 화전군파(花田君派), 13세손(世孫) 택(澤)을 파조(派祖)로 하는 문정공파(文禎公派), 4세손(世孫) 공익(恭益)을 파조(派祖)로 하는상당군파(上黨君派), 4세손(世孫) 영신(令臣)을 파조(派祖)로 하는 양경공파(良敬公派) 의 아홉개 파로 갈라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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