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먼저 드세요!”
벌써 꽤 오래 전의 이야기지만 연년생인 필자의 딸과 아들이 함께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둘이 사이좋게 유치원에서 배워 온 인사말을 외우고 밥을 먹었는데 그 인사라는 것이 다음과 같은 구호였다.
“선생님, 먼저 드세요! 저희는 나중에 먹겠습니다! 야이야이야!”
마지막에 왜 “야이야이야!”라고 기합을 넣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한국의 유치원에서 제일 처음에 배우는 것이 ‘손윗사람이 먼저 수저를 든 뒤에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장유유서(長幼有序)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필자의 경험을 반추해 보면 일본사람들이 유치원에 가서 제일 처음 배우는 것은 교통규칙, 그 중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방법이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는 오른손을 들고 오른쪽을 보고 왼쪽을 보고 다시 오른쪽을 보고 건넙시다”
필자를 포함, 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외운다. 그리고 필자의 아이들이 집에 선생님이 없는데도 “선생님, 먼저 드세요!”라고 말하고 먹는 것처럼, 일본 아이들 역시 차가 있든 없든 “오른쪽을 보고 왼쪽을 보고 다시 오른쪽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게다가 초등학교에 진학하면 자전거를 타면서 팔 신호로 방향 지시를 하는 방법이나 주운 물건을 파출소로 갖다 준다든가 혹은 주운 돈을 파출소에 가져다주면 그 금액의 10분의 1을 사례금으로 받을 수 있다든가 하는 사회적인 룰을 마치 절대적인 것처럼 배운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양국 국민이 최초에 질서의 축을 삼는 것이 한국에서는 〈가정원리〉, 일본에서는 〈사회원리〉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잣대’를 중심으로 규범의식이 확립되게 되며,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규범에 부합되지 않는 사람을 보면 ‘질서가 없는 사람’, ‘예의가 없는 사람’, ‘인간으로서 문제가 있는 사람’, ‘야만스러운 사람’ 등으로 판단하며 바라보게 된다.
즉, 한일 양국 사람들이 서로를 보고 오해를 하는 최초의 엇갈림은 여기서부터 생겨난다.
◈사회 질서 위를 지나는 한국사람
기본적으로 일본사람들은 한국에 오면 한국 사회의 어떤 부분만을 보고 일견 사회적 룰이 일본만큼 철저히 되어 있지 않은 모습에 쉽게 ‘한국은 질서가 없다’라고 판단한다. 예를 들어 버스를 탄다 해도 도시에서 빈번히 오는 시내버스 등에 시간표가 없다. 일본에서는 모든 버스의 시간표가 분 단위로 세세하게 있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실제로 그 시간에 딱 오면 모두 천천히 차례대로 탄다.
하지만 한국의 버스에는 시간표가 없는데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는 운행되는 버스가 많아 정류장이 ‘점’ 형태가 아닌 ‘선’ 형태이다. 도대체 자기의 버스가 언제 오는지, 그 긴 버스 정류장의 어디쯤에 멈추는지가 전혀 예상 못하기 때문에 준비 자세를 취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가 ‘왔다!’ 그러면 달려가서 버스를 잡아야 된다. 멍하게 서 있으면 무자비하게 버스는 떠나 버리기 때문에 버스가 올 때면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도 뛰어 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신기할 뿐이다.
이러한 경험은 그래도 즐겁기라도 하지만 한국에 왔을 무렵 필자가 이해할 수 없었던 또 하나의 문화가 지하철의 승하차였다. 일본에서는 항상 “내리실 손님이 모두 내린 뒤에 순서대로 탑시다”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내리는 사람들이 완전히 내릴 때까지 승차하려는 사람들은 입구 양쪽에 가지런히 줄서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하차를 하지 않았는데도 승차하려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몸을 부딪치면서 겨우 빠져나가야 된다.
그래서 한 번은 그자리에서 한국 아저씨에게 “어째서 한국사람들은 내리고 나서 탄다는 규칙을 모르는 겁니까?”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분은 매우 진지한 얼굴로 “그런 규칙은 한국사람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당연히 내릴 사람이 다 안 내렸는데 타면 부딪쳐서 내리지도 타지도 못하지. 하지만 한국사람은 자기가 앉고 싶어서 타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필자는 그 말을 들으면서 ‘아, 한국사람은 규칙을 모르는 게 아니라 그 위를 가는구나. 일본사람이 절대시 하고 있는 것이 한국에서는 결코 절대는 아니구나’라고 묘한 감동을 받은 기억이 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마치 한국을 일방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는 않다. 이런 내용을 소개한 이유는 이것과 완전히 똑같이 한국사람이 우리 일본사람을 보고 ‘일본은 질서가 없다’, ‘일본인은 예의가 없다’, ‘야만인이다’라고 얼굴을 찡그리는 대조적인 내용이 실제로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 자세히 논하지만, 그것은 바로 한국사람들이 보기에 일본사람들이 〈가정원리〉의 질서가 없음을 드러내는 여러 상황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