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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주 스크랩 식품명인 열전 ③조정형 전주 이강주 명인
물 흐르듯 추천 0 조회 52 12.05.03 02: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조정형 명인이 이강주가 담긴 병을 직접 들어보이며 이강주의 매력을 설명하고 있다.

전주 이강주 명인 조정형(69)은 술에 미친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술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술을 만들고 있으니 평생을 술과 함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대째 가양주를 만들어오는 집안에서 태어난 조정형 명인은 전북대에서 발효학을 전공한 뒤 젊은 나이에 목포 삼학소주를 거쳐 익산 보배소주와 제주 한라소주의 기술고문으로도 일했다. 그는 주류업계에서 30년간 몸담은 노하우로 1980년에는 최초의 기능인으로 주조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후 소주공장 책임자로 있으면서 전국의 민속주 제조법을 연구하기 시작하다 84년에는 아예 소주공장에서 나와 전국을 돌며 민속주 비법 익히기에 골몰했다. 당시는 밀주 단속이 워낙 심했던 때라 민속주를 배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미친놈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전국의 민속주를 찾아다니며 비법을 배웠다.

“그때 민속주에 대한 책이 있나 뭐가 있나 민속주라는 말도 없었던 시절 아녀? 민속주 하나 맨들라고 규장각꺼지 가서 문헌을 찾아가며 만들곤 했지. 그렇게 만들어 본 술이 200가지가 넘어.”

그렇게 술 연구하기를 몇 해. 그는 수많은 민속주를 만들고 먹어본 뒤 예부터 가양주로 담궈온 이강주에게 가장 매력을 느끼게 됐다.

이강주는 조선 중엽부터 전라도와 황해도에서 제조됐으며 우리나라 5대 명주의 하나로 손꼽히는 술이다. 토종소주에 배와 생강을 넣어 빚었다고 해서 이강주(梨薑酒)란 명칭이 붙여졌다. 이강주는 배와 생강이 들어가 시원한 맛과 향은 물론 생강과 울금, 계피, 꿀 등 여러 가지 약재가 들어가 숙취가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특성을 가진 이강주에게서 명인은 사업성을 본 것이다.

민속주 제조법 배우려
미친놈 소리 들으며 전국 방랑
200여가지 술 맛본 끝에
이강주 시원한 맛·향에 매료
91년부터 제품화 성공 

민속주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어볼 요량으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등록을 신청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당시 전라북도 문화재 심사위원이던 그의 아버지가 술에 미쳐 사는 아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반대했기 때문이다. 조정형 명인은 “아버지가 ‘저놈은 미친놈이니까 받아주지 말라’며 돌아다니셨고 주조 공장을 세우려던 계획까지 방해했었지”라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3년후인 1987년이 돼서야 이강주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6호로 지정됐다. 이강주를 인정해준 정부에서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문화재 등록을 허가하라는 지시가 있어서였다. 이를 계기로 이강주가 본격적으로 제품화에 들어간다. 1991년 제품화가 성공하면서 조정형 명인은 전통식품 명인 9호로 등재된다. 또 그동안 모은 자료를 토대로 민속주에 관한 책 ‘우리땅에서 익은 우리술’을 집필하기도 했다. 현재 전주 완주군에 개인박물관을 조성해 주조와 관련된 여러 가지 기구와 지금까지 제조해온 갖가지 민속주를 전시해 뒀다.

이제는 수출과 대중화에 힘을 쏟고 있다. 이강주는 8만리터를 생산해 전국의 백화점과 할인점 등을 통해 매년 30억원 정도의 매출을 달성하고 있다. 3년전에는 도수를 낮춰 19도짜리 신제품을 개발, 대중화에 나서고 있다. 2002년 일본에 첫 수출을 시작한 이강주는 중국과 호주까지 진출해 한국의 대표 민속주로 이름을 알리고 있으며 지난 3월에는 미국에 4만병을 수출하는 쾌거를 기록했다.

조정형 명인은 “준비하고 노력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것이 나의 좌우명이여. 명인 사업은 대부분 소규몬데 소규모의 장점은 속도감이 있다는 것이고 새것을 창출하고 변화하는 게 장점인디 준비가 안돼 있으면 안되제”라며 인생철학을 설명했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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