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미워하자
원수를 사랑하자!
설령 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입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예수님을 진짜진짜 존경합니다. 왜냐구요? 그분은 진짜로 원수를 사랑했고, 그건 나 같은 놈은 절대로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못하는, 휴머니즘이 콸콸 차고 넘치는 지고지순한 사람의 결정체 아니겠습니까?
어렸을 적에 교회에 오면 맛있는 떡도 주고 사탕도 준다고 하길래 몇번 교회를 가 봤는데, 그 교회 목사님이 그러더라고요, '원수를 사랑하라' 고. 나도 진짜로 그래 볼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난 아예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겠느냐? 나는 사람이다. 고로 나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다. 차라리 원수를 미워하자.
홍콩영화 보면 그런 거 많이 나오잖아요.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열심히 무공에 정진해서 천신만고 끝에 강호의 고수가 되고, 마침내 원수에게 복수의 칼날을 내려치며. '에잇, 정의의 칼날을 받아라' 하는 장면 말입니다. 그게 나는 훨씬 통쾌하고 인간적으로 보이더라고요.
솔직히 말해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 미운 놈을 아낀다는 것, 그것만큼 위선적인 게 어디 있습니까?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은 거지. 싫은 놈, 미운 놈, 원수같은 놈을 내 몸같이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지구를 떠나야 합니다. 왜냐구요? 그 사람은 지구에 잠깐 출장 온 천사니까요.
사람은 감정의 동물인데 그런 감정은 전혀 없이 그저 사랑만 한다? 이건 정말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입니다. 감정은 부글부글인데 표정은 보들보들, 방긋방긋이라뇨?
나, 저 원수 싫어 죽겠는데 주위 사람들이 나를 아량 있고 탁 트인 사람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나는 저 망할 자식을 사랑해야 돼.
이렇게 하면 그 원수도 착각합니다. 당신이 그 원수가 어떤 짓을 하든 간에 무조건 사랑하기만 하니까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왜 원수 같은 놈이 됐는지도 모르고 도리어 자신이 했던 행동이 정당하고 바른 줄 알고 또 그 행동을 할지도 모릅니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감정을 속이면서 상대를 사랑하는 척하려면 얼마나 스트레스 받겠습니까? 그러다가는 속이 시커멓게 타서 염소 같은 마누라, 토끼 같은 자식들을 남겨놓고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억울한 사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자, 이런 사태를 미연에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우리 모두 원수를 미워합시다. 그래서 뜨거운 맛을 보여 줍시다, 그 원수가 자기가 왜 원수가 됐는지 깨닫게.
그게 우리 정신건강에도 좋습니다.
참고 : 사람 중에서도 진짜로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나 그 사람 정말 존경합니다. 소설가 김홍신 알죠? 『인간시장』 썼던 소설가 말예요. 이 남자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진짜 아무 죄 없이 인도에 서 있는데, 차가 와서 받았대나 어쨌대나, 그 전말은 나도 잘 모르지만, 하여간 그 사고 차 운전수가 과실이 컸었나봐요. 그런데 김홍신이 경찰서에 가 보니까 이 사람 너무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하루밤새 다 죽은 사람처럼 돼 있더라는 거죠. 그래서 김홍신이 그 사람을 말없이 껴안더래요. 옆에 있던 친지들이 방방 뜨니까 김홍신이 이러더래요.
돌아가신 아버님도 용서하셨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