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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서 시를 읽다 (1)
- 내셔널갤러리: 성모 마리아
<시작하면서>
유럽미술관 순례를 시작으로 동서양의 중요한 미술 작품 감상 여행을 시작하였다. 그동안 시(詩) 서(書) 화(畵)의 기본을 갖추기 위해 수년동안 붓글씨와 사군자에 열심을 내었고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두 번의 그룹전을 가진바 있다. 또한 '예술의 전당', '서울 시립미술관', '겸재 미술관' 등을 비롯하여 국내 여러 미술관에서 동서양 미술사를 공부하여 왔는데, 이제 진품 앞에 서서 작품 및 작가와 대화하며 나의 시심(詩心)을 불러내어 키우고 다질 생각이 간절했던 것이다.
어떤 예술이든 모두 삶의 문제를 - 그것이 비단 인간의 삶 뿐 만 아니라 삼라만상의 삶이 다 포함되는 것이다 -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는 것이리라. 다만, 대상을 글로 표현하면 문학이요, 그림으로 표현하면 미술이요, 소리로 표현하면 음악이다. 또 다양한 표현 방법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예술이 존재한다. 또한 그 경계를 넘나들며 융복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모든 예술은 표현 형식이나 방법 보다는 예술 작품의 가치에 관심의 무게를 두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떤 예술작품이 가치가 있을까? 또 ‘가치’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보편적으로 말하면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이 가치가 있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예술작품이 삶에 도움을 줄까?
매튜 키이란(Matthew Kieran)은 <예술과 그 가치>에서 좋은 예술이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삶에 대한 통찰력과 이해, 세계를 보는 방식을 풍요롭게 해주는 예술’이라고 한다. 나쁜 작품은 ‘당대의 취향에 굴복하며, 경험의 확장이라는 문제의식이 없으며, 단선적인 주장을 반복하는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국내외 미술관 순례와 작품 전시회에서는 물론, 앞으로 미술 뿐 만 아니라 문학, 음악 등 모든 예술 작품을 대하게 될 때, 이러한 기준에 충실하게 따르면서 깊숙이 작품 속으로의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
고흐가 27세에 그림붓을 들기 시작하여 37세 생을 마감할 때까지 단 10년 동안 그림 그리기에 미쳐서 위대한 작품을 남겼던 것처럼, 나 자신도 나에게 주어진 나머지 이 세상에서의 시간들을 시 쓰기에 미쳐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또 다진다.
<6월 9일 오전: 내셔널 갤러리(The National Gallery)>
KLM을 타고 인천을 떠나 암스텔담을 거쳐 어젯밤 늦게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였다. 10시간이 넘게 앉아서 견뎌야 하는 시간은 고문이다. 그러나 여행지로 가는 비행기는 새 땅에 대한 설레임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귀향에 대한 기쁨으로 지루함을 참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호텔에 가기 위해 런던 지하철을 탔으나 중간 역이 보수공사 중이어서 도중에 내려, 지하철 당국에서 마련해준 셔틀버스를 타고 몇 일간 머물 호텔이 있는 해머스미스(Hammersmith)역까지 갔다. 주말에는 지하철이 보수공사로 인해 일부구간이 수시로 폐쇄된다고 한다.
지난번에 와서도 느낀 것이지만 우리나라 지하철에 비해 런던 지하철은 시설이나 청결도가 형편없다. 물론 역사가 오래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잘 관리를 한다면 관광객들이 타보고 싶어 하는 고색창연한 새로운 작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인데 말이다.
보행자들이 건널목 신호를 거의 지키지 않아 자동차 운전자들이 슬금슬금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가 하면, 날씨를 닮아 거리도 청결하지 못하고 우중충하기 이를 데 없다. 또한 호텔이나 공항 등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도 우리나라에 비해 속도도 무척 느리고 도중에 접속이 잘 끊긴다. 무엇을 보고 영국을 선진국이라고 하는지 고개가 갸우뚱 할 수밖에.
지난번에는 문학의 그림자를 찾아, 온 영국을 헤매었다면, 이번에는 그림 속에서 나의 시를 건지려고 미술관들을 배회한다. 물론 그 방대한 그림들을 다 볼 수는 없을 것이어서 사전에 충분한 조사를 통해 미술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던 그림(예를 들면 미술사 시간에 자주 들었거나, 각 미술관에서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추천하는 그림 등)을 중심으로 깊게 만나려고 한다.
맨 먼저 내셔널 갤러리를 찾았다. 나름대로 준비를 해갔지만, 다행히도 미술관 측에서 전문가의 시선으로 엄선한 40여점을 여러 나라 말로 소개하는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하니 다행이었다. 특히 한국말 오디오 가이드가 마련되어 있어 반가웠다. 전시실마다 가득한 그림들을 모두 자세히 보지 않고 건너뛰는 것이 아쉬웠으나, 오히려 미술사적으로나 작품성으로나 중요한 그림을 보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먹은 그림 앞에서만 오래 머물렀다.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 이탈리아의 우피치 미술관을 유럽의 3대 미술관으로 치고 있다. 내셔널 갤러리는 르네상스의 시작으로 보는 지오토(Giotte di Bondone; 1266~1337) 시대를 시작으로, 주요 작품들을 시대별로 전시를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세인즈베리관(The Sainsbury Wing)에는 13세기에서 15세기까지의 그림들, 서관(The West Wing)은 16세기의 그림들, 북관(The North Wing)은 17세기의 그림들, 동관(The East Wing)에서 18세기에서 20세기 초반의 그림들이 전시되고 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앞에서>
13세기에서 15세기까지 그림이 전시된 세인즈베리관(The Sainsbury Wing)은 암회색의 석조 아치와 석고벽으로 장식되어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 교회의 내부를 연상케 하도록 기획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전시품들이 성당의 제단 뒤에 설치되었던 제단화로, 종교 의식에서 일종의 배경 역할을 하였다. 한편, 휴대할 수 있도록 작게 만들어진 제단화는 공식적인 예배보다는 종교적인 명상을 위해 가정용으로 제작된 것이다. 물론 세인즈베리관에는 종교화만 있는 것이 아니며 동시대에 그려진 인물화나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도 포함되어 있다.
미술관 측에서 분류한 대표적인 작품들은 두치오(Duccio)의 <성모와 아기예수 및 성 도미니쿠스와 성 아우레아(The Virgin and Child with Saints Dominic and Aurea)>, 레오나르도(Leonardo)의 <벌링턴 하우스 카툰(The Burlington House Cartoon)>과 <암굴의 성모(The Virgin of the Rocks)>, 작가 미상의 <윌튼 두 폭 제단화(The Wilton Diptych)>, 우첼로(Uccelio)의 <산 로마노 전투(The Battle of San Romano)>, 반 예이크(Van Eyck)의 <아르놀피니의 약혼(The Arnolfini Portrait)>, 보티첼리(Botticelli)의 <비너스와 마르스(Venus and Mars)>, 벨리니(Bellini)의 <레오나르도 로렌단(Doge Leonardo Loredan)>, 멤링(Memling)의 <돈느 세 폭 제단화(The Donne Triptych)>,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코(Piero della Francesca)의 <그리스도의 세례(The Baptism of Christ)> 등이다.
16세기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서관(The West Wing)은 화려한 색채의 천으로 장식된 벽이 특징인데, 이곳에 전시된 대부분의 작품들이 걸렸던 왕궁의 벽과 유사하게 꾸민 것이라고 한다.
주요작품들은 홀바인(Holbein)의 <대사들(The Ambassadors)>, 브론지노(Bronzino)의 <비너스와 큐피드가 있는 알레고리(An Allegory with Venus and Cupid)>,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그리스도의 매장(The Entombment)>, 라파엘(Raphael)의 <카네이션의 성모(The Madonna of Pinks)>와 <교황 율리오 2세의 초상(Portrait of Pope Julius II)>, 티치아노(Tiziano)의 <바쿠스와 아리아드네(Bacchus and Ariadne)>, 호사르트(Gossaert)의 <동방박사의 경배(The Adoration of the Kings)> 등이다.
17세기 작품을 전시한 북관(The North Wing)에는 성인들이 아닌, 젖 짜는 아낙, 사냥꾼, 말 탄 사람, 강과 바다 같은 풍경들이 등장한다. 스페인 지배 하에서 벗어난 네덜란드 공화국은 개신교를 국교로 선포하였으며, 예배드릴 때 어떤 이미지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네덜란드 화가들은 성당의 후원을 잃게 되었다. 다행히도 경제적 번영으로 개인의 저택을 장식하기 위해 도시나 시골 풍경화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물론 성경의 신약과 구약의 장면들도 여전히 많은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클로드(Claude)의 <마법에 걸린 성(The Enchanted Castle)>과 <성 우르술라가 승선하는 해항(Seaport with the Embarkation of Saint Ursula)>, 렘브란트(Rembrandt)의 <63세의 자화상(Self Portrait at the Age of 63)>과 <34세의 자화상(Self Portrait at the Age of 34)>, 베르메르(Vermeer)의 <버지널 앞에 서있는 젊은 부인(A Young Woman standing at a Virginal)>, 벨라스케스(Velazquez)의 <비너스의 단장(The Rokeby Venus)>, 반다이크(Van Dyck)의 <찰스1세의 기마초상(Equestrian Portrait of Charles 1)>, 루벤스(Rubens)의 <삼손과 데릴라(Samson and Delilah)>, 카라바조(Caravaggio)의 <엠마오의 그리스도(The Supper at Emmaus)> 등이다.
동관(The East Wing)에 전시된 18세기에서 20세기까지의 작품들의 특징은 성경의 일화대신 당시의 삶을 소재로 그렸고, 인상파화가들의 등장으로 선명한 색채와 거친 붓질이 화단을 풍성하게 하였다. 또한, 합성물감과 금속튜브의 개발 등으로 화가의 야외작업이 용이해졌으며, 일본 판화의 영향도 제법 나타났다.
이 전시관의 대표적인 그림들은 드루에(Drouais)의 <자수틀 앞에 앉아 있는 마담 드 퐁파두르(Madame de Pompadour at her Tambour Frame)>, 컨스터블(Constable)의 <건초마차(The Hay Wain)>, 게인즈버러(Gainsborough)의 <윌리엄 핼릿 부부, 아침산책(Mr and Mrs William Hallett, 'The Morning Walk')>와 <앤드류스 부부(Mr and Mrs Andrews)>, 스텁스(Stubbs)의 <휘슬자켓(Whistlejacket)>, 터너(Turner)의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 카날레토(Canaletto)의 <석공의 뜰(The Stonemason's Yard)>, 앵그르(Ingres)의 <마담 무아테시에의 초상(Madame Moitessier)>, 모네(Monet)의 <라 그르뉴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Bathers at La Grenoullere)>, 쇠라(Seurat)의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Bathers at Asnieres)>, 세잔(Cezanne)의 <목욕하는 사람들(Bathers, 'Les Grandes Baigneuses')> 등이다.
모두들 미술사에서 많이 언급되는 그림들이었다. 맨 먼저 소개된 그림은 두치오(Duccio di Buoninsegna; 1255?-1318?)의 작품 <성모와 아기예수 및 성 도미니쿠스와 성 아우레아(The Virgin and Child with Saints Dominic and Aurea)>라는 세 폭 제단화(祭壇畵)다.
(1) 두치오의 <성모와 아기예수 및 성 도미니쿠스와 성 아우레아>
성서 속에 있는 이야기와 옛날 역사적 사건에 있는 여인의 모습은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화가가 임의로 재구성하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성모를 정숙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하기 위해 현실 속의 모델을 사용하였다. 라파엘로는 자기 애인을 성모 마리아의 모델로 삼았고, 카라바죠는 창녀를 모델로 삼아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 그림에서 보면 아기 예수는 무언가 어머니에게 떼를 쓰고 있는 듯 하고, 마리아는 입매를 보면 아기 예수를 혼내고 있는 것 같으나 눈매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아마도 두치오는 자기 어머니를 모델로 삼아 그리지 않았나 싶다. 온통 금박을 사용하였으며, 특히 진귀한 청금석 안료를 사용한 마리아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주제로 한 작품이 드물었으나,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공식 선언한 이후부터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교회의 장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여하튼 서양화에서는 성모마리아와 비너스만큼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대상은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화가들은 남성이 주축을 이루고, 또한 인류는 근본이 모계 사회라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두치오, <성모와 아기예수 및 성 도미니쿠스와 성 아우레아>, 1315년경, 42.5X34.5Cm, 목판에 템페라, 런던 내셔널 갤러리]
마리아와 예수, 두 분을 주제한 그림 및 조각은, 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 성모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안고 있는 피에타 두 가지가 있다.
그리스도교 초기 때부터 마리아에 대한 애정은 신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왔다. 누구에게나 가장 친근한 ‘어머니’로서의 성모 마리아가 자신들을 더 잘 이해해 주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아들 예수에게 잘 설명해 줄 것이라고 여겼기에,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에게 기도하는 형식을 선호한 것이다.
이러한 그림들을 살펴보면 ‘예수교’라기 보다 ‘마리아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마리아는 예수보다 더 크고 그 표정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두치오의 이 그림에서도 예수님을 쳐다보는 자애로운 마리아의 모습은 화려하고 세밀한 반면, 예수님을 포함한 나머지 인물들은 크기로나 세밀함으로나 좀 소홀이 되고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
한편 성모 마리아와 성인 예수가 등장하는 피에타(Pieta)는 1300년 이후 등장하였는데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의 시신을 앞에 눕혀 두거나 품에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한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슬픔이나 비탄을 뜻하며,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술가들은 성경에 구애받지 않고 나름대로 상상에 의해 그림으로 혹은 조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치오는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출생하였다. 중세 말기부터 르네상스에 걸쳐 활동하던 시에나화파를 확립한 사람이다. 15세기경 피렌체가 르네상스 회화의 중심지로 부각되자 상대적으로 시에나의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두치오와 지오토가 활동하던 13세기 말부터 14세기 초는 이탈리아 미술에서 중세 고딕의 마지막과 르네상스의 시작이 겹치는 시기였다. ‘같은 시대에 활동한 지오토가 소박한 화풍으로 현대 화가의 아버지로 인정받고 있다면, 두치오는 매혹적인 색채와 물결치는 곡선, 정묘한 구도를 특징으로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딕미술은 로마네스크미술(대체로 950~1200년경에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 지방과 프랑스에서 일어나 유럽 여러 곳으로 퍼져나가서 지역마다 다양하게 발전)에 이어 12세기 중기에 시작되어 13세기에 프랑스 및 영국에서 확립되었으며, 15세기 초부터 이탈리아에서 형성된 르네상스미술에 자리를 내 줄 때까지 존속하였다.
고딕미술에서 르네상스미술로 넘어가는 경계선에 위치한 두치오가 그린 <성모와 아기예수 및 성 도미니쿠스와 성 아우레아>는 성당의 제단 장식용품으로,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양쪽 날개를 접으면 61.4 × 39.3cm인 오각형 모양으로 제작되었다. 그림의 맨 위 일곱사람은 구약에 나오는 다니엘, 모세, 이사야, 아브라함, 야곱 그리고 예레미야 선지자이며, 왼쪽 날개 부분에 있는 사람은 도미니크 성인이고, 오른쪽 날개 부분에 있는 사람은 아우레 성인이다.
세폭 제단화는 양날개에 경첩을 달아 덮으면 그림이 상하지 않게 휴대할 수 있으며 펴놓으면 선반이나 제단위에 세워두고 기도하는데 도움을 주게 되어 있다. 이러한 세 폭 제단화는 종교화의 한 형식으로, 주로 교회의 제단을 장식하기 위해 세 개의 패널로 만들어졌다.
서양 미술은 기독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상당수의 서양 회화 작품이 교회의 수호성인, 사도들, 교회박사들, 성경 속의 여러 사건과 인물들을 그린 제단화로 이루어졌다. 각각의 패널에 그려진 그림은 개별적으로도 기능을 하지만, 세 개의 그림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 구조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제단화의 중심이 되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를 주제로 한 작품은 개인의 신앙심을 고취시키고 기도를 도와주는 경배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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