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월터스,《아름답게 사는 기술》(김성웅 역, 생활성서, 2011)
올해는 양대 선거가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정치에 관심이 커지는 시기이다. 아마도 올해는 청년들의 멘토로 존경받던 어느 젊은 교수의 역할이 중요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그 외에도 작년에는 멘토 열풍이라 할 만큼 여러 영역에서 멘토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왜 수많은 선생, 교수, 전문가, 성직자들이 있는데 젊은이들은 그들을 찾지 않고 이런 멘토들을 찾았을까? 나름 가르치는 위치에 있다 보니 이런 현상이 달갑지 만은 않았다. 자신의 인품 그리고 실력, 무엇보다 청년들의 처지에 공감하는 능력의 부재를 절감하게 되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극도 받았다. 이제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교회 안에서도 멘토에 대한 갈망을 절감한다. 그만큼 좋은 모범을 찾기 힘들어서일까, 아니면 다들 희망이 없어서일까? 한국교회 안에도 김수환 추기경님, 이태석 신부님, 4년 전에 작고하신 요셉의원의 창설자 선우경식 선생님, 예수의 소화 수녀회 창설자 김준호 레오 선생님, 그 외에도 필자는 잘 모르지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하느님과 이웃에게 온 생애를 바쳤던 수많은 신앙인들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름도 빛도 없는 곳에서 하느님의 사람들이 자신을 내어주고 있다.
사실 우리는 영웅적인 삶을 살다간 성인에게서 큰 용기를 배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분들의 삶이 우리와 달라 너무 고상해 따르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할 대상으로 생각할 때가 많은 것이다. 그럴수록 이분들은 우리와는 거리가 먼 존재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성인전이 꼭 긍정적 기능만을 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오히려 요즘 ‘달인’이라 불리는 이들이 실제 삶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성인들 또는 위인들은 인간의 고상함과 존엄함을 보여주고 있는 까닭에 여전히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표가 될 만한 신앙인의 모범으로는 누가 있을까? 성인품에 오르지 않았어도 충분히 성인이 될 만한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마침 이런 분들이 궁금했는데 생활성서사에서 이런 분들의 삶을 다룬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현대의 성인이라 부를 수 있는 일곱명의 그리스도인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성인 대신 이분들을 스승이라 부른다. 지금 우리나라에 계신다면 훌륭한 ‘멘토’가 되실 분들이다. 이분들은 미국 시카고 교구의 죠셉 버나딘 추기경, 최초의 여성 신학자 테아 보우만 수녀, 유대계 여성 작가 에티 힐레숨, 인권 운동가 조나단 다니엘스, 나치에 저항한 디트리히 본 회퍼,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종교저술가 카릴 하우슬랜더 등이다. 이분들은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잘 살고 잘 죽은 모범 사례이다. 사실 ‘잘 죽는 방법’은 ‘잘 사는 데’ 있다. 후회없는 삶일수록 죽음이 두렵지 않은 법인 까닭이다. 그래서 여기 소개하는 분들은 죽음을 기쁘게 맞을 수 있었던 ‘잘 산’ 사람들이다.
훌륭하고 존엄한 죽음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삶에서 조금씩 다져져 이뤄지는 것이다. 작은 덕행들이 모여 영웅적인 덕행이 되고, 이는 그의 존재 안에 육화되어 우리에게 영원한 사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분들 각자의 삶을 ‘믿음, 사랑, 감사, 순명, 용기, 인내, 그리고 그리스도 닮기’와 같은 덕목을 증거한 분으로 본다. 물론 이 분들이 이 덕목만을 산 것이 아니라, 그 부분이 두드러졌다는 뜻이다.
단지 교회와 신앙 안에서만 추앙할 수 있는 분이면 그리 울림이 적을 텐데 이분들은 종교를 떠나 모든 인간들이 존경하고 따를만한 삶의 궤적을 보여주었다. 그만큼 신앙을 떠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처럼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방향을 알고 싶을 때 이 책은 좋은 안내가 될 것이다.
박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