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 청명
호르 호르르 호르르르 가을 아침
취어진 청명을 마시고 거닐면
수풀이 호르르 벌레가 호르르르
청명은 내 머릿속 가슴속을 젖어 들어
발끝 손끝으로 새어 나가나니
온 살결 터럭 끝은 모두 눈이요 입이라
나는 수풀의 정을 알 수 있고
벌레의 예지를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나도 이 아침 청명의
가장 고웁지 못한 노래꾼이 된다
수풀과 벌레는 자고 깨인 어린애라
밤새워 빨고도 이슬은 남았다
남았거든 나를 주라
나는 이 청명에도 주리나니
방에 문을 달고 벽을 향해 숨쉬지 않았느뇨
햇발이 처음 쏟아오아
청명은 갑자기 으리으리한 관을 쓴다
그때에 토록 하고 동백 한알은 빠지나니
오! 그 빛남 그 고요함
간밤에 하늘을 쫓긴 별살의 흐름이 저러했다
온 소리의 앞소리요
온 빛깔의 비롯이라
이 청명에 포근 취어진 내 마음
감각의 낯익은 고향을 찾았노라
평생 못 떠날 내 집을 들었노라
이 시는 가을 새벽 산책하며 맑고 밝은 공기를 마시며 감각이 극대화되어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마음의 고향과 집을 찾은 화자의 느낌을 말하고 있으며 시대적으로 광복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굳게 갖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호르 호르르 호르르르 벌레가 숲속에서 우는 가을 새벽 아침에 취할 청명한 공기와 밝음을 마시고 숲속을 거닐면 수풀에서 호르르 벌레가 호르르르 운다. 청명한 공기와 빛은 내 머릿속과 가슴속을 젖어 들어 발끝 손끝으로 새어나간다.
이때에는 나의 온 살결과 터럭 끝은 모두 눈과 입이 되어 청명한 빛을 보고 공기를 마신다. 그러면 나는 수풀의 정을 알 수 있고 벌레의 예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나도 이 아침 청명의 벌레보다 못한, 가장 곱지 못한 노래꾼이 된다.
수풀과 벌레는 자고 깨인 어린애와 같다. 밤새워 이슬을 빨고도 아직 남은 이슬이 있다. 이슬이 남았거든 나에게 다오. 나는 어제밤 방에 문을 닫고 벽을 향해 숨쉬고 있어 이슬을 빨지 못했다. 그래서 이 청명에도 불구하고 이슬에 굶주린다.
햇발이 처음 쏟아진다. 해가 떠오른다. 청명은 갑자기 으리으리한 관을 쓴 것 같다. 그때에 토록 소리를 내며 동백씨 한 알이 빠져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오! 해빛의 그 빛남과 동백씨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그 고요함. 간밤에 하늘에 떳다가 사라진 별똥의 흐름이 저렇게 빛나고 고요했다.
씨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고요함은 온 소리의 앞소리이고, 청명의 빛은 모든 빛깔의 시작이다. 이 청명에 포근하게 취어진 내 마음은 감각의 낯익은 고향을 찾았다. 평생 못 떠날 내 집에 들어갔다.
이 시를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목 ‘청명’은 춘분과 곡우 사이의 절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24절기의 하나인 ‘청명’은 한식과 같은 날 또는 하루 전날로 매년 4월 4일에서 5일 사이를 말한다. 그러나 이 시에서 말하는 ‘청명’은 1연의 ‘가을 아침’과 3연의 ‘이슬’과 4연의 ‘햇발이 청음 쏟아오아’ 등으로 볼 때에 해가 떠오르지 않은 상태의 ‘밝은 새벽과 맑은 공기’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호르 호르르 호르르르 가을 아침
취어진 청명을 마시고 거닐면
수풀이 호르르 벌레가 호르르르
청명은 내 머릿속 가슴속을 젖어 들어
발끝 손끝으로 새어 나가나니
‘호르 호르르 호르르르’는 새벽 숲속에 들리는 벌레의 소리이다. ‘가을 아침’은 이 시의 시간적 배경으로 ‘청명’이 4월의 절기인 ‘청명’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취어진’은 ‘계절의 정취에 젖어든’(2019년 9월 모의고사)으로 해석하는데 이는 잘못된 해석으로 보인다. 이는 5연 3행에 ‘청명에 포근 취어진 내 마음’에 한 번 더 쓰인다. ‘내 마음’이 ‘취어진’ 것이다. 이로 볼 때 1연의 ‘취어진 청명’은 ‘청명’이 ‘취어진’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청명’에 ‘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취어진’은 ‘취+어지+ㄴ’으로 분석할 수 있다. ‘취’는 ‘취하다 醉’이고 ‘어지’는 피동을 나타내는 피동접미사인 것으로 보인다. ‘ㄴ’은 현재를 나타내는 관형형어미인 것이다. 따라서 ‘취어진’은 ‘청명’에 의해 ‘취(醉)’하게 된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수풀이 호르르 벌레가 호르르르’는 ‘수풀 속에서 보이지 않는 벌레가 호를르르 소리를 낸다’를 대구의 형태로 쓴 것이다. ‘수풀이 호르르’는 벌레가 보이지 않기에 ‘수풀이 호르르’ 소리를 낸다고 표현한 것이며 ‘벌레가 호르르르’는 ‘수풀’에서 나오는 소리가 ‘벌레’ 소리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청명은 내 머릿속 가슴속을 젖어 들어’는 가을 새벽의 맑은 공기와 밝은 빛이 화자의 온몸과 마음에 충분히 들어온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청명’은 화자의 온몸과 마음을 가득 채우고 넘쳐 ‘발끝 손끝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느낀다,
온 살결 터럭 끝은 모두 눈이요 입이라
나는 수풀의 정을 알 수 있고
벌레의 예지를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나도 이 아침 청명의
가장 고웁지 못한 노래꾼이 된다
‘청명’이 화자의 온몸과 마을을 가득채우고 넘쳐서 ‘발끝’과 ‘손끝으로 새어 나가’면서 화자의 ‘온 살결’과 ‘터럭’의 ‘끝은 모두 눈’이 되고 ‘입이’ 된다. 그래서 화자는 ‘나는 수풀의 정을 알 수 있고 / 벌레의 예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수풀의 정’과 ‘벌레의 예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 시가 쓰인 시대가 일제강점기임을 바탕으로 추측한다면 ‘벌레의 예지’는 아침의 해가 뜬다는 것을 알리는 것으로 광복이 온다는 것을 예언하는 것으로 보이고 ‘수풀의 정’은 ‘청명’ 이전에 어둠인 일제의 탄압에서 ‘벌레’를 보호하는 ‘정(精)’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청명’은 ‘광복’이 분명하게 오기 전의 때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수풀의 정’과 ‘벌레의 예지’를 안 뒤에는 화자도 벌레처럼 ‘이 아침 청명의 / 가장 고웁지 못한 노래꾼이 된다’. 화자도 ‘해’가 뜨는 ‘아침’을 노래는 것이다. ‘가장 고웁지 못한’은 ‘벌레’와 비교했을 때에 자신의 노래가 그렇다는 것이다.
수풀과 벌레는 자고 깨인 어린애라
밤새워 빨고도 이슬은 남았다
남았거든 나를 주라
나는 이 청명에도 주리나니
방에 문을 달고 벽을 향해 숨쉬지 않았느뇨
‘수풀과 벌레는’ 잠‘자고 깨인 어린애’이다. ‘청명’에 의해 깨어난 순수라는 것이다. ‘어린애’는 ‘순수’를 의미한다 할 수 있다. 이들이 ‘순수’의 상징인 ‘이슬’을 ‘밤새워 빨고도 이슬은 남’아 있다. 그래서 화자도 이들처럼 ‘순수’하게 되기 위하여 ‘이슬’이 ‘남았거든’ 달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이 청명에도 주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리’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여 모자람을 느끼’(다음 사전)는 것을 말한다. ‘주리나니’의 이유는 밤, 어둠 속에서 ‘이슬’을 ‘밤새워 ’ 빤 ‘숲’과 ‘벌레’와는 달리 ‘방에 문을 달고 벽을 향해 숨쉬’고 있었기 때문에 ‘이슬’을 ‘빨’ 수 없었던 것이다.
‘방에 문을 달고’에서 ‘달고’는 ‘닫고’의 오기가 아닌가 한다. ‘벽을 향해 숨쉬’는 것은 세상을 외면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면벽을 하면서 화자의 정신을 깊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햇발이 처음 쏟아오아
청명은 갑자기 으리으리한 관을 쓴다
그때에 토록 하고 동백 한알은 빠지나니
오! 그 빛남 그 고요함
간밤에 하늘을 쫓긴 별살의 흐름이 저러했다
화자가 가을 어느 날 밝으나 해가 뜨기 전의 아침에 숲속을 산책하며 ‘벌레’와 함께 ‘예지’의 노래를 부르는데 ‘햇발이 처음 쏟아’져 온다. 해가 뜬 것이다. 그 햇빛의 밝음은 화려하여 ‘청명은 갑자기 으리으리한 관을 쓴’ 것 같다. 해가 떠 햇빛이 ‘으리으리한 관을 쓴’ 것처럼 비출 때에 ‘토록’ 소리를 내며 ‘동백’나무 열매 ‘한알’이 나무에서 떨어진다. ‘오! 그 빛남 그 고요함’은 화자가 이때에 느낀 감정이다. ‘오! 그 빛남’은 ‘햇발이 처음 쏟아’질 때의 밝음에 감탄하는 것이고 ‘그 고요함’은 단지 ‘한알’의 작은 씨앗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고요한 상태에 감탄한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처음이 아니다. 화자는 ‘간밤에 하늘을 쫓긴 별살의 흐름’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간밤’을 일제강점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면 이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들에 의해 ‘쫓긴’ 유성의 흐름에서도 느꼈던 것이다. 소리가 전혀 없는 고요한 상태에서 찬란한 빛을 내며 흐르는 ‘별살’의 밝음에서도 느꼈던 것이다. ‘별살’은 빛을 내며 화살처럼 빠르게 하늘을 가르는 유성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온 소리의 앞소리요
온 빛깔의 비롯이라
이 청명에 포근 취어진 내 마음
감각의 낯익은 고향을 찾았노라
평생 못 떠날 내 집을 들었노라
고요함을 깨면서 ‘토록 하고 동백 한알’이 떨어지는 소리는 ‘온 소리의 앞소리’로, 해가 떠 햇빛이 ‘처음 쏟아’지는 빛은 ‘온 빛깔의’ 시작이라 느끼는 것이다. 화자는 ‘이 청명에’ 해가 뜨고 ‘토록’하는 소리에 ‘포근’하게 ‘취’하게 되는 ‘내 마음’에 ‘청명’이 온몸에 들어와 나가는 감각을 통해 ‘감각의 낯익은 고향을 찾았’고 ‘평생 못 떠날 내 집’에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감각의 낯익은 고향’은 이전에 화자가 가졌던 감각이었음을 말한다. ‘고향’에서 ‘포근’함을 느끼듯이 화자는 ‘청명’에서 느끼는 것이다. ‘평생 못 떠날 내 집’은 화자가 앞으로는 ‘청명’에서 느낀 마음을 잊지 않겠다는 것을 말한다. ‘들었노라’는 ‘들어갔다’의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고 ‘예지’를 담은 ‘벌레’ 소리를 ‘들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는 이 둘을 다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20201231목후0151전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