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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저희가 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는도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데메드리오는 뭇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거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 [요한3서 5~12]
요한 3서는 진리를 위해 수고하는 사역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쓴 편지다 전시간에는 진리안에 있는 동역자들에 대한 격려를 말씀했고 오늘은 진리를 위해서 수고하는 자들과 함께하는 문제를 말씀하겠다.
우리가 사역한다는 말은 진리를 풀어서 다른 사람에게 음식이 되도록 먹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것을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 하기도하고 성경지식을 가르치기도 하고 성경에 있는 여러가지 생활을 가르치는것 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는것이 사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리가 무엇인가 그것은 십자가에 못박힌 못박힌 그리스도의 진실이고 이 진실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러기 때문에 진실을 다른 사람에게 풀어 먹이는 것이 사역의 본질이다 그래서 이 진실을 모르면 사역이 안되고 교리를 가르치는 교사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 설교자 이렇게 될 뿐이지 진리에 대한 사역자가 될수 없다.
이 예수그리스도의 진실은 타락한 온 인류에게 생명이 되고 양식이 되고 약이 되기 때문에 이것을 먹어야 살아난다 독을 먹었으면 해독제를 먹어야 사는 것처럼 선악을 아는 지식을 먹고 하나님 같이 된다는 거짓을 먹어 이탈된 것이니 이사람은 진실을 먹어야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산다는 말이 이 뜻이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결과 하나님께 대하여 죽었다 육신은 멀쩡하게 살아 있었지만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려하니 하나님과는 원수가 되었다 이것을 로마서에서는 하나님과 원수된자다 정죄아래 놓인자다고 했다 원수가 되었으니 정죄아래 놓인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 되야 축복이 흘러 내릴 것인데 원수 관계니 축복 대신에 저주가 흘러 내리는 것이 아담의 현실이다 땅은 너를 저주할 것이다 엉겅퀴를 낼것이다 가시덤풀을 낼 것이다 이마에 땀을 흘러야 먹고 살 것이다 너는 흙이니 필경은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것은 모두 진실에서 이탈된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미리 말한 것이다.
그래서 온 인류는 지금 다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땅과 싸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진실이 약인 것이다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도덕적인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진실하게 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모든 성현들이 나와서 하는 말들이 다 진실하게 살라는 말이다.
공자님 말씀이 많지만 하나로 요약하면 진실하게 살라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도 요약하면 진실하게 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진실이 무엇인지가 문제다 우리는 에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보았기 때문에 진실하면 막연하게 도덕적인 진실, 종교적인 진실을 생각하는게 아니고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운명, 사람의 운명을 생각한다. 사람이 만든 모든것은 변하지만 이것만은 변하지 않는 것을 안다.
사람들이 말하는 인격이나 위대함이나 현명함은 다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집을 짓듯이 바벨 탑을 쌓아 만든것처럼 만들어 놓은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저 사람은 인격자다 하면 타고 난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피나는 노력으로 무엇을 쌓아 만든것을 말하는 것이다.
절에 가보면 돌에 돌을 올려 놓은 돌탑이 있는데 이것은 공을 들인다는 뜻이다 인생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모두 이처럼 무엇을 만들어서 자기가 높아지려하고 커진자가 되려하고 선하자가 되려하고 지혜로운 자가 되려한다.
선이나 덕도 사람이 만든 것이다 이 만든것으로 사람들은 경쟁을 하여 일등도 있고 꼴찌도 있고 마이너스도 있다 저사람은 악질이다하면 마이너스라는 말이고 저 사람은 성인다하면 플러스다는 말이다.
천주교에 잉여 공덕설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잘 믿어서 공덕을 쌓아 100점이면 합격인데 어떤 사람은 100점을 넘어서 150점 200점 짜리가 있는데 성인들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공덕이 남는 사람들이어서 이 남은 공덕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잉여 공덕설이다.
이런것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것이 아니고 사람이 만든 것이다 이것은 없던것을 만든것이니 다 거짓이다 선악을 아는 지석을 먹고 하나님 같이 될것이다는 말에따라서 무엇을 만든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세상에는 진실이 하나도 없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다 세상에 의인이 많은데도 의인은 하나도 없고 깨닫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에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실 안에서 세상을 보고 한 말이다.
온세상을 보고 다 불의하다 했으니 미친놈이라 한 것이다 세상은 다수결 원칙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는쪽이 진리인 판이어서 바울은 미친사람이 된 것이다. 우리도 지금 세상에 나가서 말하다 그들이 부인할수 없게되면 그러면 이세상의 많은 사람은 어떻게 된것이냐 기독교 2000년의 역사는 어떻게 된 것이냐고 말한다.
전통, 다수 이런것에 의해 진리가 결정되는 것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실은 그런것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진실을 떠났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 된 것인데 진실 마져도 만들어서 진실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너희가 산다고 한 것이다 영생한다는 말은 참 생명을 산다는 말이고 조혜라는 영원한 생명을 산다는 뜻이다 결국 진실이 양식이고 약이다.
복음의 핵심은 죽은 사람이 이 진실을 먹고 살아났다는 말이다 하나님 같이 되려고하다 하나님께 대해 죽은 사람이 이 약을 먹고 살았다 이 약을 보급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약을 안먹으려한다 이것을 먹으면 자기의 거짓이 탄로나고 거짓이 깨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진실을 제시하면 속으로 옳다고 생각 할수는 있어도 받아 먹지는 않는다 먹으면 죽기 때문이다 종교인들을 만나 이야기하면 부인은 하지 않지만 먹지 않는다 먹으면 자기 모든 거짓이 탄로나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에도 누구하고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이 예배를 드린다 미사 드린다하는 것처럼 우스운 일은 없는데 하나님이 무엇이 필요한지를 모르고 배고픈 사람 앞에서 연극하고 있는것과 같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갈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하나님의 만족을 위한 것이다 예배를 드릴려면 차라리 구약의 유태교 처럼 제사를 드리는 것이 실제를 표현하는 모형이니 맞는 것이다. 송아지나 양이나 비둘기나 고은 가루를 드리는 것은 실제가 아니고 형상이지만 참 실제의 형상이니 예배나 미사에 비해 드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와서 참된 제사가 있었다 그래서 히부리서에서 이제 염소나 송아지 피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 단번에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영단의 제사에 포함되어 하나님게 제사를 드려야한다.
이것이 참된 예배다 그래서 로마서 12장에서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합리적인 예배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사와 예배가 나온것은 이교도들의 신전에 가면 그런 의식을 행하고 있어 본받은 것이 미사고 이것을 변형 시킨것이 예배이다.
그러니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을 뿐아니라 하나님이 분노를 할 노릇이다 그러니 사람의 손으로 만든 모든것은 가짜다 이렇게 가짜가 완전히 지배하고 가짜 밖에 없는 세계에 약은 진실 밖에 없는 것이다.
백혈병 같이 피가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산 사람의 피를 수혈한다 그러면 금방 살아난다 이처럼 죽은 사람에게는 생명을 공급하는것 외에는 살릴 방법이 없고 거짓에게는 진실을 공급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거짓에 어떤 교리나 어떤 종교도 해결할수 없다 오직 진실 밖에 살아나게 할수 없다 이것을 풀어 먹이는 것이 사역이다 예수님께서는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면서 이것은 내 살이다 잔을 나누면서 내 피다했다 이것은 자신을 나누어 주시는 것으로 이것이 사역이다.
이 진실을 전파하는 것이 사역자들의 일이다 그렇게 해서 모든 인생을 진실 안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으로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사도들은 이 사실 앞에서 한때는 달아났고 부인했지만 결국 증인이 되었다.
이사실은 십자가에서 표현되어 해방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십자가를 피해 달아났지만 성경은 예수님이 다시 찾아가 그들이 돌아왔다고 되있는데 이것은 십자가를 피해가도 피할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 만든것은 피할수 있다 초가지붕을 뜯어내고 스레트 지붕을 올릴수 있고 그러다 블럭집을 짓는것 처럼 사람이 만든것은 바꾸어 질수 있다 피해갈수 있다는 말이다 초가집을 피해 콘크리트 집으로 갈수있지만 십자가는 우리의 운명이기 때문에 피해갈수 없다.
도망쳐간다해서 없어지는게 아니다 고기 잡으로 도망을 가도 십자가의 운명을 피할길은 없다 베드로도 내가 십자가를 피해 도망갔어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구나 하고 다음에 깨달은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이천년 전에 갈보리 산위에서 죽었는데 그것이 인류를 구속한 것이었다는 등 여러가지를 배웠다 그러나 그것은 나와는 관게가 없는 잘 모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보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있을 때 우리도 거기 못박혀 있었다 그때 우리는 태어나지 않았는데 인생은 모두 거기 있었다.
지금 태어난 우리도 아직 태어나지 않는 사람도 거기 있었다 이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그래서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한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 안에 있는 것이다 내가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고 안들어 가고 싶으면 안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나는 장사하고 있고 사업하고 있고 십자가와 상관없이 내 마음데로 살고 있다고 할수는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의 운명은 십자가에 여전히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에서 다윗이 내가 어디로 가서 주에 얼굴을 피할꼬 새벽 날개를 펴고 바다 끝에 갈지라도 여호와께서 거기 계실 것이며 땅속 음부에 내려가도 여호와께서 거기 계실것이다 했는데 우리 인생의 운명을 보고 한 말이다.
십자가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은 우리의 운명이기 때문에 내가 가고 안가고 취하냐 안취하느냐 믿느냐 안믿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믿던지 안믿던지 알든지 모르든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모든 인생은 예수의 십자가 안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만나면 이사람은 불교인이다 장로교인이다 천주교인이다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이나 나나 다 똑같이 십자가 안에 있는 사람이다 이것만이 진실이다 이것을 풀어 먹이는 것이다 피할수 없는 진실을 풀어 먹이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한때는 갈릴리로 달아났지만 간것은 육신이고 자신은 그대로 갈보리 산위에 있었다 이것을 어느날 주님이 눈을 열어 보여 주자 우리가 보고 들은것을 말하지 않을 수없다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사역자들이다.
세상은 하나님이 주신 이자리를 이탈하여 무시하고 자신의 손으로 무엇을 만들고 있는것이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세상이라고 하는데 눈으로 보이는 건물 같은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만들어 자신은 그 안에 숨어있는 것이다 그러니 거짓속에 또 거짓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이다 이방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인데 자신의 자리에서 이탈한 자들이라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느 위치에 따라서 보이기도 안보이기도 한 것이다.
유태인은 진실을 외곡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율법으로 만들어 놓은 진실을 가지고 참 진실을 외곡한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대단히 거룩하고 경건한데 이것은 왜곡된 것이다. 그래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 자들이라 했다 진실의 모양은 있으나 진실의 능력은 없는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방인에게나 유태인에게나 우리는 이 진실을 전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을 살릴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진실을 전하는 것이 다 똑같은 모양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앞에 나가서 전하고 어떤 사람은 뒤에서 돕는데 오늘 요한 3서의 말씀은 그렇게 나가서 일하는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에게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사람들과 동역하는것이 같이 따라 다니는 것만이 아니다 그래서 대접한다는 말을 한 것이다.
진실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요구다 그래서 율법을 주신것이나 선지자를 주신것은 이 진실을 요구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진실을 요구하는 방법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율법은 진실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갈망을 표현한 것이다.
율법을 들으면서 안식일날 일하지 말라했으니 금요일 해질때부터 토요일 해질때까지 일하지 않으면 된다하면 율법을 제대로 들은것이 아니다 이것은 너희는 내 안식을 방해하지 말아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안식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내가 진실한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안식을 방해하지 않는것이다. 결국 진실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요구를 위해서 수고하는 자들이 사역자들이고 이수고하는 자들을 돕는것이 동역자들이다 입으로 전파하는 자들이있고 생활로 전파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후원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만일 모두 다 나가서 입술로 전한다면 더할것 없이 좋겠지만 은사가 다 다르기 때문에 다 그렇게 할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입으로는 전파하지 못하지만 삶 자체로 전파하고 있는 경우가 있어 입으로 전파하는 것으로는 전혀 못 알아 듣는 사람이 그 사람의 삶을 보고 믿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하면 그것을 뒤에서 열심히 돕는 사람도있다.
그리고 여기서 한마디 간증으로 우리의 변화를 말하면 그것은 순회하는 사역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사역자들이 말하면서 이 사실의 증거로 그 간증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표현하고 듣고 응답하는 모든것이 돕는것이 된다.
잘못하면 방해도 되는데 그대로 살아보니 되는것 하나도 없고 고통만 있더라하면 방해거리만 된다 그리고 진실을 말해 놓았는데 자기는 이렇게 높아졌다하면 그것도 방해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돕는것은 여러가지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요한 3서의 말은 특별히 물질적인 후원을 말한다 순회하는 사역자들이 왔을 때 그들을 대접한 것을 말한다 그들이 돌아다닐때 잠재워주는 사람 밥주는 사람 노자도 주는 사람도 있어야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런것을 말하는 것이고 이 사람들을 돕는것이 아름답고 선한 것이다.
진실을 표현하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이것이 유일한 것이다 십년 도를 통하나 백년도를 통하나 마지막은 이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찾고만 있는 것이다 불도나 도를닦는 사람을보면 이것을 찾는 것인데 갈보리산에 가보면 바로 볼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없는데서 눈감고 찾으니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진실을 보여 주었으니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도, 아무리 지식이 없어도 다 볼수 있는 것이고 10년 앉아 있으나 없으나 다 알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앉아서는 찾기가 바다에가서 범을 잡은것과 같고 알았다해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찾은 것이라서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해야 찾지 나누어 줘서 되는 것이 아니다. 히말라야 산정에 올라 놀라운 광경을 보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말해도 안가본 사람은 모른다 궁금하면 올라가보아야 되는 것이다. 자기는 보았지만 나누어 줄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실은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줄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좋아도 모두가 나누어 가질수 없는것은 도라고 할수 없다 불교에서 부처님이 연기법칙을 깨달았다고 한다 저절로 혼자 존재하는것은 없고 다 연관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파도가 치는것을 보면 한 파도가 올라오니 다음은 내려가고 그 다음은 올라오는 것으로 앞뒤가 연결된 인연이다 이 인연의 법칙을 알았다는 것은 독존적인 나는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면 간단한 문제다.
나는 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지으신 자가 있어 존재하는 것이다는 말이다 연기라는 말이 그것이다 그런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빼버리고 다음의 연기만 말하는 것이다. 나는 없다 이것이 무아이다 내가 무엇을 의식한다면 스스로 의식하는것이 아니고 어떤것을 인연으로 의식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진리이다.
그리고 불교는 자비를 말하는데 이 무아의 정신을 모르는 무지를 뿌리 뽑기위해 자신을 바치는것을 자비라고 한다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지는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그런 인간의 욕망으로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중생들을 건져내기 위해 자기를 헌신하는것이 자비이다.
이것을 기독교적으로 이해를 해보면 지혜는 십자가에 있는 진실을 깨닫는 것이 지혜이다 우리날을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하소서하는데 내가 몇년이나 살것인지 내 인생의 연한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게되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데 사람은 그 날수를 계수하지 못한다한다.
날자 계산을 못하기 때문에 오늘밤에 네 영혼을 되 찾으리니 네 여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이것만 확실히 계산이 된다면 누구라도 옳게 살지 않을 사람이 없는데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라서 모르고 청년은 청년이라서 모르고 노인은 노인 이라서 모른다.
노인들은 살날이 적으니 잘 알고 있을것 같아 지헤로울것 같다 성경에도 노인의 지혜를 배우라고 했는데 여기 노인은 날자를 정확하게 계수하는 노인을 말한다 그런데 노인이라도 날자 계수가 안되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 어리석은 사람이고 아무리 젊은이라도 날수를 계수할줄 알면 지혜로운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까 십자가를 아는 것이 지혜이다 연기법도 알고보면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당연히 파도가 올라가면 내려가고 내려가면 올라가는 것이다 오늘은 여름이 가고 시원해 부채질 하는 사람이 없는데 부채질 한것은 저절로 한것이 아니고 연기법에 의해 더우니 한 것이다.
오늘은 시원하니 안한다 그러니까 내가 부채질을 하고 안하는 것이 아니고 더위가 오니 인연을 주어서 부채질하고 더위가 가서 인연을 끊으니 부채질을 안한다는 것이다. 쉽고 재미있다.
그러면 사랑은 무엇이냐 아가페는 무엇이냐 이 진실을 전파하는 것이다 이 진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게하기 위해 자기를 헌신하는것이 사랑이다 그러니까 진실을 전파하고 공급해서 사람을 사탄의 사슬에서 거짓에서 해방 시키기 위해 헌신하는것이 사랑이다.
내가 아무리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애지중지 하더라도 그를 어둠 가운데 그냥 놔두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죽이는 것이다 사탕이나 먹다가 죽으라는 것이 된다 그러나 싸우더라도 그를 빛으로 끄집에 내었다면 그것이 사랑이다. 그것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진리를 위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은 스스로 의뜸되기를 좋아해서 사역자들을 대접치도 않고 망령되이 폄론하고 대접하는 사람까지 방해했다 이것은 악한 것이고 선을 가로막는 것이다 이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일을 본받으라고 했다.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들에게도 증거를 받았고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고 우리에게도 증거를 받은 동역자이니 이 사람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진실을 위해 수고하는 사역자를 돕는것은 선한 일이다 선은 하나님게 속한 것이고 악은 사탄에게 속한 것이다고 규정을 하고 있다.
우리가 무엇이 선하고 악한 것인가 구별할때 선한 일은 십자가에 진실을 알아 어둠에 있고 거짓에 있는 사람들은 끄집에 내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고 우리 일생을 바치는 것이 선한 것이다 이것을 불교 용어로 원력이다고 하는데 원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발원, 발심이라고 하는데 저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원하는 힘을 발동 시키는 것이다는 말이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이 원력이 발동해서 그것을 발심해 왕궁을 버리고 출가했다고 한다 모세는 애굽에서 바로의 공주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자기백성들과 함께 고통받기를 즐겨했다고 하는데 원력이 발동했다는 말이다 성경데로는 소원을 두고 행한다는 말이다.
소원을 두고 행하다 보니 내가 직접가서 전파하기도하고 전파하는 사람을 돕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리를 아는것이 지혜고 진리를 전파하는것이 사랑인 것이다.
속히보고 말하기를 원한다했는데 이 문제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성경안에서 이러한 예증을 볼수 있는데 마태복음 9장 3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했다.
백성을 보니 목자없는 양같아 그들을 인도하고 싶어졌다는 말로 발원지심이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것은 많되 일할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 청하여 추수하는 일꾼을 보내 주소서하라 거짓에 팔려간 백성을 보고 민망히 여겼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7장 17절에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실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겠고 했는데 아버지께서 저들을 우리안에 있는 진실로 저들을 구별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낸것이 그것때문에 보냈습니다 그래서 나도 저들을 세상에 보냅니다하는 뜻이다.
이 진실의 전파자가 되게하기위해 내가 저들을 세상에 보냅니다 내가 비옵는것은 이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저희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저사람들이 나가서 전파하면 그 사람들로 인하여 또 전파가 될것이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8장에는 내가 이를 위하여 낳았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라 그분은 이 진실을 증거하려 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아주 분명해졌다.
사도행전 1장에서 사도들의 증거를 보면 해 받으신 후에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 일을 말씀하시니라 하나님 나라는 진실의 나라다.
사도행전 5장에는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 이름은 진실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그분의 이름을 위해서 능욕받는 것을 합당한자로 여겼다 우리가 진실 안에있다면 진실로 인하여 핍박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내가 진실이기 때문에 핍박하는 것이니 합당한 일이다.
공회는 유태교의 총 지휘부를 말하는데 여기를 떠난것은 거기가 거짓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거짓된 사람들에게 능욕받는것을 합당하게 여기면서 거기를 떠났다는 것이다 우리도 마땅히 종교적인 공회를 떠나야 된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던지 집에 있던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더라 이것이 사도들의 일이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테반이 죽을 때 저희가 스테반을 돌로 치니 스테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하고 무릅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말을하고 자니라 이죄는 진질을 핍박하는 죄다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저들이 알지못해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헬라인에게나 야만인에게나 어리석은 자에게나 지혜있는 자에게나 다 내가 빛진자이다 이 진실에 빛진자이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수있으면 로마에 있는 너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복음은 그리스도의 진실이다 복음은 하나님 아들에 관한 것으로 교리가 아니고 종교가 아니다.
사람이 먹고 살아나야 할 생명이다 이생명을 공급하는것이 사역이고 이 생명를 공급하는것을 돕는것이 동역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교회는 우리가 원튼지 않던지 점점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길을 잃고 방황하던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엣날에 비하면 많이 찾아오고 있는 중이다.
이 사람들에게 우리가 우리의 진실을 공급하지 않으면 이사람들이 또 실망하고 또 방황하고 어둠 가운데 있게 된다 우리가 빛가운데 있어야 그 사람들도 빛가운데 오게 된다 이 일이 우리에게 시급한 일이다.
우리에게 주신바 이 은혜와 축복을 우리만 가지고 있을것이 아니고 전파해서 다른 사람들이 빛을보고 이 안으로 들어오도록 우리 자신을 헌신해야한다 가만이 있는데 저절로 오는것은 아니니까 불교말로 발심해야 된다. 그렇게 해야 되겠구나하는 발심이 되야한다.
내가 이를 위해 왔습니다 진리에 대해 증거하려고 왔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오신것이 분명하고 우리도 이 진실을 알고나면 우리가 세상 앞에가면 그말밖에 할 말이 없다 누구를 만나던지 나는 이를 위해서 왔다 나는 이것 때문에 살고 있고 이것 때문에 너에게 왔다 그렇게 밖에 말할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축복이 되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말만 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어도 다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마디를 말해도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세상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많고 심각한 이야기 진지한 이야기도 있는데 다 거짓말이다.
남을 속이는 거짓말이다는 것이 아니고 다 진실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는 뜻이다 인생의 운명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모래성을 쌓다 없어지는 것처럼 무엇을하다 끝나고 없어질 말들이다 이일좀하다 저일도 좀하다 그럭저럭 지나가는 것이 세상이다 돈도 좀 벌어보다 그러다보면 싸우기도하고 화해하고 이것저것 하다보면 시간이 다 가버린다.
내가 대구에 올때는 39살의 젊은이였다 지금 우리교회에 39살의 청년들이 많은데 어느순간에 나같이 서리가 내린 사람이 된다 그동안에 내가 거짓말이나 하고 있었다면 지금와서 얼마나 허망하것는가 그래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서 참말을 하고 산것이 축복이다.
우리도 일생을 살면서 할말을하고 살고 진실을 위해 살고 진실의 협력자가 되어 자기가 입으로 전하지 못하면 몸으로 전하고 이도 안되면 물질로 도와야한다 지금 우리는 인터넷으로 말씀을 전파하고 있는데 불특정 다수에 무차별로 보여지고 있다.
교파고 뭐고 북한이고 어느 장벽도 상관없다 중국어 일본어로해서 전세계에 보낼수있다 앞으로 저 망을 크게해서 24시간 방송을 게속하면 듣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하려면 돈이 들어가야한다 성경을 쓸때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대가 아니었는데 요즘은 많이 들어간다.
여기서는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했는데 그냥 잘가라고 손만 흔든다는 것이 아니고 여비를 줘서 보낸다는 뜻으로 그때는 그만으로도 족한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될수있는데로 절약해서 복음 전하는데 모두 협력해야한다. 담배 안피우고 술 안먹고 절약되는 것만해도 클것이다.
어찌하든 복음 전하는 일에 헌신해야 하는데 우리 일생에 남는것은 그것밖에 남는것이 없다 한 사람이라도 나를 인해 구원 받는 사람이 생기면 그보다 복된 일이 없고 그것 밖에 남어질 일이 없다 이를 위해서 내가 왔습니다 할 정도로 우리도 그래야 된다. 너는 무엇 때문에 세상을 살았느냐 이것 때문에 살았습니다 그렇게 되야 한다.
진리를 위해서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제가 대구에서 오랫동안 하나님 말씀을 전할수 있는것도 우리 형제자매들이 도왔기 때문이다 안도와 주었으면 나가서 밥벌이 해야 되는데 어떤 사람은 한 시간 벌어 열흘도 먹겠지만 나같은 사람은 아침에 밥먹고 나가 죽 빌어 먹기 알맞는 사람이다 그러면 먹다가 끝날것인데 형제들이 전심으로 도왔기 때문에 그런데 전혀 걱정을 않고 말씀을 전할수 있었다.
누구집에 가도 밥은 있다고 생각했고 가면 다 좋아하지 싫어 할 사람이 없어 밥먹을 일에 걱정 안해보았다. 그러니 복음을 전하지 밥먹는 일에 걱정을 하다보면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 혼자 할수는 없고 돕는 사람이 있어야한다 그래서 지금도 돕는 사람들을 귀하게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우리교회에 많이 일으켜 복음을 전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도록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그런 사람이 많이 나오도록 바란다.
기도합시다 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이 거룩한 일에 동역자로 부르셔서 당신 자신의 운명에 참여하게 하시고 뿐만 아니라 당신의 사역에 참여하게 하셔서 영광스러운 직분 안으로 우리를 불러 주신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어차피 썩어질 육신을 가지고 썩어질 일을하다가 어둠 가운데 들어갈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는 빛가운데로 생명안으로 진리 안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셔서 우리가 이를 위해서 내가 왔나이다하는 당신의 말씀을 따라 우리도 이것 때문에 세상에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할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셨음을 감사합니다.
지금 나 일생동안 주님께서 모든것을 공급하셔서 당신의 말씀을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신것 처럼 우리 사랑하는 형제들이 누구든지 주에 말씀을 전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게 해 주시고 그들이 혹시 다른일로 인해서 염려하거나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없고 다 충분한 공급과 도움을 받아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되고 동역자들이 되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해서 돕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안에서 일어나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과 동역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안에 우리가 참여할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주 에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