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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이기순 스크랩 실학(實學) 기행. 2
13 이기순 추천 0 조회 21 09.08.27 09:05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실학(實學) 기행. 2

 

                                               * 일  시: 2009. 8. 16 ~ 18 (3일간)

                                                        * 주  최: 다산 연구소

 

 

 

 

 

 3. 성호 이익 유적 (경기도 안산시)

 

 

 성호 이익 선생은 아버지 이하진이 경신환국 때 평안도 운산으로 유배된 곳에서 1681년 태어났다.

 이익 선생이 두 살 때 아버지가 유배지에서 별세하자 어머니 권씨(權氏)부인과 함께

안산 첨성리(지금의 일동)에 있는 고향집에 내려와 자라면서

둘째형인 이잠 (李潛)에게 글을 배우고 공부했으나

몸이 약해 학업을 순조롭게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25세 때인 1705년에 과거 시험을 쳤으나 낙방하고 또한 그이듬해에

스승인 형 이잠이 장희빈(張禧嬪)을 두둔하는 상소 때문에 역적으로 몰려 옥사하였다.

이렇듯 대대로 정치적인 박해를 받으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고

 또한 이익 선생을 비롯하여 많은 집안식구들의 오랜 질병으로

말년에는 송곳 꽂을 땅도 없는 빈한한 처지가 되었다.고 라는 별실을 만들어 보존하고 있다.

이익 선생은 이러한 처참한 환경속에서도 오로지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여

「성호사설」,「곽우록」 ,「성호선생문집」,「이선생예설」,「사칠신편」, 「성호질서」11종, 「

이자수어」 등 실로 방대한 저서를 남겼으며, 특히 제자들을 많이 길러내어

조선조 중기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실학 혁신의 기반을 다지는데 크게 활약하였다.

 

 

 

                        성호공원에 위치한 성호기념관 (안산시 상록구 이동 615)


 

 

 

 

          성호 이익 선생의 묘 (경기도 기념물 제40호. 안산시 상록구 일동 555)

 

 

 

               4, 반계 유형원 유적 (전북 부안군 우반동)

 

 

유형원은 조선후기의 살았던 실학의 창시자이고 자는 덕부(德夫)이고,

호는 반계(磻溪)이며 1622년 1월 21일 외삼춘인 성호 이익(1681~1763)의

당숙인 이원진(1594-1665)의 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흠이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이루어진 뒤에 예문관 검열(藝文館 檢閱)로

좌천되었다가 그해 7월 유몽인(柳夢寅)의 옥사가 일어나자 여기에 연루되어

구금되었으며 결국 그해에 매를 맞아 죽고 말았다.

이때에 반계가 2살 때의 일이었다.

이처럼 일찍이 부친을 여윈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자라서도

정치적으로 불우한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벼슬길에 대해서는 뜻이 없었다.

1653년(효종4)에 온 가족을 이끌고 부안의 우반동으로 이사하였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32세였다. 그가 우반동에서 20년을 살면서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반계수록(磻溪隧錄)』이다. 

 유형원은 이런 실학의 선구자요 비조였다. 그 학문의 뒤를 이은 이익은 그의 저서인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말하기를“국초 이래로 시무를 아는 이는 오직

 율곡(栗谷)과 반계(磻溪)가 있을뿐이다”라고 평하였다.  이와 같이 방대한 저술을 남긴

그는 1673년(현종14)에 병을 얻어 우반동의 자택에서 그의 나이 52세에 별세하였다.

                                   

 

 

 

                              찾는 이도 없이 풀섶으로 우거진 반계서당 언덕길

 

 

 

 

 

 

반계 유형원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반계서당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산 128-7)

 

 

 

 

                          반계서당에서 바라다 보이는 곰소 염전

 

 

            5. 목포항

 

 

 

           6. 손암 정약전 유배지 ( 흑산도 사리마을)

 

손암 정약전(1760~1816)은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이며

다산 정약용의 형으로 천주교도 탄압이 있었던 신유사옥(1801) 당시

이곳으로 유배되어 15년간의 유배생활을 하면서 물고기, 해산물 등

총 227종의 어족연구서인 자산어보를 저술하였다.

 

 

 

               정약전이 유배 당시 흑산도 학동들을 가르쳤던 사촌서당

 

 

 

 

                            서당 안채의 모습

 

 

산비탈에 위치한 마을의 골목은 온통 흑산도 튿유의 돌담으로 이루어졌다.

 

 

 

                                        사촌서당과 사리마을 성당

 

 

 

               제철을 맞아 채취한 자연산 돌미역들이 담장 위로 가득 널려 있다.

 

 

 

     7. 면암 최익현 유배지 (흑산도 천촌마을)

                             신안군 향토자료 제25호

 

면암 최익현(1833~1906)은 조선 고종대의 문신이자 의병장이다.

1876년 2월 조일수호 조규 일명 '병자수호조약'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때 최익현은 [병자지부서]를 올려 일본과의 조약체결을 반대하였으며,

이 상소로 인해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유배된 면암 선생은 진리에 '일심당'이란 서당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였고

천촌마을 지장암에 '기봉강산 홍무일월(箕封江山 洪武日月)'이란 글씨를

손수 새겨 독립된 대한민국임을 강조하였다.

1924년 9월 그의 문화생 오준선, 임동선 등이 지장암 아래

'면암 최선생 적려 유허비'를 세우고 선생의 애국정신과 후학양성의 뜻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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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첫댓글 울 낭산 선배님 덕에 이렇게 시원한 방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훌륭한 공부를 하고 있으니 이 또한 낭산 선배님의 후학양성에 대한 열정의 땀방울이 아름다운 사진과 미려한 문장으로 우리들을 깨우쳐주고 계시는 것이지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09.08.27 19:16

    좋은.선배님덕분에..많은것을.보고배우는시간되내요..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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