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를 심으며
홍성래
영월에서 서울 마포나루까지 뗏목을 타고 다녀오신 마지막 생존자이신 아버지 연세가 90이 되면서 이제는 밭일을 놓으셨다. 할아버지로부터 빚만 물려받으셔서 우리 7남매를 키우시느라고 안 해 보신 일이 없이 힘든 세상을 살아오신 탓인지 이제는 등도 많이 굽으셨다.
정년퇴직 4년차이자 장남이고 영월에 살고 있으니 밭을 놀릴 수 없어 지난해 처음으로 2,000포기 정도 옥수수를 심어보았다. 제초제 살포 없이 키워서 그랬는지 선물로 받은 지인이나 구매자들로부터 아주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봄부터 여름까지 고생한 보람을 느낄 수 있어 스스로가 대견스럽고 좋았다.
해가 바뀌어 올해 다시 심으면서는 또 여러 생각이 들었다. 로타리치는데 15만원, 거름으로 하는 유박 40포에 비료 7포를 구입에 60여만원, 비닐 두마끼에 옥수수 씨앗 2Kg과 상토 구입 등에 15만원, 인력사무소에 사람 부르고 간식과 밥 먹이니 그게 또 50여만원, 그 외 잡비로 10만원만 잡아도 내 품값은 빼고도 벌써 150만원이 들어갔다. 이제부터 수확때까지 4~5차례 밭매고 옥수수 꺽고 포장하고 소포 부치고 하려면 또 최소 50만원은 들테니 주인의 수고는 공으로 쳐도 400여평 옥수수 농사에 200여만원이 든다. 그돈으로 옥수수를 사 먹으면 4~5개월 정도의 수고를 덜고도 실컷 먹을 수 있는 것을 왜 나는 이 일을 하는가 하는 생각에 자문자답을 해본다.
땅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땅은 거부와 거짓이 없고 모든 것을 키워준다. 잡초든 곡식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품어주고 다 키워준다. 사람이 잡초를 가려서 뽑는 것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가 아닌가 하는 내 편 네 편의 가름에 따라 뽑히기도 하고 키우기도 하는 선별적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포용을 배운다.
옥수수의 성장에서도 배운다. 모를 사서 심으면 비용이 더 들고 직접 키우면 절약이 된다. 씨앗을 심을 때는 상토를 담은 포토에 심어 거름이 되게 하고, 씨앗은 제 크기의 1.5배 정도의 깊이로 묻는 것이 좋고, 적기에 물을 주어야 한다. 밭에 내다 심을 때는 비오기 전날이 좋고, 심을 때는 뿌리가 너무 깊이 묻히지 않아야 하며, 독립하는 자녀에세 부모가 도움을 주듯 다시 한 번 물을 주고, 성장하는 동안에는 제초제를 뿌리든 김을 매든 해서 잡초가 곡식보다 더 성하지 않도록 돌봐 주어야 한다. 베트남 여성이 일을 하는 동안에 구글 번역기로 한마디 하고 나에게 보여준 것은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글이었다. 농사는 부모의 심정임을 배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생 이 일을 하시며 우리 7남매를 키우셨구나 하는 감사를 배우고, 이제 세월이 가서 그분들이 호미를 놓고 내가 하는구나, 나도 머지 않은 날에 그걸 놓겠지 하는 시간의 순리를 배우고, 내가 직접 농사지은 것을 친인척이나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즐거움을 배우고, 내가 입은 옷이나 내가 사는 집을 내가 만든 것이 아니지만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내가 키운 옥수수를 누군가가 맛있게 먹을 것을 생각하면 사회적 공존의 역할과 책임을 배우기도 한다.
그 외에도 일을 하면서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같이 하는 협업의 유용함을 배우고, 때를 맞춰 내리는 시우(時雨)처럼 농사에도 골든타임이 있음을 배우고, 농사를 먼저 한 이들과 유튜브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귀농한 초보농사꾼에게는 작은 경험을 나누어주기도 하면서 그들에게서 다른 것을 배우기도 하니 이 또한 농사의 유용함이다.
마음이 열려있기만 하면 삶의 도처에 스승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옥수수 한 포기를 심는 작은 밭뙈기 한 자락에서 자연의 순리를 배우기도 하고, 잠시 쉬는 시간에 조용히 생각해보면서 삶의 지혜를 스스로 깨우치기도 한다.
많지는 않지만 올 여름에는 또 어떤 이들이 내가 키운 옥수루를 마주앉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울까 생각하면서 밭두렁에 핀 아카시와 찔레꽃 향기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