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은 7살 때에 처음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할아버지께 배웠다.
당시 할아버지는 연세가 80살 이었으므로 수직壽職으로 자품資品을 올려받고
첨중추부사僉中樞府使를 제수받았다
(우하영의 할하버지는 우택상禹宅相 (1669~1751) 이다)
할아버지는 정력이 왕성하여 모든 글자와 음, 뜻을 열성으로 가르치시고 나서,
손자에게 글을 지어보라고 시켰다.
옹은 할아버지의 입에서 구절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해석해 내려가니,
아버지와 형, 어르신은 모두 옹에게 재주가 있다며 북돋아주었다.
당시에 옹은 사략史略 을 배웠는데 첫날은 한줄 쯤 읽었고,
그 다음 날은 세 줄을 읽었고, 3일재 되는 날에는 12줄도 어렵지 않게 읽어 내려갔다.
보는 사람마다 모두 " 옹이 체질이 약한데 지나치게 영민하니, 어린아이가 양기를
너무 많이 허비하면 안된다". 고 밀했다. 그날부터 옹은 하루에 8~9줄씩 읽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배우기 시작한 지6~7일쯤 되었을 때, 태풍이 불어 이웃집들의
지붕이 모두 날아갔다. 이웃사람들이 지붕에 올라가서 띠를 덮고 있다가, 태풍의
시세가 너무 급박하여 혼자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주위의 사람들을 소리쳐
불러봤지만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때 할아버지게서 시를 지으라고 시키니
옹이 입으로 답하기를, " 사람의 목소리 비록 크지만, 바람소리처럼 멀리
이르지는 못하는 구나 (人聲雖大 不如風聲遠)"
라고 하니 어르신들이 모두 "이 아이는 앞길이 필시 길고 멀 겄이다."
라고 하며 칭찬을 아끼지않았다.
옹이 10살때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우택상 할아버지의 행장 일부...
그뒤로 옹은 의지할 곳이 없었고, 연이어 상喪을 만났으며,
설상가상으로 집에 화재가 나서 전래되어 오던 서적이 홀랑 다 타 버렸다.
게다가 옹은 세 집안에서 달랑 남은 아들이었고, 스승으로부터 배운 바가 없어
절실하게 공부에 힘 쏟지 않고 학업을 중단하였다 .
그로부터 서너 해가 지나 15살이 되었을때, 옹은 비로소 다른 사람처럼 과거 시험에 힘을 쏟아, 그 해 가을 감시監試에 나아가 시험을 치렀으나 낙방하고 무리를 따라
서울 구경만 하고 돌아왔다.
이때부터 한묵장翰墨場 에 나아가 노닌지 벌써50여 년이 흘렀고,
인생이 점점 더평탄치 못해 조석으로 끼니를 잇지 못하고 굶을 지경이 되니,
이제는 죽어도 유감이 없다고 여겼다.
희망
첫댓글 혼탁한 무리에 휩쓸리지 않았던 올곧은 선비, 취석실 선조의 일화를 연재로 볼 수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광성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