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텍스란?
천연 고무나무의 껍질에 상처를 내면 끈적한 액체가 나오는데 이것은 단백질층에 싸인 천연고무의 입자가 물속에 떠 있는 상태이다.
성분은 물 60%, 고무 35%, 단백질 2%, 비누,지방산,스테롤 등 1%, 당 1%, 무기물0.4% 및 효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초 천연 고무 나무의 수액을 라텍스라 하였으나, 합성고무 및 합성 수지(플라스틱) 에멀션(유탁액)이 출현한 이후는 이러한 것들을 모두 라텍스라 부르게 되었다.
2. 천연고무와 합성고무
① 천연고무
고무나무에서 얻어진 수액은 바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원심분리법’, ‘클리닝법’, ‘증발법’ 등 여러 방법에 의해서 고무성분의 함유량을 60-70%까지 농축하여 이용되거나,.
‘폼산(메탄산,개미산)’이나 ‘아세트산’을 가하면 고무입자가 석출 응고되는데 소위 “천연 생고무”라 하며 얇게 펴서 건조시킨 후 이동 및 보관을 하고 각종 상업 및 공업 제품의 원자재로 사용된다.
② 합성고무
원유나 천연 가스에서 얻어낸 부타디엔을 스틸렌(스티로폴의 주원료)과 결합하여 탄력있는 고무상태의 물질을 만들어 내는데 이것이 바로 “styrene-butadiene rubber, SBR”로 대표적인 합성고무이고, 이외에 각종 석유화학 공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고무를 통칭하여 “합성고무”라 한다.
3. 고무(라텍스) 제품
농축한 수액에 여러 약품을 가한 다음 유리 또는 금속으로 형틀을 만들어 라텍스에 여러 번 담갔다가 말려서 가황하고, 형틀을 빼내어 만드는 방법은 형틀의 종류에 따라 장갑, 얼음주머니, 콘돔, 장화 등등이 되고,
이와는 별도로 합성고무를 에멀션화(유화) 중합시켜 도료, 접착제, 종이가공품, 섬유처리제, 성형품, 발포탄성체, 모르타르나 시멘트의 개질제 등 널리 사용된다.
반면 천연 생고무나 에멀션화 하지않은 합성라텍스는 자동차 타이어를 비롯한 각종 압출고무, 사출성형고무 등 상업 및 공업 재료의 원료로 다양하게 사용된다.
통상 우리 생활 주변에서 활용되는 고무 제품은 공, 지우개, 풍선, 껌, 고무장갑, 장화, 고무줄, 전선의 피복재, 구두, 콘돔, 타이어 등 약 4만여 가지가 넘는다고 할 수 있다.
4. 가황(加黃) 에서 타이어까지
가황법을 특허를 낸 사람은 미국의 “찰스 굿이어(Charles Goodyear 1839)”이다.
불운의 발명가 찰스는 고무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빚을 얻어 가면서까지 투자를 계속했고, 무수한 시행 착오를 격어 가면서 여러 가지 발명품들을 개발하였었다.
1837년 미국 정부와 우체국 행낭을 제작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행낭 제작에 쓴 고무섬유가 고온에서 견디지 못하는 문제가 생겼다.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 방법을 고민하던 중 나다니엘 헤이워드(Nathaniel M. Hayward)가 고무에 유황 성분을 첨가하면 좀더 탄성이 좋아진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이 과학적 성과를 사들여 보다 질긴 고무를 만들어 내기는 하였으나 기본적으로 고온에서 쉽게 녹고, 영하의 저온에서는 갈라지거나 부스러지기 때문에 사용범위가 제한적이었다.
그러던 중 1839년 어느 날 유황이 섞인 고무를 쥔 채 형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고무가 손에서 뚝뚝 끊어졌다. 기존의 고무는 열을 받았을 때 부드러워졌던 반면 딱딱하게 굳었으며, 전보다 더 강하게 변화된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후 사람들은 화학적 성분 즉 황과 뜨거운 열을 이용하여 고무를 강하면서도 탄성 있게 만드는 찰스 굿이어의 방법을, 불의 신 불카누스의 이름을 따서 “Vulcanization(고무경화법,가황)”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발명이 인정받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오랫동안 고무에 대하여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의 일반적인 편견과 찰스의 여러 실험들에 대한 실패 및 부채들이 길을 가로막았었다.
1844년에서야 미국 정부로부터 고무 경화법의 특허를 받았고, 1853년 [탄성고무와 그의 활용] 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나는 오래 전부터 이 목표를 이루겠다는 의지로 그와 관련된 것은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뉴턴이 인지하기 전에도 사과는 땅으로 떨어졌다. 이처럼 하나의 현상은 하나의 목표를 생각하며 어떤 현상을 보아도 자신의 연구이론으로 추론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나는 인정한다. 나의 발견은 과학적인 화학 실험에 의해 성립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순전히 우연에 의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관찰과 실험에 의한 결과였다.”
찰스 굿이어는 수 많은 특허 도용 행위와 재정적 타격으로 1860년 20만 달러의 빚만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대를 이어 찰스 굿이어 주니어는 고무를 이용해 새로운 자동차 바퀴(1903년)를 만들었다.
그는 “자동차 부품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이 바퀴 같아요”라는 딸의 말에 착안하여 “타이어 Tire”란 이름을 붙였다.
유명 타이어 업체 굿이어사는 프랭크 세이벌링이 굿이어의 업적을 기려 이름을 지은 것이다.
불편한 것을 좀더 편하게 만드는 것은 발명의 기본이다.
휠(輪, 바퀴)은 기원전 5000년경 돌로 만들어졌다. 무거운 돌은 곧 가벼운 나무로 대체됐지만 나무는 내구성이 떨어져 쉽게 마모되거나 부서지는 단점이 있었다.
이후 철기시대를 지나면서 나무 바퀴 둘레에 철을 덧대어 강성을 확보하기도 했지만 노면에서 전해지는 충격으로 휠은 자주 부서졌다.
18세기 영국의 수의사 존 던롭(John Boyd Dunlop)의 “공기타이어” 발명은 이전의 상품이나 발명이 해결해주지 못하던 문제를 새로운 형태로 말끔하게 풀어주는 훌륭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발명은 외아들 조니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어느날 던롭의 아들 조니는 삼륜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떨어져 얼굴을 심하게 다쳤다.
당시의 모든 바퀴는 무쇠로 투박하게 만들어졌거나 나무바퀴에 무쇠를 씌운 것으로서 작은 돌맹이에 부딪히기만 해도 심하게 흔들렸다.
사랑하는 아들의 상처를 보며 안전한 타이어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던롭이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무쇠대신 고무를 입힌 타이어였다.
마침 집에서 사용하는 고무호스가 눈에 띄자 나무바퀴의 무쇠를 벗겨내고 그것을 씌워보았다.
덜덜거림은 조금 줄었으나 탄력이 없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민의 나날을 보내던 중 어느 날 아들 조니가 바람 빠진 축구공을 가져와 팽팽하게 공기를 넣어달라고 졸랐다.
이 모습에서 던롭은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된다.
삼륜자전거 고무바퀴에 공기를 넣어 축구공처럼 탄력을 갖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축구공에 씌워진 단단한 가죽처럼 고무호스 위에 두껍고 질긴 고무를 입혀 보았다.
이것이 최초의 타이어. 1888년 2월 28일이었다.
아들이 삼륜 자전거를 타며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던 던롭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공기 타이어의 혜택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해야 되겠다는 생각과 사업적 가능성에 눈이 떠지게 된다.
서둘러 재산을 정리하여 “던롭 공기타이어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 생산에 들어가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금상첨화로 1895년을 전후하여 자전거가 일대 붐을 이루자 매년 필요한 자전거 타이어 숫자만해도 1억개에 달했다 한다.
이 회사는 던롭을 불과 7년여 만에 영국 재계의 거물로 만들어 놓았으며, 잇달아 독일의 벤츠사와 미국의 포드사에 자동차용 공기타이어를 독점 납품하게 됨으로서 일약 대기업의 사장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소위 굿이어가 “열가류법(가황법)”을 개발하지 못했고, 던롭이 “공기타이어”를 발명해 내지 못했다면 세상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