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독서 에서 스바니야 예언자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2독서에서도 사도바오로는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하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에서는 군중이 요한에게"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요한은 세리들에게는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군사들에게는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백성에게는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 집의 종도 못된다고 자신을 밝히십니다.
아프리카 잠비아 성전 축성식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1000명이 들어갈 성전을 지었습니다.
본당 건축물이 1만평, 본당땅이 10만 평이 되는 성당의 축성식이었습니다.
대영광송 들어가기 전까지 2시간이 걸렸습니다.
미사 시간이 5시간 이었습니다.
그들은 온 몸으로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오늘 이곳에 49명의 신자가 탄생됩니다.
"기뻐하여라." 하는데 얼굴표정이 기뻐하고 있습니까?
거룩하라 하는데 무엇이 우릴 거룩하게 해 줍니까?
성전이나 제대나 제의입니까?
무엇보다 본당 신부님과 수녀님께서 안 계시면 거룩함을 볼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내가 거룩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은 나를 통해서 거룩함을 느낍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거룩함때문에 그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을 인정해 드리고 배우고 맛보고 느껴야 합니다.
성화는 우리와는 아주 다릅니다.
인간적으로 바라보고 매몰차게 얘기하면 거룩함을 맛볼 길이 없습니다.
스스로 여러분의 성화와 거룩하게 느껴질 때는 언제입니까?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을 찾을 때 여러분은 성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동방교부 고백자 막시무스는 말합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완전한 사람이 되십시오.
자비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이 말은 그리 대단하거나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거룩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완전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자비롭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묵상하다가 이것을 거꾸로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완전한 사람이 되십시오.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이렇게 하니까 좀 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우리의 성화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례 받기 이전보다 조금 더 자비로워져야 합니다.
남편, 시어머니, 며느리, 자식에게 조금 더 자비로워 지면 됩니다.
남편, 시어머니, 며느리, 자식에게 조금 더 완전해 지게 됩니다.
또 이렇게 하는 것이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결론 2가지 입니다.
1. 신부님(수녀님)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 , 거룩함을 느낍니다.
2. 신부님(수녀님)의 순명하는 모습을 볼 때, 거룩함을 느낍니다.
기도와 순명(겸손)이 성화의 길로 이끄는 모습입니다.
그 성화를 향한 한걸음을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 아내에게, 남편에게 순명할 수 있을 때 성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이 순간만큼은 거룩해 진다고 믿어야 합니다.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간직할 때 기쁘게 실천에 옮길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처럼
나누면서 기뻐하고 , 기뻐하면서 기도합시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필리피서 4,4-5)
우리는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용기와 은총과 지혜를 청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