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품반야바라밀경 제9권
25. 견아촉불품(見阿閦佛品)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을 말씀하시니 당시 무리 가운데에 있던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새와 우바이의 4부 대중 및 천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등 사람인 듯 아닌 듯한 것[人非人]들은 부처님의 신통력에 의해 아촉불이 공경심을 가진 큰 무리에 둘러싸여 법을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큰 바닷물이 고여 있는 것과 같았다.
그때 그곳의 비구들은 모두 아라한으로서 모두 번뇌에서 말끔히 벗어나 다시는 번뇌가 없고 마음이 자유자재하였으며, 또 그곳의 보살마하살들은 숫자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부처님께서 신통력을 거두시니 그곳의 4부 대중 등은 아촉여래를 비롯하여 성문과 보살의 국토가 장식된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대상도 이와 같아서 눈으로 대할 수가 없으니 이제 아촉불과 함께 모든 아라한과 모든 보살이 다시는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왜냐 하면 대상은 대상을 보지 못하고 대상은 대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난이여, 모든 대상은 알지 못하는 것이고 보지 못하는 것이고 지어냄이 없는 것이고 탐욕이 없는 것이고 분별하지 않는다.
아난이여, 모든 대상은 불가사의해서 마치 허깨비와 같으며 모든 대상은 받아들이는 것이 없으니 완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이것을 가리켜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하고 어떤 대상에도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며,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이것을 가리켜 반야바라밀을 배운다고 한다.
아난이여, 만약 보살이 모든 대상을 넘어 건너편 언덕에 닿고자 한다면 반드시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왜냐 하면 아난이여, 반야바라밀을 배우는 것은 모든 배움 가운데 첫째로서 모든 세상을 평안하고 이익 되게 하기 때문이다.
아난이여, 이와 같이 배우는 사람은 의지할 곳이 없는 이에게 의지할 곳이 되어 주고,
이와 같이 배우는 사람은 모든 부처님께서 허락하시고 모든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니,
일찍이 모든 부처님도 이와 같이 배워서 능히 손가락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뒤흔드셨다.
아난이여, 모든 부처님께서 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대상에 대해 걸림이 없는 깨달음을 얻었다.
아난이여, 이러한 까닭에 반야바라밀은 가장 높고 가장 미묘하다.
아난이여, 만약 누군가가 반야바라밀의 무게나 크기를 재어 보고자 한다면 이것은 곧 허공의 무게나 크기를 재어 보고자 하는 것과 같다. 왜냐 하면 이 반야바라밀은 한량이 없기 때문이다.
아난이여, 나는 반야바라밀에 한계가 있다거나 양이 있다고 말한 적이 없다. 아난이여, 그 글자와 문장과 말은 한량이 있겠지만 반야바라밀은 한량이 없다.”
“세존이시여, 어떤 까닭에 반야바라밀은 한량이 없습니까?”
“아난이여, 반야바라밀은 다함이 없기 때문에 한량이 없으며 반야바라밀은 모든 것을 여의기 때문에 한량이 없다.
아난이여, 과거의 모든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에서 생겨났으니 반야바라밀은 다함이 없다.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에서 생겨나니 반야바라밀은 다함이 없다.
현재의 한량없는 세상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에서 생겨나니 반야바라밀은 다함이 없다.
이러한 까닭에 반야바라밀은 이전에도 다함이 없고 지금도 다함이 없고 앞으로도 다함이 없다.
아난이여, 만약 어떤 사람이 반야바라밀을 다하고자 한다면 이는 곧 허공을 다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수보리는 그때 마음속으로,
‘이 일은 아주 깊으니 부처님께 여쭙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곧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다함이 없습니까?”
“수보리여, 반야바라밀은 다함이 없다. 허공이 다함이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다함이 없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야 반야바라밀이 생겨납니까?”
“수보리여, 색은 다함이 없다는 것에 의해 반야바라밀이 생겨난다. 수ㆍ상ㆍ행ㆍ식은 다함이 없다는 것에 의해 반야바라밀이 생겨난다.
수보리여, 보살이 도량에 앉아 있을 때 이와 같이 인연의 법을 관찰하되 양극단을 여의니 이것이 바로 부처님만의 고유한 법이다.
만약 보살이 인연법을 이와 같이 관찰하면 결코 성문과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고 신속히 살바야에 다가가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이 보살들이 모두 물러난다면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해서 보살은 반드시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한다는 것과 어떻게 다함이 없는 법으로 12인연(因緣)의 법(法)을 관찰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이 보살들이 모두 물러난다면 이와 같은 방편의 힘을 얻지 못하며 이 보살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모두가 이와 같은 방편의 힘을 얻을 것이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는 것은 이와 같이 다함이 없는 법으로 12인연의 법을 관찰하는 것이니,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관찰할 때는,
어떤 대상도 인연 없이 생겨난다는 것을 보지 않고,
또 어떤 대상도 항상하다는 것을 보지 않고,
어떤 대상도 지어냄과 받아들임이 있다는 것을 보지 않는다.
수보리여, 이것을 가리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12인연법(因緣法)을 관찰한다고 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는,
색도 보지 않고, 수ㆍ상ㆍ행ㆍ식도 보지 않고,
이 부처님의 세상도 보지 않고 저 부처님의 세상도 보지 않고,
또 대상이 존재한다는 견해를 따라 이 부처님의 세상과 저 부처님의 세상도 보지 않는다.
수보리여, 만약 어떤 보살이 능히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면 이때 악마는 마치 심장에 화살이 꽂힌 것처럼 슬퍼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것은 부모를 막 잃고 크게 슬퍼하는 것과 같으니, 보살도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면, 악마는 마치 심장에 화살이 꽂힌 것처럼 슬퍼할 것이다.”
“세존이시여, 단지 한 악마만이 슬퍼합니까, 아니면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악마들이 다 함께 슬퍼합니까?”
“수보리여, 모든 악마들이 다 함께 슬퍼하니 각자 머무르고 있는 곳에서 스스로 편하지 못하다.
수보리여, 보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어떤 세상의 천인과 아수라라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며, 어떤 법에 대해서도 물러나게 할 수가 없다.
수보리여, 이러한 까닭에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한다.
보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면 곧 단바라밀과 시라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선바라밀을 성취하게 되니,
보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면 곧 모든 반야바라밀을 성취하고 또 방편의 힘을 성취하며,
이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지어내어 생겨난 모든 것을 꿰뚫어 알게 된다.
수보리여, 이러한 까닭에 보살이 방편의 힘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반야바라밀을 닦아야 한다.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반야바라밀이 생겨나거든 반드시 현재의 한량없고 가없는 세상의 모든 부처님께서 가지고 계신 살바야지(薩婆若智)도 반야바라밀에서 생겨났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니,
보살이 이와 같이 생각할 때는 반드시,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얻으신 모든 법의 모양[法相]을 나도 반드시 얻으리라’하고 다짐해야 한다.
수보리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는 반드시 이와 같은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능히 이와 같은 생각을 일으킨다면 더 나아가 비록 한순간일지라도 항하의 모래알만큼 오랜 세월 동안 보시를 베푼 복덕보다 더 훌륭하니.
하물며 하루나 혹은 반나절 동안이랴. 이 보살은 틀림없이 아비발치의 지위에 이르리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하며 이 보살은 모든 부처님들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모든 부처님들이 생각하고 있는 보살은 다른 곳에 나지 않고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서게 된다. 이 보살은 끝내 지옥과 아귀와 축생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좋은 곳에 태어나서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는다.
수보리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반야바라밀이 생겨났다면 더 나아가 한순간일지라도 이와 같은 공덕을 얻는데 하물며 하루나 혹은 그 이상이랴. 향상보살(香象菩薩)이 지금 아촉불께서 계신 곳에서 보살의 길을 닦는 것처럼 언제나 반야바라밀의 행을 여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이 법을 말씀하실 때 비구들과 천인들과 아수라를 포함한 모든 무리가 크게 기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