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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도지경 제4권
21. 행공품(行空品)
[안의 4대는 공한 것이다]
수행하는 사람은 능히 다 분별할 수 있어서 이 네 가지 요소를 모두 분명하게 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면 몸이 공(空)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여 처해 있는 곳에서 활동하는 작용을 가지고 문득 몸은 존재하는 것이고, 또한 나라는 것이 있다고 억측하게 된다.
본래 무(無)임을 관찰하였다면 몸 안의 네 가지 요소와 몸 바깥의 네 가지 요소를 헤아려보아도 모두 똑같아서 차이가 없을 것이다. 색(色)ㆍ통(痛: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은 곧 몸 안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 또한 의지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왜 그러는가? 그 마음과 뜻과 의식도 안에 있지 않으며, 받아들임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도 또한 몸의 4대와 서로 연결되지 않은 까닭이다.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마땅히 살펴야 할 이 네 종류를
지혜 없는 이는 늘 의심 품나니
수ㆍ상과 행ㆍ식이 안에도 연결치 않았는데
어찌 바깥 네 종류와 서로 의착하였겠는가?
가령 수행하는 이가 의심됨이 있으면 마땅히 본래 근원을 살핀 것이니, 능히 그 근본은 알면 곧 진리를 알게 마련이다.
비유컨대 나무를 심어 열리는 열매가 이 본래 종자는 아닐지라도 도한 근본을 여의지 않듯이,
일체가 그와 같아 4대를 얻고 5음이 있으므로, 태에 의탁하여 마음과 정신을 이루며, 모양이 탁한 타락과 같았다가 곧 식육(息肉)처럼 생겨서 점차 어린 아이의 몸을 이루며, 어린 몸으로부터 문득 중년(中年)에 이르게 된다.
이 갖가지 종류가 본래 데로부터 일어나서 이미 성취한 몸이 처음 합한 몸은 아닐지라도 또한 처음을 여의지 않는다.
처음 태의 정기(精氣)로부터 점차 형체를 이루어 중년에 이르러서는, 정신이 있는 곳에 4대가 구성되어 날마다 점차 자라게 된다.
본래 무를 본다면 내가 있지 않아서 네 종류[四大]와 평등하여 차별이 없으며,
정신이 있는 곳에 점차 몸을 이루고 그 무(無)의 정신도 도한 굴러 커지게 된다.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안 마음으로 쫓아 결과가 생김이
저 나무가 종자로부터 나듯하여
마음은 나무의 인과(因果)와 같고
바깥 종류 도한 그와 같다.
그 몸도 또한 그러하여
마음으로 인하여 여러 생각나나니
그 바깥 종류에 마음 두지 않으면
어찌 능히 여러 생각이 있겠는가?
비유컨대 바깥 종류는 금(金)을 생산하였는데,
다음 공사(工師)는 구리와 철을 발굴하기도 하고,
혹은 놋쇠와 차거와 마노와 유리와 수정과 산호와 호박과 벽영(碧英)과 금강과 금정(金精) 같은 여러 보배를 발굴하기도 한다.
바깥 종류가 이 같은 여러 진귀한 보배를 생산하듯이,
안의 종류(안의 4대)를 헤아리건대,
태 속에서 처음 생겨난 두 고기뭉치 같은 것을 눈이라 이르고 그 눈 가운데 보일 수 있는 광명을 눈깔이라 이르나니,
눈 가운데 까만 자위는 안을 반연하였고, 눈깔은 바깥 모양을 보아서 안팎이 서로 맞아야 의식[識]이 된다.
의식은 무엇을 일으키는가?
받아들임과 생각함과 지어감을 말함이니, 눈으로 쫓아 받아들임과 생각함과 지어감이 생기는 것이다.
귀와 코와 입과 뜻도 또한 그렇게 된다.
안팎 모든 종류도 평등하여 다름이 없이 안의 마음으로 쫓아 일어나며,
받아들임과 생각함과 지어감도 본래 안으로 쫓아 일어나고 밖으로 말미암지 않는다.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저 모든 바깥 종류가
금은 같은 것을 생산하듯이
안의 종류도 또한 그와 같아
두 고기 뭉치가 눈을 이루었다.
눈으로 쫓아 빛깔을 보고
빛깔로 인하여 의식을 이루며
마음으로 쫓아 모든 생각 일으키나니
안에서 자재(自在)한 것을 의식이라 한다.
수행하는 이가 혹은,
‘내가 이른바 안의 종류에서 초월함이 있는가’라고 그런 의심을 내어야 하며,
혹은 혼자,
‘이른바 안의 종류를 어두운 사람들은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그 마음이 삿된 데 돌아가고 잘난 체하는 데 들어가며,
자신을 보는 데도 나와 몸이 있다고도 하고 혹은 내가 안의 종류에 있다고도 하며,
딴 사람의 몸을 보는 데도 또한 그러하다.
보는 바가 그렇기 때문에 능히 초월하지 못한 뿐이 아니라,
사람 몸의 4대와 5음과 5쇠(衰)와 6입(入)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몸을 내 것[我取]이다, 남의 것[他人]이다’라고 하나니,
이 안팎을 억측하는 것은 세속 범부의 말이다.
‘내가 세속 말을 따르거나 혹은 따르지 않거나 다투어 의논하는 이가 있겠지만,
도를 배우는 사람은 일찍이 모양을 억측하지 않는다’라고 깨달아야 한다.
나는 무엇에 수승함이 있으며
능히 안의 종류에서 초월하였는지
저 어리석은 이는 이렇듯
지혜 없고 삿된 소견을 따라
더하고 감함이 있는 4대를 말하나니
대체 세속의 하는 말들이요
지혜 있는 이는 그렇듯
분별하여 차별 없는 줄을 안다네.
수행하는 이가 보고 아는 것이 분명하여 청정한 지혜를 이루면,
가령 안의 종류를 이 ‘내 것이다’고 하는 것도 항상 자재를 얻어 억제하며,
나아가고 물러감을 마음대로 하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없음을 아는 이는 어찌 자재를 얻지 못하겠는가?
안의 4대는 쇠하고 늙어 수염과 머리칼이 저절로 희어지며,
손ㆍ발톱이 길고 이가 빠지며, 얼굴은 주름지고 피부가 쭈그러지며,
모양은 추루하게 변하고 힘줄과 맥이 늘어지며,
살은 마르고 뼈는 풍ㆍ한ㆍ열이 몰려들어 서로 착잡하고 고르지 못하여 농혈(膿血)이 탁난해짐을 걱정하게 된다.
[바깥의 4대는 공한 것이다]
바깥 4대를 헤아리건대 또한 그와 같아,
혹은 땅이 패이고 산이 무너지고 골짜기가 무너지기도 하며,
지ㆍ수ㆍ화ㆍ풍이 혹 더하고 혹 감하기도 하여 자재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몸이 없어야 이로 쫓아 안팎 모든 종류가 나도 없고 나도 아님을 알게 된다.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생로와 병사가 이르러도
오히려 자재하지 못하며
바깥 종류도 또한 그와 같아
무너지고 패이고 늘 더하고 감한다.
안의 종류도 여러 가지로서 몸을 이루었고
바깥 종류도 또한 갖가지이니
진실히 바른 진리를 본다면
곧 내가 없는 줄을 알리라.
수행하는 이가 혼자 생각하기를,
‘마음이 어찌 오래 전부터 4대가 죄다 공한 것임에도, 도리어 (내것)이라고 하는가’라고 하여야 한다.
비유컨대 멀쩡히 구름도 없는 무더운 여름철에 넓은 벌판에 나가 노니는 데 저 멀리 아지랑이만 보였다.
그 때 대지(大地)는 뜨거워서 마치 숯불을 흩어 놓은 것 같고, 물은 이미 떨어져 풀과 나무가 모두 말랐으며, 모래땅에도 한낮 불꽃이 몹시 내려 쪼이었다.
어떤 장사꾼이 여러 반려(伴侶)를 잃고, 혼자 뒤에 처져 걷는데, 머리 위에는 일산도 없고 발밑에는 신도 없으며 낮과 몸뚱이에는 땀이 흐르고 입과 입술이 탔다.
신체를 찌는 듯하는 이 더위에 입을 벌리고 혀를 빼문 채 몹시 지치고 목말라하면서, 사방을 둘러 바라보다가 그만 마음이 흐려져서,
저 멀리 아지랑이를 보고 속으로 여기기를,
‘그 물이 여기서 멀지 않아 물결이 일어나는 듯 하고 그 주변에는 가지가지 종류의 수목이 낳는데 오리와 기러기기와 원앙새가 모두 그 속에서 노닐 듯하니,
내가 마땅히 저기에 가서 그 물 속에 들어 잠겼다가 나오면 몸의 때와 더위 및 심한 갈증과 피로가 풀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때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힘을 다하여 아지랑이가 있는 데로 뛰어 달리다 보니, 몸은 더욱 시달리고 목마르며, 피로에 휩쓸려 기운은 떨어지고 마음은 흐려졌다.
곧 이어 생각하기를,
‘나는 물이 가까운 줄 알고 몇 리를 달려 왔는데, 물 있는 데를 알지 모하겠으니 이게 무슨 까닭일까?
본래 보였던 것은 진실로 이 하수(河水)였는데 나의 눈이 흐린 것이나 아닐까’라고 하면서,
드디어 다시 앞으로만 나아갔다.
해는 기울어 저물고 때는 바야흐로 시원해져, 아지랑이도 보이지 않고 그 물도 없어졌다.
그제야 곧 속으로 깨닫기를,
‘이는 심한 더위로 인하여 나의 목이 몹시 탔기 때문에 저 머릴 아지랑이를 보고 그를 잘못 물로 알았다’고 하였다.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저 멀리 해의 심한 불꽃을 보고
이 흐르는 물결이라 하였나니
갈증이 심한 그 까닭에
그를 하수라고 생각함이다.
때가 저물어 시원해지자
다시 진실히 살펴보고는
이에 이 아지랑이인줄 알고
속아서 물이라 하였다고 한다.
수행하는 이가 혼자 생각하기를,
‘나도 본래 그렇듯 정욕에 갈구(渴求)하여 쫓아가기를 쉬지 않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에 집착하다가 도리어 스스로 태움[燋]을 당하였으며,
의심된 생각[疑想]에 흐려지고 어리석은 그물[疑網]에 가려짐이 마치 아지랑이에 속임을 당하듯 하였다.
내가 오래 전부터 이런 허망한 마음을 두고 나에 탐착하여 이것이 내 것이라고 하였지마는,
지금은 이미 깨달아서 보는바가 진실하고 먼저의 생각과 소견은 이에 이미 제거되었으므로,
지금 6분(分:지ㆍ수ㆍ화ㆍ풍ㆍ공ㆍ정신)을 보아도 내가 있지 않다.
한낱 털과 머리칼에도 영원히 소유가 없음을 보았는데 더구나 몸 가운데와 털구멍의 모든 물건이겠는가?
몸의 한낱 털에도 갖가지의 설명이 있음을 알았는데 더구나 일체를 강론함이겠는가’라고 하여야 한다.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그 틈을 보고 내가 있다 하였고
어리석음과 갈구에 태움을 당하였다가
이 6분이 내 것이 아님을 알았나니
이런 마음 두는 이는 도덕과 부합하리.
수행하는 이가 마땅히 다시 생각하기를,
‘어리석은 이는 밝지 못하여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내어 이것이 나라고 하나니, 그 뜻으로 생각하는 것은 여러 생각과 삿된 행이다’고 하여야 한다.
처음 일어나는 것을 염이라 이르고 다음 일어난 것을 행이라 이르나니,
이렇게 생각한 다음, 마음속에서 바람이 움직여 입으로 말을 일으키게 되고 4대의 몸에 의착하여 내가 있다고 억측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모두 공하여 내가 없고 다만 5음의 종류와 6입(入)의 근본뿐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몸을 둠으로 인하여, ‘사람이다, 남자다, 장부(丈夫)다, 못난이다’고 하게 된다.
비유컨대 높은 산에서 큰물이 흘러내리면 그 진동하고 창쾌한 소리를 다니는 이가 죄다 듣는 듯,
또한 깊은 산 속에 메아리가 부르는 이를 따라 응하듯이,
사람의 혀끝에 나오는 말도 본래 마음으로 일어나는 것이 또한 그 와 같다.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모든 종류에 의착하여 온갖 법을 생각함은
본래 삿된 생각에서 뜻을 일으킨 것이니
성장된 몸을 인하여 말을 하게 되고
갖가지 소리를 냄도 저 산과 내[川] 같다.
[4대는 원수이다]
수행하는 이가 마땅히 다시 생각하기를,
‘이 네 종류의 몸은 내가 없고 서로 굴러서 해로움만 더한다’고 하여야 한다.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재보(財寶)가 수없이 많은데 네 원수가 있었다.
네 원수는 궁리하기를,
‘이 사람은 큰 부자로서 재보가 구차하지 않고 토지와 가옥과 기물이 한량없으며, 남녀 종들이 모자라는 바 없고 종족과 친우도 또한 많은데, 우리들은 가난하고 또한 세력이 없어 능히 이 원수를 갚을 수 없었다.
마땅히 방편을 써야 이 사람을 욕보이겠는데, 마땅히 어떻게 그 방편을 이룰 것인가’라고 하다가 이렇게 단정하였다.
‘늘 그 사람과 가까이 하여야 가히 원수를 갚을 것이다.’
그때 네 원수는 거짓으로 찾아가 목숨 바쳐 귀의하는 체하고 각기 말하기를,
“우리들은 당신을 위해서 시키는 대로 달려가 시행하여 종들의 구실을 감당하겠으니, 하고자 하는 일을 명령하여 주시기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부자는 곧 죄다 친절히 믿고 좌우(左右)에 있는 것을 받아 주었다. 네 원수는 공순함을 다하여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손을 끼고 조심스럽게 모든 중대한 일을 저희들이 먼저 해치워 몹시 고된 것도 회피하지 않았다.
그 때 부자는 이 네 원수의 공경하고 순종하고 청정하며 그 말이 화평하고 그 마음을 낮추는 것을 보고,
속으로 매우 사랑하여,
“이 네 사람은 나의 친한 벗이라도 그 보다 더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자리에 앉을 때 마다 곧 잘 칭찬하여 말하기를,
“이는 나의 친우요 또한 형제나 자손과 다름없으니, 이들이 하려고 하는 것에도 무엇이든지 내가 막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이런 말이 있은 다음부터, 음식을 먹을 적에는 그릇을 같이 하였고 나가고 들어올 적에는 수레를 함께 하였다.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가까이 하려고 수 없는 심부름에
아만(我慢) 없애고 명령 거역하지 않으며
그 집 식구처럼 마음을 낮추고
뜻을 순종하여 기쁘게 하였다.
어찌 이렇게 하였겠는가?
그들은 본래 원수로서
세간에서 맺힌 혐의가 있던 까닭에
짐짓 의탁하여 친우인척 하였다.
그 때 부자는 이 네 원수를 친절히 하여, 일찍이 서먹한 마음이 없었다. 다음 무슨 일이 있어서 이 네 사람과 함께 본 고장을 떠나 딴 지방을 가게 되었다
그들은 가만히 공모하기를,
“이 사람은 오래 전 부터 우리의 원수였는데, 지금 다행히 여기서 우리들 수중에 떨어지게 되었다.
지금 가는 길은 벌판이어서 주민들도 있지 않고 그전부터 상해를 당한 이가 한, 두 사람뿐이 아니었다.
또한 이 길은 성(城) 과도 동떨어졌고 고을을 가기에도 아주 멀며, 앞뒤에 사람도 없고 주변에 수비하는 이도 없으며, 또한 짐승 먹이는 이 나무하는 이 사냥하는 이도 없다.
지금은 마침 한낮이어서 사나운 짐승들도 자취를 감추는데, 어찌 더구나 사람이 다니겠는가? 지금 매우 적당한 기회이다”라고 하였다.
그 때 네 원수는 부자의 머리채를 잡아 땅에 떨어뜨려 놓고 그 가슴 위에 올라 앉아, 각기 그의 먼저 죄를 문초하였다.
첫째 원수는 “네가 어느 때 나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하고,
둘째 원수는 “네가 나의 형을 죽였다”고 하고,
셋째 원수는 “네가 나의 아들을 죽였다”고 하고,
넷째 원수는 “네가 나의 손자를 죽였다”고, 하면서,
“지금 너를 만났으니, 조각조각 쪼갤 것이며, 마땅히 너의 머리를 끊어서 쪼개고 부수어 버릴 터이다. 너의 본래 마음을 살펴볼지어다.
먼저 소행을 도무지 생각지 않느냐? 너는 지금 죽어서 염라지옥에 갈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 때 부자는 그제야,
‘이들은 나의 원수인데, 도리어 친한 벗으로만 알았었구나.
처음 나한테 와서 붙을 적에 나는 사랑하고 믿어서 음식과 좋은 것을 아끼지 않았고,
자식과 똑같이 여겨 나의 소득을 죄다 그들 앞에 넘겨주려고 까지 하면서,
오래 전부터 나를 살해하려고 했던 것을 나는 깨닫지 못하였구나.
지금 나의 머리채를 잡아 땅에 떨어뜨려 놓고 나의 온갖 죄를 문초하며,
나의 귀와 코와 손과 바로가 손가락을 끊으며, 가죽을 벗기고 혀를 자르니,
이제야 너희들이 나의 원수인 줄을 진실히 알겠구나’라고 깨달았던 것이다.
이제 게송으로 말하였다.
그들이 함께 찾아 와서
원수가 선우인척 하여
말은 고와도 마음은 독을 품었나니
재[灰]로 타오르는 불 가리움과 같다.
믿게 하느라고 아무 준비도 없더니
나를 잡아 염소 다루듯 하기에
그제야 속으로 깨달고 보니
이 원수요 친우가 아닐세.
수행하는 이도 이렇듯 그와 평등이 보아야한다.
‘내가 본래 지ㆍ수ㆍ화ㆍ풍 네 가지가 나에 속하였다고 혼자 여겼는데,
이제 진리를 살펴 깨닫고 보니, 이 원수로서 뼈만 쇠사슬처럼 서로 연결되었다.’
왜 그러는가?
만일 몸의 수(水)가 더하고 감하면 한병(寒病)의 백한 가지 고통을 일으키나니, 본래 몸으로 나와서 도리어 제 몸을 위태롭게 하며,
만일 몸의 화가 움직이면 열(熱)병의 백한 가지 환난을 일으키나니, 보내 몸으로 쫓아 나와서 도리어 스스로 위태롭게 하며,
만일 풍이 일어나면 중병의 백한 가지 통증을 얻으며,
만일 지(地)가 동하면 여러 가지 병이 모두 일어나나니, 이 404가지 병이 함께 일어나는 까닭이다.
모두 이 원수요, 죄다 내가 아니므로 진실로 싫어하여야 하나니, 밝은 이는 일찍이 이를 버리어 탐하고 좋아하지 않는다.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불은 본래 나무에서 나는 것인데
마찰시킨 뒤엔 나무를 도리어 태우나니
네 가지 종류도 또한 그와 같아서
그 몸을 편안치 않고 위태롭게 한다.
밝은 이는 항상 진리를 보고
그 근본을 살피나니
이 안의 4대가 공(空)한 것이어서
그 원수뿐임을 어찌 좋아하겠는가?
[공]
수행하는 이가 혼자 생각하기를,
‘내가 네 가지 종류를 보아도 진실로 내 것이 아니니, 마땅히 공(空)의 종류는 어떠한 것으로서 공이 몸에 있는 것인가? 몸이 공에 있는 것인가 보아야겠다’라고 하여야 한다.
무엇을 공(空)의 종류라 이르는가?
공은 두 가지가 있나니 안의 공과 바깥 공이다.
무엇을 안의 공(空)이라 이르는가?
즉 몸 가운데 공은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몸과 마음과 가슴과 배와 창자와 밥통ㆍ똥ㆍ오줌ㆍ구멍 같은 것이요, 뼈 가운데 모든 공(空)은 여러 맥박의 뛰는 것이니 이를 안의 공이라 이른다.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연(蓮)의 모든 구멍처럼
몸의 공(空)도 또한 그와 같나니
뼈와 살과 가죽이 유동하는
몸 안의 공과 차별이 없다.
수행하는 이가 마땅히 이런 관법을 지어야 한다.
‘몸 가운데 모든 구멍을 모두 공(空)이라고 할진대, 이 공으로 쫓아 생각을 일으키지도 않을 것이요, 공과 더불어 합하지도 않아야 할 것이다.’
왜 그러는가? 뜻은 마음을 따라 일어나고 뜻과 뜻의 서로 계속되는 것은 본래 대(對)를 따라 남으로 그 뜻이란 스스로의 마음을 보거나 딴 사람의 마음을 보는 데도 마음이 없어야 이에 공하여 의착한 데가 없기 때문이다.
3달(達)의 지혜로 과거ㆍ미래ㆍ현재를 살펴도 모두 소유가 없고 가지가지 방편으로 안의 공을 살펴도 영원히 몸이 없나니, 그러므로 안의 공에도 내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안의 종류를 본들 어디에 있겠는가
영원히 나를 얻지 못함이 먼지와 같나니
그러므로 몸의 공(空)과 심과 의와 식이
검은 그림자 그 이름만 있는 것과 같다.
수행하는 이가 마땅히 이런 관법을 지어야 한다.
‘이미 안의 공을 보아도 죄다 소유가 없으니, 마땅히 다시 바깥 공은 이 어떤 것으로서 공이 나에 있는 것인가? 내가 공에 의착한 것인가 보아야겠다’고 하여야 한다.
무엇을 바깥 공이라 이르는가?
몸과 더불어 관련되지 않아서 빛이 없으므로 가히 보지도 못하고 또한 가히 얻을 수도 없으며 몸이 없으므로 가히 제지 하지도 못하고 네 종류에 가려지지도 않으므로 이 공(空)을 따라 4대를 분별한다.
즉 가고 돌아오는 것과, 나가고 들어오는 것과, 나아가고 멈추는 것과, 위와 아래로 유행하는 것과, 굽히고 펴 동작하는 것과, 아래는 깊고 위는 높은 것과, 바람의 도는 것과, 불의 일어나는 것과, 산의 무너지는 것과, 해와 달과 별의 두루 둘러서 인연 따라 운행하는 것을 이 바깥 공이라 이른다.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그 빛이 보이지도 않고
능히 굳세게 걸림도 없는
사람들의 가고 돌아오는 것과
굽히고 펴서 동작하는 것과
여러 물의 유동하는 것과
해 달 바람의 운행하는 것과
산 무너지고 불 일어나는 것을
이 곧 바깥 공이라 이른다.
수행하는 이가 이렇게 진리 보기를,
‘몸 안의 공도 오히려 내 것이 아닌데 더구나 다시 바깥 공을 나라고 하겠는가’라고 하면서,
마음을 잡고 정진에 오로지하여 안팎 공이 똑같아 차별이 없다고 하여야 한다.
왜 그러는가? 괴로움과 즐거움이 없는 까닭이다.
가히 잡을 수 없으므로 생각도 없고 이미 마음과 뜻이 없으므로 괴로움과 즐거움도 없나니, 마땅히 나를 억측하지 못할 것이다.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 몸 가운데 모든 공에도
헤아려도 분명히 내가 없는데
어찌 더구나 바깥 공에
내 것이 있다고 하겠는가?
안팎 공을 살펴보아도
죄다 평등해 차별 없나니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지 않으므로
모든 생각도 여읜 것이다.
[의식]
이제는 마땅히 심신(心神)의 종류를 살피기를,
‘심신이 나에 있는 것인가, 내가 심신에 의착한 것인가’라고 하여야 한다.
무엇을 심신이라 이르는가? 심신은 안에 있고 밖에 있지 않은 것이다.
즉 마음은 안의 종류에 의지한 것인데, 바깥 종류를 보아서 인연을 일으키는 것이요,
정신은 여섯 경계가 있나니,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몸과 마음의 의식인 것이다.
수행하는 이가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눈이 빛을 반연하여 밝은 것이 마치 공(空)이 마음을 따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곧 눈의 안식(眼識)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눈은 안의 네 종류와
밖의 네 가지를 반연하여서
마치 두 나무가 서로 마찰하면
불이 나듯이 그 의식도 그와 같다.
귀와 코와 몸과 입과 뜻이
분별하여 여섯 일을 이루었고
빛이 죄와 복의 주재가 되었나니
이것을 모든 의식이라 이른다.
그 눈에 있는 안식은 눈 속에도 있지 않고 눈 밖에도 있지 않으며, 눈과 합하지도 않고 또는 눈과 떠나지도 않아, 밖으로는 빛에 반연하고 안으로는 인연에 응하나니 이것을 안식이라 이른다.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비유컨대 불내는 화경(火鏡)을
깨뜨려 백 조각을 낸다면
도저히 불을 낼 수 없으며
불은 나무를 떠나지 못하듯이
저 모든 의식의 종류도
헤아리건대 그와 같이
6정(情)으로 인하여 의식이 있나니
도저히 서로 분류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