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승기신론소기회본 제6권
25. 지관문(2), 마구니 짓
이 아래는 세 번째 마구니 짓이 일어나는 것을 밝혔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간략히 밝힌 것과, 자세히 풀이한 것이다.
25.1. 마구니의 개관
[논]
혹 어떤 중생이 선근의 힘이 없으면 모든 마구니와 외도와 귀신 들에 의하여 어지럽게 되니,
혹은 좌중坐中에서 어떤 형체를 나타내어 공포를 일으키게 하거나,
혹은 단정한 남녀 등의 모습을 나타낼 경우,
오직 마음뿐임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계가 곧 멸하여 끝내 뇌란되지 않을 것이다.
[소]
간략히 밝히는 중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마구니의 유혹을 밝혔고,
뒤에서는 대치함을 나타냈다.
25.1.1. 마구니의 종류와 짓는 일
처음에 “모든 마구니”라고 한 것은 천마天魔요,
“귀”란 퇴척귀堆惕鬼요,
“신”이란 정미신精媚神이니,
이러한 귀신이 불법을 요란시켜 사도邪道에 떨어지게 하기 때문에 “외도”라 한다.
이러한 모든 마구니와 내지 귀신들이 모두 세 가지의 오진五塵을 지어서 사람의 선한 마음을 깨뜨린다.
첫째는 두려워할 만한 일을 짓는 것이니,
이는 글에서 “좌중에서 어떤 형체를 나타내어 공포를 일으키게 하거나”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둘째는 사랑할 만한 일을 짓는 것이니,
글에서 “혹은 단정한 남녀 등의 모습을 나타낼 경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위違도 아니고 순順도 아닌 일이니, 평범한 오진을 나타내어 수행인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는 글에서 “……등의 모습”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25.1.2. 마구니를 대치함
“……임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하는 다음에 대치함을 밝힌 것이다.
만약 앞서와 같은 모든 경계가 오직 자심의 분별로 지은 것이어서 자심 밖에 별다른 경계가 없는 줄 생각하여, 이러한 마음을 일으킨다면 경계상이 바로 없어질 것이니,
이는 모든 마구니와 귀신을 모두 내보내는 방법을 밝힌 것이다.
개별적으로 말한다면 각기 다른 방법이 있다.
이는 모든 마구니를 다스리는 사람은 마땅히 대승의 모든 마구니를 다스리는 주문을 외우되 저주하는 생각으로 외워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1) 퇴척귀, 귀
퇴척귀란 혹 벌레와 전갈 같은 것이 사람의 머리나 얼굴에 기어올라 찔러서 저릿저릿하게 하며,
혹은 또 사람의 양쪽 겨드랑이 아래를 치기도 하며,
혹은 잠깐 사람을 안으며,
혹은 말하는 소리가 시끌시끌하며,
그 밖에 모든 짐승의 모양을 짓되 여러 형상으로 한 가지가 아니니,
이런 것들이 와서 수행하는 이를 뇌란케 한다면 곧 눈을 감고 일심으로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 것이다.
즉, “나는 이제 너를 아니, 너는 이 염부제閻浮提 중에 불을 먹고 향기를 맡는 투랍길지偸臘吉支이다.
네가 사견邪見을 좋아하며 계행의 종자를 깨뜨리나, 나는 이제 계를 지녀서 마침내 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만약 출가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계율을 외워야 할 것이고,
만약 재가在家의 사람이라면 마땅히 『보살계본菩薩戒本』을 외우거나 혹은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 등을 외워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을 외우면 귀신이 곧 물러나서 엉금엉금 기어 나갈 것이다.
2) 정미신, 신
정미신精媚神이란 12시十二時의 짐승이 변화하여 여러 가지 형색을 짓는 것을 말함이니,
혹은 젊은 남녀의 상相을 지으며,
혹은 노숙老宿의 모습과 두려워할 만한 몸 등을 짓는데 한 가지가 아닌 여러 형상으로 수행자를 뇌란케 하는 것이다.
저것이 사람을 뇌란케 하려면 각기 그때에 맞추어 오니,
만약 흔히 인시寅時에 오는 것이라면 반드시 호랑이나 들소일 것이고,
흔히 묘시卯時에 오는 것이라면 토끼나 노루 등일 것이고,
내지 흔히 축시丑時에 오는 것이라면 반드시 소 종류 등일 것이다.
수행자가 항상 이러한 때를 쓴다면 곧 그 짐승의 정미精媚를 알아서 그 이름을 말하여 꾸짖으면 곧 응당 인사하고 물러나 없어질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선경禪經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다.
위에서부터 마구니 짓과 그 대치하는 것을 간략히 말하였다.
25.1.3. 마구니 짓의 차별, 대치함, 진위의 구별
[논]
혹 천상天像과 보살상을 나타내거나 또한 여래상을 지어서 상호相好가 구족하며,
혹은 다라니陀羅尼를 설하며 혹은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설하며,
혹은 평등하고 공하며 무상無相하고 무원無願하며 무원無怨ㆍ무친無親하고 무인無因ㆍ무과無果하여 필경 공적空寂함이 참된 열반이라고 설한다.
혹은 사람들에게 숙명宿命의 과거의 일을 알게 하고 또한 미래의 일도 알게 하고,
타심지他心智를 얻게 하여 변재辯才가 막힘이 없어서,
중생들로 하여금 세간의 명예나 이익되는 일에 탐착貪着하게 한다.
또 사람들로 하여금 자주 성내고 자주 기뻐하게 하여 성품에 일정한 기준이 없게 하며,
혹은 자애가 많거나 잠이 많고 병이 많아서 그 마음이 게을러지게 하며,
혹은 갑자기 정진을 하다가 뒤에 곧 그만두어 불신하는 마음을 내어 의심이 많고 염려가 많게 하며,
혹은 본래의 수승한 행위를 버리고 다시 잡업雜業을 닦으며 혹은 세속의 일에 집착하여 갖가지로 끄달리게 한다.
또한 사람들에게 모든 삼매를 얻게 하여 진여삼매에 든 것과 약간 비슷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모두 외도가 얻은 것이지 참다운 삼매가 아닌 것이다.
혹 또한 사람들에게 혹은 하루, 혹은 이틀, 혹은 사흘 내지 이레를 정定 중에 머물게 하여 자연의 향미香美한 음식을 얻어 몸과 마음이 쾌적하여 배가 고프지도 않고 목이 마르지도 않게 하여 사람들을 그것에 애착하게 한다.
혹은 사람들에게 먹는 것에 한계가 없게 하여 갑자기 많이 먹거나 갑자기 적게 먹기도 하며, 안색을 변이하게 한다.
이러하기 때문에 수행하는 이는 언제나 응당 지혜로써 관찰하여 이 마음을 삿된 그물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마땅히 부지런히 정념正念하여 취착하지 아니하면 이러한 모든 업장을 멀리 여읠 수 있을 것이다.
외도가 가지는 삼매는 모두가 견見ㆍ애愛ㆍ아만我慢의 마음을 여의지 못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니, 그들의 삼매는 세간의 명리와 공경에 탐착하기 때문이다.
진여삼매眞如三昧란 보는 상相에 머물지 않고 얻은 상相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내지 정定에서 벗어난 때에도 게을리함이 없어서 가지고 있는 번뇌가 점점 엷어지게 되니,
만약 모든 범부가 이 삼매법을 익히지 아니하면 여래종성如來種性에 들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세간의 모든 선禪과 삼매를 닦으면 흔히 거기에 맛들여 아견我見에 의하여 삼계에 얽매여 외도와 함께하는 것이니,
만약 선지식의 보호하는 바를 여의면 곧 외도의 견見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소]
두 번째는 자세히 풀이하는 것이다.
이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마구니 짓의 차별을 자세히 나타내었고,
“이러하기 때문에” 이하는 두 번째 그 대치함을 밝힌 것이며,
“외도가 가지는 삼매는……알아야 할 것이니” 이하는 세 번째 진위眞僞를 간별한 것이다.
25.2. 마구니 짓의 차별
25.2.1. 다섯 쌍의 열 가지 일
처음에서는 곧 다섯 쌍의 열 가지 일을 밝혔다.
첫째는 형상을 나타내는 것과 설법하는 것으로 쌍이 되며,
둘째는 신통神通을 얻는 것과 변재를 일으키는 것으로 쌍이 되는 것이니,
“혹은 사람들에게”로부터 이하 “이익되는 일에 탐착하게 한다.”라는 데까지를 말한다.
세 번째는 의혹을 일으키는 것과 업을 짓는 것으로 쌍이 되니,
“또 사람들로 하여금”으로부터 이하 “갖가지로 끄달리게 한다.”는 데까지를 말한다.
네 번째는 정定에 드는 것과 선禪을 얻는 것으로 쌍이 되니,
“또한 사람들에게”로부터 이하 “사람들을 그것에 애착하게 한다.”는 데까지를 말한다.
다섯 번째는 음식의 차이와 안색의 변화로 쌍이 되는 것이니, 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25.2.2.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시험의 세 가지 방법
[문]
보살상 등의 경계를 보는 것 같은 것은 혹은 숙세宿世의 선근에 의하여 일어나기도 하니, 어떻게 간별하여 그 사정邪正을 판단하겠는가?
[해]
실로 이런 일이 있으니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모든 마구니가 만드는 상相을 보고 이를 좋은 상이라 여겨서 기쁜 마음으로 집착한다면 이러한 거짓되고 편벽됨에 의하여 병을 얻어 발광할 것이며,
만약 선근으로 나타난 경계를 얻고서 이를 마구니 짓이라고 여겨 마음으로 의심하여 떨쳐 버린다면 곧 좋은 이득을 잃게 되어 끝내 나아감이 없을 것이니,
그 사정邪正을 실로 구별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세 가지 방법으로 시험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니,
어떤 일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정定으로 연마하는 것이요,
둘째는 본래 닦던 것에 의하여 다스리는 것이요,
셋째는 지혜로 관찰하는 것이다.
이는 경(『대반열반경』)에서 “진금眞金을 알려면 세 가지 방법으로 시험해야 하니, 태워 보는 것과 두들겨 보는 것과 갈아 보는 것을 말한다.
수행하는 이도 또한 그러하여 분별해서 알기 어려우니,
만약 분별하려면 또한 반드시 세 가지로 시험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더불어 일을 같이 해야 하며, 일을 같이 하여도 알지 못하면 더불어 오래도록 함께 거처하며, 함께 거처하여도 알지 못하면 지혜로 관찰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제 이러한 뜻을 빌려 사정邪正을 시험하는 것이니, 다음과 같다.
만약 정定 중에 경계상이 일어날 때 사정을 알기 어려우면,
마땅히 깊이 정심定心에 들어가 저 경계상 가운데에서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아니하며 다만 평등히 정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니,
만약 이것이 선근에서 나온 것이라면 정력定力이 더욱 깊어져서 선근이 더욱 일어날 것이나,
만약 마구니의 짓이라면 오래지 않아 그 경계가 절로 무너질 것이다.
두 번째 본래 닦던 것에 의하여 다스린다는 것은,
우선 만약 본래 부정관선不淨觀禪을 닦고 있었다면 이제 곧 본래대로 부정관을 닦는 것이니,
이와 같이 닦아서 경계가 더욱 밝아진다면 이는 거짓이 아니고 본래 닦던 것으로 다스려서 점점 경계가 없어진다면 이는 거짓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지혜로 관찰한다는 것은 나타난 상을 관찰하여 근원을 추구해 보면 나는 곳(生處)을 보지 못하니,
공적함을 깊이 알아 마음이 그에 머물러 집착하지 않으면, 거짓된 것이 응당 스스로 없어지고 바른 것이 응당 스스로 나타날 것이다.
이는 마치 진금眞金을 태우매 그 빛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과 같으니, 가짜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중에 정定은 갈아 보는 것(磨)에 비유하고,
본本은 두들겨 보는 것(打)과 같으며,
지혜관찰은 불로 태워 보는 것(燒)과 같으니,
이 세 가지로 시험하면 사邪와 정正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5.2.3. 옳고 그름의 갈림길
[문]
만약 마구니가 내 마음에 정定을 얻게 한다면, 그 정定의 사邪와 정正을 어떻게 간별하는가?
[해]
이러한 곳은 미세하여 매우 알기 어렵다.
우선 선현先賢의 설에 의하여 간략히 사와 정의 갈림길을 보여 주겠다.
1) 움직임과 열 가지 상
앞서 말한 아홉 가지의 심주문心住門에 의하여 차례대로 수습하여 아홉 번째에 이르렀을 때 사지四肢와 몸체가 움찔움찔 움직임을 느낄 것이니,
이렇게 막 움직일 때 곧 그 몸이 구름과 같고 그림자와 같아서,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함을 느끼되, 혹은 위로부터 나오고 혹은 아래로부터 나오며 혹은 옆구리로부터 나와 미미하게 몸에 두루한다.
이처럼 동촉動觸이 일어날 때 공덕이 한량이 없는 것이니,
간략히 말하자면 열 가지 상이 있다.
첫째는 정정靜定(고요한 선정)이요,
둘째는 공허空虛요,
셋째는 광정光淨이요,
넷째는 희열喜悅이요,
다섯째는 아락猗樂(잔잔한 즐거움)이요,
여섯째는 선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요,
일곱째는 지견知見이 명료한 것이요,
여덟째는 모든 누박累縛이 없는 것이요,
아홉째는 그 마음이 고르고 부드러운 것이요,
열째는 경계가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열 가지 법이 움직임(動)과 함께 나는 것이니, 만약 자세히 분별한다면 다 분별하기 어렵다.
2) 여덟가지 감촉
이 일이 지난 후 다시 여촉餘觸이 차례로 나타나니,
여촉은 대략 여덟 가지가 있다.
첫째는 움직임(動)이요,
둘째는 가려움(痒)이요,
셋째는 서늘함(凍)이요,
넷째는 따뜻함(暖)이요,
다섯째는 가벼움(輕)이요,
여섯째는 무거움(重)이요,
일곱째는 껄끄러움(澀)이요,
여덟째는 매끄러움(滑)이다.
그러나 이 팔촉八觸은 반드시 함께 일어나지는 않으며,
어떤 때는 다만 두세 촉만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일어날 때도 또한 일정한 차례가 없지만 흔히 처음에는 동촉動觸을 일으킨다.
이들은 추麤에 의하여 정정상正定相을 나타내는 것이다.
3) 삿된 모양
다음엔 사상邪相을 분별하겠다.
사상에 대략 열 가지 쌍(十雙)을 내니,
첫째는 증감增減이요,
둘째는 정란定亂이요,
셋째는 공유空有요,
넷째는 명암明闇이요,
다섯째는 우희憂喜요,
여섯째는 고락苦樂이요,
일곱째는 선악善惡이요,
여덟째는 우지愚智요,
아홉째는 탈박脫縛이요,
열 번째는 강유强柔이다.
첫째 ‘증감’이란 동촉動觸이 일어날 때 혹 몸이 움직이고 손이 들려지며 다리도 따라서 움직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가 가만히 있어 마치 잠자는 것처럼 보이며,
혹은 귀신이 붙은 것처럼 몸과 손과 발이 어지럽게 움직이니, 이는 증상增相이다.
만약 그 동촉이 일어날 때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다가 몸에 미처 두루하기 전에 곧 없어지니 이로 인하여 경계의 상을 모두 잃으며, 앉았을 때 맥이 없어 몸을 지탱할 법이 없으니, 이는 감상減相이다.
둘째 ‘정란’이란 동촉이 일어날 때 식심識心과 몸이 정定에 얽매여 자재하지 못하며,
혹은 다시 이로 인하여 곧 사정邪定에 들어가서 이레(七日)까지 이르니 이는 정定의 허물이요,
만약 동촉이 일어날 때 심의心意가 어지럽게 일어나 나머지 다른 경계를 반연한다면 이는 난亂의 허물이다.
셋째 ‘공유’란 동촉이 일어날 때 도무지 몸을 보지 못하여 공정空定을 증득했다고 여기는 것이니 이는 공의 허물이요,
만약 동촉이 일어날 때 몸의 견실함이 마치 목석과 같음을 느낀다면 이는 유의 허물이다.
넷째 ‘명암’이란 동촉이 일어날 때 바깥의 여러 가지 빛깔과 내지 일월성신을 보는 것이니 이는 ‘명’의 허물이요,
만약 동촉이 일어날 때 몸과 마음이 암매함이 마치 어두운 방에 들어간 것과 같다면 이는 ‘암’의 허물이다.
다섯째 ‘우희’란 동촉이 일어날 때 그 마음이 몹시 번뇌하여 시달려서 기뻐하지 아니하니 이는 ‘우’의 과실이요,
만약 동촉이 일어날 때 마음이 뛸 듯이 크게 기뻐서 스스로 안정될 수 없다면 이는 ‘희’의 과실이다.
여섯째 ‘고락’이란 동촉이 일어날 때 몸의 지체가 곳곳마다 몹시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니 이는 ‘고’의 과실이요,
만약 동촉이 일어날 때 크게 쾌락됨을 알아서 탐착하고 얽매인다면 이는 ‘낙’의 과실이다.
일곱째 ‘선악’이란 동촉이 일어날 때 밖의 산선散善을 생각하여 삼매를 파괴하는 것이니 이는 선의 허물이요,
만약 동촉이 일어날 때 부끄러워함이 없는 등의 여러 악한 마음이 일어나면 이는 악의 허물이다.
여덟째 ‘우지’란 동촉이 일어날 때 심식이 미혹하여 아는 바가 없는 것이니 이는 ‘우’의 허물이요,
만약 동촉이 일어날 때 지견知見이 밝고 예리하여 마음에 거짓된 깨달음을 낸다면 이는 ‘지’의 허물이다.
아홉째 ‘박탈’이란 혹 오개五蓋와 모든 번뇌가 심식을 덮어 장애하는 것이니 이는 ‘박’의 허물이요,
혹은 공을 증득하여 과果를 얻었다고 여겨서 증상만增上慢을 낸다면 이는 ‘탈’의 허물이다.
열 번째 ‘강유’란 동촉이 일어날 때 그 몸의 억세고 강함이 마치 와석瓦石과 같아서 회전하기 어려우니 이는 ‘강’의 과실이요,
만약 동촉이 나타날 때 심지心志가 연약하여 무너지기 쉬운 것이 마치 (진흙이) 부드럽고 젖어 있어서 그릇을 제대로 만들 수 없는 것과 같다면 이는 ‘유’의 과실이다.
4) 삿된 선정법이 일어난 모양
이 스무 가지 그릇된 선정의 법은 그것이 일어났을 경우,
만약 식별하지 못하여 마음에 애착을 내면 그 때문에 혹은 정신을 잃고 미치며,
혹은 울기도 하고 혹은 웃기도 하며,
혹은 놀라 멋대로 달아나며,
어떤 때는 스스로 바위에 몸을 던지거나 불에 들어가려고 하며,
어떤 때는 병을 얻으며 혹은 그 때문에 죽기까지 한다.
4) 시험으로 다스리기 어려우면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다시 이처럼 하나의 사법邪法을 일으킬 경우,
만약 아흔다섯 종류의 외도外道 귀신법 중 하나의 귀신법과 상응하면서도 깨닫지 못한다면 이는 곧 저 외도를 생각하고 저 귀신법을 행하는 것이니,
이로 인하여 곧 귀신법 내에 들게 되고 귀신이 그 세력을 더해 주어 혹 모든 그릇된 정定과 모든 변재辯才를 일으켜 세간의 길흉을 알아서, 신통ㆍ기이하여 희유한 일을 나타내어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다만 그가 남과 다름을 보고 현성賢聖이라 여겨 마음 깊이 신복信伏하지만 그러나 그의 내심은 오로지 귀신법만 행하고 있으니,
이 사람은 성인의 법도를 멀리 여의어 몸이 괴멸되고 목숨이 끝날 때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짐을 알아야 할 것이니, 이는 『구십육외도경』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다.
수행자가 만일 이러한 거짓된 모양을 깨달으면 앞의 방법으로 시험하여 다스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도 또한 옳고 그름이 있으니, 어떠한 것인가?
만약 그 그릇된 선정(邪定)이 한결같이 마구니가 지은 것이라면 법으로 다스려야 하는 것이니, 마구니가 떠난 뒤에는 도무지 다시 털끝만큼의 선법禪法도 없는 것이다.
만약 내가 바른 선정(正定)에 들어갔을 때 마구니가 그 가운데에 들어와서 여러 가지 거짓된 모양을 나타낸다면 법으로 물리쳐야 할 것이니,
마구니의 삿된 장난이 이미 없어졌다면 곧 나의 정심定心이 맑아져서 마치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타남과 같은 것이다.
만약 이러한 모양이 비록 마구니가 지은 것 같으면서도 법으로 다스려도 오히려 없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자기의 죄장罪障으로 인하여 일어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리하여 곧 대승의 참회를 부지런히 닦아야 할 것이니, 죄가 없어진 후에 정定이 스스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장애의 모습은 매우 은미하여 구별하기 어려운 것이니, 도를 찾고자 하는 이는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방론傍論을 그치고 다시 본문을 해석하겠다.
25.3. 대치함
이상으로 마구니 짓의 차별상을 자세히 분별하였으며,
“이러하기 때문에” 이하는 두 번째로 대치를 밝히는 것이다.
“지혜로써 관찰하여”라고 한 것은 자기의 분수에 따라 가지고 있는 각혜覺慧에 의하여 모든 마구니 짓을 보고 살펴서 다스리는 것이니,
만약 관찰하지 않으면 곧 사도邪道에 떨어지기 때문에 “삿된 그물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앞서의 세 가지 시험 중 바로 세 번째 ‘지혜로 관찰하는 것’이다.
“마땅히 부지런히 정념하여 취착하지 아니하면”이라고 한 것은 셋 중에서 앞의 두 법을 전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제 이 중에 대승의 지문止門에서는 오직 이정理定만 닦는 것이며 다시 달리 나아가는 바가 없기 때문에 처음의 정定으로 연마하는 것과 아울러 본래 닦은 것에 의하는 것이요, 다시 다른 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마땅히 본래 닦은 대승의 지문止門에 의하여 정념으로 머물라고 한 것이다.
‘취착하지 아니하면’이라고 한 것은 삿된 것이 정正을 범하지 못하여 저절로 물러가 없어지는 것이니,
만약 마음으로 취착하면 곧 정正을 버리고 사邪를 이룰 것이요,
만약 취착하지 않으면 사邪에 의하여 정正을 나타냄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사’와 ‘정’의 나뉨은 요컨대 집착하는 것과 집착하지 않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집착하지 않는 이는 어떠한 장애이든 여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업장을 멀리 여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25.4. 진위를 간별함
“외도가 가지는 삼매는……알아야 할 것이니” 이하는 세 번째 그 진위眞僞를 간별하는 것이니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25.4.1. 안팎을 들어서 사ㆍ정을 분별함
처음은 안팎을 들어서 사와 정을 분별하는 것이다.
먼저 것은 사邪요 뒤의 것은 정正이니, 글의 양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5.4.2. 이ㆍ사에 대하여 진위를 간별함
“만약 모든 (범부가)” 이하는 다음으로 이理ㆍ사事에 대하여 진위를 간별하는 것이며,
이 중에 처음은 이정理定이 참된 것임을 나타낸 것이다.
수행자는 진여삼매를 닦아야만 바야흐로 종성種性의 불퇴위에 들어가는 것이며,
이 밖에는 불퇴위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다시 없기 때문에,
“이 삼매법을 익히지 아니하면 여래종성에 들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게 된다.”라고 말하였다.
[종성의 자리의 두 가지 문]
그러나 종성의 자리에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첫째는 십삼주十三住 문의 처음 종성주種性住니, 종성이란 무한한 과거로부터 있는 것이므로 닦아서 얻는 것이 아니며, 이 뜻은 『유가사지론』과 『지지론地持論』에 나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육종성六種性 문이니, 처음 습종성習種性과 다음에 성종성性種性이란 그 자리가 삼현三賢에 있는 것으로 습기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는 『본업경』과 『인왕경』에 나온다.
그중 자세한 것은 『일도의一道義』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다.
이제 이 중에 여래종성이라고 한 것은 두 번째의 습종성위를 말한 것이다.
“세간의 모든 선禪과 삼매를 닦으면” 이하는 다음으로 사정事定의 거짓됨을 나타낸 것이니, 부정관不淨觀과 안나반념安那槃念의 생각 등을 말하며 이들을 모두 ‘세간의 모든 삼매’라 이름한다.
만약 사람이 진여삼매에 의하지 않고 다만 이러한 사삼매事三昧만을 닦는다면 들어가는 경계에 따라 취착을 여의지 못하는 것이며,
법法(경계)을 취착하는 이는 반드시 나(我)를 집착하기 때문에 삼계에 속하여 외도와 더불어 같이하게 된다.
이는 『대지도론』에서,
“제법실상諸法實相을 제외한 그 밖의 모든 것은 다 마구니 짓이다.”라고 한 것과 같으니, 바로 이를 말한 것이다.
이상으로 세 번째 마구니 짓을 밝힘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