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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문보살십주제구단결경 제10권
26. 몽중성도품(夢中成道品)
그때에 치지(治地) 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차수(叉手)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매우 기이하고도 특별하나이다. 이제 유수(濡首)보살이 얻은 것과 최승(最勝)이 논한 형상이 없는 법과 도(道)에 언교가 없는 것을 들었사온데, 아직 일찍이 듣지 못했던 바요 아직 일찍이 보지 못했던 바이옵니다.
곧 부처님 종자[佛種]를 잇고 끊이지 않게 했으며 또 불사(佛事)의 불가사의한 법을 행한 것이옵니다.”
부처님께서 치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너의 말과 같으니라. 억백천 겁으로부터 공을 쌓고 덕을 포개며 불사를 일으키고 드러내었으나 일찍이 닳아 없어진 일이 없었으며,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면서 법은 이에 유포된 것이니라.”
[법의 모양이 있는가]
이때에 유수가 나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고서야 법이 비로소 유포한다면, 모든 법에는 어떤 모양[相貌]이 있어 유포한다고 하시옵니까?”
대답하셨다.
“없느니라.”
[중생은 있는가 없는가]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래께서 출현하시면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멸도를 취하게 하시옵니다.
이제 듣건대 여래께서는 중생에 한계를 정하려 하시온데, 중생에 한계를 정하신다면 곧 멸도가 없게 되나이다.”
부처님께서 유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말하는 중생이 없다는 것이 중생이 있다는 말로 들리느냐?”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있는 중생으로 하여금 중생이 없다고 하려느냐?”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여래로 하여금 생기거나 소멸하거나 소굴이 있게 하려 하느냐?”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만일 여래로 하여금 소굴이 없게 하려 한다면, 어떻게 여래가 중생을 제도하여 모두 멸도하게 하겠느냐?”
유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제 저는 4구(句)의 분별로 설명된 모든 법의 총지를 다 얻어 그 본성품[本性]을 찾아보면,
생기는 것도 없고 소멸하는 것도 없으며, 생사도 보지 않고 또 열반도 없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 때문에 한이 없는 중생이 멸도를 취해야 하나이다.”
[식의 생각으로 지혜를 분별할 수 없다]
부처님께서 유수에게 말씀하셨다.
“다하고 다함이 없는 데서 법계는 본래부터 청정하고, 이치를 깨달아 알기 때문에 집착이 없다고 일컬으며,
문자를 앎으로써 뜻도 없고 생각도 없고 또한 식의 집착[識着]도 없거늘,
어찌 식의 생각[識想]으로 말미암아 모든 지혜를 분별하겠느냐?
중생이 청정한 줄 깨달아 알면 사람의 본성품은 다할 수 없는 것이니,
나는 이제 너에게 이치를 분별해 주겠노라.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잘 생각할지니라.
보살의 대승은 불가사의하나니, 이는 아라한이나 벽지불로서는 미칠 바가 아니니라.”
유수가 가르침을 받잡고 즐거이 듣고자 하였다.
[안적 부처님의 국토]
부처님께서 유수에게 말씀하셨다.
“형상이 없는 식[無形之識]과, 깨달아 앎이 없는 식[無覺知識]과, 생각과 기억이 없는 식[無想念識]과, 꿈ㆍ요술ㆍ허깨비의 식[夢幻化識], 그것으로써도 한량없는 중생을 구제하고 섭수하게 되며,
혹은 어떤 부처님 국토에서는 문자로써 교화하되, 문자는 성품이 공(空)하고 고요한 것인 줄 아느니라.
여기서 상방(上方)으로 7만 6억 아승기의 국토를 지나서 거기에 부처님 국토가 있는데, 이름은 안적(安寂)이며,
부처님 명호는 묘식(妙識)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이시며 10호를 완전히 갖추셨느니라.
[꿈속에서 도를 이루다]
그 국토의 중생은 모든 근(根)이 두루 갖추어지고 본원(本願)을 익히기 좋아하여 누실(漏失)한 바가 없으며,
중생이 교화를 받을 적에는 잠을 자게 되어야 깨칠 수 있느니라.
오직 여래만은 고요한 정의(定意)에 들어가서 중생의 근기를 따라 방편을 나타내어 잠을 주무신 것같이 할 뿐이니,
가령 설법을 하시려 하면 곧 스스로 오른 겨드랑을 땅에 대고 다리를 서로 포개시는데,
중생들이 그것을 보고는 모두가 여래를 본받아 오른 겨드랑을 땅에 대고 다리를 서로 포개면서 모두 다 잠을 자느니라.
이때에 그 부처님은 잠을 자는 가운데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신식(神識)으로 설법하시게 되는데,
혹 보시를 말씀하여 세 가지 생각[想]을 제거시키기도 하고,
혹 지계를 연설하여 덕향(德香)이 멀리 퍼지게 하기도 하며,
혹 인욕을 말씀하여 뜻을 항복받아 일어나지 않게 하기도 하고,
혹 정진을 연설하여 게으름을 제거시키기도 하며,
선정을 연설하여 식(識)이 내닫지 않게 하고,
지혜를 널리 펴서 어리석음을 닫아 막기도 하며,
선권(善權)을 수행하여 종류에 따라 집착이 없고, 네 가지 법문(法門)을 궁구하고 드날리되 걸림이 없기도 하시나니,
식의 높고 낮음에 따라 그 교법을 연설하고 대소(大小)를 따라 연설하여 정법을 가르쳐 주시느니라.
때에 그 여래는 다시 4비상(非常)의 지혜와 고(苦)ㆍ공(空)ㆍ비신(非身)ㆍ무아(無我)의 법을 연설함으로써,
점차로 그들을 위하여 37도품(道品)의 가르침인 4의지ㆍ4의단ㆍ4신족ㆍ5근ㆍ5력ㆍ7각의ㆍ8현성도를 연설하며,
정의(定意)와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충분히 드날리느니라.
그때에 꿈속에서 교화를 받는 식(識)이 도의 자취를 이루려면, 곧 그 꿈속에서 식이 도를 받아 이루어야 하며,
빈래(頻來)와 불환(不還)과 무착(無着)의 도(道)에 이르기까지 역시 그와 같이 하며,
각기 부처님의 취증(取證)에서도 역시 또 꿈에서 식이 들판에 있으면서,
스승 없이 스스로 깨치고 잠을 자는 가운데서 몸이 황금빛이 되고 온갖 상호가 스스로 장엄되며 발우가 허공을 날고 18변(變)을 짓느니라.
또 꿈속에서 몸 위로는 불을 뿜고 몸 아래로는 물을 내며, 허공에서 앉고 눕되 걸림이 없으며,
무위(無爲) 열반의 경지에 들고자 하면 역시 꿈속에서 결가부좌하여 무여열반에서 반열반하기 때문에 몸은 돌과 같아 깨달아 아는 바가 없게 되고,
중생들은 도로 깨어난 뒤에 저마다 언설이 없이 곧 꿈에서 식의 집착[識着]으로 사리를 취하여 사유(耶維:闍維)하게 되느니라.
보살의 수결(受決)과 이에 성불하기까지 모두가 꿈속에서 수왕(樹王) 아래 앉고 땅은 황금빛이 되며 악마를 항복받고 한량없는 복이 갖추어지며,
몸에는 32상(相)과 80종호(種好)가 있고 자마금(紫磨金) 빛의 광명이 멀리 비추느니라.
꿈속이 이와 같으면 깨어서도 곧 몸은 황금빛이요 온갖 상호가 완전히 갖추어지며,
신족 변화도 걸리는 바가 없고 언교나 음향이나 왕래가 없으며,
제도하는 바가 있으려 하면 모두 다 꿈속에서 바깥의 형상을 빌리지도 않고 제도하는 바가 있느니라.
유수야, 알아야 하느니라.
중생의 근원은 깨침을 받아들이는 것이 동일하지 않으나, 모든 부처님의 권화(權化)와 그 지혜는 방소가 없느니라.
혹 어떤 부처님 국토에 지대(地大)가 이루어지면 지계(地界)의 중생들이 헤아릴 수 없고,
여래는 그것에 들어가서 그들을 교화하여 모두 중생으로 하여금 무여열반의 경계에서 반열반하게 하며,
혹 어떤 부처님 국토에 수대(水大)가 이루어지면 수계(水界)의 중생들은 헤아릴 수 없고,
여래는 그 곳에 들어가서 그들을 교화하여 모두 중생으로 하여금 무여열반의 경계에서 반열반하게 하느니라.
혹 어떤 부처님 국토에 화대(火大)가 이루어지면 화계(火界)의 중생들이 헤아릴 수 없고,
여래는 그 곳에 들어가서 그들을 교화하여 모두 중생으로 하여금 무여열반의 경계에서 반열반하게 하며,
혹 어떤 부처님 국토에 풍대(風大)가 이루어지면 풍계(風界)의 중생들이 헤아릴 수 없고,
여래는 그 곳에 들어가서 그들을 교화하여 모두 중생으로 하여금 무여열반의 경계에서 반열반하게 하느니라.
혹 어떤 부처님 국토에 공대(空大)가 이루어지면 공계(空界)의 중생들이 헤아릴 수 없고,
여래는 그 곳에 들어가서 그들을 교화하여 모두 중생으로 하여금 무여열반의 경계에서 반열반하게 하며,
혹 어떤 부처님 국토에 식대(識大)가 이루어지나니,
이른바 안적(安寂) 불국토의 묘식(妙識)여래는 식신(識神)이 통달하여 꿈속에서 가르침을 받아 멸도를 취하게 되느니라.”
[접식이라는 중생이 있는 부처님의 국토]
부처님께서 다시 유수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서 북방(北方)으로 70억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부처님 국토를 지나가면 거기에 부처님 국토가 있나니,
이름은 심요(深要)이고, 부처님 명호는 범혜(梵慧) 여래ㆍ지진ㆍ등정각으로서 10호를 완전히 갖추셨으며,
그 나라의 중생들은 모두가 서원을 세워서 그 국토에 나는데, 모두 동일한 이름이어서 접식(接識)이라 하느니라.
유수야, 알아야 하느니라.
그 국토의 중생은 모두 다 신통이 있고 마음으로 생각하면 그 형상이 따라오되 걸림이 없느니라.
이른바 접식이란,
큰 서원을 세워서 모든 신식(神識)이 나는 문[生門]에 나아가 포태의 형상을 받아야 할 때는 반드시 신족으로써 허공을 왕래하고 신식에 접(接)하여 머물러야 하며,
변화로 멸도하지만 4대를 받지 않나니,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발타화(颰陀和) 등의 여덟 보살이 그들이니라.
[태진이라는 부처님의 국토]
여기서 동남방(東南方)으로 140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국토를 지나가 부처님 국토가 있으니,
이름은 범음(梵音)이요, 부처님의 명호는 태진(胎眞) 여래ㆍ지진ㆍ등정각으로서 10호를 완전히 갖추셨으며,
그 국토의 중생은 여섯 가지 신통이 맑게 사무쳤고 동일한 색상(色相)인데,
이들은 서원으로 말미암아 그 국토에 난 것이니라.
이른바 태진(胎眞)이란,
큰 서원의 마음을 일으켜 모든 신식이 어머니의 태(胎) 안에 있을 적에 신족으로써 태에 들어가 교화하기를 원하면,
그 어머니로 하여금 나[我]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곧 태 안에서 무위(無爲)에 건너가 열반에 이르나니,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보적동진(寶寂童眞)과 치지(治地) 보살이 그들이니라.
[형상이 없는 법으로 식을 교화하다]
여래의 권화(權化)는 신통변화가 견줄 데 없어 억백천의 부처님 국토를 손바닥 안에 다 안전하게 두었다가, 다시 본래 있던 데로 돌아가게 해도 깨달아 아는 이는 없나니,
허공 법계는 불가사의하느니라.
유수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행해야 할 자취이니, 이는 아라한이나 벽지불로서는 미칠 바가 아니니라.
미세한 식[微識]을 분별하여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저마다 제도될 수 있게 하고,
혹 텅 비어 없고[虛無] 공하여 없는[空無] 법과, 내가 없고[無我] 남도 없으며[無人] 오래 사는 것도 없고[無壽] 목숨도 없다[無命]는 것과, 생기거나 소멸하지도 않는 법[不起滅法]을 연설하느니라.
유수야, 만일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크게 서원하는 마음을 일으켜,
시방 세계의 벽지불과 아라한이 그 안에 가득 차게 하고서, 저마다 도(道)를 이루어 마음이 퇴전(退轉)하지 않게 한다면, 그 복이 과연 많겠느냐?”
유수가 대답하였다.
“매우 많고 매우 많겠나이다. 천중천(天中天)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어떤 보살이 형상이 없는 법으로써 식을 위하여 연설하거나,
혹 무상ㆍ고ㆍ공ㆍ비신(非身)과 공ㆍ무상ㆍ무원을 연설하거나,
낱낱이 형상도 없고 모양도 없고 지니고 다닐 수 없음을 분별하면,
이야말로 식을 교화한[化識] 것으로 그 복은 한량없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유위의 4대는 차가월라(遮迦越羅)가 겪고 지낼 바이거니와, 무위의 4대는 영원히 고요하여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이 바로 모든 부처님께서 연설한 법이며,
이런 방편으로써 미세한 식은 적막하고 법성은 가르침이 없어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유위는 모양[相]이 있거니와 무위는 모양이 없나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유위를 여의지도 않고 무위를 여의지도 않으며,
또한 다시 이것을 익히고 이것을 버린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니,
형상이 없는 가르침에는 이런 가르침도 없느니라.
이것은 바로 범부의 법이요 이것은 바로 현성의 법이며,
이것은 바로 학의 법[學法]이요 이것은 바로 무학의 법[無學法]이며,
이것은 바로 성문의 법이요 이것은 바로 연각의 법이며,
이것은 바로 보살의 법이요 이것은 바로 부처님의 법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유수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가 강설한 바 식(識)을 위한 설법에는,
모든 법을 보지도 못하고 또한 법이라는 생각[法想]도 없으며, 텅 비고 공하여 형상도 없고 또한 볼 수도 없거니와,
어리석고 미혹된 범부가 여러 가지 채색으로써 허공에다 천ㆍ용ㆍ귀신과 팔부(八部)의 형상을 그리고자 한다면, 이 사람이 하려는 일은 과연 할 수 있는 것이냐?”
유수가 대답하였다.
“매우 하기 어렵고 매우 하기 어렵나이다. 천중천이시여, 일찍이 없었던 일이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네가 말한 바와 같으니라.
모든 법은 작용[數]이 없고 여래가 교화하는 바도 역시 작용이 없으며, 모든 법은 형상이 없는지라 곧 둘이 없느니라.
유수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형상이 없는 법에 처소가 있겠느냐?”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유수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알아야 하느니라. 부처님 법은 수효도 없고 말도 없고 가르침도 없어서 모두 다 있는 바가 없느니라.”
그때에 유수가 나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까 듣자오니 세존께서는 모든 법은 모양도 없고 또한 형질도 없다고 하시면서도, 여래는 만물을 크게 가엾이 여기면서 살펴 주지 않으심이 없사온데,
어찌하여 다시.
‘중생을 깨우쳐 교화하면서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합니까?
이 법은 유루요 이 법은 무루이며, 이 법은 현재요 이 법은 과거이며, 미래이다’라고 말씀하나이까?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이것은 세간을 제도하는 법이요 이것은 세간을 제도하는 법이 아니며,
집착이 있는 것이요 집착이 없는 것이며,
명칭이 있는 것이요 명칭이 없는 것이며,
수효가 있는 것이요 수효가 없는 것이며,
이것은 생사의 법이요 이것은 열반이다’라고 하시옵니까?
어찌하여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모양이 없고 또한 형질이 없다’라고 말씀하나이까?”
부처님께서 유수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네가 묻는 바와 같으니라.
삼승의 모든 법과, 삼세와, 6도와, 세간의 생사를 제도하는 것과,
유위ㆍ무위와, 유위도 없고 무위도 없는 것과,
집착이 있는 것, 집착이 없는 것과,
명칭이 있는 것, 명칭이 없는 것과,
수효가 있는 것, 수효가 없는 것과,
유루와 무루와, 37품과, 공ㆍ무상ㆍ무원과,
유위의 법으로부터 이에 무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것은 세속의 수[俗數]요 제일의(第一義)는 아니니라.
형상이 없는 법[無形法]이란 형용도 없고 음향도 없어서 볼 수도 없으며,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일심ㆍ지혜ㆍ선권(善權)도 모두 이것은 세속의 일이요 제일의는 아니며,
멸하여 다한 열반만은 영원히 고요하고 쾌락이 있느니라.”
[부처님의 질문들]
부처님께서 유수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마땅히 그의 본성품을 찾아 다시 연설해야 하는 데에도 보응이 있느냐?
8난이란 음성을 제거하여 음향이 없다고 말하는 데도 보응이 있느냐?
중생을 빠짐없이 다하고 그 근원을 미루어 찾는데도 보응이 있느냐?
경전을 좇고 따르면서 결사(結使)를 제거하는 데에도 보응이 있느냐?
바로 여래께는 삼세에 염착하지 않고 바른 법으로 교화하되, 일찍이 헛되이 버려지지 않는 데에도 보응이 있느냐?
바로 모든 법으로 하여금 보응의 결과가 있게 할 적에도 다시 다할 수 있느냐?
심식(心識)이 두루 돌아다니며 들고 나고 하되, 막힘이 없을 적에도 다시 다할 수 있느냐?
혹 권혜(權慧)를 이행하되 애욕(愛欲)을 좇고 따를 적에도 다시 다할 수 있느냐?
위의와 예절을 따르면서 범하지 않을 적에도 다시 다할 수 있느냐?
삼승의 교화로 모두 충만하게 할 적에도 다시 다할 수 있느냐?
법의 근본을 사유하면서 총지를 버리지 않을 적에도 다시 다할 수 있느냐?
모든 법의 장구(章句)가 청정한 줄 환히 알고,
미묘한 법의 장구가 분명한 줄 깊이 알며,
4의지(意止)와 모든 부처님의 정의(定意)를 관할 적에도 다시 다할 수 있느냐?
의단(意斷)을 분별하되 버리거나 여읜 일이 없고 법을 끝없이 연설하면서 어렵게 여의지 않을 적에도 다시 다할 수 있느냐?
신족이 걸림이 없어서 산이나 하천이나 석벽(石壁)을 통달하되 막힘이 없을 적에도 다시 다할 수 있느냐?
5근(根)을 낱낱이 분별하면 성전(聖典)이 아니고 이것은 외도인가?
막고 무너뜨릴 수 있으면 다시 다할 수 있느냐?
여래의 거룩한 힘[神力]으로 말과 바른 법을 자세히 살피면서 의심이나 옳다 그르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7각의(覺意)의 꽃으로써 스스로 영락(瓔珞)하고 대중에 처해 있을 때는 겁내거나 나약하지 않으며,
37현성의 도[賢聖之道]를 논설하여 영원히 외도의 삿됨을 여읠 적에도 다시 다할 수 있느냐?
역순으로 정수삼매를 강설하고, 혹 또 명(名)ㆍ신(身)ㆍ구(句)의 뜻을 분별할 적에도 다시 다할 수 있느냐?
고(苦)ㆍ습(習)ㆍ진(盡)ㆍ도(道)와 지극한 도의 인봉[至道印封]과 32상이 서로서로 과보를 받을 적에도 다시 다할 수 있느냐?”
유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형상이 없는 가르침이라 다할 수 없사오며,
모든 유위의 법은 모두 이것은 손모(損耗)되고 줄거니와 무위의 열반은 다할 수 없나이다.”
[열반]
그때에 최승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열반[泥洹], 열반, 하시는데 어떤 것이 열반이옵니까?”
부처님께서 최승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열반이란 쉰다[息]는 것이니라.”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을 쉰다고 하나이까?”
대답하셨다.
“함이 없고[無爲] 한적하고 고요한[閑靜] 것이니라.”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을 함이 없다 하오며 어떤 것을 한적하고 고요하다 하나이까?”
대답하셨다.
“생각이 소멸하면[想滅] 한적하고 고요한 것이요, 식이 정지하면[識停] 함이 없는 것이니라.”
또 여쭈었다.
“공(空)한 것이 아니옵니까?”
대답하셨다.
“공한 것이 아니나 공한 것이니라.”
또 여쭈었다.
“공한 것이 아니나 공하거늘 어떻게 식이 정지하나이까?”
대답하셨다.
“공한 것이 아니나 공한 것이니라.”
그때에 최승보살은 갑절 더 의심을 내고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아까는 두 가지 일[事]을 물었사온데 그렇게 대답을 똑같이 하시옵니까?”
부처님께서 최승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족성자야. 여래의 대답에서 공(空)의 성품이 똑같다고 말하지 말라.
다만 족성자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니라.
나는 이제 너에게 공이 아닌 공[非空空]의 뜻과 식(識)이 맑고 고요한 것을 묻겠으니, 너의 변재에 따라 낱낱이 대답하여라.
[공이 아닌 것]
족성자야, 어떤 것이 공이 아닌[非空] 뜻이냐?”
아뢰었다.
“모든 법에는 작용[數]이 없고 작용이 있지 않은 것도 아니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니라. 족성자야.”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어떻게 식(識)이 정지하고 맑고 고요하냐?”
최승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두 다 일어나지 않는[不起] 데로 돌아가되 일어남이 있지 않는 것도 아니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니라. 족성자야.”
그때에 최승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온몸을 땅에 던져 발에 대고 예배하고는 잠깐 동안 물러났다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스스로 자세히 살피건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에 지나침이 있사옵니다.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미치지 못함[不及]을 가엾이 여기시고 용서하시어 알기 쉽게 연설하셔서 영원히 어리석음과 미혹함을 제거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최승에게 말씀하셨다.
“법에는 약간의 것도 없나니, 오직 그 근본만을 이해할 뿐이니라.
향산(香山)에 가지 하나가 만 길[萬尋]이 되는 나무가 있는데, 거꾸로 구부러져서 땅으로 들어가야 열매가 비로소 익게 되는 것이 있느니라.
열매란 마땅히 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나 반대로 땅으로 들어가 있으니, 너의 지금 소견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나는 너에게 공(空)을 물었는데 이에 유(有)로써 대답하고 있으니, 그 과일나무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내가 너를 위하여 낱낱이 분별하리니 잘 생각해야 하느니라.”
대답하였다.
“그러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최승에게 말씀하셨다.
“아니라[非] 하면 공도 아니니라.
모든 법은 다 아니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니, 아니라 하면 모든 법의 이름이니라.
이름이 있으면 곧 공이 아닌 것이니,
아닌 것을 알면 공한 데로 돌아가기 때문에 공이 아니라[非空]고 하느니라.
이른바 식(識)이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니라.
[식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어찌하여 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냐?
세간에 물들지 않으면, 이것은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공에 있되 맑고 고요하면, 이것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느니라.
식은 이것을 버리고 저것에 나아가는지라, 이것은 있는 것이 아니라 하고,
생사의 언덕에 쭈그리고 앉아 중생을 돌보면서 가엾이 여기니, 이것은 없는 것도 아니라[非無]고 하느니라.
변화로 된 몸[化身]으로써 시방 세계에 가득 채우되 변화와 교화[化化]는 공하고 고요한지라, 이것은 있지 않은 것이라 하며,
하나의 식[一識]이 감화(感化)되고 변화로 모두 설법하나니, 이것은 바로 없는 것이 아니라고 하느니라.
여래는 정(定)에 들어가서 몸과 마음이 고요하여 억천 나술(那術)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수(數)의 겁을 지나면서도 일어나고 없어졌다는 생각[起滅想]이 없는지라, 이것은 바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고,
다시 정으로부터 일어나 중생을 접하고 제도하여 무위(無爲)에 이르게 하는지라, 이것은 바로 없는 것이 아니라고 하느니라.
[공과 열반]
어떠하느냐? 최승아, 나는 이제 너를 위하여 낱낱이 있는 것이 아닌 것과 없는 것도 아닌 것을 분별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진공(眞空)이요 열반의 뜻이겠느냐?”
최승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공(空)하고 진실[實]한 것이라 공한 열반이요 진실한 열반이옵니다.”
부처님께서 최승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족성자야, 이것은 공도 아니요 또한 열반도 아니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모두가 세속으로 말미암아 임시로 붙인 이름이요, 권도로 속인[權詐] 문자로써 서로 전(傳)해진 것이니,
때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느니라.
법성의 경계는 모두 단서가 없고 이름의 법조차 없거늘, 어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이 있겠느냐?
높거나 낮은 것을 덜어 버리면 옳다 그르다는 마음이 없으며,
욕심과 성내는 마음이 없고 무명(無明)을 알면서 무명의 마음이 없으면,
5개(蓋)의 모든 속박이 하나[一]임을 분명히 알게 되고, 또한 하나인 것도 보지 않나니,
이것을 바로 공이라 하고 이것을 바로 열반이라 하느니라.”
그때에 최승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훌륭하시고 훌륭하시옵니다. 세존이시여, 공한 성품의 법과 열반의 경계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 함을 말씀하셨사온데 실로 짝할 이가 없사옵니다.”
이 법을 연설하실 때에, 6만의 비구는 본래의 원이던 성문(聲聞)에서 뜻을 대승으로 돌려 모두 불퇴전을 얻었고,
11나술(那術)의 모든 하늘과 세간 사람들이 다 믿음을 다한 행[盡信行]을 얻었으며,
다시 다른 지방의 8십천 보살은 모두 다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다.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멸도에 이르는 열 가지 일의 행]
“보살마하살은 공한 성품[空性]을 알고 열 가지 일[事]의 행이 있으면, 멸도에 이르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 모든 부처님 세존은 항시 법계에 머무르면서 도지(道智)를 버리지 않고,
둘째 모든 부처님 세존은 온갖 것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대비를 버리지 않으며,
셋째 행한 바가 서원과 같고 그 중간에 어긋남이 없으며,
넷째 모든 중생을 제도하되 모든 근(根)이 순숙(純淑)하며,
다섯째 모든 부처님 세존은 모든 법은 공하여 아무 것도 없다고 관하여 알며,
여섯째 모든 부처님 세존은 지혜로 3독 등의 부분은 역시 있는 바가 없다고 분별하며,
일곱째 모든 부처님 세존은 모든 법계에 더함과 덜함을 일으키지 않고,
여덟째 마음을 내어 배움을 일으키되 평등하여 둘이 없으며,
아홉째 여법(如法)한 성품을 알고 본제(本際)를 버리지 않고,
열째 모든 부처님 세존은 모든 도법(道法)은 한 모양[一相]이요 모양이 없음[無相]을 행하느니라.
이것이 바로 족성자야, 보살마하살이 공한 법성을 아는 것으로 이 열 가지 법을 닦으면 열반에 이르게 되느니라.
[공한 법계에 이르는 열 가지 일의 행]
또 보살마하살은 여섯 가지 신통을 수행하여 공한 법계에 이르는 열 가지 일의 행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 과거를 다 관하되 지혜의 광명[慧明]을 잃지 않고,
둘째 미래를 다 관하되 지혜의 광명을 잃지 않으며,
셋째 현재를 다 관하되 지혜의 광명을 잃지 않고,
넷째 5취(趣)의 중생을 관하여 모두 그 근원을 관하여 지혜의 광명을 잃지 않으며,
다섯째 온갖 세간의 나는 것[生者]과 멸하는 것[滅者]을 관하여 지혜의 광명을 잃지 않고,
여섯째 온갖 중생의 유(有)로부터 생기고 유로부터 멸하는 것을 관하여 지혜의 광명을 잃지 않으며,
일곱째 온갖 중생이 무(無)로부터 생기고 무로부터 멸하는 것을 관하여 지혜의 광명을 잃지 않고,
여덟째 도의 마음[道心]이 견고하여 중생을 버리지 않아 지혜의 광명을 잃지 않으며,
아홉째 이것은 제도할 수 있다, 이것은 제도할 수 없다고 분별하는 마음이 없어야 지혜의 광명을 잃지 않고,
열째 법계의 근문(根門)은 이지러지지 않음을 이해해야 지혜의 광명을 잃지 않는 것이니라.
족성자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여섯 가지 신통을 닦아서 공한 법계에 이르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공한 법계에 이르는 열 가지 지혜]
“보살마하살이 공한 법계에 이르려면 마땅히 열 가지 지혜[慧]를 닦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 모든 중생의 여러 가지 마음과 여러 가지 행을 관하여 모두 다 아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의 지혜이니라.
둘째 모든 중생의 여러가지 마음과 여러 가지 과보[報]를 다 알며,
셋째 고요하여 말이 없는 것이 마치 무백 태자(務魄太子)와 같고 중생들이 마음과 뜻으로 아는 바를 다 알며,
넷째 모든 중생들의 다른 마음[異心]과 다른 행[異行]을 알아 부처님의 지혜로써 그들을 가르쳐 주며,
다섯째 오랜 옛적부터 법성을 닦되 연심(衍心)을 버리지 않고,
여섯째 중생을 안온하게 살도록 하고 부처님께서 머무시는 데 머물게 하며,
일곱째 부처님의 거룩한 지혜로써 5취(趣)의 마음ㆍ뜻ㆍ식의 생각을 다 알고,
여덟째 말로 설명할 일이 있을 때는 대승을 버리지 않으며,
아홉째 부처님의 심식(心識)을 얻어 정의(定意)가 어지럽지 않고,
열째 제도하는 마음이 한량없으며 해탈에 처하지 않고 또한 다시 중생이 제도되는 것도 보지 않는 것이니라.
족성자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공한 법계에 이르는 데 닦는 열 가지 지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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