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때 있었던 곳은 인천 연안부두 근처의 외진 곳에 있는 수출용 중고중장비 주기장이었습니다. 이 곳의 비포장도로는 비가 오면 길이 파여 흙탕물이 고이고, 대형차량의 무게를 못이기는 길은 온통 주름지고 여기저기 수렁이 되어 그야말로 진창이었습니다. 게다가 갠 날이 며칠 계속되면 길이 하얗게 말라 차가 오갈 때마다 뽀얗게 일어나는 먼지로 눈을 뜰 수 없는 그야말로 먼지 구덩이였습니다. 길 옆 도랑의 풀들도 온통 먼지를 뒤집어써서 숨이 막혀 죽지않는게 이상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불편한 이 길이 근처에 사는 개들에게는 좋은 놀이터였습니다. 늘 다섯 마리 개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끙긍거리며 뒹굴며 물고 핥으며 놀고 있었으니까요. 어떤 놈은 지나가는 차를 졸린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어떤 놈은 심심하다는 듯이 조금 따라 뛰기도 하였습니다. 이 놈들은 어울려 놀다가도 제 주인의 차 소리를 들으면 어김없이 반갑다고 뛰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 똥개들에게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풀어놓고 기르는 개들이라 때가 되면 저 사는 데로 돌아가서 밥을 먹고 나와서 돌아다니고 날이 어두워지면 들어가 잠을 자니 주인이 이름을 부를 일도 없고, 더구나 아무도 이 똥개들에게 이름을 지어 부르는 이도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주인들이 어차피 복伏날 즈음에 팔아 버리거나, 아니면 다음 해에 팔기로 마음먹었거나, 개소주 집에 가져다 자기 몸보신하는 개소주를 만들어 먹으려고 생각하는 소치였을 테지요.
사실 요즈음에 개가 도둑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니 애완견이 아닌 개의 용도는 너무나 뻔한 것입니다. 이런 개들의 자리는 이미 전자감시 장치가 대신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는 그 개들 중 한 마리가 길에서 네 발로 버티며 개장수에게 질질 끌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 큰 누렁이었는데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여간 불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도 남은 놈들을 보면 목을 홀쳐매어 소리도 못 내고 끌려가던 그 모습이 가끔 생각나곤 하였습니다. 그 날 개 두 마리가 잡혀갔는지 늘 주기장에 있던 제 친구는 이제 주기장에 들어와 똥 쌀 놈이 두 놈이나 없어졌으니 속이 다 시원하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앞 창고의 개 두 마리와 어느 공장의 개인지 모르지만 흰둥이 한 마리만 남았으니까요. 하여튼 이런 와중에서도 앞 창고의 개 두 마리는 언제나 다정하게 서로 핥아주며 옆에 누워 빈둥거리기도 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창고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어김없이 반갑게 꼬리를 흔들고, 가끔 우리가 출근하거나 퇴근할 때면 안다고 그러는지 왕왕 짖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어느 놈인지 우리가 없을 때 뚫린 울타리 밑으로 감쪽같이 들어와서 자갈로 다져놓은 주차장 가운데 똥을 한 무더기 두 무더기 싸 놓는 사고를 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그늘에서 선풍기를 양껏 틀어도 후끈한 열기에 몸이 익는 듯한 그 해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우리 주기장 앞 창고에서 개장수가 낡은 화물용 승합차에 개 한 마리를 마구 끌어넣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놈은 조금의 반항도 못하고 구슬픈 소리를 내면서 차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또 한 마리는 극도의 공포로 인해서 숨었는지 먼저 차에 실렸는지 그 시간에 아무 소리도 움직임도 없었습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가끔 길에 다니는 다른 창고의 개 한 마리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이제 외롭게 다니는 이 한 놈을 보며 아마 앞 창고의 개 두 마리는 다 팔려갔구나 라고 하고 우리는 지레 짐작하였습니다.
일이 바빠서이기도 했지만 혹 생각이 나더라도 우리를 무서워하던 두 마리 개를 다 팔았나보다 할뿐, 똥을 싸 놓고 도망가던 두 놈들이 없어져서 속이 시원하다는 말은 약속한 듯이 아무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보름 지난 어느 날 사실은 그 날 한 마리만 팔려가고, 남은 한 마리는 사료도 거의 안 먹고 실성하여 굶어 죽으려는 듯이 꼼짝도 하지 않고 엎드려 있다는 사실을 주인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팔려 간 개는 한 마리였고 그 개는 보름이 넘도록 먹기를 거부하고 기진하여 죽은 듯이 엎드려 있는 남은 암캐의 새끼였던 것입니다.
* 2004년 7월 23일 쓴 글을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