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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요경 제18권
18. 수품(水品)
1
마음이 깨끗하고 생각이 고요하여
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으면
어리석음의 깊은 연못을 건너가니
기러기가 그 연못을 버리는 것과 같다.
“마음이 깨끗하고 생각이 고요하여, 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으면”이란 무슨 뜻인가?
마음을 깨끗한 데에 매어 두고 항상 방편을 구하여 생사를 벗어나려고 하되, 저 생사를 요술이나 허깨비처럼 보고, 언제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타는 불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깨끗하고 생각이 고요하여, 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으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기러기가 그 연못을 버리는 것과 같다”란 무슨 뜻인가?
그 연못에는 여러 가지 두려운 것이 많고, 또 사냥꾼이 자주 와서 두렵게 하는 것을 알기에 기러기는 그 온갖 어려움을 피해, 그 연못을 버리고 높이 날아간다.
그러므로 “기러기가 그 연못을 버리는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리석음의 깊은 연못을 건너가니”란 무슨 뜻인가?
어리석음의 깊은 연못에 잠겨 그것이 골수에 사무치면, 방편을 구해서 남김없이 영원히 없애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음의 깊은 연못을 건너가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2
비유하면 마치 저 기러기가
공중에서 잠깐 내려와서
위험한 곳을 벗어나
안온한 곳으로 가는 것과 같다.
“비유하면 마치 저 기러기가”란 무슨 뜻인가?
기러기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의 온갖 시달림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안온한 곳을 구한다.
그러므로 “비유하면 마치 저 기러기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공중에서 잠깐 내려와서”란 무슨 뜻인가?
그 몸은 어디라도 걸림없이 날아다니기 때문에, 위태로운 곳을 버리고 편안한 곳으로 갈 수 있다.
그러므로 “공중에서 잠깐 내려와서”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위험한 곳을 벗어나 안온한 곳으로 가는 것과 같다”란 무슨 뜻인가?
현성 제자들과 여래ㆍ등정각은 중생들을 위해, 온갖 악을 버리고 악도(惡道)를 벗어나기를 구하여, 선한 업을 닦고 모든 번뇌를 떠난다.
그러므로 “위험한 곳을 벗어나, 안온한 곳으로 가는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안온한 곳이란, 또한 모든 번뇌가 사라진 열반으로서, 거기에는 생멸이라거나 끊을 집착도 없고, 언제나 변하지 않으며 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저 선정을 얻은 수행하는 사람은 늙음과 병의 핍박을 받아 항상 4백 네 가지의 시달림을 받기 때문에, 4대(大)를 싫어하고 걱정하여, 5음(陰)으로 이루어진 몸을 버리고 열반으로 들어간다.
3
범행을 닦지도 않고
젊어서 재물을 쌓지도 않고
어리석게도 졸면서
옛일만을 생각하고 하는 일이 없다.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공양하실 때가 되어서,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시자 아난(阿難)을 데리고 이 염부리(閻浮利)를 관찰하시다가, 어떤 두 늙은이가 초췌한 행색으로 등을 꾸부리고 걸어가는 것을 보셨다.
곧 부처님께서 웃으셨다.
그러자 아난은 다시 가사를 단정히 한 다음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끊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헛되이 웃으시지 않으시니, 웃으시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 습니다. 지금 웃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행색이 초췌한 저 두 늙은이가 보이느냐? 만일 저들이 이 사위국에서, 젊었을 때부터 재산을 모았더라면 이 나라에서 첫째가는 부자가 되었을 것이요, 또 만일 처자와 살림을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웠더라면 오래 전에 아라한이 되었을 것이다. 또 만일 적은 재물을 쌓되 만족할 줄 알았더라면 오늘날에는 이 성안에서 둘째가는 부자가 되었을 것이요, 만일 출가하여 도를 배웠더라면 아나함(阿那含)의 과(果)를 얻었을 것이다.
또 만일 저들이 중년에 시작해 지금까지 재물을 쌓았더라면 넉넉히 셋째가는 부자가 되었을 것이요, 출가하여 도를 배웠더라면 사다함(斯陀含)의 과(果)를 얻었을 것이다. 저들은 본래의 원을 어기고서 근본을 버리고 끝을 따랐기 때문에 지금 고생하면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갖가지 병으로 고생하는 것이니, 이를 가엾이 여기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이치를 관찰하시고는, 후세의 중생들을 위해 큰 광명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범행을 닦지도 않고
젊어서 재물을 쌓지도 않으면
연못을 엿보는 두루미와 같으니
옛일을 생각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리.
마치 늙은 두루미가 연못가를 지키고 서서, 물고기가 상류로 올라오면 잡아먹기 위해, 종일토록 마음을 졸였으나 끝내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쉬지 않고 마음을 쓰는 동안에 스스로 목숨을 마치는 것과 같다.
늙으면 늙음의 법이 있고 젊으면 젊은 힘이 있다. 저 두루미는 늙은 몸을 가지고 젊은 힘을 행세하려 하되, 날이 다하도록 그 원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그것은 다만 젊어서 물고기를 잡던 생각만을 하고 자신이 이미 늙은 것은 생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저 늙은 장로 비구들도 그와 같아서 젊었을 때에 노래와 춤과 웃음과 도박으로 즐기던 일만을 생각하고, 이제는 늙은이가 된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릎을 싸고 쭈그리고 앉아 지나간 일을 생각하니, 그것은 늙음의 법은 행하지 않고 다만 젊었을 때의 일만을 생각하여 갖가지를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못을 엿보는 두루미와 같으니, 옛일을 생각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4
조그만 악이라고 가벼이 여겨서
재앙이 없다고 하지 말라.
물방울이 아무리 조그맣더라도
점점 모이면 큰 그릇을 채우니
무릇 가득한 저 큰 죄악도
작은 것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조그만 악이라고 가벼이 여겨서, 재앙이 없다고 하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사람이 악을 행할 때 그것이 비록 작더라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독사가 아무리 작아도 사람을 물면, 그 독이 온몸에 두루 퍼져 끝내 목숨을 잃게 된다.
사람의 죄악도 그와 같아서, 그것이 아무리 작더라도 사람의 바른 행을 방해하여 구경(究竟)에 이르지 못하게 하며, 뒷일을 생각하지 않다가 장래에 그 과보를 받는다. 날마다 그것을 되풀이하면서 고치려고도 하지 않고 멀리하려고도 생각하지 않으면, 그 악은 계속 불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조그만 악이라고 가벼이 여겨서, 재앙이 없다고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물방울이 아무리 조그맣더라도, 점점 모이면 큰 그릇을 채우니”란 무슨 뜻인가?
마치 큰 그릇을 놓고 새는 물을 받으면 방울방울 자꾸 떨어져서 그 그릇을 채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물방울이 아무리 조그맣더라도, 점점 모이면 큰 그릇을 채우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무릇 가득한 저 큰 죄악도 작은 것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란 무슨 뜻인가?
어리석은 사람은 나쁜 행을 익히되 작은 것에서 큰 것에 이르고, 날마다 그것을 즐겨 익히면서 재앙이 닥치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릇 가득한 저 죄악도, 작은 것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5
조그만 선이라고 가벼이 여겨서
복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물방울이 아무리 조그맣더라도
점점 모이면 큰 그릇을 채우니
무릇 가득한 저 큰 복도
작은 것들이 쌓인 것이다.
“조그만 선이라고 가벼이 여겨서, 복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마치 어떤 선한 사람이 절에 가서 예배하고 복을 구할 때에, 등불을 켜서 올리거나 향을 사르거나, 물을 뿌려 청소를 하거나 음악을 연주하거나, 비단 번기와 일산을 달더라도, 적은 돈에서부터 시작한다.
또 남에게 보시할 마음을 내게 하여 한 덩이의 밥을 대중에게 공양하게 하거나, 혹은 칫솔[楊枝]과 깨끗한 물을 공급하여 청정하게 하거나 혹은 기름 등불을 켜서 계속 밝게 하는 이러한 조그만 일들도 가벼이 여길 것이 아니니, 그것은 그 마음에 의해 한량없는 복을 받기 때문이다. 등불 하나를 켜면 집안의 어둠을 몰아내어 어둠의 자취를 알지 못하고, 고운 향을 사르면 더러운 냄새를 없애어, 그 냄새의 간 곳을 모르는 것과 같다.
잘 드는 칼이 비록 작더라도 해로운 나무를 끊는 것처럼 선한 행이 아무리 작더라도 무거운 죄를 없애기 때문에 천상과 인간 세상을 왕래하면서 다시는 고통을 받지 않는다. 여기저기로 옮겨 가면서도 한량없이 복을 받는 것은 현재에도 알 수 있다. 물방울이 계속 끊이지 않고 떨어져 드디어 큰 그릇을 채우듯이, 용감한 사람은 복을 행하여 점점 그것을 성취한다.
그러므로 “무릇 가득한 저 큰 복도, 작은 것들이 쌓인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6
마치 세상 사람들이 강을 건널 때
뗏목을 튼튼히 만드는 것과 같다.
피안으로 가고자 하나 건너지 못하니
지혜로운 이라야 비로소 건넌다.
“뗏목을 튼튼히 만드는 것과 같다”란 무슨 뜻인가?
저 중생들이 깊은 못을 건너려고 할 때에, 혹은 뗏목으로 건너거나 혹은 배를 타고 건너거나, 혹은 큰 배를 타거나 작은 배를 타거나 혹은 풀과 나무로 뗏목을 만들거나 하여서, 모두 무사히 피안에 이른다.
그러므로 “마치 세상 사람들이 강을 건널 때, 뗏목을 튼튼히 만드는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피안으로 가고자 하나 건너지 못하니”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애욕의 연못은 깊은 근원에서 흘러 나와 강을 이루는 것과 같아서, 삼계에 두루 가득 차 다시 삼계로 향해 흐르면서, 4생(生)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5도(道)를 윤회하기도 하며, 또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 따위로 흘러간다.
그러므로 “피안으로 가고자 하나 건너지 못하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지혜로운 이라야 비로소 건넌다”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지혜로운 사람이란 바로 벽지불(辟支佛)이다. 세상의 연못을 건넌다는 것은 그리 장할 것이 없다. 왜냐 하면 세상의 연못은 다함이 없기 때문이니, 애욕의 못을 건넌 사람이라야 비로소 장하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라야 비로소 건넌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7
부처님은 이미 건너가셨고
범지는 나루로 건너갔으며
비구는 깊은 연못에서 목욕하고
성문은 튼튼한 뗏목을 만든다.
옛날 범지인 두 명의 큰 스승이 있었다. 그들은 파라리불다라(波羅利弗多羅)의 큰 성(城)을 만들었는데, 공사를 마치고 장식을 다 끝낸 뒤에, 부처님과 대중을 성안으로 청하여 공양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 그 성에 있는 모든 문의 이름을 짓지 못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구담(瞿曇) 사문이 어느 문으로 나오시면 그 문을 구담의 문이라고 이름하고 또 부처님께서 긍가(恒伽)의 물을 건너시면 그 나루를 구담의 나루라고 이름하리라.’
그리고 범지는 다시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 뗏목을 타고 건너시려는지, 배를 타고 건너시려는지, 큰 바가지를 띄우시려는지, 혹은 작은 배를 타고 건너시려는지 알 수 없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이 범지의 생각을 아시고, 곧 신력으로써 비구 대중과 함께, 어느새 물을 건너 저쪽 언덕에 계셨다.
그리고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부처님은 이미 건너가셨고
범지는 나루로 건너갔으며
비구는 깊은 연못에서 목욕하고
성문은 튼튼한 뗏목을 만든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마치시고 절로 돌아가셨다.
그때에 대중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8
이 샘물은 무엇에 쓰려는가?
그 물은 언제나 가득 차 있구나.
애욕의 근본을 빼어 버리면
다시 그 무엇을 바랄 것인가.
“이 샘물은 무엇에 쓰려는가? 그 물은 언제나 가득 차 있구나”란 무슨 뜻인가?
이 3유(有)를 샘물에 비유하였고, 또 애욕을 샘물이라고도 말한다. 물이 언제나 가득 차 있다는 것은 모든 번뇌가 다 애욕의 샘물에 모여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샘물을 무엇에 쓰려는가? 그 물은 언제나 가득 차 있구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애욕의 근본을 빼어 버리면, 다시 그 무엇을 바랄 것인가”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애욕의 근본을 뽑아 버리면 다시는 생사가 없다.
마치 저 해로운 나무 뿌리를 영원히 끊어 버리면, 거기에 다시는 가지나 잎이 나지 않는 것처럼, 애욕도 그와 같아서 다시는 가지나 잎이 없다는 것이다.
“그 근본을 빼어 버리면, 다시 그 무엇을 바랄 것인가?”란, 즉 다시는 몸을 받아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그 무엇을 바랄 것인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9
저 뱃사공은 배를 손보고
활잡이는 뿔을 다루며
솜씨 좋은 목수는 나무를 다루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 몸을 다룬다.
“저 뱃사공은 배를 손보고”란 무슨 뜻인가?
뱃사공은 배의 용골대를 튼튼히 만들고, 배 안의 구멍을 막아 물이 새어 들지 않게 하여, 중생들을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네 준다.
활잡이는 짐승의 뿔이나 힘줄을 알맞게 다루고 불에 잘 구우면, 그 뿔이나 힘줄은 아무리 써도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 뱃사공은 배를 손보고, 활잡이는 뿔을 다루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솜씨 좋은 목수는 나무를 다루고”란 무슨 뜻인가?
먹줄을 똑바로 튀겨서 높거나 낮게 하지 않으면, 짓고 싶은 궁전이나 집을 마음대로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니,
그러므로 “솜씨 좋은 목수는 나무를 다루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몸을 다룬다”란 무슨 뜻인가?
항상 바른 가르침을 따라 계율을 허물지 않고, 경전의 깊은 이치를 탐구하면서 상인(上人)의 법을 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 몸을 다룬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0
마치 저 깊은 샘물이
속속들이 맑은 것처럼
법을 듣는 마음이 그와 같으면
지혜로운 사람은 기뻐하나니.
“마치 저 깊은 샘물이 속속들이 맑은 것처럼”이란 무슨 뜻인가?
이러한 게송으로써 밝힌 까닭은,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 말하면 잘 알아듣기 때문이다.
어떤 샘물은 깊어도 항상 흐려 있어 맑지 않고, 어떤 샘물은 깊고도 맑아 거기에 얼굴을 비춰 보면 그 얼굴이 모두 나타난다.
그러므로 “마치 저 깊은 샘물이, 속속들이 맑은 것처럼”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법을 듣는 마음이 그와 같으면, 지혜로운 사람은 기뻐하나니”란 무슨 뜻인가?
옛날 어떤 국왕이 세상 법률에 염증을 느끼고 세속의 일에 매우 지쳐서 절에 가서 바른 설법을 들으려고 하였다.
어느 날 상력(象力) 비구가 아라한으로서 마침 설법할 차례가 되었다. 그때에 그 국왕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신을 신은 채 대중 속에 들어가 설법을 들으려고 하였다.
그 아라한 비구가 왕에게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의 법에 ‘신을 신은 사람에게는 설법하지 말라.’라고 하였소.”
왕은 잔뜩 화가 났지만 곧 신었던 신을 벗었다. 그러자 아라한 비구가 또 왕에게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는 또 ‘두건을 쓴 이에게는 설법하지 말라.’라고 하셨소.”
왕은 이 말을 듣고 더욱 화가 나 가만히 생각하였다.
‘아아, 나는 지금 이 비구에게 창피를 당하였다. 이 비구는 벗겨지고 하얗게 된 내 머리를 일부러 드러내게 하여, 창피를 주려는 것이다. 만일 비구가 설법하여 그 말이 내 귀에 전달되지 않으면 나는 그 머리를 베리라.’
왕은 곧 두건을 벗고 말하였다.
“사문은 속히 나를 위해 설법하시오.”
비구는 대답하였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또 이렇게 분부하셨소. 즉,
‘성난 이에게는 설법하지 말라.’라고 하셨소.
지금 왕은 성을 내고 있는데 어떻게 설법하겠소.
왕은 부디 마음을 바르게 하고 내가 말하는 비유를 들으시오.
마치 흐린 샘물이 쉬지 않고 솟는 것처럼, 왕도 지금 그처럼 마음이 매우 어지러워져 있는데, 어떻게 법을 들을 수 있겠소.”
그때에 왕은 마음속으로 몹시 부끄러워하며 곧 공경하는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이 비구는 틀림없이 성인이다. 그러기에 사람의 마음을 살펴서 환히 아는 것이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엎드려, 그의 발에 머리를 대어 예배하고 말하였다.
“원컨대, 거룩한 존자님께서는 저를 위해 설법하셔서 이 더러운 몸으로 하여금 영원히 그 은덕을 입게 하소서.”
그리고 왕은 자리에 앉아 법을 들으려 하였다.
그때에 비구는 왕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마치 저 깊은 샘물이
속속들이 맑은 것처럼
법을 듣는 마음이 그와 같으면
지혜로운 사람은 기뻐하나니.
그리고 거듭 설법하여서 왕의 마음을 뛸 듯이 기쁘게 하였으며, 도(道)의 근본과 신심이 흔들리지 않게 하였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기뻐하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1
참는 마음은 저 땅과 같고
흔들리지 않는 것은 수미산과 같으며
맑기는 저 맑은 샘물과 같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어지럽지 않다.
“참는 마음은 저 땅과 같고”란 무슨 뜻인가?
마치 저 땅은 깨끗한 것도 받고 더러운 것도 받으면서,
‘나는 이것은 받으리라. 이것은 버리리라.’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수행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누가 칭찬을 한다고 하여 기뻐하지 않고, 누가 비방을 한다고 하여 슬퍼하지 않으며, 선을 보고도 기뻐하지 않고 악을 보고도 성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참는 마음은 저 땅과 같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수미산과 같으며”란 무슨 뜻인가?
마치 저 수미산만이 홀로 여러 산들과 같이 있으면서 사나운 바람에도 끄떡하지 않는 것처럼, 현성도 그와 같아서 네 가지 공양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흔들리지 않는 것은 수미산과 같으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맑기는 저 맑은 샘물과 같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어지럽지 않다”란 무슨 뜻인가?
마치 저 맑은 샘물이 속속들이 맑아, 작은 물 때문에 흐려지지 않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도 그와 같아서 마음에 그릇된 생각이 없으므로 외부의 적들이 들어오지 못하며, 그 마음은 금강(金剛)과 같아서 부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맑기는 저 맑은 샘물과 같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어지럽지 않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수품(水品) 제18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