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09(목)
잠14:1-16
“소가 없으면 구유가 깨끝하지만 풍성한 수확은 소의 힘에서 나오는 법이다.”(14:4)
두란노서원에서 큐티사역을 할 때이다. 안양의 교회에서 2주차 사역을 하고 있는데 서울 강북쪽으로 3주차 강의를 변경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두 교회 모두 3주 강의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다음주 강북의 교회에 갔다. 지하 1층에 있는 미자립교회였다. 목사님과 사모님 부목사님 부부, 성도 2명이 모여 있었다. 목사님은 성격이 예민해 보였고, 목회사역에 대하여 많은 아픔이 있으신 분이었다. 담임목사님은 세미나에 참여하지 않은채 3주차 강의를 진행하였다. 세미나후 사모님, 부교역자 부부, 성도들의 얼굴은 기쁨이 있었다. 세미나후 찬 한잔 하는 시간이 있었다. 사모님의 얘기인즉은 큐티를 사모하여 두란노서원에 세미나를 간곡히 요청을 했다고 한다. 교회 규모가 세미나를 진행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서 두란노 행정사역자가 결정을 못하고 있는데 본부장 목사님의 결단으로 진행된 세미나였다. 1-2주를 진행한 강사가 급한 사정이 생겨서 내가 가게 된것이었다. 당시 두란노에서는 사역이 없는 강사가 있었는데 그 분이 안양으로 오고 나보고 변경하라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했던 터이다. 차담회로 은혜를 나누고 교회를 나왔다. 여집사님 한 분이 따라나오셨다. 큰 길까지 걸어오면서 말씀에 대해서 나누었다.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데 갑자기 집사님 죄송해요 택시타고 가세요. 하면서 황급히 돌아서서 간다. 세번 접은 지폐가 내 손에 들려져 있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면서 가정을 책임지며 미자립 개척교회를 섬기시고 있던 분이다. 무어라 표현 할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오늘 본문 14장1절 지혜로운 여자를 읽는데 그 여집사님과 사모님, 부목사 부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모습은 기억이 안난다. 그분들을 보았을 때의 느낌이 생생하게 떠 오른다.
“지혜로운 여자는 자기 집을 짓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자기 손으로 집을 무너뜨린다.”(14:1) 여기서 집은 집과 장막을 의미한다. 또한 비유적으로 육체, 영혼을 뜻하기도 한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자기 집과 육체와 영혼을 건축하고 잘 산다. 어리석은 사람은 집을 잃고 건강과 영적 기쁨과 생명을 무너뜨린다로 이해한다.
지혜는 말씀을 대하는 마음이요 태도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을 사랑하며 두려움으로 대한다. 말씀을 기억하며 하루종일 암송한다. 말씀대로 살려고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오늘날은 QT 혹은 말씀묵상이라고 한다. 나는 QT와 묵상을 동일개념으로 사용한다.(구분하는 사람들도 있다) 온누리교회와 두란노서원관련해서는 QT라고 하고, 다른 경우에는 말씀묵상이라 한다. 아직 QT라고 사용하는 것은 내 말씀 묵상의 뿌리가 온누리교회이고, 사역의 문을 열어준 곳이 두란노 천만 큐티 운동본부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빚과 못 이룬 꿈이 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말씀을 무시하고 비웃는 사람이다, 죄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당장 눈 앞에 자기 좋은대로 행하는 사람이다. 말씀은 경시하면서 자기의 생각과 세상의 온갖 말을 쫒아간다.
사모님과 부교역자 부부, 집사님 두 분은 말씀에 대한 갈망함이 있었다. 사모하고 애타는 마음을 느꼈다. 분위기에 휩쓸려 2시간 강의 가 3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보통 세미나 후 피드백을 받으면 시간 초과는 큰 비율로 지적이 나온다. 강사로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시간을 지킨다. 훈련이 되어 있다. 그러나 그 교회에서의 반응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말씀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이것이 내가 10년 지났지만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이다. 그 교회 사모님과 성도들이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미자립 개척교회로 10년이 넘은 교회다. 성도의 삶이 어려움이 없을리 없지만은 그분들의 표정에서는 기쁨이 있었다. 최선을 다해 일터에서 일하고 온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는 분들이다. “지혜로운 여자는 자기 집을 짓지만”(14:1) 말씀이 성도님들의 삶과 교회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묵상을 기록하고 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마음이 훈훈하다. 내 얼굴은 빙그레 미소 짓고 있다.
“소가 없으면 구유가 깨끝하지만 풍성한 수확은 소의 힘에서 나오는 법이다.”(14:4) 구유는 먹이통이다. 먹이통이 깨끝하면 소가 먹이를 먹은 적이 없는 것이다. 앞으로 먹을 것도 없다. 구유에 먹이가 없으면 규유에 먹이를 공급할 외양간, 마구간에 먹이가 없다는 것이다. 먹이가 없다는 것은 주인이 소가 없거나 게을러서 소 먹이를 준비하지 않은 것이다. 여러 가지 정황상 소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는 풍성한 수확의 기본이다. 소가 없으면 수확이 적고 수확이 적으면 계속 가난해진다는 것이다. 부지런한 자, 여물통을 채워 소를 키우는 자는 더욱 풍요롭게 될 것이며, 농사와 작업의 기본인 소가 없으면 계속 가난해진다. 부지런함과 게으름에 대한 잠언이다.
강북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교회의 사모님, 교역자부부, 집사님들의 말씀에 대한 갈망은 새끼송아지를 얻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열심히 구유룰 채우고 있는 것은 그들이 큐티세미나를 열어 QT를 하려고 하는 열정과 소원이다. 사람이 보기에도 아름답다.
“마음의 고통은 자기만 알고 마음의 기쁨도 다른 사람과 나누지 못한다.”(14:10)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의 크기와 깊이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혼자만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다. 묵묵히 견디며 살아야 한다. 절대 고독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기쁨도 그 원인을 다른 사람과 나눌수 없는 것도 있다. 모두를 나눌 수는 없다. 그리고 조심해야 할 것은 나의는 기쁨과 성취가 높다면 이것을 알리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해결 할수 없는 고통과 문제로 인해 한숨 쉬며, 눈물짓는 이웃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알리지 말고 자랑하지 말며 하나님께 조용히 올려드리고, 만약에 알려야 할 상황이면 조심스럽게 주의해서 조용히 알려야 할 것이다.
14장 10절은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며 사람들과는 거리가 있으며 오직 하나님 앞에서 고독하게 일대일로 대면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통도 기쁨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아뢰어야 한다. 혹시 누군가 좋은 친구가 있어 고통과 기쁨의 중심까지 많은 부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다. 나에게 이런 복이 없슴이 안타깝다. 하늘을 바라본다.
“어리석은 사람은 온갖 말을 믿으나 현명한 사람은 생각하고 그 길을 살핀다.”(14:15)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누가 어떤 말을 하면 좋을 것 같으면 무조건 동의한다. 나중에 그것이 옳지 않다거나 나에게 적합하지 않은 말이라도 그냥 묵묵히 갈 때가 많다. 그럴 경우 마음이 아프고 힘이 든다, 또 다른 경우는 나중에 수정 하려할 경우이다. 더 많은 노력이 들고 신뢰가 깨어진다. 나는 참 고달픈 사람이다. 주변의 많은 목사님들이 현명하게 생각하고 그 길을 살핀 후에 말을 하는 경우를 보고 있다. 나도 닮고 싶다.
온갖 말을 들을 때에 현명하게 생각하고,
주의 뜻을 구한 후에
말을 할 수 있게 해주실 아버지.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