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반야바라밀경 파취착불괴가명론 하권
26. 유위법을 관찰하여 머무름이 없는 열반을 증득하다
이 머무름이 없는 열반은 유위법을 관찰한 연후에야 비로소 증득할 수 있다.
어떻게 관찰하는가?
경에 이르기를
“그때 세존께서 게송을 설하셨다”고 하였다.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별과 삼눈[翳]과 등불과 환상과 같고
이슬과 물거품과 꿈과 번개와 구름과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
지금 이 게송 가운데 유위법의 아홉 가지 실체와 모습을 관찰함을 말하였다.
어떤 것을 아홉 가지라고 말하는가?
이른바 자재(自在)함을 관찰하는 것이고,
대상 물질을 관찰하는 것이며,
옮겨감[遷]과 움직임[動]을 관찰하는 것이며,
실체와 자성을 관찰하는 것이며,
젊고 장성함을 관찰하는 것이며,
목숨을 관찰하는 것이며,
작자(作者)를 관찰하는 것이며,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며,
있고 없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자재함을 관찰한다’하는 것은 별과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별들은 형상을 허공에 붙여 방향을 따라 운행하며 광채[光色]가 치성(熾盛)해지니 가령 이 별이 오래도록 머문다 해도 마침내는 법을 따라 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와 같은 인천(人天)은 모든 복의 과보를 받아서 재물이 풍부하고 지위가 귀하고 막중하여 대중들이 우러러보는 이것이 비록 자재하긴 하지만 마침내는 공(空)으로 돌아가고 만다.
‘대상 물질을 관찰한다’는 말은 눈에 백태가 낀 것[瞖]과 같은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눈병이 나면 깨끗한 허공 가운데 솜뭉치[毛輪]나 떠다니는 꽃잎[飛花]이 보이거나 달이 두 개로 보이는 것과 같다.
밝지 않은 눈먼 인식작용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진실한 이치인 아무 물질도 없는 곳에서 안팎 세간과 출세간의 가지가지 모든 법을 보게 된다.
‘옮겨가는 움직임[遷動]을 관찰한다’하는 것은 등불과 같은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등의 불꽃이 생겨난 자리에서 소멸되고 다른 곳에 이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불꽃으로 인하여 다른 곳에서도 불꽃이 생겨나듯이 생각마다 계속 이어져 옮겨감과 움직임이 있는 것처럼
중생도 또한 그러하여 앞 세계의 모든 온(蘊)은 앞 세계에서 사라지고 다른 세계에 가지는 못한다.
그러나 앞의 온으로 인하여 뒤 세계의 온이 생겨나 서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그 형상은 마치 옮겨가고 움직이는 듯하니, 모든 범부들이 자주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실체와 성품을 관찰한다’는 것은 환상[幻]과 같은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환상의 힘으로 인하여 변화로 여인의 용모를 만들어 놓으면 실체와 성품이 있지도 않은데도 그것을 보면 깨닫지 못한 사람은 진실한 것이라고 집착한다.
모든 법도 이와 같아서 허망한 인연을 따라 생긴 것이라서 애초부터 실체가 없는 것인데 진실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실체가 있는 것이라는 견해를 내게 된다.
‘젊고 장성함을 관찰한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면 마치 아침 이슬과 같아서 해가 떠오르면 곧 말라버린다.
성년(盛年)의 용모와 형색도 이와 같아서 한번 무상(無常)함을 만나면 이미 쇠퇴하여 사라지게 된다.
‘목숨을 관찰한다’하는 것은 물거품과 같은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물거품과 같아서 혹 처음 생겨날 때부터 실체와 형상을 이룩하지 못하거나, 혹은 겨우 생겨나자마자 잠깐 동안 머물러 있다가 곧 다시 흩어져 소멸되듯이 목숨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혹 처음에 생(生)에 의탁하여 태속에 감추어져 있다가 생을 받아 태어난 뒤엔 어린아이가 되었다가 소년ㆍ중년, 나아가 마침내 쇠퇴하여 늙어지게 되면 무너져 소멸하고 만다.
‘작자(作者)를 관찰한다’하는 것은 꿈과 같은 것이니,
비유하면 꿈속에서 먼저 보고 듣고 기억하고 생각하고 분별하고 훈습된 일을 따라 머물게 되는 것처럼 비록 작자가 없다 하더라도 갖가지 경계가 분명하게 눈앞에 나타난다.
이와 같이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과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번뇌와 선(善)ㆍ불선(不善)의 업(業)이 있어서 거기에 훈습된 채 머무니, 비록 내가 짓는 행위의 실체가 아니라 하더라도 끝없는 생사(生死) 등의 일이 나타나는 것이다.
‘마음을 관찰한다’하는 것은 번개와 같은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번개의 빛이 생겨날 때에 즉시 소멸하는 것처럼 마음도 이와 같아서 찰나(刹那)에 반드시 소멸하고 만다.
‘있고 없음을 관찰한다’하는 것은 구름과 같은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공중에 구름이 먼저는 없다가 뒤에 별안간 생겨나고 잠시 후엔 또다시 소멸하는 것처럼 유위(有爲)의 모든 법도 이와 같아서 실체와 자성도 본래 공(空)한 것이건만 허망한 인연을 따라 존재하다가 인연이 흩어지면 도로 무(無)로 돌아가고 만다.
또 먼저는 속제(俗諦)에 의거하여 별 등 아홉 가지로써 비유를 들어 유위법을 안립(安立)하였고,
나중에는 중론(中論) 제일의(第一義)에 의거하여 모든 법은 소멸하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으며, 끊어져 없어지지도 않고 항상 존재하지도 않으며, 하나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또한 반야바라밀 가운데 모든 법은 쌓이거나 머무는 성품이 아니라는 것으로 이 게송을 해석하였다.
그 뜻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마치 별빛과 같아서 자체가 항상 소멸하는 것처럼
유위법도 그러하여 그 성품이 항상 변천하여 없어진다.
비유하면 사람의 눈병과 같아서 비록 작용은 없더라도 병의 인연 때문에 생겨나는 것처럼
유위법도 그러해서 다만 인연을 따라 일어난다.
비유하면 등(燈)의 불꽃과 같아서 생각마다 꺼져버리듯이
유위의 법도 이와 같아서 찰나라도 머무르지 않는다.
비유하면 환술(幻術)로 만들어놓은 것과 같아서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을 진실하고 항상한 것이라고 집착하여 어리석은 범부들이 실상이라고 빠져들 듯이
유위법에 집착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비유하면 마치 아침 이슬과 같아서
물질에 있어서는 비록 번창한다 해도 그 실체는 오직 하나인 것처럼
이른바 유위의 내온(內蘊:身)을 불어나게 하고 윤택하게 하여 생(生)마다 다름이 있을지라도 본래의 성품은 같은 것이니 모두가 애욕을 바탕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마치 많이 모인 물이 원인이 되어 빗방울이 물거품을 이루면서 각각 따로 생겨났다가 각각 따로 소멸하듯이
중생들의 모든 행업(行業)도 또한 이와 같아서 8만 4천이 각각 따로 생기고 따로 소멸한다.
비유하면 마치 꿈속의 경계와 같아서
온다 해도 온 곳이 없는데 저들은 꿈속의 마음을 가지고 부질없이 온 곳에 집착하고 있는 것과 같다.
유위의 법도 그러하여 온 곳을 얻을 수 없는데 무명(無明)의 혼몽한 인식작용이 망령되게 온 곳에 집착한다.
비유하면 마치 번개[奔電]와 같아서
그 성품은 변천해 움직이지 않으나 앞의 처소에서 앞의 것은 소멸하고 뒤의 처소에서 뒤의 것이 생겨나며 그 모습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간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위의 모든 법이 가는 것도 이와 같다.
비유하면 마치 허공의 구름과 같아서 항상 쌓이거나 머물지 않는 것처럼
유위법의 모습도 이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이와 같은 이름은 세속제(世俗諦)에 의거한 것이기 때문에 유위법을 안립(安立)하였지만,
중론(中論) 가운데에서는 진실하여 생겨나지 않는 등의 이치를 성립하고 있으니 유위법에 대하여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만 한다.
이것은 또 무슨 뜻인가?
저 논(論) 가운데서는 자생(自生)ㆍ타생(他生)ㆍ자타공생(自他共生)ㆍ무인생(無因生)으로 모든 법을 관찰해보면 본래 생겨나는 이치가 없다고 한다.
이와 같은 것은 눈병이 난 사람과 비슷하여
유위법이 생겨난다 해도 이 법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별빛이 소멸함이 있다고 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
유위법도 그처럼 마땅히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또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 등불 자체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어찌 찰나라도 끊어져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유위법이 단멸하지 않음도 이와 같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또 생겨나는 것이 아니어서 환술(幻術)로 만들어 놓은 것과 같기 때문에
유위의 법은 항상 존재하는 이치가 없고 마땅히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치를 알아야만 한다.
또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침 이슬과 같으니,
유위의 모든 법도 한결같이 지속되는 이치가 성립될 수 없다.
애욕이 생겨남을 윤택하게 하며 이치에 계합되지 않기 때문에 마땅히 한결같이 지속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만 한다.
또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물거품과 같으니,
차별성이 있는 유위의 법은 그 성품이 다르다는 이치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니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또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꿈속에서 보는 경계와 같으니,
유위의 법은 본래 오는 이치가 없다.
그러므로 오는 것이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또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번개의 빛과 같으니,
생겨나고 소멸되는 법도 이와 비슷하므로 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치와 서로 맞지 않다.
그러므로 가는 것이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또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름과 같으니,
그 자체도 오히려 존재하는 실체가 아닌데 어떻게 쌓이고 머무르겠는가?
이와 같은 이치를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게송을 설하리라.
지금 나 공덕시(功德施)는
모든 미혹과 집착을 깨뜨리기 위하여
중관문(中觀門)을 열어
이 경의 뜻을 대략 서술하였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의 무리는
보고 듣고 이 경을 받아 지녀
진제를 비추고 속제를 무너뜨리지 않아야
밝고 또렷한 마음 걸림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