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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영락경 제5권
16. 비유식비무식품(非有識非無識品)
[식(識)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
그때 형향(形響)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번에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중생의 근본을 이미 말씀하신 것을 들었나이다.
저는 오늘 부처님의 위신(威神)을 입고서 ‘식(識)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을 말하고자 하나이다.
오직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만 허락하여 주시오면 감히 나서서 설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족성자여, 설하기를 원하거든 설하여 보아라.”
형향보살이 곧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중생의 근원을 아시려는
세존의 크나큰 서원,
신령스런 존자의 가르치심을
오늘 이미 들었나이다.
본래 무수한 부처님으로부터
이 요법(要法) 듣기를 항상 구했나니
이제야 성존(聖尊)의 가르치심 입어
‘있음’과 ‘없음’의 가르치심을 들었나이다.
옛적에 저는 수없는 겁에
여러 부처님을 받들어 섬겨서
저는 지금 이미
음향ㆍ변재에 으뜸을 얻었나이다.
모습 또한 모습이 있지 않고
또한 ‘있음’, ‘없음’도 보지 않아서
티끌도 없고 온갖 때도 없으시니
지금의 호칭은 ‘인중존(人中尊)’이라네.
사람의 남[生]은 본래 남이 없거니
하물며 나에게 다시 남이 있으리오.
내가 ‘남이 없는’ 뜻으로써
적은 지혜의 근본을 말하려 하나이다.
감히 어리석은 정(情)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치심 펴려 하지 않나니
옛적의 행한 근본을 스스로 기억해서
오직 들은 걸 감히 의심하지 않을 뿐이로다.
나고 죽음에 한량이 없어
몸을 받고 다시 몸 받나니
마지막엔 의심만 품고서
오직 부연하시는 것 듣기만 하나이다.
그때에 형향보살이 이 게송을 설하고 나서는 부처님 앞에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으뜸가는 진리[第一義]를 이해해서 저 식(識)과 이 식(識)을 구별하지 않는 것을 소위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다고 말하나이다.
행에 집착함이 있음도 보지 않고 행에 집착함이 없음도 보지 않으며,
모든 법은 한 모습[一相]이어서 다 없기도 하고 다 있기도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이라고 말하나이다.
종성을 분별하여서
‘이것은 청정한 식이다’, ‘이것은 청정한 식이 아니다’,
‘나의 상호는 성취되었다’, ‘저의 상호는 성취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능히 관하여 요달해도 있는 바가 없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이라고 말하나이다.
시절을 분별하여서 모든 부처님을 뵙는데, 이 겁에는 부처님이 있고 저 겁에는 부처님이 없어도 부처님이 있다고 희열을 품지 말고 부처님이 없어도 다시 슬퍼하지 말지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이라고 말하나이다.
제가 다시 중생의 무리에서 권도의 방편이 있는 자와 권도의 방편이 없는 자를 관하여 보는데, 그 가운데에서 상념의 행을 일으키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보살의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이라고 말하나이다.
다시 중생을 관해서 그 연세의 한정된 수(數)를 아나니,
어떤 중생은 마땅히 앞의 겁으로부터 제도를 얻을 자가 있고,
어떤 중생은 마땅히 뒤의 겁으로부터 제도를 얻을 자가 있고,
어떤 중생은 응당히 현재의 겁으로부터 제도를 얻을 자가 있으며,
또한 이 겁에서 제도함 있음과 제도함 없음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의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이라고 말하나이다.”
그때 보살이 있었으니 이름이 중상구족(衆相具足)이었다. 그 보살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도 또한 부처님 앞에서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을 감히 설하고자 합니다.”
다시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써 게송을 설하였다.
항하 모래수의 부처님에게서
이 온갖 덕의 업을 짓고
마음으로 등정각을 생각해
행을 쌓아 전생 일[宿命]을 아시네.
나[我]와 남[人]과 수명에 집착하지 않고
나고 죽음에 근본 없어
도의 모습은 형상의 조짐도 없음이니
이제 인중존(人中尊)을 만났네.
3세(世)의 평등한 지혜는
식(識)도 아니고 식 없음도 아니니,
행이 다하매 행을 짓지 않아
곧 제자에게 결단[決]을 맡겼어라.
하나의 식은 또한 하나가 없으니
깊은 법요(法要)를 깨쳐서
여러 부처님의 세계인
한량없는 부처님 국토를 초월하도다.
본래 무수한 세상[世]으로부터
설하심 듣고서 깨침을 얻었나니
원컨대, 부처님 앞에서
식이면서 식 없음 설하심을 듣고자 하나이다.
깊고 묘한 법을 분별하여
이제 인중존(人中尊)을 뵈옵나니
다 열반의 경계에 도달해서
오직 말씀하심을 듣고자 하나이다.
그때에 중상구족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어, 오늘 저의 호칭은 ‘온갖 상을 갖추었다[衆相具足]’고 하나이다.
하지만 상(相)이 일어나도 상이 일어난 줄 모르고, 상(相)이 멸하지만 상이 멸하는 줄 알지 못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이라고 말하나이다.”
중상구족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어, 제가 스스로 생각하오니, 옛적에 식혜(識慧)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이 요체를 설하심을 들었나이다. 온갖 중생들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식의 상(相)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의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이라고 말하나이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낱낱이 6쇠(衰)와 6입(入)을 분별하여서 과거의 쇠함이 과거의 쇠함이 아닌 줄 알고,
미래의 쇠함이 미래의 쇠함이 아닌 줄 알고,
현재의 쇠함이 현재의 쇠함이 아닌 줄 알아서
그 가운데서 상념의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소위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이라고 말하나이다.”
[식의 성품]
종성생보살(種姓生菩薩)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어, 오늘 부처님 앞에서 음향보살이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을 설함을 들었고, 다시 중상보살이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을 설함을 들었나이다.
어떻습니까, 부처님이시여. 앞에서 말한 식(識)은 어떤 것을 식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공(空)과 동등하니라.”
종성생보살이 다시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어떤 것이 공과 동등함이옵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생겨남도 아니요 멸함도 아니요 집착을 끊어버림도 아니니라.”
종성생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지금 부처님께 식의 일어나는 바를 여쭈었사온데 공으로써 저에게 답하신 것이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느니라. 내가 지금 설한 식은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니니라.
이 때문에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이라고 호칭하느니라.”
종성생보살이 아뢰었다.
“식은 상(相)이 있습니까, 상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식은 상이 있는 것도 아니요, 상이 없는 것도 아니니라.”
종성생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째서 식은 상이 있는 것도 아니요 상이 없는 것도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본래 상이 있는 것도 아니요, 또한 지금의 상도 아니니라.
따라서 본래의 식은 지금의 식이 아니요, 지금의 식은 본래의 식이 아니라고 말하느니라.
이 때문에 식은 상이 있지도 않고 상이 없지도 않다고 말하느니라.”
그때에 종성생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상이 있어도 식이 아니라 하고 상이 없어도 식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식을 식이라고 말씀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식이 일어난 바를 따를 뿐이니라.
식이 일어나면 일어나고 식이 멸하면 멸하니, 이 때문에 상이 있지도 않고 상이 없지도 않다고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아직도 식이 있다고 하겠는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왜냐하면 형태도 없고 상(像)도 없어서 지금 있지도 않고 과거에 있지도 않고 미래에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이미 식에 식이 있지 않아서 현재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과거도 아님을 스스로 설했느니라.
그대는 지금 이 무엇을 말한 것인가?”
“말하고자 하는 식입니까, 종성(種姓)의 생겨남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 식이 보살에게서 생겨남을 물은 것이 아니다.
다만 식을 ‘있다’고 하느냐, ‘없다’고 하느냐를 물었을 따름이니라.”
대답하였다.
“식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옵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족성자여.”
그때 종성생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떠하나이까? 부처님이시여, 오늘처럼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식으로부터 ‘있다’고 말씀하시고 ‘없다’고 말씀하시나이까, 식으로부터 ‘있다’고 말씀하시고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떠한 뜻으로 여래께 묻는 것인가?”
종성생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전에 부처님께서
‘너는 이제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을 설하느냐? 미래와 현재와 과거가 있느냐, 미래와 현재와 과거가 없느냐’고 물으시기에,
저는 답하기를
‘없나이다. 부처님이시어, 지금 부처님 말씀처럼 현재ㆍ미래ㆍ과거의 식이 없다고 하시면, 저와 여래의 식은 어디에 있나이까?’ 하였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미 앞서 식이 있지도 않고 식이 없지도 않다고 말하였느니라.
다만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위하여 약간의 법으로 중생을 깨닫게 하였을 뿐이니라.
족성자여, 어떠한가?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법을 체득해 안다면 문득 일체의 모든 법을 능히 갖출 것이니라.”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
그때에 보살이 있었으니 이름을 역성(力盛)이라고 불렀다.
그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도 또한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을 감히 설하겠나이다.”
역성보살이 곧 부처님 앞에서 게송을 설하였다.
본래 10력(力)의 존자로부터
이 있고 없는 식을 들었나니
거룩한 이의 여덟 가지 도(道)는
걸림 없는 지혜를 펼치셨도다.
음성은 각각 다르고
중생계도 같지 않으나
은혜를 베푸는 견줌 없는 상념은
일컬어 10력(力)이라 하였도다.
만일 내가 뒤에 성불하면
온갖 법계를 분별할 때
하나의 행을 따를 뿐 둘은 없으리니,
오직 원하오니 식(識)을 설함을 들어주소서.
도는 본래 나[我]로부터 생기고
나로 말미암아 식은 나지 않았나니
사념이나 상념이 없음을 계교한다면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이 아니로다.
작은 것을 쌓아 큰 행에 이르러야
비로소 스스로 깨침을 이루나니
나고 죽음을 헤아릴 수 없을진대
신식(神識)이 어찌 다할 수 있으랴?
내 이제 존신(尊神)을 이어받아
약간이나마 스스로 연설코자 하나니
오직 원컨대 거룩한 분 앞에서
온갖 불장(佛藏)에 다가갈 수 있길 바라옵나이다.
그때 역성보살은 이 게송을 설하고 나서 문득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떠하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분별이 있으면 여래의 10력(力)은 무너뜨려 헐 수 없나이다.
어째서 여래의 10력은 무너뜨려 헐 수 없는가?
첫째는 여래께서 뜻을 발하여 위없는 등정각을 구하시므로 무너뜨려 헐 수 없나니,
이것을 보살의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이라고 말하나이다.
다시 화합을 알아서 피차(彼此)와 본말(本末)을 보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의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이라고 말하나이다.
중생의 행을 관하여 근본적으로 자연(自然)을 깨달아야 비로소 한량없는 근본의 좇아온 바를 아나니,
이것을 보살의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이라고 말하나이다.
일체 모든 법은 본래 형상이 없는데, 어리석음을 쌓은 까닭에 문득 이 식을 냅니다.
이 어리석음을 분별해도 일어나고 멸함이 좇아온 바를 알지 못하나니,
이것을 보살의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이라고 말하나이다.
온갖 지혜를 분별하는데, 세 가지 일의 행의 근본이 있나이다.
밝음 있음[有明]으로부터 도리어 4전도에 떨어지는데, 4전도에서 환화(幻化)를 요달하면 뒤바뀜을 보지 않고 뒤바뀜 아님도 보지 않으니,
이것을 보살의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이라고 말하나이다.
다시 네 가지 일에서 중생의 본말을 관하여 다섯 가지 행을 갖춘 이는 이윽고 능히 사유하여 곧 다섯 가지 일을 이루나니,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라면 본래의 행 없음에서 행하므로 행한 자취가 없나이다.
어떤 것들을 다섯이라고 하는가?
첫째는 생각[念]이요, 둘째는 옮기는 생각[轉念]이요, 셋째는 근본[本]이요, 넷째는 어리석음[癡]이요, 다섯째는 다함없음[無盡]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이라고 말하나이다.
다시 식의 법은 불가사의해서 무(無)나 훌륭한 방편은 사람이 헤아릴 바가 아니니, 네 가지 일의 행이 있습니다.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생겨나고 멸함이 있음을 보면서도 문득 능히 일어나고 멸함을 보지 않음을 성취하시니,
이것을 보살의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이라고 말하나이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과거ㆍ미래ㆍ현재를 관하여도 또한 과거ㆍ미래ㆍ지금 현재의 근본을 보지 않으시며,
만약 5도(道)에 태어나서 5도(道)의 중생의 형상을 받고 나면 5도(道)를 분별함을 얻어서 저의 들어갈 바에 따르시며, 다시 능히 분별하여 형상이 있는 근(根)과 형상이 없는 근(根)을 받으십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미 하늘의 근을 받았으면 용의 근을 받지 않으니, 비록 그렇더라도 용의 근을 받고자 하면 문득 갖가지 법우(法雨)를 능히 내리십니다.
선남자나 선여인이라면 야차의 근을 얻었다가 저 야차의 근을 여의고,
아수라의 근을 받아서 다시 능히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을 갖추고,
저 아수라의 근을 버리고서 저 건달바의 근을 받고,
저 근을 버리고 나면 문득 능히 식이 있으면서 식이 없음을 갖추고,
긴나라ㆍ마후라가 등 사람인 듯 사람 아닌 것들 또한 마찬가지나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통진법장(通盡法藏)은 불가사의하다고 말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