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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5권
7.7. 식법연(食法緣)
『대유교경(大遺敎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비구가 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에는 마땅히 단월(檀越)을 위하여 향을 사르고 범패를 세 번 외워 보시를 찬양(讃揚)한 뒤에 맛있게 음식을 먹어야 한다.
또 상좌(上座)가 가르친 말을 따라 도사(道土)들은 각자 나가 손을 씻고 양치질을 한 뒤에 돌아와 각각 제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리고 각기 게송 하나씩을 외우고 차례에 따라 일어나되 차례를 어겨서는 안된다.”
또 『증일경(增一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공양하려는 이라면 손으로 향로(香鑪)를 잡고 공양할 때가 되었다고 외치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향은 부처님의 사자(使者)이다. 그러므로 향을 사루어 두루 시방의 모든 사람을 초청하라.’”
[이미 향을 피운 줄 알았으면 본래 부처님을 청하리라고 생각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범부들은 마음이 멀리 떨어져 눈으로 직접 보고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향을 피우고 시방의 일체 범부들과 성인을 초청하라 하시고, 그로써 복된 일은 향 연기처럼 허공에 올라 두루 어디든지 가는 것임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바로 향을 주면서 범패를 하라고 할 때는 일체의 도인과 속인들은 『화엄경(華嚴經)』에 의하여 각각이 한 게송을 외운다.]
계율의 향과 선정의 향과 해탈의 향
그 광명의 구름 누대가 세계를 두루 덮네.
시방에 계신 한량없이 많은부처님께 공양하나니
보고 듣고 널리 훈습하여 적멸을 깨닫게 하소서.
또 『삼천위의경(三千威儀經)』에서 말하였다.
“앉아서 향을 받는 것도 좋다. 여인(女人)이 향을 줄 때 손이 닿아 더럽게 될까 염려되기 때문에 앉아서 받아도 좋다는 것이다.”
만일 비방을 받을까 두려우면 여자로 하여금 놓고 가게 해도 좋다.
남자가 향을 주고 여안이 향을 받을 때에는 위와 반대로 하면 된다.
[自述] 만약 옷이나 음식을 얻을 때에는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말라.
다만 그것으로 몸과 목숨을 지탱하고 보전하여 도를 닦을 수만 있다면 곧 부처님의 뜻에 맞는 것이다.
마치 기름으로 움직이는 차[膏車]에 기름이 필요한 것과 같나니, 어찌 정밀하고 미묘한 것만을 가리겠는가? 다만 그것을 굴러가게 하여 목적지에만 가면 곧 훌륭한 일이 된다.”
그러므로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 몸뚱이는 수레와 같아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네.
향기로운 기름과 냄새나는 기름이
조리(調利)에 있어서는 똑같느니라.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음식은 도를 행하기 위함일 뿐 몸을 이익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말을 먹이고 돼지를 기르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처음으로 음식을 얻었을 때에는 먼저 삼보께 바치고 그 다음에 사생(四生)에게 베풀어라.”
그러므로 『화엄경(華嚴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만약 음식을 얻었을 때에는
마땅히 원하여라. 모든 중생들은
뜻을부처님 도에 두고
법을 위하여 공양을 베풀라고.
또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스스로 의복ㆍ발우ㆍ그릇 따위를 만들었거든 먼저 부처님께 올리고 아울러 부모ㆍ사장(師長)ㆍ화상(和上)으로 하여금 먼저 한 번씩 쓰시게 한 다음 자신이 써야 한다.
만약 부처님께 올리는 것이라면 꽃과 향으로 대신하고, 일반 음식은 반드시 먼저 사문(沙門)과 범지(梵志)에게 보시한 다음에 자신이 먹어야 한다.
정녕코 음식을 먹을 때에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즉, 첫 번째 숟가락으로 밥을 뜰 때에는 일체의 악을 끊어 다 없애기를 원하고,
두 번째 숟가락으로 밥을 뜰 때에는 일체의 선을 닦아 원만해지기를 원하며,
세 번째 숟가락으로 밥을 뜰 때에는 닦은 선근(善根)을 모두 중생들에게 되돌려 주어 널리 함께 성불(成佛)하기를 원하라.
만약 한입 한입마다 생각을 할 수 없으면 음식을 먹으려 할 때에 통틀어 한 번만 생각해도 좋다.”
그러므로 『마덕륵가론』에서 말하였다.
“만약 음식을 얻었을 때에는 한입 한입마다 생각을 하고
만약 옷을 얻었을 때에는 옷을 입을 적마다 생각하며
방에 들어갈 때에는 들어갈 때마다 생각하라.
만일 근기가 둔한 사람이라면 통틀어 한 번만 생각하도록 하라.”
그러므로 『화엄경(華嚴經)』 제6권에서 말하였다.
“보살에게는 일백마흔 개의 원(願)이 있다.
무릇 보시한 것에 대하여 다 게송을 외우며 이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먹는 것은 번뇌가 있어서가 아니고 번뇌를 여의려는 것도 아니며 이치와 일을 회통(會通)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보시 중에 최상이란 법시(法施)보다 더한 것이 없고,
업(業) 중에 최상이란 법업(法業)보다 더한 것은 없으며,
은혜 중에 최상이란 법은(法恩)보다 나은 것이 없다.
만일 지나치게 배불리 먹으면 기운이 급박해지고 몸이 비만해져서 온갖 맥이 통하지 않고 심장을 막히게 하여 앉거나 생각하거나 간에 모두 편안하지 않다.
만약 너무 지나치게 적게 먹으면 몸이 여의고 마음이 막혀 뜻이 견고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증일아함경』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많이 먹으면 근심과 고통 이루고
적게 먹으면 기운과 힘이 떨어지며
알맞게 적당히 먹는 사람만이
저울의 높고 낮음이 없는 것과 같다.
『살차니건자경(薩遮尼乾子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음식을 너무 많이 먹는 사람은
몸이 무겁고 게으름이 너무 많아
현재 세상이나 미래 세상에서
몸에 대하여 큰 이익을 잃는다.
수면(睡眠)의 고통을 스스로 받고
또한 다른 사람까지 괴롭게 하며
정신이 햇갈려 깨어나기 어렵나니
때를 맞추어 양을 조절하여 먹으라.
또 『오분율(五分律)』에서 말하였다.
“만약 달마다 음식을 감독하는 사람을 두고서 설고 익은 것과 짜고 신 것을 알려고 하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혀로 핥아 맛보아야 한다.”
[『재법경(齋法經)』에서는 입으로 맛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좋아하는 마음과 탐내는 마음으로 맛을 보아 죄를 범하는 일이 없게 하가 위해서이다.]
[自述] 그러므로 출가한 사람이 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엔 먼저 깨끗한 손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받아 먹으면 그들 출가한 뛰어난 사람이라 하고 못난 범부와 같지 않다고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남에게 받아서 먹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살바다론』에서 말하였다.
“비구가 음식을 받는 것에는 다섯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절도[盜]의 인연을 끊기 위한 까닭이다.
[주지 않았는데 스스로 취하여 먹는 것 또한 도적질할 생각을 가진 것과 같다.]
둘째는 증명(證明)하기 위한 까닭이다.
[혹 어떤 실수로 벗어남이 있더라도 비구에게는 아무 관련이 없다.]
셋째는 비방(誹謗)을 막기 위한 까닭이다.
[출가한 사람이 스스로 취하는 것은 고상하고 훌륭한 일이 아니다.]
넷째는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성취하기 위한 까닭이다.
[마약 꼭 받지 않았다고 해도 검소한 것과는 다르다.]
다섯째는 다른 사람에게 믿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남에게서 직접 받아서만 먹는 것을 보이면 외도(外道)들은 믿는 마음이 생긴다.]
옛날에 어떤 비구가 한 외도와 함께 길을 가다가 어느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 나무 위에는 열매가 달려 있었다.
식사할 때가 되자 외도가 비구에게 말하였다.
‘나무에 올라가서 과일을 따서 드십시오.’
비구가 말하였다.
‘우리의 계법(戒法)에는 사람보다 큰 나무에는 올라가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외도가 다시 비구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나무를 흔들어 과일을 따지 않습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우리 계법에는 스스로 나무를 흔들어서 과일을 떨어뜨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외도가 그 말을 듣고 난 뒤에 자신이 나무에 올라가 과일을 따서 땅으로 던져 주며 비구에게 말하였다.
‘그것을 주워서 드십시오.’
비구가 말하였다.
‘우리 계법에는 직접 받지 않은 것은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외도가 나무에서 내려와서 과일을 주워 비구에게 주었다.
외도는 이와 같은 것을 보고 나서 생각하였다.
‘과일 하나에도 이와 같은 법이 있거늘 더구나 세간을 벗어나는 일이겠는가?’
외도는 마침내 믿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 부처님의 법은 청정해서 외도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그 비구를 따라 불법 가운데로 출가하여 도를 닦아 누진(漏盡)을 증득하였다.”
또 『사리불문경(舍利弗問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외도와 범지(梵志)도 오히려 직접 받아서만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거늘 하물며 내 제자로서 직접 받지 않은 것을 어찌 먹겠는가?
다만 모든 물건을 받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직 생보(生寶)와 여인을 보시하는 것은 제외한다.
만약 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몸에 걸치고 있던 옷도 벗어주어야 하느 나라.
만약 금을 담은 그릇을 받는 것은 보시로서 금지하는 것이다.”
[自述] 모든 스님들의 음식은 모두 다 평등하여 범부와 성인을 따지지 말고 상하를 두루 균등히 해야 한다.
그러므로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만약 어떤 단월이 음식을 돌릴 때 상좌에 앉은 이에게 많이 주면 그 상좌는 마땅히 물어야 한다.
‘모든 스님에게도 다 이렇게 많이 주었습니까?’
단월이 대답하기를
‘상좌 스님에게만 이렇게 드립니다’라고 하거든
상좌는 다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모든 스님들에게 다 평등하게 돌리시오.’
그래서 그가
‘모두 그렇게 드렸습니다’라고 하거든
비로소 받아 먹어야 한다.
승가의 상좌의 법에는 음식을 받자마자 곧바로 먹어서는 안 된다.
음식을 다 돌리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공양을 드십시다’라고 외치고 나서 먹어야 한다.
또 상좌의 법에는 마땅히 천천히 먹어야지 빨리 먹어 식사를 마친 뒤에 남들보다 앞서 나가서는 안 된다.
반드시 물이 돌려지기를 기다렸다가 순서에 따라 축원한 다음에 비로소 나가야 한다.”
또 『처처경(處處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후에 음식을 먹지 않으면 다섯 가지 복이 있다.
첫째는 음심(婬心)이 적고,
둘째는 누워 자는 것이 적으며,
셋째는 한결같은 마음을 얻고,
넷째는 하풍(下風:방귀)이 없으며,
다섯째는 몸이 편안하고 또 병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문은 먹지 않는데에 복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自述] 만약 음식에 대하여 오래도록 탐하면 번뇌를 증가시킨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것을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여 싫다고 관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싫어하는 생각’이라고 말한 것은 마땅히 이 음식은 더러운 것에서 생긴 것이라고 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이 살코기는 정혈(精血)의 수도(水道)로부터 생겨난 것과 같으므로 이것은 고름과 벌레가 머무는 곳이 된다. 소유(蘇乳)와 낙(酪)은 피가 변해서 이루어진 것과 같아서 문드러진 고름과 다름이 없다. 주방 사람의 더러운 때도 모두 다 깨끗하지 못하다.
만약 음식을 입에 넣으면 뇌(腦)에서는 문드러진 점액(粘液)이 두 길로 흘러 내려 침과 고루 섞여진 뒤에 맛을 이루는데, 그것은 마치 토한 물체와 같은 형태로 배의 문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흙[地]은 그것을 간직하고, 물[水]은 그것을 썩히며, 바람(風]은 그것을 움직이게 하고, 불[火]은 그것을 익힌다.
마치 솥에 죽을 끓이는 것과 같아서 탁한 찌꺼기는 밑에 가라앉고 맑은 것은 위에 뜬다.
비유하면 술을 빚는 것과 같아서 탁한 찌꺼기는 똥이 되고 맑은 것은 오줌이 된다.
목구멍에는 세 개의 구멍이 있는데 바람이 불어서 기름진 즙액[汁]을 온갖 맥(脈)에 흩어져 들어가게 하면 먼저 있던 피와 화합하고 엉겨서 살로 변하고, 새 살로부터 지방이 생기며 지방에서 골수(骨髓)가 생겨난다.
이로부터 신근(身根)이 생겨나는데, 새 살과 묵은 살이 합하여 다섯 가지 정근(情根)을 내고
이 다섯 감관으로부터 다섯 가지 인식 작용이 생기며, 다섯 인식 작용에서 차례로 의식(意識)이 생겨나서 모습[相]을 분별하여 집착하고 좋고 추[醜]함을 헤아리며,
그런 다음에는 아(我)ㆍ아소(我所)ㆍ심(心) 등 모든 번뇌와 온갖 죄업들이 생겨난다.’
이렇게 관한 다음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 음식은 범부들의 공력이 매우 많이 들어간 것이다. 한 발우의 밥을 헤아려 볼 때 이것을 지은 사람이 흘린 땀을 모아서 헤아려 보면 음식은 너무 적고 땀은 많다. 이 음식을 위한 고생이 이와 같다.
그러나 그것을 입에 넣으면 곧 깨끗하지 못한 것이 되어 잠깐사이에 똥과 오줌으로 변한다. 본래 그처럼 맛있던 것이 이제는 더러워 보고 싶지도 않다.’
수행하는 사람은 또 스스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이와 같이 더러운 음식에 내가 만약 탐하고 집착한다면, 장차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질 것이다.’
음식에 대하여 이와 같이 관하고는 부디 오욕(五欲)을 싫어해야 한다.
비유하면 어떤 한 바라문(婆羅門)과 같다.
그는 깨끗한 법을 수행하다가 어떤 사연(事緣)이 생겨 부정(不淨)한 나라로 갔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장차 어떻게 해야 이 부정한 것을 면할 수 있을까? 오직 마른 음식을 먹어야만 깨끗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한 노모(老母)가 흰 골수[白髓]로 만든 떡을 팔고 있는 것을 보고 그 노파에게 말하였다.
‘나에게 어떤 인연이 있어서 여기에서 백 일 동안 머물 것입니다. 늘 이 떡을 만들어 보내주신다면 당신에게 그 값을 많이 드리겠습니다.’
노모는 날마다 떡을 만들어 그에게 보내주었다.
바라문은 그 떡을 탐하여 배부르게 먹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런데 그 노모가 만든 떡은 처음에는 하양고 깨끗했었는데 뒤에는 변하여 때깔도 나지 않고 맛도 없었다.
그는 곧 노모에게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이러합니까?’
노모가 말하였다.
‘옹창(癰瘡)이 다 나았기 때문입니다.’
바라문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노모가 대답하였다.
‘우리 대가(大家)의 부인이 비밀한 곳에 종기가 났기에 거기에 밀반죽[麵蘇]을 붙였더니 종기가 무르익어 고름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섞어 한데 반죽하여 그 떡을 만들었습니다. 날마다 이와 같이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당신에게 보냈는데 그 때문에 그 떡이 좋았던 것업니다.
그런데 이제는 부인의 종기가 다 나았으니 난들 장차 어디에 가서 그것을 다시 구하겠습니까?’
바라문이 그 말을 듣고 두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고 가슴을 치면서 헛구역질을 하며 말하였다.
‘나는 장차 어찌한단 말인가? 이 깨끗한 법을 깨뜨렸으니, 이제 내 일은 끝났다.’
그리고는 볼 일[緣事]을 다 버리고 급히 본국으로 돌아왔다.
수행하는 사람도 이러한데 음식을 탐착(貪着)하고 기뻐하며, 즐겨 먹으면서 깨끗하지 못함을 관찰하지 않다가 나중에 고통을 받고 후회한들 장차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7.8. 식흘연(食訖緣)
『십송률』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떤 비구가 다른 사람의 초청을 받아 음식을 먹었는데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들어갔다가 아무 말 없이 잠자코 불러갔다.
그러자 여러 거사(居士)들이 꾸짖으며 말하였다.
‘우리들이 대접한 음식이 맛있었는지 맛이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 비구들이 이 일을 가지고 부처님께 아뢰었더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이후로는 음식을 얻어 먹을 때엔 시주들 위하여 범패로 찬양하고 주원(呪願)토록 하라.’
‘누가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상좌(上座)가 하라. 만약 상좌가 할 수 없으면 차례에 의하여 다음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그러므로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상좌는 앞 사람이 어떤 물건을 보시했는지를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꼭 그 때 주원을 해야 한다.”
또 『파리론(波離論)』에서 말하였다.
“출가(出家)한 승니(僧尼)와 속인 등은 재(齋)가 끝난 뒤에 조두(澡豆:가루비누)가루나 거마(巨摩) 등으로써 양치질을 하지 않으면 모두 재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것은 과거의 비구인 연제(蓮提)의 경우와 같다.
그는 나이 예순 살이 되어도 재계를 지켜 하루도 거른 적 없이 오직 하루에 한 끼니만 먹고 거마 와 조두가루 등을 사용하여 재를 이룩하였으니,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다 재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전에는 그러한 항목이 없다.”
『출요율의(出要律儀)』에 의하면 이러하다.
“거마(巨摩)란 바로 쇠똥이다.”
만약 이 경전에 의거한다 해도 어떻게 쇠똥으로써 입을 깨끗이 할 수 있겠는가?”
『사법사전기(舍法師傳記)』에서 말하였다.
“서역의 속인과 외도 등은 범천(梵天)과 소 따위를 섬긴다. 이 두 가지 일로써 능히 만물을 내고 인민들을 기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쇠똥을 가져다가 도량(道場)을 깨끗이 했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속인의 법을 따라 그것을 깨끗한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것으로 양치질하여 입을 깨끗이 하는데는 쓰지 않았다.”
또 『사분율』 등에 의하면
“다만 행동하고 머물고 앉고 눕는 네 가지 위의를 보호하고 다섯 가지 바른 음식 [正食:蒲膳尼食]을 먹으며 네 가지 모습에 어긋남이 없으면 곧 재법(齋法)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만 말하였고 조두가루로 양치질을 하여 입을 깨끗하게 함으로써 재를 이룬다는 것에 대해서는 논(論)하지 않았다.
시절(時節)이 만약 지나가면 위의도 또한 잃나나, 아무리 조두가루를 사용한다해도 또한 재를 성취하지는 못한다.
또 『선견론(善見論)』에서 말하였다.
“재를 마치고 음식을 토하되 그것이 목구멍을 넘어오기 전에 도로 삼카면 범함이 없지만 만약 이미 나온 것을 도로 삼키면 죄를 범한다.”
또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음식을 먹은 뒤에 만약 목이 마르면 부처님께서는 콩과 보리 등 일체의 곡식을 삶아서 으깨지지 않은 것이면 비시(非時)에라도 즙(汁)을 내어 마셔도 된다.
만약 소유(蘇油)나 꿀과 석밀(石蜜), 그리고 모든 생과즙(生果汁) 등은 반드시 물에 깨끗이 씻은 다음 즙을 내어 마셔야 한다.
만약 그릇 밑에 남아 있는 찌꺼기물은 빗물에라도 씻어 내면 그 그릇은 깨끗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견론』에서 말하였다.
“사루가(舍樓伽) 과일즙을 내어 걸러서 맑게 한 것이라면 비시(非時)에라도 마실 수 있다.”[사루가란 연 뿌리를 만한다.]
『마덕륵가론』에서 말하였다.
“사탕물[沙糖漿]은 비시에라도 마질 수 있다.”
『승기율』에서 말하였다.
“사람에게는 사백네 가지 병이 있다.
풍대(風大)의 일백한 가지 병은 유지(油脂)로써 다스리고,
화대(火大)의 열병 일백한 가지는 소(蘇)로써 다스리며,
수대(水大)의 냉병(冷病) 일백한 가지는 꿀로써 다스리고
잡병(雜病) 일백한 가지는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악으로써 다스린다.”
『십송률』에서 말하였다.
“석밀은 비시에는 먹을 수 없다.
다섯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이들은 비시에도 먹을 수 있다.
다섯 종류의 사람이란 멀리 길을 떠나는 사람, 병든 사람, 음식을 조금 먹은 사람이니, 물을 보시하는 곳에서 물과 섞은 것이면 마셔도 된다.”
『오분율(五分律)』에서 말하였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를 때, 이 두 때에는 마설 수 있다.”
[그러므로 병이 없고 때가 아니면 비록 석밀(石蜜)이나 소유(蘇油) 따위라 하더라도 먹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승기율』에서 말하였다.
“호초(胡椒:후추)ㆍ필발(蓽蕟)ㆍ생강ㆍ하리륵(訶梨勒) 따위의 이런 약은 아무 때나 먹되 조합한 것이면 비시(非時)에도 먹을 수 있다.”
또 『사분율』에서 말하였다.
“일체의 쓰고ㆍ맵고ㆍ짜고ㆍ단 것 따위를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되지만 비시라 한더라도 진형약(盡形藥)으로 만들어졌을 때에는 약으로 만들어서 먹을 수 있다.”
『선견론』에서 말하였다.
“모든 나무와 열매ㆍ뿌리ㆍ줄기ㆍ가지ㆍ잎사귀 등은 마음대로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 해도 진형약으로 만들어졌을 때에는 먹을 수 있다.”
[自述] 요즈음 보면 모든 사람들은 식사 때가 아닌 때[非時]에 음식을 먹으면서 제 때에 먹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어찌 그것이 옳겠는가?
변방의 승려나 속인들은 계율에서 과일즙을 먹어도 좋다는 말을 듣고는 마침내는 말린 대추즙을 먹거나, 혹은 날 배ㆍ포도ㆍ석류 등을 찔어 짜낸 즙만을 마시지 않고 씨 째로 다 먹는다. 비록 찧어 짜낸 즙이라 하더라도 걸러서 맑게 만들지 않은 탁한 즙을 취하여 찌꺼기와 함께 다 먹어 치운다.
혹은 사루가(舍樓伽:연뿌리)즙은 열병을 다스리기 위해서라면 먹어도 좋다는 말을 듣고서 마침내 그 연뿌리를 캐다가 날 것으로 마구 먹기도 하고, 혹은 청반(淸飯)즙을 취하여 마시기도 하며, 혹은 배고프거나 목마르지도 않는데, 소유ㆍ꿀ㆍ석밀 따위를 때가 아닌데 먹기도 하고, 혹은 살구씨를 달여서 조탕(稠湯)을 만들어 쓰기도 한다.
이와 같이 외람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이루 다 기록할 수조차 없다.
또 『십송률」에 준해 보면 앞에서 말한 멀리 여행하는 사람 등 다섯 종류의 사람이 아니면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그것을 먹어 곧 재(齋)를 깨뜨리고 범하는 사람이 많음을 본다.
그러므로 따로 소기(疏記)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달마다 깨끗한 재 세우게 되면
좋은 날마다 끝없는 복 부르나니
사부 대중들이 때에 모이게 되고
일곱 대중들 모여 법당에 오른다.
소조(蕭條 :쓸쓸한 모양)하고 맑은 범패 행하면
슬퍼하듯 애원하듯 궁상(宮商)의 음률 울리네.
향기는 허공 위로 날아 올라가
바람 타고 먼 곳까지 흩어져 가네.
덕을 찬탄하며 깊은 이치[冲邃]연구하여
사변(詞辯)으로 오묘한 향내[玄芳]를 펴며
번뇌를 꺾어 묘한 글귀 드리면
때에 이르러 아름다운 문장도 터지네.
스님과 속인이 서로 의탁하면서
재물과 법의 신비한 광명 일으키니
복밭[福田]이 오늘 밤에 원만해져서
은혜와 지혜로써 살아 있거나 죽은 사람 인도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