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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순정리론 제18권
변차별품 ⑩
7.2. 5과론(2)
2) 6인과 5과의 관계
이계과(離繫果)로부터 야기된 방론(傍論)을 이미 다 마쳤으니, 이제 마땅히 본래 밝히고자 하였던, 응당 분별해야 할 이숙과(異熟果)ㆍ등류과(等流果)ㆍ이계과(離繫果)ㆍ사용과(士用果)ㆍ증상과(增上果)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이와 같은 5과는 앞서 언급한 6인에 대해 마땅히 어떤 결과가 어떤 원인에 의해 획득되는지 말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마지막의 원인의 결과는 이숙이고
앞의 원인의 결과는 증상이며
동류인과 변행인의 결과는 등류이고
구유인과 상응인의 결과는 사용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5과 중에서 세 번째인 이계과는 생인(生因)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논의하지 않는다. 바야흐로 [여기서는] 6인이 그 밖의 4과를 획득하는 관계에 대해 분별하고자 한다.
[본송에서] ‘마지막의 원인’이란 말은 이숙인을 말하니, 6인(因)을 설한 본송 중에서 최후에 설하였기 때문이다.1) 즉 [5과(果) 중의] 첫 번째인 이숙과(異熟果)는 바로 이러한 [이숙]인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이숙과는 이숙(다르게 성숙함)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마땅히 무이숙(無異熟,이숙과를 갖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2) 그러나 그의 말은 올바른 이치가 아니니, 동류와 이숙의 두 원인에 의해 생겨나는 것은 그 뜻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앞의 이숙이 동류인이 되어 뒤에 이숙을 낳을 경우 등류과가 된다. 그러나 뒤의 이숙[과]는 오로지 선행된 업에 의해 성취될 뿐으로, [이 경우] 능히 성취하게 하는 온갖 업을 이숙인이라고 이름하고, 성취된 이숙을 바로 이숙과라고 한다. 이렇듯 두 원인(즉 동류인과 이숙인)은 법체가 다르고, 두 결과(즉 등류과와 이숙과)의 뜻도 나누어져 있는 등 인과의 유형이 달라 서로 뒤섞이는 허물이 없다. 그렇지만 이숙[과] 자체는 익은 음식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이숙[과]를 낳는 일에 대해 뛰어난 공능이 없다.3) 따라서 오로지 불선과 선의 유루만이 바로 이숙인이며, 유이숙(有異熟, 이숙과를 갖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본송에서] ‘앞의 원인’이란 말은 능작인을 말하니, 6인을 설한 본송 중에서 최초로 논설하였기 때문이다. 즉 [5과 중의] 최후인 증상과(增上果)는 바로 이러한 원인에 의해 획득되는 것으로, [원인의] 증상력에 의해 생겨난 결과[增上之果]이기 때문에 증상과라고 이름하게 된 것이다.
[능작인은] 오로지 장애함이 없이 머무는 것인데 어떠한 증상력이 있는 것인가?
바로 장애함이 없이 머물기 때문에, 그것을 설하여 ‘증상’이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찌 번거롭게 따져 힐난하는 것인가?4) 또한 앞(본론 제15권)에서 능작인을 분별하는 중에 ‘능작인도 역시 뛰어난 힘을 갖는다’고 이미 논설하였다. 즉 안식 등이 막 생겨나려고 할 때 이근(耳根) 등은 전전 [상속]하며 증상력을 가지니, 뭔가를 듣고 나서 바로 그것을 기꺼이 보려고 하는 의욕을 낳기 때문이다.5) 또한 기세간(器世間)의 온갖 사물이 생겨날 때 온갖 유정의 업도 증상력을 갖으며,6) 참으로 애호할 만한 온갖 결과(즉 선업의 결과)는 불선업에 대해, 애호할 만한 것이 아닌 결과(불선업의 결과)는 모든 선업에 대해 역시 전전 [상속]하며 뛰어난 생기의 작용을 가지니, 이러한 등등의 증상에 대해 마땅히 경우에 맞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동류인과 변행인은 등류과(等流果)를 획득하니, 결과가 원인과 유사하기 때문에 ‘등류’라고 이름하였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은 두 가지 원인은 결과의 상[果相]과 서로 유사하기 때문에 원인은 비록 두 가지이지만 그것의 결과는 오로지 한 가지뿐인 것이다.
구유인과 상응인은 사용과(士用果)를 획득하는데, 사부(士夫, 인간을 말함) 자체를 떠나 별도로 사부의 작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이러한 사부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용과라고 이름한 것이다.
이러한 ‘사용’이라는 명칭은 어떠한 법에 근거한 것인가?
제법이 갖는 공능에 근거한 것으로, 이와 같은 사실은 다음의 본송(本頌)에서 설할 “만약 그것의 힘에 의해 생겨난 것이면, 이러한 결과를 이름하여 ‘사용’이라 한다”고 하는 말과 부합[冥符]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주(經主)는 말하기를 “이러한 ‘사용’이라는 말은 제법이 갖은 작용에 근거한 것이다”고 하였는데,7) 그럴 경우 그는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들은] 다같이 동일한 결과를 견인하기 때문에 ‘사용’이라 이름한다”고.
그러나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오로지 마땅히 무간(無間)이나 격월(隔越)에만 사용과가 존재하고, 구생(俱生) 중에는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8) 즉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생겨나는 중에 일체[의 원인]은 다 함께 동일한 사용과를 획득하는 일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니, [법] 자체는 자신의 힘에 의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역시 각기 별도의 결과를 견인한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니, 구유인으로서 동일한 결과를 [낳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부의 작용[士用]ㆍ사부의 힘[士力]ㆍ사부의 공능[士能]ㆍ사부의 세분(勢分)은 의미상 어떠한 차별도 없는 것으로, 제법의 공능은 사부의 작용과 같기 때문에 ‘사용’이라 이름한 것으로, 용맹스러운 사람은 사자와 유사하기 때문에 그를 일컬어 ‘사자’라고 하는 것과 같다.
어찌 동류인과 변행인의 두 원인과 무간에 생겨나는 [결과] 역시 사용과라고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등류과는 [이러한] 두 원인과 무간에 생겨나는 제법으로, [이 경우] 혹은 [사용과]이기도 하고, 혹은 [사용과가] 아니기도 한데, 일체가 [구생으로] 결정된 것만을 사용과라 이름한다.
어떠한 까닭에서 단지 구유인과 상응인만이 사용과를 획득할 뿐, 동류인과 변행인은 획득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인가?
오로지 이러한 두 가지 원인만이 구생과 무간의 두 가지 사용과를 획득하는 공능을 모두 갖추고 있을 뿐 앞의 두 원인(동류인과 변행인)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과를 획득한다고] 설하지 않는 것이다. 즉 등류과를 성취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과 유사한 원인으로, 동류인과 변행인의 결과는 오로지 [자신의 원인과] 서로 유사하기 때문에 그러한 두 [원인의] 결과를 오로지 등류과라고 이름할 따름이며, 그 밖의 다른 원인의 [결과]는 등류가 아니므로 두 가지 원인(구유ㆍ상응인)에 의해 획득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사용과는 [원인과] ‘함께 한다[俱]’는 뜻이 강하니, 구유인과 상응인만이 유독 이와 함께 하는(동시에 존재하는) 사용과를 능히 획득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경우에만] 치우쳐 [사용과를 획득한다고] 설한 것이다. 또한 동류인 역시 무간에 생겨난 온갖 사용과를 획득할 수 있을지라도 일체의 동류인이 모두 다 결정코 능히 획득하는 것은 아니니, 아라한의 최후의 제온(諸蘊)은 무간에 사용과를 낳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유인과 상응인의 두 원인은 결정코 사용과를 획득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우에만] 치우쳐 [사용과를 획득한다고] 설한 것이다.9)
그러나 유여사는 말하기를 “능작인 등도 역시 사용과를 획득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이숙인의 경우는 그렇지 않으니, 구생(俱生)과 무간(無間)의 두 사용과는 여기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10)고 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유여사는 설하기를 “이러한 이숙인에도 역시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격월(隔越)의 사용과가 존재하니, 비유하자면 농부가 수확하는 과실과도 같다”고 하였다.
3) 이숙과(異熟果)
원인과 결과가 서로 대응하는 결정적인 상(相)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으니, 이제 마땅히 결과의 상(相)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숙과 등의 상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이숙과는 무기의 법으로서
유정에 속하고, 유기(有記)로부터 생겨난다.
등류과는 자신의 원인[自因]과 유사하며
이계과는 혜(慧)에 의해 [모든 번뇌를] 다한 것이다.
만약 그것의 힘에 의해 생겨난 것이면
이러한 결과를 일컬어 ‘사용’이라 하며
이전에 생겨난 것을 제외한 유위법을
유위의 증상과라고 이름한다.
논하여 말하겠다.
오로지 무부무기법(無覆無記法) 중에만 이숙과가 존재한다.11)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마땅히 비유정수(非有情數)도 역시 이숙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같은 사실을 간택(簡擇)하기 위하여 [본송에서] ‘유정’이라는 말을 설한 것이니, 오로지 유정에게만 이숙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러한 유정수 중의 장양(長養)이나 등류(等流)도 마땅히 이숙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12)
다시 그 같은 사실을 간택하기 위하여 [본송에서] ‘유기(有記)로부터 생겨난다’고 설한 것이다. 즉 일체의 불선과 아울러 선한 유루[의 업]은 능히 이숙을 기표(記表)하기 때문에 유기(有記)라고 이름하는데, 그것(즉 선ㆍ불선의 유기업)으로부터 구시(俱時)나 무간이 아닌 후시(後時)에 비로소 이숙이 일어나기 때문에 ‘유기로부터 생겨난다’고 말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사실이 이른바 이숙과의 구체적 특상이다.
이숙 역시 이전 단계[前位]의 이숙과를 동류인으로 삼는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는 곧 전 단계의 이숙의 등류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 경우 마땅히 ‘무기로부터 생겨나며, 등류성(等流性)이다’고 설해야 함에도 어찌하여 ‘유기로부터 생겨나며 등류성이 아니다’고 설한 것인가?
이와 같은 과실은 없다. 만약 이숙과 자체가 동류인에 의한 것이라면 그 특성[相]에 뒤섞임이 있을 것이지만, 이숙인에 의한 것이므로 그 특성에 뒤섞임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만 ‘유기로부터 생겨난다’고 설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에 준하여 등류성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이니, 등류과는 원인과 서로 유사하여 뒤섞임이 있기 때문이지만, 이숙과의 경우 원인과 서로 달라 뒤섞임이 없기 때문이다.13)
비유정수(즉 산하대지 등의 무정물)도 역시 업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인데, 어떠한 까닭에서 이숙과라고 설하지 않는 것인가?
이에 대해 마땅히 논란해서는 안 될 것이니, 오로지 [다른 유정과 함께 하지 않는] 불공(不共)의 업에 의해 획득된 결과만을 이숙과라고 이름하기 때문이다.14)
어떠한 까닭에서 비유정수를 오로지 불공의 업에 의해 획득된 결과가 아니라고 하는 것인가?
비유정수의 법[非情法, 무정물]은 다른 이들도 그것을 함께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대범천이 머무는 비유정수를 개별적인 업[別業]의 결과라고 하지 않겠는가? 그것 역시 마땅히 업의 이숙과라고 말해야 함에도 어찌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 어떤 이는 말하기를 “대범천의 주처(住處)는 일체의 모든 대범천의 업의 증상력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고 하였으며, 또 다른 이는 다시 말하기를 “대범천의 주처가 상속하여 괴멸하지 않았으면 다른 이들도 그것을 수용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불공[의 업에 의해 획득된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어떻게 하나의 사물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정들의 업(즉 共業)에 의해 공동으로 초래된다는 것인가?
어찌 [앞에서] 이미 설하지 않았던가? ‘다른 이들도 그것을 함께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만약 비유정수(무정물)의 결과가 불공업(不共業, 즉 別業)에 의해 초래되는 것이라면, 마땅히 이숙에 따라 동시에 생기하고 멸진해야 할 것이다.15) 또한 세간의 경우를 보더라도 나라의 주인[國主, 국왕]이 죽을 때라도 왕이 소유한 국토는 오히려 상속하여 지속하는 것이다. 만약 왕이 소유한 국토가 오로지 주인의 업에 의해 초래된 것일 뿐 그 밖의 다른 유정의 업이 함께 초래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밖의 다른 이들은 그것을 수용할 수 없어야 한다. 또한 만약 비유정물이 개별적인 업에 의해 초래되는 것이라면, 각각의 온갖 유정의 소의신이 머무는 집이나 숲, 못, 성곽, 산천이 모두 다 각기 달라야 할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그러므로 하나의 사물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정들의 업에 의해 공동으로 초래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유정들의] 업 자체에는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에 마땅히 [여러 종류의 결과를 초래한다고 해야 하는 것으로,] 여러 종류가 아닌 [하나의] 결과를 능히 초래할 수 없어야 한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정들의 다수의 업이 공동으로 하나의 비유정물을 초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이와 같은 과실은 없으니, 비유컨대 싹 등의 경우처럼 자류(自類)의 원인[이라는 관점]에서 관찰하면 하나의 사물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즉 싹 등의 경우 비록 땅, 수분, 시기[時分], 사람의 공력, 거름[糞] 등의 힘에 의해 생기할지라도 자류의 원인[이라는 관점]에서 관찰하여 하나의 사물을 성취한다고 하지 땅 등의 원인[이라는 관점]에서 관찰하여 다수의 사물을 성취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유정물의 경우도 자류의 원인[이라는 관점]에서 관찰하여 그 자체 하나의 사물을 성취한다고 하지 그러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정들의] 업[이라는 관점]에서 관찰하여 그 자체 다수의 사물을 성취한다고는 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세간을 관찰하건대, 여러 종류의 업은 여러 종류의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닌데, 어찌하여 여러 종류의 업이 여러 종류의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인가?
업은 [자신이] 초래한 비유정물의 결과에 대해 어떤 원인으로서의 작용을 갖는 것인가?
업은 그러한 결과에 대해 능작인이 되니, 앞서 이미 분별한 바와 같다.16)
4) 등류과(等流果)
이와 같이 이숙과의 상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이제 다음으로 등류과(等流果)의 상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원인[自因]과 유사한 법을 등류과라고 이름하니, 이를테면 동류와 변행의 두 원인과 유사한 결과를 말한다.17) 예컨대 동류인으로서 선ㆍ염오ㆍ무기성이면, 그것의 등류과도 역시 그러하며, 변행인의 경우 오로지 염오성이므로 그것의 등류과도 역시 그러한 것이다.
어찌 [구유ㆍ상응인과] 구기한 사용과의 성(性)도 역시 자신의 원인과 유사하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자신의 원인과 유사한 법을 등류과라 이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등류과로서 자신의 원인과 유사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사용과의 경우 자신의 원인과 다른 것도 있기 때문에 자신의 원인과 유사한 법을 등류과라고 말한 것이니, 결정코 그 같은 사용과와 뒤섞이는 과실은 없는 것이다.
등류과의 원인은 변행인의 경우처럼 이부(異部)에도 존재하니, 어찌 이부의 법을 등류과로 삼는 경우가 역시 있다고 하지 않겠는가?
타부(他部)의 등류과와 자부(自部)의 원인(변행인)은 [다같이] 염오성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서로 유사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의 사용과는 [원인과] 그 성질이 다른 경우도 있으니,18) 그렇기 때문에 [사용과는] 원인과 결정코 서로 유사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유여사는 [등류과와 사용과의 차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자신의 원인과 유사하다’는 말은, 이를테면 결과와 원인이 다 같이 두 가지 상호 유사성[相似]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니, 첫째는 체류(體類)이며, 둘째는 성류(性類)이다. 여기서 체류라고 말한 것은 이를테면 수(受)ㆍ상(想) 등을 말하며, 성류라고 말한 것은 이를테면 선ㆍ염오 등을 말한다. 그런데 만약 [원인과] 구기(俱起)한 사용과의 경우, 성류는 비록 동일할지라도 체류 상에는 필시 다름이 있으니, 수(受)와 비수(非受) 등은 사용과이기 때문이다. [또한] 만약 [구기가 아닌] 후기(後起)의 사용과라면 체류도 성류도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결과는 결정코 원인과 유사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등류과의 경우, 성류는 반드시 원인과 유사하며, 거기다 체류 상으로도 원인과 유사한 것은 오로지 등류과뿐으로, 결정코 자신의 원인과 유사하기 때문에 ‘원인과 유사하다’는 말에는 [사용과와] 서로 뒤섞임[濫]의 과실이 없는 것이다.”
만약 변행인도 역시 등류과를 획득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이것을 바로 동류인이라고 이름함을 허락하지 않는 것인가?
자부(自部)의 결과에 대해서는 실로 동류인이 된다고 하겠지만, 만약 그 밖의 다른 부(部)에 대한 것이라면 오로지 두루 [작용]하는 것[遍]이지 동류가 아니다. 즉 두루 [작용]하지 않는 법[非遍法]은 그 성류(性類)에 따라 각기 자부에 대해 오로지 동류인이 될 뿐이다. 그러나 만약 두루 [작용]하는 온갖 법이라면 타부(他部)의 동일한 염오법의 종류에 대해 오로지 변행인이 될 뿐이다. 이는 자부[의 결과]에 대해 두 가지 원인(즉 동류와 변행)의 뜻을 갖추었기 때문에 변행인으로,19) 비록 등류과를 획득할지라도 바로 동류인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20)
5) 이계과(離繫果)
이와 같이 등류과의 상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이제 다음으로 이계과(離繫果)의 상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혜(慧)에 의해 [모든 번뇌를] 다한 법을 이계과(離繫果)라고 이름하니,21) 소멸하였기 때문에 ‘다한 것[盡]’이라고 일컬은 것이며, 간택[擇]하였기 때문에 ‘혜’라고 일컬은 것이다. 즉 택멸(간택력에 의한 소멸)을 설하여 이계과라고 이름하였으니, 간택력을 원인으로 하여 온갖 계박(繫縛)을 떠나 그것의 소멸을 증득하였기 때문에 이를 설하여 결과로 일컫게 된 것이다.
6) 사용과(士用果)
이와 같이 이계과의 상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이제 다음으로 사용과(士用果)의 상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어떤 법이 그것(원인)의 세력에 의해 생겨났다면, 이러한 법을 설하여 사용과(士用果)라고 이름한다.22) 여기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으니, 구생(俱生)과 무간(無間)과 격월(隔越)과 불생(不生)이 바로 그것으로, 앞에서 이미 설한 바와 같다.23) 즉 ‘구생’이라고 하는 것은 동일한 시간에 서로에 대해 원인이 되는 힘에 의해 생겨난 법을 말한다. ‘무간’이라고 하는 것은 전 찰나의 원인의 힘에 의해 바로 다음 시간(찰나)에 생겨나는 법을 말하니, 예컨대 세제일법이 고법지인을 낳는 것과 같다. ‘격월’이라고 하는 것은 전전 상속한 원인의 힘에 의해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생겨나는 법을 말하니, 이를테면 농부 등이 곡식 등을 [파종하여 거두어들이는] 것과 같다. ‘불생’이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열반으로, 무간도의 힘에 의해 증득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불생인데, 어떻게 ‘그것의 세력에 의해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사용과라고 이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현견(現見)하건대 ‘획득한 것[得]’에 대해서도 역시 ‘생겨난 것[生]’이라는 말을 설할 수 있으니, 예컨대 ‘나에게 재물이 생겨났다’고 함은 바로 ‘내가 재물을 획득하였다’는 의미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만약 무간도로써 온갖 수면을 끊고서 증득한 택멸이라면, 이와 같은 택멸은 이계과나 사용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무간도로써 수면을 끊지 않고 본시(本時)에 증득한 택멸을 다시 증득한 경우라면, 이와 같은 택멸은 이계과가 아니라 오로지 사용과일 뿐이다.
즉 욕계의 탐을 아직 전혀 떠나지 않은 자가 견도(見道)에 들 때 고법지인(苦法智忍)으로 열 가지 수면을 끊고서 증득한 택멸이라면,24) 이와 같은 택멸은 이계과나 사용과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약 [유루의 세간도로써] 이미 욕계의 탐을 완전히 떠난 자가 견도에 들 때라면,25) 고법지인으로 수면을 끊지 않고도 본래의 택멸을 증득하는데, 이와 같은 택멸은 이계과가 아니니, 일찍이 계박을 떠났기 때문이며, 바로 사용과이니, 이러한 고법지인의 힘에 의해 다시금 그것과는 다른 득(得)을 일으켜 다시 증득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만약 부분적으로 욕계의 탐을 이미 떠난 자가 견도에 들 때라면 고법지인으로 열 가지 수면 중에 끊는 것도 있고 끊지 않는 것도 있으며, 증득하는 택멸에도 새로운 것도 있고 본래적인 것도 있으니, [이때 택멸은] 그 순서대로 두 가지 결과이고 한 가지 결과이다.26)
이와 마찬가지로 나아가 도법지인(道法智忍)의 경우에 있어서도 만약 욕계의 탐을 아직 전혀 떠나지 않은 자와 이미 떠난 자와 부분적으로 떠난 자라면 여덟 가지 수면을 전부 끊고,27) [전부] 끊지 않으며, 부분적으로 끊기도 하고 끊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이 때] 증득하는 택멸에는 새로운 것도 있고 본래적인 것도 있으며, 새로운 것과 본래적인 것이 [함께] 있기도 하여 그것은 순서대로 두 가지 결과이고 한 가지 결과이며, 두 가지 결과와 한 가지 결과이니, 그 뜻은 앞에서 해석한 바와 같다.
또한 만약 색ㆍ무색계의 탐을 아직 전혀 떠나지 않은 자가 견도에 들어 고류지인(苦類智忍)으로 색ㆍ무색계의 열여덟 가지 수면을 끊고서 증득한 택멸이라면,28) 이와 같은 택멸은 이계과나 사용과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약 부분적으로 색ㆍ무색계의 탐을 이미 떠난 자가 견도에 들 때라면 고류지인으로 색ㆍ무색계의 열여덟 수면 중에 끊는 것도 있고 끊지 않는 것도 있으며, 증득하는 택멸에도 새로운 것도 있고 본래적인 것도 있으니, [이때 택멸은] 그 순서대로 두 가지 결과이고 한 가지 결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아가 도류지인(道類智忍)의 경우에 있어서도 만약 색ㆍ무색계의 탐을 아직 전혀 떠나지 않은 자와 부분적으로 이미 떠난 자라면 색ㆍ무색계의 열네 가지 수면을 역시 전부 끊고,29) 부분적으로 끊기도 하고 끊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이 때] 증득하는 택멸에는 새로운 것도 있고 본래적인 것도 있어 그 순서대로 역시 두 가지 결과이고, 두 가지 결과와 한 가지 결과이니, 그 뜻은 앞에서 해석한 바와 같다.
나아가 수도(修道)에 들 때의 온갖 무간도에 대해서도 각기 그 뜻에 따라 [앞서의] 예와 같이 마땅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7) 증상과(增上果)
이와 같이 이계과의 상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이제 다음으로 증상과(增上果)의 상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온갖 유위법으로서 이전에 생겨난 것을 제외한 그 밖의 유위를 증상과라고 한다.30) 즉 어떠한 결과라 할지라도 반드시 원인에 앞서 생겨나 존재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결과가 원인에 앞서 존재하면 여기에 무슨 허물이 있는 것인가?
만약 미래법인 그 결과가 이미 생겨나 있다고 한다면, 미래에 지어질 것이 이미 성취되어 [원인은] 아무런 소용도 없기 때문에 마땅히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본래부터 생겨나지 않은 것은 소멸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생멸(生滅)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제행은 마땅히 영원한 것[常]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는 불생법과 마찬가지로 비록 생멸하는 일은 없을지라도 그 자체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 같은 해명은 옳지 않다. 즉 그러한 종류는 생멸하는 일이 있음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예(例)로 든 불생법도 가히 영원하지 않은 것[無常]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제행은 본래부터 전혀 생멸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면, 무엇을 예로 삼아 그 자체 영원한 것이 아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그 같은] 해명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용’과 ‘증상’의 두 결과의 차별은 어떻게 알아야 하는 것인가?
짓는 자[作者]와 수용하는 자[受者]에 대한 차별이 있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 차별이 있음을 알아야 하니, ‘사용과’라고 하는 명칭은 오로지 짓는 자에 대한 것이지만, ‘증상과’라고 하는 명칭은 [짓는 자와] 아울러 수용하는 자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곡식 따위는 농부 등에 대해 사용과라고 이름하니, 그의 힘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이며, 역시 증상과라고 [이름하니], 그가 수용하기 때문이다. 즉 오로지 수용하는 자에 대해서는 오로지 증상과라고 이름하니, 그의 힘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가 수용하기 때문이다. [혹은] 어떤 장인이 만든 물건은 그것을 만든 장인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결과(사용과와 증상과)이지만 그 밖의 장인이 아닌 이에 대해서는 한 가지 결과(증상과)가 될 뿐이니, 이러한 사실에 준하여 그 밖의 예도 모두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7.3. 6인의 취과(取果)과 여과(與果)
앞에서 설한 여섯 가지 종류의 원인 중에서 어떠한 상태에 있는 어떠한 원인이 취과(取果)하고 여과(與果)하는 것인가?31)
게송으로 말하겠다.
다섯 가지의 취과(取果)는 오로지 현재할 때이며
두 가지(구유ㆍ상응인)의 여과(與果)도 역시 그러하다.
과거ㆍ현재에 여과하는 것은 두 가지 원인(동류ㆍ변행인)이며
한 가지(이숙인)의 여과는 오로지 과거에 있을 때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능작인을 제외한] 다섯 가지 원인의 취과(取果)는 오로지 현재할 때로서, 결정코 과거에서는 취과하지 않으니, 그것(즉 과거법)은 이미 취과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미래에서도 역시 취과하지 않으니, 그 작용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직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취과’라고 하는 말은 능히 인기(引起)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미래법을 인기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생겨나게 하는 것으로, [결과와] 체류(體類, 수ㆍ상 등의 법체를 말함)가 동일한 경우에는 능히 종자가 되어 [생겨나게 하며], 체류가 다를 경우 동일과(同一果)에 의해 [생겨나게 한다]. 또한 동일한 결과를 [낳지] 않는 경우에는 동일한 성류(性類, 선ㆍ불선 등을 말함)에 의해, 성류가 다를 경우에는 [각각의 원인이] 스스로 적취 상속함에 의해 [생겨나게 한다]. 그러므로 일체[의 원인]을 모두 ‘능히 인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이와 같이 능히 인기하는 것을 일컬어 ‘취과’라고 한다. 곧 이러한 취과의 작용은 오로지 현재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과거ㆍ미래에는 존재하지 않으니, 오로지 이것을 유위의 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6인 가운데 어떠한 원인을 간택하여 제거[簡去]하고서 다섯 가지 원인만이 오로지 현재에 취과한다고 말한 것인가?
이를테면 6인 가운데 능작인을 제외하였다.
이러한 능작인은 어떠한 이유에서 간택하여 제거한 것인가?
유여사는 설하기를 “이러한 능작인은 취과와 여과의 시기가 결정되지 않았으니, 그래서 취과와 여과에 대해 모두 분별하지 않은 것이다”고 하였지만, 그의 말은 올바른 이치가 아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이러한 능작인의 취과는 현재가 아닌 때가 없으며, 또한 취과하지 않고서는 여과의 뜻도 없는데, 어떻게 시기가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하겠는가? 즉 능작인이 능히 취과하는 것은 결정코 오로지 현재이며, 여과는 과거ㆍ현재와 통하는 것으로, 마땅히 동류ㆍ변행의 두 원인과 같다고 해야 한다. 다만 일체법이 [모두] 증상과를 갖거나 취과 혹은 여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설하지 않은 것이다.32)
어찌 이러한 능작인의 능히 취과하는 작용 역시 과거와도 통한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찌하여 [능작인의] 능히 취과하는 작용은 결정코 오로지 현재라고 말한 것인가? 그래서 본론(本論) 중에서도 이와 같은 말을 설하였던 것이니, “과거의 제법을 등무간[연]으로 삼아 능히 두 마음을 낳을 수 있다”고.33) 만약 무상(無想)ㆍ멸진정(滅盡定)으로부터 출정(出定)할 때의 마음은 입정(入定)할 때의 마음에 의해 현재 취해진 것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두 선정은 영원히 현전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또한 취과하지 않고서는 여과의 뜻도 없기 때문에 마땅히 취과 역시 과거와도 통한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은 없으니, 두 선정에 들어갈 때의 마음은 오로지 현재 시에만 능히 두 선정과 출정심(出定心)이라는 결과를 취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두 선정은 바로 추구하고자 하는 바였기에 필시 [출정심보다] 먼저 일어나야 하며, 이것이 장애함에 따라 출정심은 입정할 때의 마음과 무간에 바로 일어나지 않게 되니, 이러한 뜻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분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앞서 ‘이러한 능작인의 취과는 현재가 아닌 때가 없으며, 또한 취과하지 않고서는 여과의 뜻도 없다’고 한 말은 그 이치가 지극히 잘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비바사론』에는 이와 같은 “그러한 능작인의 취과와 여과는 다같이 과거ㆍ현재와 통한다”는 설이 있지만, 이치는 마땅히 그렇지 않으니, 법이 현재에 존재하더라도 역시 또한 동류ㆍ변행의 두 원인과 같은 것은 모두 미래의 존재를 취하여 자신의 결과로 삼기 때문이다.(이상 6인의 취과 관계)
구유인과 상응인의 여과(與果)도 역시 그러하여 오로지 현재할 때만 여과하니, 이러한 두 원인의 취과와 여과는 반드시 동시[俱時]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류와 변행의 두 원인의 여과는 과거ㆍ현재와 통한다. 능작인 중에 존재하는 온갖 결과도 마땅히 이러한 설과 동일하다고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능작인의 여과는 과거ㆍ현재와 통한다고 해야 한다.) 그렇지만 일체[의 능작인]이 다 결과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니, 그래서 [본송에서] 이에 대해 논의하지 않은 것이다.34)
동류와 변행의 두 원인의 여과의 경우, 과거는 그럴 수 있다 할지라도 어떻게 현재에 등류과를 낳게[與]할 수 있는 것인가?
등류과는 [원인과] 무간에 생겨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35) 즉 이러한 두 원인과 무간에 등류과가 생겨나는 경우가 있다고 함은, 바로 [원인이] 현재할 때 무간에 결과 역시 취(取)하기도 하고 낳게[與] 하기도 하니, 이러한 결과가 이미 생겨나고 원인이 과거로 낙사(落謝)한 것을 ‘이미 취과하였고 여과하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두 원인이 소멸하여 과거에 이르고, 그것의 등류과가 바야흐로 생상위(生相位)에 이를 때, 이러한 두 원인은 생상위의 결과를 먼저 취(取)하고 지금 낳게[與]하는 것이다. 여기서 여과(與果) 즉 ‘결과를 낳게 한다’고 하는 말은, 이를테면 이러한 온갖 원인이 바로 그 힘을 부여하여 그것(결과)으로 하여금 생겨나게 하는 것 등을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능작인은 바로 현재 존재할 때 그것의 증상과도 현재 이미 생겨난 경우가 있으니, 예컨대 안근 등이 능작인이 되어 안식 등의 온갖 증상과를 낳는 경우가 그러하다. 또한 무간(無間)에 생겨나는 경우도 있으니, 예컨대 세제일법(世第一法) 등이 능작인이 되어 고법지인 등의 온갖 증상과를 낳는 경우가 그러하다. 또한 시간적인 간격[隔越]을 두고서 생겨나는 경우도 있으니, 예컨대 순해탈분(順解脫分)의 선근 등이 능작인이 되어 삼승(三乘)의 보리(菩提)인 진지(盡智) 등의 온갖 증상과를 낳는 경우가 그러하다.36)
선(善)의 동류인은 어떤 때 취과하지만 여과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37) 마땅히 4구로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제1구는 이를테면 선근을 끊을 때 최후로 버리는 [선근의] 득(得)이다.38) 제2구는 이를테면 선근을 속생(續生)할 때 최초로 획득하는 [선근의] 득이다.39) 그런데 경주(經主)는 이에 대해 그릇되게 “이때 속생하는 것은 앞서 [선근을 끊을 때 최후로 버렸던 선근의] 득이라고 마땅히 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40) 지금 그의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치상 마땅히 그렇지가 않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오로지 [선근을] 끊은 상태에서 최후로 버렸던 [선근의] 득이 지금 [선근을] 속생할 때 최초로 획득하는 등류과를 낳게[與] 하는 것은 아니니, [선근을] 끊은 상태에서 이미 득을 멸하였으며, 역시 또한 [선근을] 속생할 때의 득이 등류과를 낳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이전 상태(일찍이 선근을 끊지 않은 상태)의 다 찰나의 득을 동류인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속생한 선근은] 다 지금의 득을 [동류인으로] 취하며, 지금의 상태에서는 다만 최후 일 찰나의 득이 지금 획득하는 결과를 낳게 한다고 설해야 하니, 그렇기 때문에 본문(本文) 그대로가 뛰어난 것이라고 해야 것이다.
제3구는 이를테면 선근을 끊지 않은 자가 그 밖의 여러 상태[에 있을 때의 득]이다.41) 제4구는 앞서 언급한 상을 제외한 그것이다.42)
또한 불선(不善)의 동류인에 대해서도 역시 4구로 분별해 볼 수 있다.
제1구는 이를테면 [제9 무간도에 의해] 욕탐을 떠날 때 최후로 버려지는 [번뇌의] 득이다. 제2구는 이를테면 이욕(離欲)에서 물러날 때 최초로 획득하는 [번뇌의] 득이다. 그런데 경주는 이에 대해서도 역시 “이때 물러나는 것은 앞서 [욕탐을 떠날 때 최후로 버렸던 번뇌의] 득이라고 마땅히 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43) 지금 그의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치상 역시 그렇지 않으니, 앞에서 설한 바와 같은 허물이 있기 때문이다. 제3구는 이를테면 아직 욕탐을 떠나지 않은 자가 그 밖의 여러 상태[에 있을 때의 득]이다. 제4구는 앞서 언급한 상을 제외한 그것이다.
유부무기(有覆無記)의 동류인 중에도 역시 4구가 있으니, 아라한과를 획득할 때와 [거기서] 물러날 때와 아직 획득하지 않았을 때와,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상태가 바로 그것으로, 마땅히 이치에 맞게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44)
무부무기(無覆無記)의 동류인 중에는 순후구(順後句)가 있다. 이를테면 여과할 때는 반드시 역시 또한 취과하니, 무부무기는 동류인이 되어 열반에 이르기까지 항상 상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 어느 때 취과하더라도 여과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아라한이 [무여열반에 들 때의] 최후의 제온이 그러하다.45)
유소연(有所緣)의 찰나의 차별에 근거한 선의 동류인에도 역시 4구가 있으니,46) 제1구는 이를테면 선심과 무간에 염오심과 무기심이 일어나는 경우이고, 제2구는 이를테면 이와 반대되는 경우이고, 제3구는 이를테면 선심과 무간에 다시 선심이 일어나는 경우이고, 제4구는 이를테면 앞서 언급한 상을 제외한 그것이다.47) 그리고 [유소연의 찰나의 차별에 근거한] 불선심 따위의 동류인에 대해서도 그것이 상응하는 바에 따라 역시 4구가 있으니, 앞의 예에 준하여 설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이상 동류인의 취ㆍ여과)
이숙인의 여과는 오로지 과거에 있을 때이니, 이숙과는 그 원인과 동시[俱]에 존재하거나 혹은 무간에 존재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7.4. 서방사(西方師)의 9과설
그런데 서방(西方)의 모든 논사들은 “결과에는 아홉 가지가 있다”고 설하고 있는데, 앞에서 논설한 5과 이외에 4과를 별도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는 가행과(加行果)이니, 이를테면 마치 무생지(無生智) 등이 부정관(不淨觀) 등의 먼 결과가 되는 것과 같다. 둘째는 안립과(安立果)이니, 이를테면 마치 수륜(水輪)이 풍륜(風輪)의 결과가 되고, 내지는 풀[草] 따위가 대지의 결과가 되는 것과 같으니, 이처럼 일체의 안립된 법은 모두 능히 안립과가 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셋째는 화합과(和合果)이니, 이를테면 마치 싹 등이 시기와 땅과 수분과 종자 등의 결과가 되고, 안식(眼識) 등이 눈과 색과 밝음과 작의(作意) 등의 결과가 되는 것과 같다. 넷째는 수습과(修習果)이니, 이를테면 마치 변화심 등이 온갖 정려의 결과가 되는 것과 같다.48)
그러나 이와 같은 네 결과는 모두 사용과와 증상과에 포섭되니,49) 이에 따라 결과에는 오로지 다섯 가지 뿐이라고 설해야 한다.
7.5. 제법과 6인의 관계
원인과 결과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여기서 마땅히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니, 어떤 법은 이 중 몇 가지의 원인에 의해 생겨나는 것인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법에는 간략히 네 가지가 있으니, 이를테면 염오법(染汚法)과 이숙생법(異熟生法)과 첫 번째 무루법(즉 苦法智忍)과 이 세 가지 이외의 나머지 법이 그것이다.
나머지 법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말하자면 이숙생을 제외한 그 밖의 무기법과 첫 번째 무루법을 제외한 그 밖의 나머지 여러 선법이다.50)
이와 같은 네 가지 법[이 몇 가지 원인에 의해 생겨나는지]에 대해 게송으로 말하겠다.
염오법과 이숙생법과
나머지 법과 첫 번째 성도는 차례대로
이숙인과 변행인과 이 두 가지와,
아울러 동류인을 제외한 그 밖의 원인에 의해 생겨난다.
이것은 말하자면 심ㆍ심소에 대한 것으로
그 밖의 법은 아울러 상응인을 제외한다.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염오법은 이숙인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가지 원인에 의해 생겨나니, 이숙인에 의해 생겨나는 제법은 염오하지 않기 때문이다.51)
이숙생법은 변행인을 제외한 그 밖의 다섯 가지 원인에 의해 생겨나니,52) 변행인에 의해 생겨나는 제법은 오로지 염오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 가지 이외의 나머지 법은 양쪽 모두에 걸친 이숙과 변행의 두 가지 원인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가지 원인에 의해 생겨나니,53) 그 밖의 법은 이숙생이 아니기 때문이며, 아울러 염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무루법의 경우 아울러 동류인을 제외한다. 여기서 ‘아울러’라고 하는 말은 이숙과 변행의 두 가지 원인을 역시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원인에 의해 생겨난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니,54) 첫 번째 무루법은 앞서 생겨난 동류의 법을 갖지 않기 때문이며, 아울러 이는 바로 선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여사는 말하기를 “여기서 마땅히 모든 염오법은 오로지 네 가지 원인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왜냐하면 변행인은 그 자체 동류인을 떠나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은 올바른 이치가 아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만약 그가 [동류인만 설하고] 변행인을 설하지 않은 자라면, 다른 부(部)의 염오의 원인을 설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며, 만약 그가 [변행인만 설하고] 동류인을 설하지 않은 자라면, 변행이 아닌 법이나 변행법은 온갖 염오법의 원인을 획득한다고(다시 말해 염오법을 원인으로 하여 획득된다고) 설하지 않았다고 해야 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탐 등은 탐 등을 원인으로 하여, 득(得)은 득의 원인에 의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에 염오법은 이숙인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가지 원인에 의해 생겨난다고 하는 이러한 설이 이치에 맞는 것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의 법은 무엇에 대해 설한 것인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이는 오로지 심과 심소에 대해 설한 것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 밖 다른 불상응행이나 색의 네 가지 법은 다시 몇 가지 원인에 의해 생겨나는 것인가?55)
심ㆍ심소법에서 제외된 원인 이외에 상응인도 아울러 제외하니,56) ‘그 밖의 다른 법’(즉 불상응행법과 색법)은 그와 같은 원인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가지ㆍ세 가지ㆍ두 가지 다른 원인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염오한 색법과 불상응행법은 심ㆍ심소와 마찬가지로 이숙인을 제외하며, 아울러 상응인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가지 원인에 의해 생겨난다. 이숙생의 색법과 불상응행법은 심ㆍ심소와 마찬가지로 변행인을 제외하며, 아울러 상응인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가지 원인에 의해 생겨난다. 세 가지 이외의 나머지 색법과 불상응행법은 심ㆍ심소와 마찬가지로 양쪽 모두에 걸친 이숙과 변행의 두 가지 원인을 제외하며, 아울러 상응인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원인에 의해 생겨난다. 첫 번째 무루의 색법과 불상응행법은 심ㆍ심소와 마찬가지로 앞의 세 가지 원인을 제외하며, 아울러 상응인을 제외한 나머지 두 가지 원인에 의해 생겨난다. [그렇지만] 하나의 원인에 의해 생겨나는 존재[法]는 결정코 아무 것도 없다.57)
여기서 마땅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니, 일체의 법 가운데 어떠한 법이, 능히 몇 가지 원인의 자성(自性)이 되는 것인가?
이를테면 혹 어떤 법은 모두를 갖추어 능히 6인의 자성이 되는 경우가 있으며, 나아가 어떤 법은 능히 한 가지 원인의 자성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중에서 모두를 갖추어 능히 6인의 자성이 되는 법이란, 이를테면 과거ㆍ현재의 불선이면서 변행(遍行)인 온갖 심ㆍ심소법이 바로 그것이다. 능히 다섯 가지 원인의 자성이 되는 법이란, 말하자면 과거ㆍ현재의 불선이면서 변행이 아닌 온갖 심ㆍ심소법, 혹은 무기이면서 변행인 심ㆍ심소법과 선한 유루의 심ㆍ심소법, 혹은 불선이면서 변행인 불상응행이 바로 그것이다. 능히 네 가지 원인의 자성이 되는 법이란, 이를테면 과거ㆍ현재의 불선인 온갖 색법, 혹은 선한 유루의 색법과 심불상응행법, 혹은 불선이면서 변행이 아닌 심불상응행법, 혹은 무기이면서 변행인 불상응행법, 혹은 무기이면서 변행이 아닌 심ㆍ심소법, 혹은 온갖 무루의 심ㆍ심소법, 혹은 온갖 미래의 불선이나 선한 유루의 심ㆍ심소법이 바로 그것이다. 능히 세 가지 원인의 자성이 되는 법이란, 이를테면 과거ㆍ현재의 무기인 온갖 색법, 혹은 무기이면서 변행이 아닌 심불상응행법, 혹은 무루의 색법과 불상응행법, 혹은 미래의 불선이나 선한 유루의 색법과 심불상응행법, 혹은 무기와 무루의 심ㆍ심소법이 바로 그것이다. 능히 두 가지 원인의 자성이 되는 법이란, 이를테면 미래의 무기와 무루의 온갖 색법과 심불상응행법이 바로 그것이다. 능히 한 가지 원인의 자성이 되는 법이란, 이를테면 무위법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법으로서 원인이 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결과가 아닌 법은 있으니, 이른바 허공과 비택멸이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마땅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니, 이와 같은 6인의 자성을 서로 비교하여 보면 순전한 것[純]도 있고 뒤섞여 있는 것[雜]도 있다.
먼저 능작인을 구유인과 대조하면 후구(後句)를 따른다고 할 수 있으니, 이를테면 구유인은 반드시 능작인과 뒤섞여 있다. 그러나 순전히 능작인이면서 구유인이 아닌 경우도 있으니, 이를테면 무위법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능작인을 동류인과 대조하여도 역시 후구를 따른다고 할 수 있으니, 이를테면 동류인은 반드시 능작인과 뒤섞여 있다. 그러나 순전히 능작인이면서 동류인이 아닌 경우도 있으니, 이를테면 미래법과 아울러 무위법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능작인을 상응인과 대조하여도 역시 후구를 따른다고 할 수 있으니, 이를테면 상응인은 반드시 능작인과 뒤섞여 있다. 그러나 순전히 능작인이면서 상응인이 아닌 경우가 있으니, 이를테면 온갖 색법과 불상응행법, 그리고 무위법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능작인을 변행인과 대조하여도 역시 후구를 따른다고 할 수 있으니, 이를테면 변행인은 반드시 능작인과 뒤섞여 있다. 그러나 순전히 능작인이면서 변행인이 아닌 경우가 있으니, 이를테면 미래법과, 과거ㆍ현재의 변행이 아닌 법과, 그리고 무위법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능작인을 이숙인과 대조해 보더라도 역시 후구를 따른다고 할 수 있으니, 이를테면 이숙인은 반드시 능작인과 뒤섞여 있다. 그러나 순전히 능작인이면서 이숙인이 아닌 경우가 있으니, 이를테면 무기법과 아울러 무루법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구유인을 동류인과 대조하면 후구를 따른다고 할 수 있으니, 이를테면 동류인은 반드시 구유인과 뒤섞여 있다. 그러나 순전히 구유인이면서 동류인이 아닌 경우가 있으니, 이를테면 미래법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구유인을 상응인과 대조하여도 역시 후구를 따른다고 할 수 있으니, 이를테면 상응인은 반드시 구유인과 뒤섞여 있다. 그러나 순전히 구유인이면서 상응인이 아닌 경우가 있으니, 이를테면 온갖 색법과 불상응행법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구유인을 변행인과 대조하더라도 역시 후구를 따른다고 할 수 있으니, 이를테면 변행인은 반드시 구유인과 뒤섞여 있다. 그러나 순전히 구유인이면서 변행인이 아닌 경우가 있으니, 이를테면 미래법과, 과거ㆍ현재의 변행이 아닌 법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구유인을 이숙인과 대조하더라도 역시 후구를 따른다고 할 수 있으니, 이를테면 이숙인은 반드시 구유인과 뒤섞여 있다. 그러나 순전히 구유인이면서 이숙인이 아닌 경우가 있으니, 이를테면 유위 중의 온갖 무기와 무루법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동류인을 상응인과 대조한다면 마땅히 4구(句)로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니, 제1구(동류인이면서 상응인이 아닌 것)는 이를테면 과거ㆍ현재의 색법과 불상응행법이며, 제2구(동류인이 아니면서 상응인인 것)는 이를테면 미래세의 심ㆍ심소법이며, 제3구(동류인이면서 상응인인 것)는 이를테면 과거ㆍ현재세의 심ㆍ심소법이며, 제4구(동류인도 아니고 상응인도 아닌 것)는 이를테면 미래의 색법과 불상응행법, 그리고 무위법이다. 또한 동류인을 변행인과 대조하면 후구를 따른다고 할 수 있으니, 이를테면 변행인은 반드시 동류인과 뒤섞여 있다. 그러나 순전히 동류인이면서 변행인이 아닌 경우가 있으니, 이를테면 과거ㆍ현재의 변행이 아닌 법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동류인을 이숙인과 대조할 경우 마땅히 4구로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니, 제1구는 이를테면 과거ㆍ현재의 무기와 무루법이며, 제2구는 이를테면 미래의 불선과 선한 유루법이며, 제3구는 이를테면 과거ㆍ현재의 불선과 선한 유루법이며, 제4구는 이를테면 미래세의 무기와 무루, 그리고 무위법이다.
만약 상응인을 변행인과 대조한다면 마땅히 4구로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니, 제1구는 이를테면 미래세의 심ㆍ심소법과 과거ㆍ현재의 변행이 아닌 심ㆍ심소법이며, 제2구는 이를테면 과거ㆍ현재의 변행인 불상응행법이며, 제3구는 이를테면 과거ㆍ현재의 변행인 심ㆍ심소법이며, 제4구는 이를테면 온갖 색법과 미래의 일체의 불상응행법과 과거ㆍ현재의 변행이 아닌 불상응행법과, 그리고 무위법이다. 또한 상응인을 이숙인과 대조하더라도 역시 4구로 분별해야 하니, 제1구는 이를테면 무기와 무루의 심ㆍ심소법이며, 제2구는 이를테면 불선과 선한 유루의 색법과 불상응행법이며, 제3구는 이를테면 불선과 선한 유루의 온갖 심ㆍ심소법이며, 제4구는 이를테면 무기ㆍ무루의 색법과 불상응행법, 그리고 무위법이다.
만약 변행인을 이숙인과 대조한다면 마땅히 4구로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니, 제1구는 이를테면 과거ㆍ현재의 무기의 변행법이며, 제2구는 이를테면 미래의 불선과 선한 유루의 법과, 과거ㆍ현재의 선한 유루와, 불선이면서 변행이 아닌 법이며, 제3구는 이를테면 과거ㆍ현재의 불선의 변행법이며, 제4구는 이를테면 미래세의 무기ㆍ무루법과, 과거ㆍ현재의 무루와 무기이면서 변행이 아닌 법과, 그리고 무위법이다.
또한 마땅히 이와 같은 6인의 색(色)ㆍ비색(非色) 등의 온갖 갈래[諸門]의 분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6인 가운데 상응과 변행의 두 가지 원인은 비색이며, 나머지 네 가지 원인은 색과 비색 모두와 통한다. 그리고 그것의 유견(有見)ㆍ무견(無見), 유대(有對)ㆍ무대(無對)의 경우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6인 가운데 오로지 상응인만이 상응법이며, 그 밖의 나머지 원인은 상응법과 불상응법 모두와 통한다. 그리고 그것의 유소의(有所依)ㆍ무소의, 유발오(有發悟)ㆍ무발오, 유행상(有行相)ㆍ무행상, 유소연(有所緣)ㆍ무소연의 경우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6인 가운데 변행과 이숙의 두 가지 원인은 오로지 유루이며, 나머지 네 가지 원인은 유루와 무루 모두와 통한다. 또한 6인 가운데 능작인 한 가지만이 유위와 무위와 통하며, 나머지 다섯 가지 원인은 한결같이 유위이다. 또한 6인 가운데 변행인 한 가지만이 오로지 염오한 것이며, 나머지 다섯 가지 원인은 염오한 것과 염오하지 않은 것 모두와 통한다. 그리고 유죄(有罪)ㆍ무죄, 흑(黑)ㆍ백(白), 유부(有覆)ㆍ무부, 순퇴(順退)ㆍ불순퇴의 경우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6인 가운데 이숙인 한 가지만이 오로지 유이숙(有異熟)이며, 나머지 다섯 가지 원인은 유이숙과 무이숙 모두와 통한다.
또한 6인 가운데 능작인 한 가지만이 삼세와 비세(非世, 즉 무위를 말함)와 통하고, 구유ㆍ상응ㆍ이숙의 세 가지 원인은 모두 삼세와 통하며, 동류와 변행의 두 가지 원인은 오로지 과거ㆍ현재와 통한다.
또한 6인 가운데 변행인 한 가지만이 불선ㆍ무기이고, 이숙인 한 가지는 선ㆍ불선과 통하며, 나머지 네 가지 원인은 모두 3성(性)과 통한다.
또한 6인 가운데 변행인과 이숙인은 3계의 계(繫)와 통하며, 나머지 네 가지 원인은 3계의 계와 통하고 불계(不繫)와도 통한다. 또한 6인 가운데 변행과 이숙의 두 가지 원인은 오로지 비학비무학(非學非無學)이지만, 나머지 네 가지 원인은 모두 세 가지(유학ㆍ무학ㆍ비학비무학)와 통한다.
또한 6인 가운데 변행인 한 가지는 오로지 견소단(見所斷)이지만, 이숙인은 견소단과 수소단(修所斷)에 통하며, 나머지 네 가지 인원은 견ㆍ수소단과 비소단(非所斷)과 통한다. 또한 6인 가운데 능작인 한 가지만이 4제(諦)에 포섭되는 것과 비제(非諦)에 포섭되는 것 모두와 통하고, 변행과 이숙의 두 가지 원인은 오로지 고제(苦諦)ㆍ집제(集諦)에 포섭되는 것과 통하며, 나머지 세 가지 원인은 고ㆍ집ㆍ도 3제(諦)에 포섭되는 것과 통한다.
또한 6인 가운데 상응인과 변행인은 오로지 4온(蘊)에 포섭되고, 구유ㆍ동류ㆍ이숙의 세 가지 원인은 5온에 포섭되는 것과 통하며, 능작인 한 가지만이 5온에 포섭되는 것과 온에 포섭되지 않는 것 모두와 통한다.
또한 6인 가운데 상응인과 변행인은 의처(意處)와 법처(法處)에 포섭되고, 이숙인 한 가지는 색ㆍ성ㆍ의ㆍ법의 4처에 포섭되며, 나머지 세 가지 원인은 12처에 포섭된다. 또한 6인 가운데 변행인 한 가지는 의계(意界)ㆍ법계(法界)ㆍ의식계(意識界)에 포섭되고, 상응인 한 가지는 7심계(心界)와 법계에 포섭되는 것과 통하며, 이숙인 한 가지는 색계와 성계, 그리고 7심계와 법계에 포섭되는 것과 통한다. 그리고 나머지 세 가지 원인은 18계에 포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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