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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불사 세 성인을 영원히 사모하며 (내불삼성영사집 來佛三聖永思集) 21
제13장. 호랑이 이리 굴속에서도 당당하게 서 계실 수 있으셨네 (虎狼叢中也立身)
인생印生법사
석가모니불께서는 대승경교大乘經教 속에서 매우 많이 말법시대의 중생들이 수학修學하는 가장 수승한 법문은 바로 염불법문임을 강설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해현노화상은 명심견성明心見性하실 때까지 평생 동안 언제나 염불법문을 주로 삼으셨습니다. 저는 이 글 속에서 단지 해현노화상의 몇 가지 공안을 강설하고자 할 뿐입니다.
노화상께서는 20년 전에 왕덕왕王德旺거사의 신변에 닥치게 될 한 차례의 큰 재난을 막아주셨습니다. 당시에 왕거사가 래불사에 노화상님을 찾아뵈러 왔었는데, 그때 노화상은 그에게 래불사에서 하룻밤 묵고 가라고 완강하게 붙드셨습니다. 그러자 왕거사는 집에 돌아가 조카가 군대 가는 것을 배웅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밤 묵을 수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노화상께서 말씀하시길, “조카 역시 어린애가 아니고, 또 잃어버릴 것도 아니니, 자네가 굳이 집에 가서 조카를 배웅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러면서 한사코 완강하게 왕거사를 가로막으면서 가지 못하게 붙드셨습니다. 이것은 그 어르신께서 평생에 유일하게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제지하신 일이십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로, 왕거사가 래불사에 왔던 그날 바로 백동현에서 살인사건이 하나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 날 사람을 죽인 살인범은 원래 왕덕왕거사와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그 살인범은 사람을 죽인 후 그 즉시 왕거사의 집으로 피신하려고 달려갔다가 왕거사가 집에 없는 것을 알고는 장소를 바꾸어 지부서기의 집으로 갔습니다. 이튿날 공안국에서 그 살인범을 체포하였으며, 지부서기는 그 살인범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붙잡혀 8천원의 벌금을 내었고, 1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였습니다. 만약 그날 왕거사가 자기 집에 있었다면, 그 뒤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 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 번은 노화상께서 이리를 도와 생명을 구해주신 이야기입니다. 20 여 년 전, 저는 산위에 표고버섯을 심었습니다. 어느 날 하루는 노화상께서 저를 보러 오셨는데, 손에 타산봉밀坨山蜂蜜을 한 덩어리 들고 계셨습니다. 저는 노화상께 어디에서 얻은 벌꿀인지 여쭈니, 노화상께서 직접 저에게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한 번은 노화상께서 볼일이 있어 해가하解家河에 가느라고 웅담구熊潭溝를 지날 때, 깎아지른 듯한 가파른 절벽 위의 꼬불꼬불한 좁은 길에서 큰 이리 한 마리를 만나셨습니다. 노화상은 인과를 깊이 믿으시기 때문에 몸을 피하지 않으시고(물론 몸을 피할 곳도 없었습니다.) 입으로 오직 염불만을 하셨으며, 마음속으로 “만약 내가 저 이리에게 목숨을 빚졌으면 마땅히 갚아야 하는 것이니, 나를 잡아먹으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가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그 이리는 성큼성큼 노화상 앞에 와서는 노화상의 바짓가랑이를 물고서 산굴 안의 이리 굴 옆으로 끌고 갔습니다. 노화상이 그 안을 살펴보니, 어미 이리가 난산으로 인해 산굴 안에서 누워 죽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노화상은 그래서 눈을 감으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의 성스러운 명호를 부르셨습니다. 염불하신 지 약 10분 정도 지났는데 어미 이리가 살아 깨어났으며, 새끼 이리를 한 마리 낳았습니다. 그러자 아비 이리는 그 자리에서 즉시 노화상께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구부려 머리를 땅에 대고 감사의 절을 하였습니다.
노화상은 그 이리에게 당부하길, “너는 악을 적게 지어야 하고, 선을 많이 행해야 한다. 이후에 다시는 축생으로 태어나지 않게 되고, 불도를 성취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느냐!”(你要少作點兒惡, 多行點兒善. 以後別來畜生道了, 成就佛道多好啊!) 이튿날 노화상이 해가하에서 돌아갈 때, 다시 그곳을 지나가다가 그 아비 이리가 노화상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아비 이리는 노화상을 가로막고는 수풀 속에서 타산봉밀 한 덩어리를 입에 물고 와서 노화상 앞에 놓았으며, 또 머리를 끄덕이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였습니다. ― 이는 노화상께서 그해에 표고버섯을 심어놓은 저의 장막 안에서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노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생아! 봐라, 이 들짐승도 은혜를 갚을 줄을 안단다!”(印生啊! 你看看, 這野生動物也知道報恩啊!) 저는 당시에 이 이야기를 듣고서 마음속으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노화상께 우스갯소리로 말씀드리길, “스승님! 어르신 같은 장부가 생각지도 못하게 이번에 산파노릇을 하셨습니다!” 제 말에 노화상 역시 “하하” 하고 크게 소리 내어 웃으셨습니다.
어느 해인가 음력 설날에 노화상께서는 탑원사에서 설을 보내셨습니다. 정월 초하루 아침, 하늘에서 거위 털 같은 큰 눈이 한창 펑펑 내리고 있었을 때, 왕덕왕거사가 인운印雲법사와 인공印空법사으로부터 노화상께서 사라지셨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와 왕거사는 청천사清泉寺에서 차를 몰고서 급히 서둘러 탑원사로 갔습니다. 사람이 눈을 밟으면 그 순간 바로 발자국이 사라져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너무 많이 내렸기 때문에, 노화상께서 어느 곳으로 가셨는지 도무지 판단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저희들은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무턱대로 여러 시간을 이리저리 노화상님을 찾아 헤매었지만, 조금의 흔적도 전혀 찾지 못하였습니다. 저희들은 노화상께서 혹 무슨 뜻하지 않은 사고라도 나신 것이 아닐까 몹시 두렵고 초조하여 산위에서 큰 소리로 노화상님을 불렀습니다. 바로 이렇게 저희들이 전혀 어떻게 할 바를 몰라 하고 있을 때, 저 멀리 산꼭대기에서 마치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산 아래를 향해 이동하고 있는 것 같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순간 저희들은 모두 그 사람의 그림자는 노화상일 리가 만무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바람이 세차게 불고 눈이 너무 많이 내렸기 때문에, 설사 젊은 사람일지라도 감히 수월하게 산꼭대기에 올라가지 못할 판인데, 더구나 백 살이 넘으신 노인이야 더 말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왈가왈부하는 중에도 저희들은 그 사람의 그림자를 주시하며 정신을 놓치 않고서 계속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마침내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게 되었는데, 완구(碗口: 화포의 일종) 크기 정도의 마른 나무 한 그루를 노화상께서 어깨에 메고서 멀리서부터 저희 쪽으로 가까이 천천히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저희들은 다 같이 앞으로 몰려가서 노화상의 어깨에 멘 나무를 받았습니다. 노화상께서 “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으시며 저희들에게 “가자, 어서 불 쬐러 가자!”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저희들로 하여금 울 수도 웃을 수도 없게 하셨습니다. ……
노화상께서 탑원사에 상주하실 때, 한 번은 상처를 입은 뱀의 목숨을 살려주신 일이 있으십니다. 나중에 그 뱀은 상처가 다 낫고 난 후에도 여전히 탑원사에서 살았습니다. 시간이 오래되자, 그 뱀은 몸집이 날이 갈수록 커져서 마침내 키가 3미터 넘게 자랐으며, 작은 완구(碗口: 화포의 일종) 굵기 만한 큰 구렁이가 되었습니다. 이 큰 구렁이가 먹는 식사량이 갈수록 많아지자, 노화상께서 그 뱀에게 자상하게 이르시길, “이제 난 널 먹여 살릴 힘이 없으니, 네 스스로 산에 가서 생활하여라. 그리고 반드시 기억할 것은 절대로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이나 동물을 해코지해서는 안 된다. 염불을 많이 해서 하루라도 빨리 축생의 몸을 벗어나야 하느니라.”(我養不起你了, 你自己到山裏生活去吧! 可記著千萬不要無故傷害人和動物. 要多念佛, 早日離開畜生道.) 큰 구렁이는 노화상의 말씀을 들은 후, 그 즉시 사원을 떠나 몰래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이후로는 대체로 매년에 한 차례씩 탑원사로 돌아와 노화상께 문안인사를 하였으며, 사원에서 한참 동안 머물고 난 후에 다시 떠났습니다. 왕덕왕거사 또한 이 큰 구렁이를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노화상께서 사원에 계시지 않았을 때, 임신한 여자신도가 사원에 와서 산문의 문이 빗장이 잠기지 않은 채 닫혀 있는 것을 보고서 문을 밀고 들어가려고 하였습니다. 그 여자신도는 생각지도 못하게 문을 밀다가 그 순간 큰 구렁이 한 마리가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기절했으며, 노화상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려서야 그 여자신도를 깨어나게 하였습니다. 이 일로 노화상께서는 그 큰 구렁이를 한 바탕 호되게 야단치셨으며, 다시는 밖으로 나와서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큰 구렁이는 고분고분하게 노화상의 말씀을 따라 그 날 이후로는 사원에 오면 들보 위에서 얌전하게 몸을 서리고 있었으며, 다시는 밖으로 나와 함부로 나다니지 않았습니다. 노화상께서 래불사로 가시고 난 후로 이 큰 구렁이 역시 다시는 탑원사에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노화상님을 안 세월이 상당히 오래되었기 때문에, 노화상께서 탑원사에 계실 적에 많은 들짐승들이 와서 참배한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당시에 진실한 지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화상께서 법을 강설하실 줄 모르시고, 하루 종일 오직 몸을 써서 하는 일에 애쓰시는 것만을 보았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을 주의 깊게 보지 않고 가볍게 넘겼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 때 노화상께서 지혜를 드러내 보이지 않으신 것이야 말로 바로 진정한 큰 지혜이며, 신통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신 것이야 말로 바로 진정한 큰 신통이었던 것입니다! 보살은 누군가가 그가 보살이라고 임명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제가 노화상님은 보살이시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어르신이 보살인 것이 아니며, 또한 누군가 보살이라고 말했다고 해서 보살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화상님은 대중들이 모두 공공연하게 인정한 보살이시기 때문에, 그 어르신은 진정한 보살이십니다.
저는 정공노법사의 경전강설을 여러 해 동안 들었습니다. 정공노법사께서는 염불하여 서방에 왕생한 예들은 대체로 모두 지나간 과거의 오래된 공안이며, 특히 출가자가 염불하여 성불한 예로써 거론할만한 승려로는 오직 과루장(鍋漏匠: 땜장이) 한 사람만 있을 뿐이며, 의외로 현대에는 특별히 찬탄할 만한 승려는 아무도 없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는 우리 출가자들의 치욕입니다! 현공노화상은 일생 동안 염불을 중단하지 않으셨으며, 원만하게 정토법문을 위해 증전證轉을 해주시어, “염불이 인이고, 성불이 과이다.”(念佛是因, 成佛是果)라는 것을 저희들에게 분명하게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정공노법사의 저희 현공노화상에 대한 그러한 찬탄들은 분명히 조금도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다행히 성인(현공노화상)을 만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다행히 성인(현공노화상)의 학생이 되었으니, 이번 생에 성취하지 못한다면, 어찌되었든 말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들 이외에 또 여기에서 특별히 서술할 필요가 있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한 번은 자신이 정공노법사의 제자라고 자칭하는 어떤 한 여자거사가 남양에 와서 강설하였습니다. 대중은 정공노법사님을 공경하고 앙모하기 때문에 이 여자거사에 대해 역시 추종하고 받들었습니다. 당시 어떤 한 기자가 그 여자거사에게 인터뷰하면서 묻기를, “삼보를 공양하면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그 물음에 그 여자거사가 대답하길, “세 가지 보배는 없으며, 단지 두 가지 보배만이 있을 뿐입니다.” 기자가 다시 묻기를, “어떤 두 가지 보배입니까?” 그 여자거사가 대답하길, “불보와 법보입니다.” 그 기자가 또 묻기를, “그렇다면 머리를 삭발하고 승복을 입은 분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 여자거사가 대답하길,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부랑자입니다.” 기자가 이어서 묻기를, “이미 승보가 없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중생은 복전을 심어서 응당 누구에게 공양해야 합니까?” 그 여자거사가 대답하길, “수행이 깊은 거사에게 공양하면 됩니다.” 그 기자가 다시 묻기를, “그럼 향을 피우면 무슨 공덕이 있습니까?” 그 여자거사가 대답하길, “공기를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그 기자가 묻기를,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 거사가 대답하길, “말법시대에는 단지 한 마디 ‘아미타불’의 성스러운 명호만 있으면 성취할 수 있으며,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치우친 것이 되며 원만하지 않습니다.” ……
그래서 제가 대중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한 마디 언급하길, “저는 어찌 되었든 간에 정공노법사님의 학생이 바로 이러한 정도의 수준일 것이라 믿지 않으며, 그 여자거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나 원만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뜻밖에도 저의 이 한 마디 말이 사람들의 큰 오해를 불러 일으켜서 많은 사람들이 제가 정공노법사를 반대하고 있다고 여기고서 저에 대해 크게 배척하였습니다.
저희 현공노화상께서는 평생 동안 일찍이 이처럼 거만하고 분별없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어투조차도 보여주신 적이 없으십니다. 또한 저는 정공노법사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 것이라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기회를 빌려 제 자신을 위해 분명하게 밝히며, 또한 정공노법사님을 위해 분명하게 밝힙니다. 대중들은 정공노법사님의 경전강설을 많이 들음으로써 불법의 이치를 분명하게 알기를 구하고 다시는 이러한 왜곡된 이치나 삿된 말에 미혹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연생거사)
나무아미타불! 인생법사께서 해주신 현공께서 눈바람을 맞으시면서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벤 재미있는 일을 듣다보니, 말학 역시 노화상에 관한 또 다른 재미있는 일이 하나 생각났습니다. 2010년 여름 어느 날, 래불사에서 한창 삼시계념三時繫念법회가 행해지고 있었을 때 갑자기 정전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거사들은 염불당 안이 무더워 답답함을 참지 못해 바람을 쐬려고 밖으로 나왔다가 현공노화상께서 공구 보따리 하나를 어깨에 메고 탑원쪽에서 긴 사닥다리 하나를 손에 들고서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들은 단지 노화상께서 사닥다리를 벽에 기대어 놓은 후, 위로 올라가 보따리 속에서 공구를 꺼내시더니 분주하게 한참 동안 일하시는 광경만을 보았을 뿐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전기 선로를 다 고쳐놓으셨습니다. 노화상은 다시 사닥다리를 어깨를 메고서 탑원으로 돌아가시려고 하자, 거사 한 분이 도우려고 다가갔더니, 노화상께서는 손을 저으시면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말씀하시길, “자네들은 계속해서 염불이나 하게나! 내가 들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또 전선이 고장 났다는 것을 알았지.”(你們接著念佛去吧! 我在地裏聽不見念佛聲了, 就知道又是電線壞了.)
인생법사는 명문집안의 출신이십니다. 부친은 일찍이 북양정부北洋政府의 기병단장騎兵團長을 지내신 적이 있으십니다. 법사는 출가하기 전에는 유명한 중의학中醫學 의사였으며, 출가한 후로 동백산에서 자라는 약초들을 이용하여 무료봉사로 전국 각지의 불제자를 위해 고치기 어려운 병을 치료해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고통과 어려움을 구제해주는 “살아계신 관세음보살(活觀音)”이라고 대중들에게 칭송을 받으십니다. 법사는 의술에 조예가 깊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불법의 이치에 대해 깊이 깨달은 곳이 있으십니다.
정공노법사의 평생 동안의 행의行誼는 정종의 제13대 조사이신 인광대사의 그 당시와 같으시며, 오로지 정토를 홍양弘揚하고, 여러 종(諸宗)을 밀호密護하십니다. 정공노법사의 한없이 넓고 크신 심량心量을 어찌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무리들이 망령되이 추측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진정한 정공노법사의 제자는 다른 종교에 대해서조차도 오히려 부처님과 똑같이 예경할 수 있는데, 자기 집안의 형제인 불교의 다른 여러 종宗들에 대해 어찌 같은 집안에서 차마 창을 잡고서 싸움을 하겠습니까?
현공노화상의 사적을 수집하기 위해, 말학과 인지법사는 특별히 시간을 내어 서둘러 동백산 청천사에 가서 인생법사와 왕덕왕거사와 함께 네 시간 가까이 긴 담론을 나누었습니다. 인생법사는 지견知見이 순수하고 진실하실 뿐만 아니라, 게다가 성품이 온화하고 자상하여 사람들에게 더욱 더 친근함을 느끼게 해주십니다. 고대 대덕의 가언嘉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돈 있는 사람은 돈을 말하지 않으며, (有錢者不說錢)
권세가 있는 사람은 권세를 말하지 않네. (有權者不說權)
노련한 장군은 병기를 말하지 않으며, (老將軍不談兵)
노화상은 선을 말하지 않네. (老和尚不談禪)
인생법사께서 우리를 위해 현공의 훌륭하신 몇 가지 공안을 말씀해주신 은혜에 대단히 감사를 드립니다. 진실로 인생법사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현공께서는 지혜를 드러내 보이지 않으셨으나 진정으로 큰 지혜를 가지신 분이며, 신통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셨으나 진정으로 큰 신통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오대五代 때의 풍도馮道(882~954년: 정치가)가 일찍이 매우 절묘絶妙한 시를 한 수 지은 적이 있습니다.
위험을 만났을 때 마음 아파하지 말지니, (莫爲危時便愴神)
앞길에 왕왕 이미 정해진 원인이 있다. (前程往往有期因)
(주: 인과: 현재의 “과果”는 일찍이 심어놓은 “인因”의 필연적인 결과라는 뜻이다.
반드시 바다와 산은 현명한 주인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할지니, (須知海嶽歸明主)
반드시 하늘과 땅이 착한 사람을 궁지에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니다. (未必乾坤陷吉人)
도와 덕이 언제 일찍이 세상을 떠난 적이 있으며, (道德幾時曾去世)
배와 수레가 어딘들 가지 못하고 건너지 못하겠는가? (舟車何處不通津)
단지 마음에 온갖 악이 없으면, (但使方寸無諸惡)
호랑이와 이리 굴 속에서도 당당하게 서있을 수 있으리라. (虎狼叢中也立身)
이 시의 대의는 이러합니다. 역경을 만났을 때 침울하고 마음이 아프지만, 일에 어떠한 결과가 있을 수 있는 것은 반드시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고금의 역사를 두루 살펴보면, 강산과 사직은 반드시 덕이 있는 사람이 차지하며, 덕이 없는 사람은 잃어버립니다. 하늘이 어떤 한 착한 사람의 재능을 묻혀지게 할리 없다는 것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 이 도덕법칙은 절대적으로 단멸할 수 없으며 무질서하여 어지러울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이 가운데의 도리를 깊이 깨닫는다면, 자연히 좌우에서 수원水源을 만날 수 있으며,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다 도道뿐입니다. 만약 마음속에 한 터럭이라도 나쁜 생각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으면, 설사 몸이 호랑이 굴이나 이리 굴에 처해 있을지라도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21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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