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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異端에 대한 논쟁은 초대교회가 시작된 이래로 끊임없이 논의되어 온 주제였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고 변개하여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고 교회를 변질시키고자 하는 이단들에 맞선 올바른 정통 신앙과 교의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분별과 투쟁은 늘 있어 왔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교회는 시작부터가 순교의 피로써 세워졌으며 일제강점기와 6ㆍ25 전쟁, 이념적 대립을 거쳐오며 평탄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여 왔기에 더더욱 정통 신앙과 진리를 수호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한층 강력하였으며 해방 이후 재림 예수만 44명에 이르며 기타 교주, 자칭 성령, 하나님이라 칭하는 수다한 이단 사이비들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변질되지 않고 단호히 척결하며 본질적인 모습을 지켜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빛 저편에는 그림자가 있는 법. 옛적 에베소 교회처럼 진리를 수호하고자 하는 노력 이면에는 단순한 오해와 이해 부족 내지 교회 내부의 알력 다툼 등으로 인해 무고하게 이단의 오명을 쓰고 고뇌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특히 교계의 저명한 이단대책위원인 <최삼경>과 <이인규>를 비롯한 이른바 <이단사냥꾼>들과 <이단감별사>들은 사실 본인들부터가 제대로 된 정통 신학과 신앙을 따르지 않는 이단들임에도 이단감별사를 자처하며 무소불위의 횡포를 부리며 무고한 이들의 눈물을 흘리게 했던 것입니다.
특히 한국교회의 이단 정죄는 세계 교회 전체를 조감해 보아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폭압적인 분별인 즉 한번 이단으로 지목당하면 그 교회나 교파가 이단의 오명을 벗기 위해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이단의 누명을 벗겨주지 않는데, 아예 시스템 자체가 이단으로 지목하고 정죄하는 기관은 있어도 재검토하여 명예회복을 해주는 기관은 없는 것이 가장 큰 예입니다.
또한 해당 교회와 교단이 잘못된 점을 깨닫고 해당 사역자가 회개하거나 물러나거나 하여 정통 교회로 돌아오려 해도 그 노력 자체를 <이단성을 감추기 위한 연막 내지는 속임수> 정도로 치부하고, 해당 사역자가 모든 교파 조직을 해산하고 물러나 초야에 묻혔음에도 평생을 이단 명단에 올려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 또한 늘 있어 온 일입니다. 혹은 단순히 교리의 차이 및 관점의 차이가 있는 경우 내지 국내 교단에서 다소 생소한 교리인 경우에도 진지하게 검토하거나 분석하지 않고 이단으로 치부해 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하였습니다.
가장 억울한 예는 해당 교파를 이단으로 지목한 이단감별사가 그 상황의 전후 사실관계를 면밀히 확인하지 않거나 언론 등에서 떠도는 소문만을 사실로 믿고 섣불리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입니다. 이단으로 한번 정죄되면 해제되기가 극히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는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이단>에 대한 정의부터 성경적으로 바로 살펴보고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미 다들 아시는 것처럼 異端이라는 단어 자체가 <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네 기독교인들은 각기 다른 교회를 다니고 교단에 속해 있으나 공통적으로 한 가지 정의를 갖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에게서 나서 그리스도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단이 이단인 이유는 시작은 기존 정통 교의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빙자하여 시작하나 그 끝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엉뚱한 결론으로 마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단의 폐해는 무려 신약성경의 디도서에서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그 내용인즉슨
더러운 이익 때문에 가르쳐서는 안 될 것들을 가르쳐서 집들을 온통 뒤집어 놓는 그들의 입을 막아야 될 것이라.(디도서 1:11)
라고까지 극언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단의 폐해를 이보다 더 극명하게 지목한 말씀도 드문데 <더러운 이익>과 <가르쳐서는 안 될 것들>과 <집들을 온통 뒤집어 놓는> 행위들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이단들은 신도들에게 정통 교의와 성경적 진리에서 벗어난 사설들, 즉 가르쳐서는 안 될 것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청년들과 학생들 혹은 가족 구성원들을 가족들과 분리시키고 격리시켜 자신들의 통제 아래 놓이게 하여 집들을 온통 뒤집어 놓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거액의 헌금을 편취하고 심지어는 가정과 분리시킨 신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등으로 더러운 이익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기까지 보면 거의 이단인지 사이비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것도 맞습니다. 제가 위에 열거한 것들은 엄밀히 따지면 <이단의 폐해>이고 이단이 이단이 되는 가장 확고부동한 근거는 바로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성령 보혜사로 이루어진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가 최우선 기준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대략 이러한 기준으로 이단 여부를 검증하고 있는데 각각의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에 대한 정의와 설명이 다르다.
2. 그리스도에 대한 정의와 설명이 다르다.
3. 삼위일체를 부정한다.
4. 구원의 정의가 다르다.
5. 구원받는 방법이 다르다.
6. 성경 이외에 성경과 대등한, 더 높은 권위의 경전이 있다.
7. 헌금, 십일조 등 물질적인 헌납을 강요한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두리뭉실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이것을 좀더 쉽게 풀어서 설명해 보자면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1.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부정하며 그 자리에 다른 누군가를 집어넣는 교리.
→ 이를 통하여 자칭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등장합니다.
2. 구원과 영생, 천국과 지옥을 부정하는 교리.
→ 기독교의 근본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3. 성경의 완전성을 부정하고 새로운 경전을 추가하거나 특정 인물 및 교주의 가르침과 발언이 성경보다 더 위력이 있다는 교리.
→ 해당 교파나 교회가 이단인가 아닌가 가장 쉽고 빠르게 분별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성경 외에 뭔가 권위를 둔 경전이나 서적, 인물이 있다면 100% 이단이라 보시면 됩니다.
4.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행위.
→ 가정과 사회를 화목케 해야 하는 기독교의 본분을 저버린 반사회적 범죄행위입니다.
사실 여기까지가 우리 한국교회에서 전통적으로 견지하여 온 이단론인데 여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이단 정죄 기준이 은연 중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시한부 종말론 교리>입니다. 심판의 날을 지목하여 이날이 그 날이다 하며 성도들과 일반인들을 미혹하고 사리사욕을 취하려 드는 행위 및 그 교리를 의미합니다. 근래에 우리 교계에 판을 치고 있는 이단들 상당수가 이 시한부 종말론에 입각한 무리들이 많으며 그런 이들은 앞에서 열거한 네 가지 항목을 두루두루 저지르기도 하며 명실상부한 이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한부 종말론 교리>에 대해서는 옥석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당 교파와 교회 내지 사역자가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한> 목적으로 시한부 종말론을 인위적으로 지어내어 미혹했다면 그것은 빼도 박도 못할 순도 100% 알짜배기 이단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해당 인물 및 교파가 <주님오심에 대한 소망과 열정으로> 그 경점을 연구하고 분석한 것이 다소 지나친 감이 있거나 성급하여 오류가 있었다면 그것을 일방적으로 이단이라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사실 그다지 티가 나지는 않지만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이 열두 제자들과 사도 바울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모두가 시한부 종말론자입니다. 그들은 그들 당대에 주님께서 재림하시리라는 확신을 갖고 목숨을 던져 복음을 전했으며 주님께서 특별히 남겨 두신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는 맛디아까지 열두 사도가 모두 장렬히 순교하였으며 마지막 사도인 바울 역시 <곧 대환난이 임박하였으니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까지 가르칠 정도였습니다.
때와 시를 사람이 알 수 없다고 하였으나 성경에는 그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 하나님께서는 그 종 선지자들에게 미리 알려주시지 않고는 행하심이 없다는 말씀도 있으며, 그 날이 도적 같이 임한다는 말씀 바로 다음에 빛 가운데 거하는 이들에게는 그 날이 도적 같이 임하지 못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때와 시를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청맹과니가 되어 까막눈으로 있는 것 또한 결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이 구원에 관해서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에 관하여 예언한 선지자들이 열심히 조사하고 살펴보던 것이며 그들 안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다가올 영광을 미리 증거하실 때 그 영이 무엇을, 또 어떤 시기를 지시하시는지 탐구하던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10-11)
언필칭 우리는 매일 매일이 주님이 오시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사람인 이상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말 재림 대망의 신앙을, 마라나타 신앙을 갖고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성경에 계시된 예언들과 말씀들을 상고하며 주님 오실 날의 경점이 언제쯤이 될 것인지 사모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그것을 통하여 더욱 깨어 있고 경각심을 갖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이 <시한부 종말론 교리>가 이단 분별의 기준이 되는 것은 우리 한국교회의 특이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신앙의 종주국인 미국교회를 보아도 해당 사역자와 교파가 반사회적 범죄행위와 일탈을 저지르지 않은 이상 주님오실 때와 경점을 연구하여 배포하는 것에 <주님을 사모하고 기다리지 않는다면 저러한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대해 매우 관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종이 한 장의 차이이지만 그 결과는 미국교회는 마라나타 신앙과 성경 계시록 연구 및 마지막 때에 대한 분별과 종말론의 가르침이 매우 활발해진 데 비해 우리 한국교회는 환난 전 휴거에 대한 소망이 사그라들고 대부분의 교단이 <환난통과설>로 흘러가거나 환난 전 휴거를 부정하는 무서운 차이를 빚어내게 되었지요.
이단에 맞서 정통 신앙과 진리를 지켜내고자 한 우리 한국교회의 헌신과 열성에는 실로 감복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약간의 합리적인 분별과 여지를 두어 이 마지막 때에 교회와 성도들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 마라나타 신앙과 휴거 소망을 꺾지 않았으면 하는 청이 있습니다.
어떤 교파가 있고 사역자가 있는데 그들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시인하고 인정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죄사함의 구원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천국에 가고 믿지 아니하면 지옥에 가는 것을 믿으며
신구약 정경 66권의 성경을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모든 가르침에 우선하며 어떠한 계시, 환상도 성경으로 검증하며
성도로서의 본분과 윤리의식을 갖고 국법을 준수하고 도덕성에 흠이 없다면
그들은 이단이 아니며 우리 교회의 떳떳한 일원인 것입니다.
국내 이단 연구에 있어서는 국제종교문제연구소의 <탁명환> 소장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 분이 제시한 이단 분별의 기준 또한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도신경을 신앙고백으로 인정하지 않음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믿지 않음
3. 신구약 성경 66권 외 다른 권위 있는 교리서가 있음
4. 기성교회 성도들을 대상으로 포교함
5. 교파 지도자들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거나 신격화함
6. 신비체험과 직통계시 등 주관적 신비주의를 우선시함
7.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상징적인 비유로만 풀어냄
일곱 가지 모두 대체로 교계의 이단 분별 기준과 일치하며 객관적으로도 흠잡을 것이 없는 명확한 기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에서 지금까지 교계로부터 근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단으로 지목받아야 온 한 단체와 한 사역자에 대해 검증하고자 합니다. 자의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교계에서 공인된 이단 분별 기준이며 국제종교문제연구소에서 발표된 공식적인 이단 감별의 잣대를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단체와 사역자는 바로 25년 전 시한부 종말론 사건으로 유명했던 <다미선교회>와 이장림 목사입니다.
먼저 이장림 목사에 대해 소개하면 이 인물은 성결교단 출신의 목회자로 생명의 말씀사에서 근무하며 많은 신앙서적들을 번역하였고 특히 <현대인의 성경>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978년에는 미국의 어니스트 앵글리 목사가 쓴 계시록 소설 <Rapture>를 번역하여 국내에 <휴거>라는 제목으로 발간함으로써 국내 기독교문학 사상 최초이자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을 불멸의 베스트셀러 기록을 세운 바 있었습니다.
특히 이 <휴거> 소설이 성도들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초유의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지금까지 미지의 영역이었던 계시록과 예언들, 종말과 재림에 대한 관심을 폭발적으로 일으켰으며 이때를 시작으로 미국의 저명한 목회자들의 종말론 강해와 설교들이 전해지고 각종 연구서적들이 국내로 번역, 출간되어 국내 성도들과 사회적으로도 휴거와 재림, 종말론에 대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세대주의적 종말론에 입각하여 휴거의 때가 가까웠다고 예측한 이장림 목사는 1988년, 첫 작품인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를 집필하였는데 이 책에는 자신이 평소 연구하고 예측해 온 마지막 때에 대한 분별과 더불어 자신의 조카인 김현진(일명 어린 종 진군)이 보았다는 직통계시와 환상에 대해 소개하였습니다.
이 책이 또다시 베스트셀러가 되고 마지막 때가 임박하였다는 열풍이 불기 시작하자 이장림 목사는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책 제목을 따서 <다미선교회>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휴거의 때를 기다리는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그 책을 읽고 각지에서 직통계시와 환상을 보았다는 이들이 이장림 목사에게 접근 내지 제보를 하였으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하방익(일명 어린 종 H군), 중학생이던 권미나(일명 어린 종 K양) 등이었습니다.
이들과 함께 일하게 된 이장림 목사는 이들의 직통계시와 환상을 중심으로 <하늘문이 열린다>, <경고의 나팔> 등을 집필하였고 최종적으로 <1992년의 열풍>을 저술하는 것으로 집필을 마치게 되었는데 네 권의 다미시리즈 모두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휴거의 날짜로 지목된 1992년 10월 28일 즈음에는 다미선교회는 전국 100여개 지부, 교인 수 8천명에 이르렀고 다미선교회 외에도 각지에서 92년 나팔절을 믿고 휴거를 기다렸던 교회가 200여개, 교인 수 2만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92년 10월 28일에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고 이장림 목사는 그보다 앞서 경찰에 체포되어 구속되었는데 가택수색 과정에서 현금 1억 9천만원과 93년 5월에 만기되는 환매조건부 채권 3억원, 외화 2만 6,700달러 등이 적발되어 자신도 휴거를 믿지 않으면서 헌금을 가로챘다는 것으로 지금도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이장림 목사는 재판 결과 사기 및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과 외화 2만 달러 몰수형을 받고 수감되었으며 출소 후 다미선교회를 공식 해체하고 교계 언론에 공식 사과문을 낸 후 현재까지 초야에 묻혀 조용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빼도 박도 못할 시한부 종말론자에 휴거를 빙자하여 성도들로부터 거액의 헌금을 거둬들여 가로챈 사기꾼으로 알려진 이장림 목사를 변호한다는 것은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행동이었습니다. 휴거를 소망하고 마라나타 신앙을 가진 축에서는 이장림 목사와 다미선교회로 인해 우리 교계에 종말론 지식이 단절되고 휴거를 외치지 못하게 되었다며 그들을 원망하였고 기성 교단에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단 사이비로 치부해 버리고 있는 상황이니 그들을 변호한다는 것은 다미 잔당으로 몰리기 딱 좋은 교보재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죽여도 공소시효 20년이 지나면 죄를 물을 수 없는데 하물며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것도 그 긴 시간을 조용히 살아온 그를 아직까지도 이단이라 정죄하고 모욕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잣대에서나 인간의 도리로서나 가당한 일인지는 생각할 여지가 있습니다. 재산을 가불받아 탕진한 아들도 돌아오기만 하면 눈물로 맞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우리 교계를 다미선교회를 비롯하여 92년에 휴거를 기다렸던 성도들과 사역자들을 이단이라 정죄하는 것도 모자라 기성교회로 돌아온 이들조차 백안시하고 비난하여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내쫓기다시피 만들었고 그로 인하여 당시에 휴거를 기다렸던 최소 8천명에서 2만명에 이르렀던 성도들과 사역자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사라져 버려 우리 한국교회에 엄청난 손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마라나타 신앙과 휴거 소망으로 무장되어 목숨을 내걸고 예수 재림을 증거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였을 성도들이었으나 너무도 무분별하게 이단으로 정죄당했고, 돌아왔음에도 이단 취급에서 벗어나지 못해 결국은 정착하지 못함으로써 우리 한국교회의 성장 동력이 크게 손실되는 결과를 불러왔었습니다. 만약 우리 교계가 잘 알지 못하고 그들을 무고히 정죄하고 비난한 것이라면 훗날 하나님 앞에서 그 책임을 지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세상 사법부에서도 지켜져야 할 도리일진대 하물며 교회이겠습니까?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정죄되고 묻혀 온 이장림 목사에 대해 정말 성경적인 이단론에 맞추어 재평가하고자 합니다.
우리 교계의 공식 이단 감별 기준을 다시 한번 제시합니다.
1. 하나님에 대한 정의와 설명이 다르다.
2. 그리스도에 대한 정의와 설명이 다르다.
3. 삼위일체를 부정한다.
4. 구원의 정의가 다르다.
5. 구원받는 방법이 다르다.
6. 성경 이외에 성경과 대등한, 더 높은 권위의 경전이 있다.
7. 헌금, 십일조 등 물질적인 헌납을 강요한다.
또한 국제종교문제연구소 탁명환 소장이 제시한 이단 감별기준을 다시 한번 제시합니다.
1. 사도신경을 신앙고백으로 인정하지 않음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믿지 않음
3. 신구약 성경 66권 외 다른 권위 있는 교리서가 있음
4. 기성교회 성도들을 대상으로 포교함
5. 교파 지도자들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거나 신격화함
6. 신비체험과 직통계시 등 주관적 신비주의를 우선시함
7.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상징적인 비유로만 풀어냄
이 두 가지의 기준을 교차 검증하며 이장림 목사에 대해 검증하겠습니다. 우선 교계의 이단 감별 기준으로 보겠습니다.
우선 이장림 목사는 그의 평생 단 한 번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부정한 적이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죄 사함의 구원을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당시 이장림 목사가 집필한 어떤 서적에서도, 다미선교회에서 발간한 어떤 유인물과 서적을 보아도 하나님과 그리스도, 삼위일체, 구원의 방법과 정의에 대해 정통 교리와 성경적 진리에 어긋나는 주장을 한 바가 없으며 다미선교회에는 성경 이상의 권위를 가진 교리서도 존재한 바 없습니다. 따라서 교계의 이단 감별 기준 7가지 중 1번부터 6번까지는 이장림 목사에게 전혀 저촉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국제종교문제연구소 탁명환 소장의 이단 감별 기준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장림 목사는 사도신경을 신앙고백으로 인정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믿으며 성경 이상의 권위 있는 교리서를 둔 적이 없고 기성교회 성도들만을 대상으로 포교한 적도 없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당시 다미선교회의 전도자들은 <다미선교회로 오라고> 전도한 것이 아니라 <휴거가 가까웠다>고 전도하였습니다. 기성교회 성도들이 다미선교회로 옮겨 오고 말고는 전적으로 본인들의 선택이었으며 대부분의 전도자들이 노방전도를 통해 전도하였는데 기성교회 성도들만이 대상이 될 턱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장림 목사는 목회자 이상의 무소불위한 권위를 가진 적도 없으며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상징적인 비유풀이로만 푼 적도 없습니다. 이장림 목사가 견지한 <세대주의적 종말론>은 국내 교계에서는 생소하지만 엄연히 종말론 신학의 정설이며 미국교회를 비롯한 해외 교계에서는 오히려 이 해석이 대세입니다.
이렇게 보시면 탁명환 소장의 이단 분별기준으로 검토해도 7가지 중 1번부터 5번까지와 7번이 이장림 목사에게는 무혐의입니다. 결론적으로 현재 우리 교계가 이장림 목사를 92년 당대에는 물론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단이라 정죄하고 있는 근거는 그들의 14개 이단 분별기준 중 겨우 2개뿐인 것입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장림 목사에게 우리 교계는 잘못에 비해 너무 과도한 정죄를 하고 있다고 보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 2개 또한 재검토를 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이단 분별기준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그 2가지의 항목에 대한 재검토는 이장림 목사에게 씌여진 이단의 오명을 벗겨내는 중대한 근거가 될 것입니다.
먼저 교계의 이단 분별 기준에서 이장림 목사에게 저촉된 것은 7번 항목인 헌금, 십일조 등 물질적인 헌납을 강요한다.는 것이며 국제종교문제연구소의 이단 분별 기준에서 저촉된 것은 6번 항목인 신비체험과 직통계시 등 주관적 신비주의를 우선시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장림 목사를 이단 사이비라 정죄하는 축에서는 엄밀히 따지면 7번 항목에 기인한 연유가 큽니다. 휴거를 빙자하여 성도들의 헌금을 가로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은 사실로, 진실은 진실로 바로 보아야 합니다. 교계의 분위기나 언론의 보도나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이 곧 사실과 진실은 아닙니다.
당시에 이장림 목사가 경찰 조사를 받게 된 것은 이장림 목사를 음해할 목적으로 어떤 목사가 이장림 목사가 마약을 복용한다고 허위 제보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가택수색을 받던 중 알려진 바와 같이 현금과 환매채, 외화 등이 적발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1억 9천만원의 예금 통장과 환매조건부 채권 3억원은 결코 <개인적으로 헌납받아 착복한> 돈이 아니었습니다.
성도들이 낸 헌금과는 별개로 이장림 목사의 친척들이 포함된 다미선교회의 이사들이 모여 <누구는 휴거되고 누구는 남게 될 것인데 환난에 남는 사람이 선교회 건물 임대료와 사무직원들의 체불된 임금을 지급하자는> 목적으로 각출하여 모은 것을 이장림 목사의 자택에 보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당시 언론에서는 이장림 목사가 개인적으로 헌납받아 착복한 돈으로 보도했으며 심지어는 <나는 환난에 남아서 사명을 할 사람이라 그 활동 자금으로 모아 놓은 것>이라고 뻔뻔한 조작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때 적발된 3억원의 환매조건부 채권이 92년 10월 28일 이후인 93년 5월에 만기되어 현금화가 가능한 것으로 인하여 이장림 목사가 자신도 휴거를 믿지 않으면서 사기를 쳤다는 확고한 증거로 일반인들과 교계에 결정적으로 인식되었는데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휴거 이후 환난에 남게 된 사람이 건물 임대료와 직원들 임금을 지불하기 위한> 돈이라면 그 채권 만기일이 92년 10월 28일 이후인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게다가 환매조건부 채권 자체가 어떤 채권 증서를 구입했다가 현금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통장에 입금하는 형식의 채권이라 말이 채권이지 사실상 예금통장이나 다름없으며 만기일과 무관하게 신분증만 가지고 가면 언제든 출금하여 현금화시킬 수 있는 금융상품입니다.
또한 그 현금과 채권 등의 돈이 부정한 돈이 아닌 정정당당한 돈이라는 근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장림 목사가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압수된 현금과 채권들을 돌려달라는 <압수물 가환부 신청>을 낸 것입니다.
이때는 아직 이장림 목사의 재판이 채 끝나기도 전의 일입니다. 만약 압수된 현금과 채권이 정말 헌납 받아 가로챈 부정한 돈이라면 그 자체가 이장림 목사의 범행(?)을 밝히는 증거품인데 되돌려줄 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장림 목사의 신청을 받아들여 가택수색에서 압수한 현금과 수표, 채권 등을 모두 되돌려 주었습니다. 즉 이장림 목사의 재판에서 그 압수된 돈들은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비록 이장림 목사는 사기 및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1년형을 받았으나 여기에도 곡절이 있습니다.
최초에 이장림 목사는 대검찰청 특수부로 압송되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는데 검찰청 특수부라 함은 대학 총장과 재벌 회장도 들어가기만 하면 방망이 세례에 구둣발로 짓이겨지는 그런 곳입니다. 게다가 당시 정부에서도 본보기로 이장림 목사에게 10년형 정도 내리라는 방침이 있어 검찰에서는 사기죄, 사회혼란죄, 외환관리법 위반죄, 폭행협박죄, 횡령죄 등등을 엮어 징역 7년형 정도를 구형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살벌한 곳에서도 이장림 목사에 대해 아무 죄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털어도 털어도 먼지가 안 나오고 오히려 이장림 목사가 금전적으로 결백한 것만 드러나게 되니 당시 이장림 목사를 조사하던 황인정 검사는 처음에는 막 윽박지르다가 두번째 조사부터는 <목사님>이라 제대로 호칭하였고 마지막에는 <우리 한국교회 목사들이 목사님만큼만 깨끗했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겠다>는 기가 막힌 언급을 하기에 이릅니다.
이장림 목사는 92년 당시 다미선교회를 이끌고 집회를 다니면서 한 번도 사례비를 받은 적이 없고 오히려 저서를 팔아 번 돈으로 다른 교회와 성도들을 돕는데 물 쓰듯이 쓴 인물이었습니다. 생명의 말씀사에서 10년 이상 번역부장으로 일하고 받은 퇴직금 전액을 강원도의 기도원 길을 닦는데 헌금했고 개척교회 건물을 새로 지어주고 어려운 형편의 성도와 사역자들을 돕는 등 이장림 목사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람이 200명 밑으로 내리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도움 받은 사람들이 탄원서 한 장씩만 써주었어도 이장림 목사는 설령 그 모든 죄를 진짜로 지었다고 해도 무난하게 무죄 방면 내지 집행유예로 석방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움 받은 이들은 수백에 달했으나 단 한 명도 이장림 목사를 위해 탄원서를 써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미선교회가 거둬들였다는 그 34억원의 헌금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이후 재판부의 언급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재판 직후인 1992년 12월 4일 연합뉴스 기사의 일부를 인용해 보면 말미에 <헌납 받은 돈을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낭비하지 않고 대부분 종교 활동을 위해 소비한데다 피해자들도 피고인의 처벌을 원치 않은 점>이라는 언급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다미선교회에서 거둬들인 헌금 34억원은 이장림 목사 개인 용도로 한 푼도 사용되지 않았으며 전액이 휴거 복음 전파와 다미선교회 본부 및 지부 운영에 지출되었으며 헌금을 낸 사람들도 이장림 목사의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이장림 목사는 휴거를 빙자하여 헌금을 거둬들여 가로채고 착복한 사실 자체가 없습니다. 당시의 검찰과 법원이 모두 인정한 사실인데 이것에 대해 우리 한국교회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이장림 목사에게 씌워진 불명예를 회복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장림 목사가 왜 사기 및 외환관리법 위반죄로 1년형을 살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길 것인데 원래 정부에서 이장림 목사에게 내리라고 한 형량은 10년형, 검찰에서 구형한 형량은 7년형이었으나 조사와 조사가 이어지며 2년형이 선고되었고 최종적으로는 1년형으로 결론이 난 것입니다.
비록 헌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착복하거나 소비한 것은 아니지만 10월 28일에 휴거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그 휴거를 전하고 헌금을 받은 것 자체를 사기로 규정하였기에 사기죄로 지목된 것인데 사실 교회에서 헌금을 받는 것을 사기로 정한 것은 이전에 해당 법률이 없어 이 당시에 최초로 규정한 것이기에 어찌 보면 법령에 없던 것을 소급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죄명은 사기 및 외환관리법 위반이지만 1년형이 선고된 것은 외환관리법 위반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이 또한 정정당당한 법 집행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언론에는 채권과 현금과 더불어 2만 6천 달러 상당의 외화가 있었다고 보도되었으나 그때 다미선교회에서 파송한 해외 선교사가 108명이나 되는 상황에서 매일이다시피 선교비용으로 달러를 송금하는 상황에서 2만 6,700달러나 되는 거액을 비축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2, 3천 달러 정도였고 해외에서 헌금으로 보낸 수표가 1천 달러 정도였습니다. 이 또한 정정당당한 돈이었음에도 압수되었고 이 달러들은 돌려받지도 못하였으며 불과 4, 5천 달러의 외화를 꼬투리로 삼아 2만 6,700달러로 과장하여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엮었던 것입니다. 당시 이장림 목사의 변호사는 판사와 담판을 이어 무죄 석방하기로 합의까지 하였으나 결국 정부의 압력으로 당시 재판을 맡은 이상규 판사는 외환관리법 위반을 그대로 적용하여 1년형을 선고했던 것입니다.
당시 판사와 검사의 실명이 거론된 이상 이러한 일들이 사실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결론적으로 이장림 목사는 금전관계에서 어떠한 부정이 없이 결백하며 교계가 이장림 목사를 이단으로 정죄한 항목인 <물질적인 헌납을 강요한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무관한 억울한 누명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교계의 이단 분별기준 7가지 모두에 이장림 목사는 저촉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남은 국제종교문제연구소의 6번 항목인 신비체험과 직통계시 등 주관적 신비주의를 우선시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검증해 보면 이장림 목사는 엄밀히 따지면 <피해자>에 가깝습니다.
사실 이장림 목사는 휴거의 날짜가 언제라고 지목한 적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휴거를 기다린답시고 흰 옷을 입고 설쳐대거나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거나, 생업을 팽개치는 행동들에 대해 철저히 금지시켰으며 그러한 자들은 다미선교회에 발도 들여놓지 마라고 질책하였습니다. 엄밀히 따져보면 당시에 휴거를 기다린다면서 생업을 포기하거나 낙태를 하거나 기도원에 모여 죽치고 있는다던가 하는 행동들을 한 곳은 다미선교회 직계가 아니라 그냥 일반 교회에서 휴거를 기다리던 사람들 내지는 다미선교회는 아니지만 92년 휴거는 기다렸던 교파라고 하면 거의 정답입니다.
탁명환 소장이 발간한 <현대종교> 1992년 9월호 특집 <시한부 종말론자들을 경계한다>를 보면 92년 당시 전국의 주요 시한부 종말론 교파를 272개소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 중에 이장림 목사 계열을 5개, 이장림 목사의 영향을 받은 곳을 5개, 나머지 262개는 별개의 독립된 시한부 종말론 교파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당시에 92년 휴거를 기다렸던 교회ㆍ교파가 272개가 있는데 그 중 이장림 목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계가 있던 곳은 10개이고 262개는 각자가 독자적으로 활동했다는 것입니다. 그 10개조차도 엄밀히 따지면 이장림 목사의 수하가 아닙니다.
다미 계열이라 소개된 5개 중 다미선교회만이 이장림 목사의 직계이며 나머지 다베라선교회(하방익), 성화선교교회(권미나), 다미선교교회(김현진), 베데스다 신학교(함민덕)는 이장림 목사의 밑에 있다가 각자 이해관계를 따라 떨어져 나간, 이장림 목사 입장에서 보면 배신자들입니다. 나머지 범 다미 계열 5개도 COC 선교회, 오메가선교회, 샬롬선교회, 인천 온누리교회, 마라나타 선교회인데 이들 모두 이장림 목사와는 직접적인 연계나 동역 관계가 없으며 세대주의적 종말관을 공유할 뿐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장림 목사의 다미선교회는 당시 난립하던 272개의 교파 중 꽤 규모 있는 하나였을 뿐이며 나머지 휴거 기다리던 교파에서 벌어진 행위들까지 이장림 목사가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다미선교회 직계라 해도 본부 이외의 지방의 지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장림 목사가 일일이 꿰뚫어 보고 통제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다미선교회 초기에 이장림 목사가 H군, 진군, K양 등 수다한 어린 종들의 직통계시와 환상에 주목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장림 목사 본인이 그 무슨 직통계시나 환상을 보고 듣고 휴거 날짜를 지목하여 외친 것은 결코 아니었으며 엄연한 사실은 <그 어린 종들이 이장림 목사에게 자신들의 계시와 환상에 대해 제보해 온 것>입니다.
이장림 목사는 세대주의적 종말론과 함께 당시 꽤 유력한 가설이었던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으므로 하나님이 6일 간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은 인류 역사가 6000년이고 이후 천년왕국이 임한다>는 것을 채택하였습니다. 그 계산으로 적용하면 서기 2000년에 인류의 역사는 끝나고 지상재림이 이루어지며 그로부터 7년을 빼면 1993년 초, 1992년 말에 휴거 및 7년 대환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상당히 진지하게 논의된 가설이었으며 조용기 목사를 비롯한 교계의 유력한 목사님들도 서기 2000년이 되면 종말이 될 것이라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이장림 목사는 또한 이스라엘의 일곱 절기를 면밀히 분석하여 나팔절에 휴거가 임한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는데 (이는 미국 종말론 학계에서도 정설입니다.) 나팔절은 현대 달력으로 날짜를 환산하면 9월 28일에서 10월 28일인 것입니다. 사실 직통계시나 환상까지 갈 것도 없이 여기에서 이미 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온다고 주장할 기초적인 근거는 마련된 바 있습니다. 그때가 지난 지금 기준으로는 에러라고 할 수 있으나 당시 기준에서는 성경적으로도 진지한 분석이었습니다.
이장림 목사가 휴거 날짜를 도출한 것은 직통계시나 환상, 예언에 의해서가 아닌 당대에 진지하게 논의되던 학설과 국내외 종말론 연구가들의 절기 분석을 통한 잠정적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장림 목사는 이를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그저 휴거의 때가 가깝다는 식으로만 언급하였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H군, K양, 진군 등 어린 종들이 이장림 목사의 다미선교회에 끼어들었으며 일반 성도들이 보기에는 어려운 성경 분석보다 직통계시와 환상, 예언이 좀 더 비주얼하고 신기하였기에 급속도로 여기에 빠져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성령훼방죄에 대한 개념도 잡히지 않았을 때라 성령의 은사를 받아 계시를 받고 환상을 보는 것에 대해 비난, 비판하는 것을 성령훼방죄로 여겨 두려워하는 시각도 있었기에 그 어린 종들을 분별하고 경계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결국은 이장림 목사의 성경적 가르침보다 이 어린 종들의 계시, 환상에 휩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어린 종 H군 하방익의 동역자인 전양금 전도사라는 인물이 처음으로 직통계시를 빙자하여 휴거 날짜가 1992년 10월 10일이라는 폭탄선언을 해버렸고 뒤이어 인천 온누리교회의 박화자 사모라는 인물이 마찬가지로 직통계시를 빙자해 휴거 날짜를 1992년 10월 28일이라고 선포해 버립니다. (전양금 전도사와 박화자 사모는 <현대종교>의 공식 기록에도 92년 당시 최초로 휴거 날짜를 지목하여 언급한 인물들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건전한 성경적 분석과 연구로 날짜가 도출된 것이 직통계시자들에 의해 성급하게 선포되어 그것이 성경 분석과 연구가 아닌 직통계시를 받아 확정된 휴거 날짜로 알려져 버렸고 이때부터 상황은 이장림 목사가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로 폭주하여 흘러갔던 것입니다.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후 H군 하방익과 K양 권미나, 진군 김현진, 전양금 전도사 모두 각자의 이익을 찾아 따로 교파를 차려 흩어졌고 결국 이장림 목사와 다미선교회에 엄청난 먹물을 튀기고 달아나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권미나의 경우는 예외적인데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부친에 의해 억지로 이끌려 성화선교교회를 차리게 된 것입니다.)
이장림 목사는 이제 와서 헌금하고 기도원에 틀어박히고 무언가를 한다고 해서 휴거 안 될 사람이 휴거된다고 보지는 않았고 휴거를 기다린답시고 경거망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극히 건전한 목회자다운 관점을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다미선교회 출판부에서 출간한 <인류의 멸망을 대비하라>는 서적입니다.)
(마지막 때의 성도들이 엄금해야 할 경거망동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이는 매우 건전하고 성경적임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당대 이장림 목사와 다미선교회가 견지했던 기조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직통계시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일들은 수습하기 어려웠고 과열된 분위기는 이장림 목사 한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장림 목사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홀로 지고 옥고를 치르고 시한부 종말론 이단의 수괴로 낙인찍혔으며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에 대한 명예회복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장림 목사에게 접근하여 다미선교회에게 엄청난 혼란과 미혹을 야기했던 그 직통계시파의 거두였던 전양금 전도사는 새생명교회로 교회 이름을 바꾸고 대한예수교장로회 보수통합측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아 현재까지 목회를 하고 있으며 어린 종의 필두였던 H군 하방익은 다베라 선교회를 빛의 소리 선교회, 사자교회 등으로 이름을 바꾸고 본인의 이름도 하다니엘로 개명한 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개혁측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아 현재까지 목회를 하고 있으며 사단법인 기독교이단사이비 연구대책협의회 전문연구위원으로 위촉되어 이른바 <이단감별사>의 대열에 섰습니다. 그는 92년 나팔절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고문을 쓰기도 하였는데 그 당시의 혼란상이 누구로 인해 생겼는지 생각해 본다면 참으로 아이러니할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다들 명예회복이 되고 복권되어 지금도 목회자로서 일선에 있는데 엄밀히 그들로부터 피해를 당한 이장림 목사는 아직까지 복권이 되지 못하고 이단의 오명을 쓰고 있는지 참으로 불공평한 일입니다. 혹자는 전양금과 하방익은 그때 이후 공식적으로 회개하고 사죄하였기에 용서를 받은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이장림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이상 무엇을 더 어떻게 사과를 해야 진정성 있는 사과입니까? 역대 그 수다한 이단들 중에 본인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이 정도로 깨끗하게 시인하고 사죄하고 책임을 진 이들은 이장림 목사와 장막성전의 유재열 목사 정도입니다. 이 정도로 했는데도 이후 25년 넘도록 이단 취급을 하고 정죄한다면 대체 그것을 보고 어느 이단이 회개하고 돌이켜 돌아오겠습니까?
2011년에 휴거 파동을 또다시 일으켰던 회복교회 김관운 전도사, 2015년에 휴거 파동을 일으켰던 천안 박인숙 권사를 비롯하여 수다한 이단들이 자신들이 잘못한 것을 알든 모르든 돌이켜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어쩌면 이장림 목사의 비참한 결말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모두 인정하고 회개하고 사죄하고 교단을 모두 해산하였음에도 25년이 넘도록 정죄당하는 그 모습을 보았기에 그것이 본보기가 되어 다른 이단들도 돌아오지 못하고 돌이키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도합 14가지에 이르는 이단의 혐의를 모두 저질렀다 해도 뉘우치고 회개하여 돌아왔다면 그 모든 죄과를 도말하고 받아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와 성도의 도리입니다. 그러나 이장림 목사는 14가지 항목 중 단 한 가지도 저촉됨이 없으며 저지르지 않았고 도리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시대의 희생양이 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은 이때에 이장림 목사의 이단 누명은 반드시 재평가되고 그 명예가 회복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훗날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 일에 대해 <이 무고한 자를 너희는 어떻게 평하였는가> 물으실 터인데 과연 그때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P.S.
(현대종교 1992년 6월호 <1992년의 허풍>이라는 기사에서 다미선교회 해외지부를 취재하고 온 기자의 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