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순 작가의 책가방
통쾌한 반란
『마틸다』(로알드 달 글, 퀜틴 블레이크 그림, 김난령 옮김,시공주니어, 2000)
2000년 대 초, 나는 영국에서 한 일 년 머물 기회가 있었다. 당시 나는 동화작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지만, 해외아동문학작품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당시는 해외어린이 책의 번역출간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시기였으나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바쁜 개인생활로 그마저도 접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에서 생활하면서 셰익스피어 못지않게 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작가가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즉 ‘찰스 디킨스’와 ‘로알드 달’이었다. ‘찰스 디킨스’는 『위대한 유산』과 『올리버 트위스트』로 익히 알고 있던 작가였지만, ‘로알드 달’은 부끄럽지만 금시초문이었다. 내가 동화작가라고 하니까 영국 사람들의 대부분이 ‘로알드 달’을 한 번 읽어보라며 권할 정도였다.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도서관에서 ‘로알드 달’을 검색해보았다.
그는 아동소설과 성인소설, 라디오극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다작을 한 다재다능한 작가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의 작품의 대부분은 영화화되었거나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나는 그가 누구나 언급할 정도의 위대한 작가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도 있었고, 대부분의 작품이 문화콘텐츠화 되었으니 분명 인기에 영합하는 대중작가일 거라는 어쭙잖은 인식도 내심 작용을 했다. 그래서 우선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이었다. 너무나 빤히 드러나는 교훈주의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판타지적인 발상은 본받을만하다고 여겼다.
그 후 돌아와서 보니 의외로 ‘로알드 달’의 저서가 국내에 꽤 많이 나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짧은 영어실력으로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한 그의 작품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런데 내 생각이 완전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동안 나는 시건방졌고, 눈 뜬 장님이었던 셈이었다. 특히 『맛』에 실린 단편소설들의 기막힌 반전은 무릎을 치게 만들 정도로 기발한 것들이었다. 내친 김에 손에 든 것이 『마틸다』였다.
마틸다! 그건 내게 있어서 폭풍이었다. 마치 머릿속에서 쥐가 날 정도였다.
이건 뭐지? 동화가 이렇게 막 나가도 되는 거야? 이렇게 발칙한 아이가 어디 있어? 어른은 또 왜 이렇게 악독하지? 너무 과장된 거 아니야? 이렇게 무심한 부모가 어디 있지?
수많은 물음표와 동시에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과 통쾌함은 또 뭔지.
『마틸다』는 그동안 내가 지니고 있었던 아동문학에 대한 고루함을 한 순간에 휙 날려버렸다.
마틸다의 아빠, 웜우드 씨는 중고자동차 매매상이다. 그는 장물차를 속여 팔거나 휘발유에 이물질을 섞어 파는 악덕업자이며, 그의 부인은 쇼핑중독에 텔레비전 광이며, 아이들에게 인스턴트 음식을 주로 먹이는 막돼먹은 주부이다. 도대체 그들이 부모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웜우드 씨 부부는 아들선호사상이 매우 강해서 마틸다의 의견을 번번이 무시하기 일쑤였다.
다행히 천재적인 기질을 타고난 우리의 마틸다는 부모 같지 않은 부모에 연연하지 않는다. 곧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터득하고는 악덕업자인 아빠를 골려주기로 마음먹는다. 아빠가 즐겨 쓰는 모자에 초강력접착제를 발라 머리털이 몽땅 뽑히게 만드는가 하면, 웜우드 씨의 헤어토닉에 엄마의 은발염색약을 몰래 섞어 머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어디 그 뿐인가. 말하는 앵무새로 유령소동을 벌임으로써 그들을 징계하는 장면에서는 그만 킬킬거리며 웃고 말았다.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겨우 네 살짜리 꼬마가 견고한 성과 같은 어른의 아집과 가증스러움에 멋지게 도전장을 내밀 줄을.
그러나 이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마틸다의 통쾌한 복수는 학교에 입학한 후, 트런치불 교장선생에게서 절정을 이룬다. 해머선수 출신인 그녀는 연약한 아이들의 다리와 머리를 잡고 해머처럼 빙빙 돌려 멀리 던져버린다. 비록 과장되고 희화화된 캐릭터지만,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군상 중 하나이다. 그녀는 교육자라기보다 악녀의 화신이다. 막강한 권력을 지닌 그녀에게 아무도 저항하지 못할 정도이니 힘없는 아이들의 절규는 그저 메아리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어느 날 마틸다는 자신의 초능력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워한다. 천재성도 놀라운데 게다가 초능력이라니. 이쯤 되면 조금은 황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곧 작가가 왜 마틸다에게 천재성과 초능력을 동시에 주었는지 알게 된다.
마틸다는 자신을 인정해주고, 다정다감한 하니 선생이 형편없는 오두막에 살고 있음을 알고 는 놀란다. 하니 선생은 비록 어린 소녀이지만 무언가 다른 아이, 마틸다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하니 선생으로부터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마틸다는 폭발적인 분노를 느끼지만, 영리한 그녀는 무모하게 복수전을 펼치지 않는다. 치밀하게 작전을 짜고 계획하여 실행에 옮긴다. 트런치불에 대한 마틸다의 복수는 기발하고 대담하며, 지혜롭다. 즉 자신의 천재성과 초능력을 주도면밀하게 사용하여 트런치불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을 계기로 마틸다의 무기였던 초능력은 사라진다.
왜 로알드 달은 마틸다의 초능력을 없애버렸을까.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결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충분히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우리는 누구나 마틸다와 같은 초능력을 내면에 지니고 있을 터이다. 분노가 극에 달하거나 극한의 상황에 처했을 때 마틸다와 같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실제로 종종 볼 수 있지 않은가.
한편 마틸다를 따르는 우리의 꼬마친구들의 소극적인 복수는 또 얼마나 귀엽고 유쾌한지 읽는 내내 어른인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울 수 없었다.
트런치불의 의자 위에 골든시럽을 뿌리거나 속바지 속에 옴가루를 뿌려 온통 가려움증으로 트런치불을 길길이 뛰게 만든 호텐샤, 물병 속에 두꺼비를 몰래 넣은 라벤더, 커다란 케이크를 꾸역꾸역 다 먹어치워 예상을 뒤엎어 버린 부루스, 무엇보다 트런치불의 접시내려치기를 의연한 미소로 견딘 부루스의 반전은 힘없는 아이들일지라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막강하고 부당한 권력에 대항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로알드 달의 전복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틸다의 부모는 그동안 저질러 온 악덕행위로 인해 야반도주를 하게 되는데, 마틸다는 부모답지 않은 부모를 과감히 버리고, 하니선생님과 함께 살기로 한 것이다. 아이가 부모를 스스로 버린다? 우리네 동화풍토에서는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는 결말인가. 한 술 더 떠서 그의 부모는 마틸다를 마치 귀찮은 혹이라도 떼어버리듯 쿨하게 던져 버린다. 정말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기가 막힌 전복이 아닐 수 없다.
잘 알다시피 『마틸다』에는 여러 코드가 들어와 있다. 억압적인 공교육제도, 남녀차별,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모럴의 해체, 가족의 해체,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인간의 양면성 등. 어찌 보면 상당히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텐데, 로알드 달은 그렇지 않았다. 한 마디로 기성세대의 견고한 질서나 체제를 해체하고 맘껏 주무르며 놀 줄 알았다. 선과 악의 극명한 대립을 통한 단순 구조, 우스꽝스럽게 과장된 캐릭터, 순수하게만 보였던 아이들 내면에 숨겨진 악동기질의 표출 등. 이 모든 것들을 능란하게 버무려 유머러스하고 유쾌하게 만들 줄 아는 작가였다.
마치 ‘그깟 것들 개나 줘버려!’ 외치는 작가의 능청스러운 미소가 떠오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나는 어려서부터 체제에 순응하도록 교육받아왔으며 소위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해왔다. 그래서 어떻게든 기존질서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라는 메시지를 바탕에 깔고 동화쓰기를 시작했다. 그것이 동화인 줄 알았다. 기껏해야 부조리한 현실에서 상처 받고 찢긴 영혼들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면서도 나의 순응적 기질이 답답하고 버거웠다.
그러나 마틸다를 읽고는 ‘그래, 바로 이거야.’하며 무릎을 쳤다.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로알드 달처럼 통쾌한 한 방을 내지르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내 안에 자리 잡은 초자아는 얼마나 강하고 질긴가.
지금도 나는 여전히 묻고, 부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마틸다』를 보며 겁먹지 말자고 다짐하곤 한다.
원유순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초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산골에 집을 짓고 전업작가로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까막눈 삼디기』,『잡을 테면 잡아 봐』,『산골아이 나더덕』,『빵 터지는 빵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