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팔공산은해사(永川 八公山銀海寺)
-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2019년3월1일(금), 일찍 서둘러야 하는건 알지만 오후 1시경 집을 나왔다.
809년(신라 헌덕왕1) 혜철국사(惠哲國師)가 해안평(海眼坪)에 창건하고 해안사(海眼寺)라 했다.
1270년(고려 원종11) 홍진국사(弘眞國師)가 중창하였다.
1545년(조선 인종1) 승려 천교(天敎)가 현재 위치로 법당을 옮겨 새로 절을 짓고
'은해사'라 하였다. 또한 인종의 태실(胎室)을 봉안하였다.
이후 중창은 거듭 되었고, 1847년(헌종13)에 큰 화재로 1,000여 칸이 소실되었다.
1,000여 칸이라면 엄청난 사찰이었겠다.
(수정: 1,000칸이 실화로 소실될 때 극락전만 화재를 입지 않았다고...극락전을 못봤다)
대웅전과 보화루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추정하고 있다.
(수정: 대웅전 현판도 못보았다. 아마 보수하고 있는 성보박물관에 있을까?)
국보는 거조암 영산전, 보물로 백흥암 수미단, 운부암 금동보살좌상, 은해사 괘불탱이 있다.
거조암은 은해사에서 승용차로 20여분 가야한다.
주차장이 잘 되어 있다.
예전엔 절 앞 상가들이 무질서하게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멀리 일주문이 보인다.
사찰 앞을 잘 정돈하였다. 음악 분수인데 날이 따뜻하면 분수가 춤 추겠지?
일주문.
사천왕이 있다. 표를 받는 분의 설명으로는 예전에 사천왕문이 따로 있었다고 한다.
새론 사천왕문을 만들려고 했지만 예산이 부족하여 일주문에 사천왕을 봉안하고 있다고 한다.
문화재관람료는 3,000원이다.
짧은 거리이지만 솔숲이 좋다. 300여 년된 금강송이고 이곳을 금포정(禁捕町)이라 한다.
이 안에서 살생을 금했다고 한다.
부도밭이다.
'동곡당일타대종사'의 부도가 크다.
(1999년12월5일, 은해사에서 다비식 거행. 여러 사찰에 승려 동곡당 관련 글이 있다)
사적비이다. 탑신은 오래 되어 보이지 않지만 '조선총독부중추원참의 최윤?'이 글을 썼다고 나온다.
중추원참의라니...친일매국노가 아닐까?
은해사엔 고색창연한 옛 건물이 안 보인다.
이 보화루도 근래 지은 것 같다.
보화루 현판 글씨가 추사 김정희가 썼다고 추정한다.
가람의 배치는 전통을 따르고 있다.
보화루에서 올라가면서 본 극락보전, 그 마당의 그림이 좋다.
향나무는 높이 10m, 둘레 1.5m이다. 수령이 안 나와 있는 보호수이다
극락보전.
팔작지붕이다. 주련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좋다.
요즘 다른 절에도 가면 주련의 풀이를 볼 수 있어 좋다.
(수정: 책 명찰순례 은해사 편에 실린 사진에는 '대웅전'으로 나온다.
이 책은 1994년도 발간되었고 저자가 이 사찰 방문은 그 전일 것이다)
후불탱화는 경북 유형문화재이다.
주불은 석가모니불이고 좌엔 대세지보살, 우엔 약사여래불(수정: 관세음보살)일까?
(수정: 책 명찰순례에 실린 사진에는 독존(獨尊)이었다. 후불탱은 아미타삼존탱이다.
대웅전엔 석가모니불이 본존불인데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이는 극락전에 있던
아미타불을 대웅전 재건 후 이곳으로 모신 것 같다.
전호(殿號)와 존상(尊像)이 일치하지 않는다. / 책 명찰순례에서.
지금은 대웅전을 극락보전으로 바꾸었으니 전호와 존상이 일치한다)
지장전 건물 역시 근래 지은 것이다. 현판 글씨가 춤 추는듯 흐름이 좋다.
산신각이 아니라 산령각이다. 이 동네 산령각은 대체로 작다.
제2수림장지(樹林葬地)에서 본 은해사.
산 넘어 동화사에 비해 볼거리가 없고 교통이 불편하니 동화사처럼 신도가 많이 오지 않는가 보다.
수림장지가 있어 주말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백련암. 은해사 담장 옆에 있다. 건물 1칸이 전부다.
서운암.
은해사에서 가깝다.
건물이 깨끗하다. 산령각이 역시 작다.
내려오다가 눈에 익은 사람이 올라온다. 자유한국당출신의 전 국회의원이다.
'썰전(어느 케이블 방송국의 프로)'에 출연하였기에 안면이 있어 보였다. 인사는 하지 않았다.
나중에 후회가 되었다. 한마디할 것을~!
"제발, 종북이니 좌익이니 낡은 이념으로 상대를 공격하지마라.
무엇이 국민과 국가를 위한 최선의 방책인지만 고민하여라. 이게 세계적 추세다."
산내암자는 걸어서 다니기에는 시간이 없다. 다음 기회에 승용차로 다녀야겠다.
일주문에서 표를 받는 분께 여쭈니, 평일에는 차량통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주말에는 수림장지를 찾는 유가족이 많아 통제한다고 한다.
은해사는 산중사찰이지만 산중 느낌이 없고 평지사찰처럼 느껴졌다.
교구본사 사찰로는 규모가 작다. 그리 유명 사찰이 아니기 때문인가?
아님 산 넘어 동화사의 기에 눌려서 그런가? 일주문을 나와 조성된 공원길을 걸었다.
사찰에 대한 설명과 관련된 승려들, 산내암자 사진들이 있어 좋다.
주차하고 이곳을 지나면서 공부를 하였다면 더 알찬 사찰탐방이 되었을 것인데.....
자료에 따르면 국보 은해사거조암영산전, 괘불탱, 보물 백흥암 수미단, 운부암 금동보살좌상이 있다.
거조암영산전만 봤다.
석가산이라고 명하고 있다.
부지런히 가면 거조암을 볼 수 있겠다.
팔공산거조사(居祖寺)
대다수 지도엔 '거조암'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이곳은 거조사이다.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거조'란 의미가 아미타불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단아한 사찰이다.
<국보 제14호 '은해사거조암영산전'>이 있다.
영산전 안에는 500나한(실제 526體)이 있다.
다 모양이 다른 나한들. 사진촬영을 금하고 있어서 촬영하지 않았다. 지켜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문 밖에서 한 컷은 이해하겠지? 500나한을 볼 수 있도록 동선을 만들어 놓았다.
영산전은 사찰이란 느낌이 안든다.
신라 효성왕 2년(738) 원참조사가 '거조사'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영산전은 고려 우왕 원년(1,375)에 건립된 백제계 고려 양식이라고 한다.
(수정: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이 처음 정혜결사를 맺을 만큼 큰 절이었다. 동국여지승람에
거조사로 나와 있지만 사세가 기울어 조선 후기에 은해사 산내암자가 된 것 같다/명찰순례.
지금은 '팔공산거조사'로 옛 이름을 찾아 쓰고 있다)
(수정: 삼층석탑, 고려 후기 조성된 것 같다. /책 명찰순례)
거조사 가는 길에 있는 마을 성황당.
이 동네 사찰에 있는 산령각과 모양도 크기도 비슷하다.
춥다.
제2석굴암은 조용하다.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이 석굴이 경주 토함산 석굴암의 선행양식이라고 한다.
군위 삼존석굴, 국보 제109호.
2019년3월1일(금)
영천 은해사 - 백련암 - 서운암, 거조사(암), 군위 인각사, 군위 삼존석굴에 들렸다.
인각사는 따로 글을 써야겠다.
대구 '이시스'란 곳에서 저녁을 먹고 영화 '증인'을 봤다. 배우 김향기의 자폐연기는 일품이다.
재미보다는 감동적인 영화이고 정상인과 비정상인으로 구분한 것이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