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珍島郡 鳥島面 孟骨島를 찾아서
고 광 창
老人堂 가입은 보통 60세 이상으로 되어 있는데 일부 노인당에서는 70세 이하는 老人이 아니라고 받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그 노인당은 나이 많은 노인들만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내 머릿속 기억 창고도 오래된 기억들이 다 차지하고 있어 새로운 기억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 같다. 기억 창고 문을 여니 30년 넘은 기억들만 하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나타난다. 하지만 오래된 기억들이라도 내 기억창고에서 없어지기 전에 낚아 올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기억 창고에서 눈에 보이는 쪽쪽 기억들을 하나씩 낚아 올리고 있다.
1990년, 그러니 지금부터 32년 전 진도교육청에서 있었던 일이다. 5월 달이니까 내가 부임한 지 두 달 좀 지났을 때 학무과장님이 날 부르시더니 내일 교육장님이 낙도 분교장을 둘러보러 가신다는데 고장학사가 수행 좀 해주라고 하신다. 새로 오셨으니 우리 관내 분교장 구경도 할 겸 다녀오라고 한다.
나는 이제 막 시집온 새 색시마냥 시집살이 생활에 적응해야 할 시기이지 분교장 구경하러 다닐 한가한 때가 아니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과장님이 말씀하시니까 할 수 없이 가겠다고 했더니 잠시 후 서무계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자기도 내일 동행하게 되었다면서 조류의 흐름 때문에 일찍 출항해야 하니 아침 7시 30분까지 교육청으로 나오라고 한다. 7시 30분? 그렇게나 빨리? 그렇지만 서무계장이 교육장님을 수행한다고 하니 나는 마음이 한결 놓였다. 서무계장은 이곳 진도 토박이로 관내 실정을 잘 아는 분이기 때문에 안내자 역할을 하게 된 것 같았다.
1. 외로운 섬 孟骨島, 孟骨分敎場
교육장님을 수행해서 沿岸港인 珍島港(세월호 사고 당시의 이름이 팽목항)에 가니 조그마한 行政船이 대기하고 있다. 나는 이 행정선을 처음 타보게 되었다. 선장이 큰 키에 호감이 가는 인상이어서 좋았다. 8시경 출항했는데 우리가 오늘 가는 곳은 珍島군 鳥島면에 속해있는 진도군에서는 가장 서쪽에 있는 외딴 섬 孟骨島에 있는 ‘東巨次초등학교 孟骨分敎場’이란다. 선장실에 우리 일행이 모두 탔는데 가는 도중 궁금한 사항은 교육장님이 계속 묻고 서무계장과 선장이 대답한다. 듣고 중요한 것을 기록하는 것 만 내 몫이다.
진도(팽목)항에서 뱃길로 53㎞로 떨어져 있고 행정선으로 2시간 반~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배가 下鳥島를 지나자 동거차 초등학교장으로부터 서무계장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쯤 오고 계시냐고 묻더니 동거차에 들러 꼭 자기를 태우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 통화 내용을 들은 교육장님이 ‘서무계장님! 동거차 박 교장이 동거차에 몇 년 차 근무요?’ 한다. 서무계장 답변 ‘작년에 오셨으나까 2년차 근무인 것 같습니다.’한다. 교육장님이 동거차 교장을 전부터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람 한 점 없고 맑은 날씨 속에 우리는 1시간 반 정도 뱃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동거차 섬에 도착했고 동거차 교장선생님이 타셨는데 한 손에는 소주 한 병(큰 병), 다른 손에도 담배 두 보루를 들고 오셨다. 인사를 하면서 보니 낯익은 얼굴이다. 반가웠다. 목포시내에서 교감을 하셨던 박기x 교장 선생님이시다. 교육장님이 ‘박 교장! 뭐 할려고 그걸 샀는가?’ 하고 물으니 ‘학생들 선물은 교육장님께서 준비하셨다고 해서 저는 이걸 샀습니다. 배에서 승객이 내리면 주민들이 모두 담 너머로 승객들 손을 봅니다. 누구 집에 어떤 물건이 들어 가나를 보아 둡니다. 2~3주 동안 배가 못 들어오면 다른 것들도 모두 부족하지만 술 담배 좋아하시는 분은 어느 집에 술 담배가 있는가를 알아야 그곳으로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이건 배가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을 때 분교장 선생님이 주민들에게 나누어줄 귀중한 선물입니다.’한다. 이 말을 들은 교육장님이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박 교장! 자네 이곳분교장 선생님을 위해서라도 이곳 동거차 교장 더 오래 해야 되겠네’ㅎㅎㅎ하시면서 웃으신다. 술 담배 사가지고 가는 뜻을 알겠다는 듯 서무계장과 선장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으신다.
동거차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실은 우리 행정선은 맹골도로 곧바로 가지 않고 서거차로 향했다. 서거차에 가서 사람과 짐을 싣고 맹골도로 가야하는 가 보다. 20여 분 가는 동안 선장이 말한다.
<西巨次>
서거차는 방파제 시설이 잘 되어 있어 한 때는 어업전진기지 역할을 했고 그때는 학생수가 동거차 보다도 많았었는데 지금은 연안에서 고기가 잘 잡히지 않아 어민들이 떠나버리자 이곳 학교가 분교가 되어버렸습니다. 지금은 항구가 한산하지만 태풍경보나 주의보가 내리면 가까운 곳에서 조업하던 중국 어선단이 이곳으로 대피해 들어오는데 중국 어선단은 보통 20~30척이 무리를 지어 움직이고 큰 어선단을 50여척이나 됩니다. ‘그럼 이곳 상점들이 한때나마 장사를 잘 하겠네요?‘하고 물었더니 ’중국 선원들은 육지에 오를 수 없으니 우리 조그만 동력선이 중국 선박 사이를 다니면서 그들이 많이 찾는 채소, 물, 음료수 등을 팝니다. 어떤 경우 보식용으로 검정 개(黑犬)나 우리나라 전자제품인 소형 TV나 소형 냉장고 등을 사간다‘고 합니다.
목포항에서 맹골도까지는 주2회(화요일, 금요일)운항하는데 파도가 거센 맹골도는 태풍이 아니고 주의보만 내려도 배가 부두에 접안을 못하니까 그런 날은 목포항에서 맹골도가는 선표를 팔지 않지만 맹골도 가는 승객들은 무조건 서거차까지 간다고 한다. 또 맹골도에 배가 도착해도 풍랑이 조금 있으면 부두에 접안을 못하게 되고 그럴 경우에는 승객들을 서거차에 내려놓고 간다고 한다. 이때 웃으개 말로 ‘오늘도 맹탕이고 골탕, 맹골탕이네’ 한다고 한다. 맹탕 골탕 맹골탕! ㅎㅎㅎ하면서 우리 모두 함께 웃었다. 서거차에는 맹골도 주민이면 누구나 무료로 숙박할 수 있는 합숙소가 마련되어 있고 합숙소에는 조리 시설이 되어 있어서 주•부식만 조금 챙겨가면 거기서 식사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더구나 운이 좋으면 하루나 이틀 후 행정선을 타고 맹골도로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란다.
진도군에는 행정선이 군청, 교육청, 경찰서, 농협, 수협 등에 있는데 이곳 행정선이 맹골도에 들어 갈 일이 생기면 반드시 서거차에 전화를 해서 맹골도에 갈 승객이 있는가를 알아보고 서거차에 들려서 맹골도 가는 손님을 실어다 드린다고 한다. 우리 행정선도 출발에 앞서 서거차로 전화해 보았던 모양이다. 행정선 들이 참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서거차에서 승객 7명이 탔는데 행정선에 타면서 모두 두 손을 모아 선장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손에는 저마다 크고 작은 보따리 들을 들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에게 ‘며 칠 만에 맹골도에 들어가느냐’고 물으니 ‘한 보름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럼 그동안 배가 오지 않았다는 말이냐’고 물으니 행정선 선장이 대신 답한다. ‘이곳을 다니는 여객선은 목포를 母港으로 운항 일정이 정해져 있고, 맹골도는 1주일에 두 번(화요일, 금요일)인데 이 날 태풍 등으로 못 오게 되면 바로 다음날 오는 게 아니라 그 다음 일정에 와야 되고 만약 그때도 태풍이 불면 또 그다음 일정으로 미루다 보면 15일~20일 만에 오게 되는 경우가 가끔 생깁니다’ 한다.
<孟骨島>
서거차를 출발한 우리 행정선이 맹골도를 향해 출발했다. ‘孟骨’이라는 지명은 이 섬의 바닷가는 거센 파도와 세찬 풍파에 씻겨 기암절벽 낭떠러지가 되었는데 뾰족한 바위가 뼈처럼 생겼다하여 ‘骨’자를 넣었다고 한다. 오늘은 주의보도 발령되지 않았는데도 물결이 거칠게 뱃머리를 친다. 이곳은 그만큼 파도가 세다는 의미이다. 맹골도에 가까워 지면서 깎아지른 웅장한 암벽과 신기로운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해안선에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갔다 하면서 산산이 부서지는 물보라를 일으키는 풍경을 보니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쏟아져 나온다. 야! 아름답다! 정말 아름답다!! 오직 자연 만이 빚어 낼 수 있는 웅장하고 멋진 걸작품이다!!.
40여 분 쯤 지났을 무렵 맹골도에 도착했다. 산을 보니 키 큰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나무들이 바람이 강해 위로 뻗어나지 못하고 땅바닥에 딱 엎드려 있거나 옆으로 누워서 자라는 모양이다. 길게 뻗은 방파제에는 세찬 파도와 해일로부터 방파제를 보호하기 위해서 4개의 뿔 모양 발이 달린 콘크리트 불록(테트라포드?)이 5~6개 놓여 있다. 그만큼 파도가 세다는 걸 증명해 주고 있는 것 같다. 방파제 끝 좁은 항로로 통해 배가 부두에 접안 하려고 천천히 들어가는데 부두에 나와 있던 주민들이 배의 입항을 박수로 환영해 주는 가하면, 배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마중 나와 있는 자기 가족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고 부두에 나와 있던 애들은 ‘어머니’를 목 놓아 부른다. 보름 동안이나 보지 못한 부모 자식 간의 아쉬움을 토해 내는 것 같았다.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장면 같기도 하고 맹골도를 대표해서 어떤 대회에 나가서 입상하고 들어오는 선수들을 환영하는 것 같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배에서 내릴 때 배가 너울거려 위험했다. 이렇게 배가 너울거리니 여객선이 접안을 못하고 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배에서 내려 마을을 보니 10여 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스레이트 지붕의 빛바랜 페인트 색깔이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학교로 가는 길목에서 담 너머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일행을 지켜보고 있다. 동거차 교장선생님 말씀대로 사람의 얼굴보다는 손에 무엇을 들고 가는 가를 보는 것 같았다.
<맹골分敎場>
교문에서는 선생님과 학생 5명이 박수로 우리를 맞았다. 그런데 운동장에는 운동기구가 하나도 안 보여 훵하니 싸늘했다. 철봉마저도 없다. 왜 철봉이 없느냐고 물으니 이곳은 鹽氣가 많아 쇠들이 모두 녹슬어 버린다고 한다. 유일한 운동시설이 모래장인데 그것도 모래가 바람에 날려 가버렸는지 단단히 굳어 있어 맨땅이나 다름없었다. 실내 운동기구로 무엇이 있느냐고 물으니 ‘접이식 탁구대’가 하나 있는데 경첩부분에 녹이 슬어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교실이 두 칸인데 하나는 교실 겸 도서실로 다른 하나는 자료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학생 5명을 불러 각자 자기 이름을 쓰고 읽어 보라고 했더니 모두 다 잘 알고 있었다. 이곳에는 2학년 3명, 4학년 2명 있는데 격년제로 입학을 시키고 있다고 하는데 내년에 입학할 학생이 1명밖에 없다고 한다. 그때 교육장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오늘은 이곳 선생님을 위로 격려차 왔으니 장학지도는 다음에 와서 하시오’한다. 내가 ‘이렇게 오기 힘든 곳인데 언제 다시 오겠어요 온 김에 학생들 실태나 파악하고 가려고 합니다.’했더니 교육장님도 웃으시면서 고개를 끄덕이신다.
교육장님이 ‘이곳이 鹽氣 때문에 운동시설을 못 갖추고 있다고 하는데 박 교장! 동거차 학교는 어떤가?’하고 물으니 박 교장선생님이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운동장에는 운동기구가 하나도 없습니다.’한다. 교육장님이 ‘오늘 여기 와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는데 서무계장님! 진도 관내 학교 운동기구 실태를 파악해 보고 도시의 운동기구 파는 상점 등 이곳저곳에 알아보면 녹이 슬지 않는 비철(쇠가 아닌 것)로 만든 튼튼한 운동기구가 있을 것이요. 박 교장! 학교에는 축구, 농구 골대는 한 쪽 만이라도 사다 놓고 탁구대는 접이식이 아닌 것으로 사고 또 모래 장에 모래를 사다가 가득 넣어 주소. ’학교 운동기구는 학생은 물론 지도 교사, 지역 주민들 건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인 만큼 빠른 시일 안에 갖추도록 하는 게 좋겠네.’ 이런 낙도에서는 운동기구가 바로 학생들 놀이기구나 다름없어.‘하신다.
(학생들 5명 머리를 하나하나 쓰다듬어 주시면서) ‘얘들아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친구들과 즐겁게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또 이곳은 병원도 없으니 아프지 않아야 한다.’고 하신 다음 분교장 선생님을 향해 ‘오늘은 내가 이곳에 선생님 위로 격려차 왔지만 이곳까지 왔으니 이곳 해안 경찰초소를 찾아가 위로도 하고 우리 학생들 안전을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가야겠소. ‘선생님! 이곳의 어려움이 무엇이요? 여기 언제 오셨소?’하고 물으니 ‘올해 2년 차입니다.’ ‘그래요? 지금까지 수고가 많으셨지만 앞으로도 더 노력해 주시오’하고 일어서려고 하니 서무계장이 ‘교육장님 선물 주고 가야 합니다.’ 하면서 선물 보따리를 푼다. 학생들 선물로 크레파스와 필통, 공책 연필이 있고 선생님 선물로 내의와 양말을 내 놓았다. 그러면서 서무계장 말씀이 ‘방금 선장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조류관계로 지금 당장 출항해야 한다고 합니다. 해안 경찰초소에 다녀올 시간이 없으니 경찰초소 선물은 좀 전해 주시라고 선생님께 맡기고 가면 어떨까요?’한다.
교육장님이 ‘膳物이 문제가 아니라 찾아가 위로해야 하는데--, 선생님 여기서 경찰초소가 뭡니까?’ 분교장 선생님 답변이 ‘초소가 이 산 너머에 있는데 왕복 30분 정도 걸립니다.’한다.
할 수 없이 발걸음을 재촉하여 행정선으로 돌아왔지만 돌아온 후에도 초소를 못 가봐 아쉬움이 많은 교육장님이 선장에게 묻는다. ‘우리 배가 동력선인데 조류의 영향을 그렇게 많이 받소?’ ‘예 교육장님! 이곳 바다는 ’맹골수로‘라고 불리우는 곳인데 파도도 거세지만 조류의 세기가 무척 세어 위험한 곳입니다. 우리처럼 작은 배는 조류에 떠밀려 내려갈 위험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재촉한 겁니다. 동거차를 지나서 하조도에 들어가야 안전 지역입니다’한다.
서무계장의 말 ‘태풍주의보가 발령되면 이곳 하조도 어부들은 고기 잡으러 가야 할지 말지 망설이는데 이때 선장님이 마을 스피커를 통해서 기상청에서 발표한 풍향 풍속과 이곳 바다 의 조류 즉, 밀물과 썰물의 시각, 사리와 조금 등 이곳 바다의 실정을 자세하게 알려주니 모두 고마워서 이곳에서는 선장님을 ‘기상청장’이라고 부른답니다.‘ 한다.
<진도 돌미역>
교육장님이 또 물으신다. ‘맹골의 특산물이 뭐길래 이렇게 어려운 곳에서 살고 있는 거요? 선장이 답한다. 이곳 특산물은 돌김과 돌미역입니다. 우리 진도 돌미역의 향과 질이 전국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소문이 나서 ‘진도 곽’이라고도 하는데 특히 동거차, 서거차, 맹골, 독거의 진도 곽은 그 중에서도 상품으로 알려져 서울 등 대도시의 일류 식당이나 호텔 식당에서 매년 연말에 예약금을 미리 주어 놓았다가 다음해 3월경 미역이 채취되면 가져가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사기가 힘듭니다. 가격도 엄청 비싸고요.‘한다.
교육장님이 또 물으신다. ‘다른 지역 미역과 진도 미역이 다른 점은 무엇이오?‘ 선장님의 답변 ’이곳은 조류의 세기가 강한 지역으로 여기에서 생산된 미역은 줄기는 가늘고 길며, 잎은 좁고 두껍고 탄력이 있으며 흑갈색에 약간 푸른빛을 띠고 있는데 품질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역국을 끓이면 다른 지역 미역은 잎이나 줄기가 뜨거운 물에 녹아 없어지는데 이곳 미역은 끓여도 잎•줄기가 그대로 남아 있고 오히려 오래 끓일수록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고 풍미와 향이 더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역의 길이가 다른 지역 미역에 비해 한 뼘 정도나 더 깁니다.‘
이제는 내가 물었다. ‘돌미역이란 자연산을 말하는 것 같은데 이곳에 양식 미역은 없습니까?’
선장의 답변 ‘맞습니다. 돌미역은 차갑고 험한 물살이 휘몰아치는 갯바위에서 자생하는 자연산을 말하는데 생산이 수요를 감당할 수 없으니까 양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긴 밧줄에 미역 포자를 붙여 거기서 양식해 냅니다.’
또 내가 물었다. ‘보통 ’미역국‘하면 산후에 산모에게 좋다고 알려져 있고 또 우리가 생일날 이면 미역국을 먹는데 이건 미역 생산업자나 상인들의 말에 의존한 것인지 아니면 확실한 과학적 증거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장님 답변 ‘과학적인 근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평상시 여기서 듣고 알고 있기로는 미역을 ’바닷속 봄나물, 바닷속 채소‘라 불릴 만큼 육지의 채소보다도 각종 미네랄 함유량이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 저열량 저지방인데다가 식이섬유가 풍부한 다이어트 식품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 미역의 미끈미끈한 점액질이 미세 먼지 속 중금속을 흡착해 몸 밖으로 배출하는 기능이 있다고도 하고 칼슘과 요오드 함량이 높아 뼈를 튼튼하게 해 준다고도 합니다. 산모에게 좋다는 건 출산 시 산모가 잃은 혈액을 보충해 주고 피를 맑게 해주기 때문에 ’산모미역‘이라고도 합니다. 생일 날 미역국을 왜 먹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미역이 이처럼 몸에 좋은 식품이니만큼 1년에 단 한 번 생일 날 만이라도 먹자‘라는 뜻이 아닐까요?’한다.
내가 ’궁금해서 물어 보았는데 선장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걸 배웠습니다. 내가 물어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많이 알고 계시네요. 면찬 같습니다만 선장님은 우리교육청의 보배이십니다. 감사합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했다.
서무계장 말씀 ‘저도 진도 출신이지만 미역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오늘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선장님 고맙습니다.’한다.
※내가 맹골도를 다녀온 20여 년 후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가 맹골도 서쪽 끝에서 났다. 당시 행정선 선장이 ‘맹골水路는 파도도 거세지만 潮流의 세기가 무척 센 곳이라 위험지역’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진도항에서 맹골도 가는 배가 2일에 한 번, 즉 짝숫날 가는데 사람과 차를 모두 실은 渡船이 다닌다고 하니 교통이 많이 편리해졌다.
2. 학생이 1명인 ‘羅拜 分敎場’
돌아오는 길에 동거차 교장선생님을 내려드리고 下鳥島에 들어왔을 때 선장이 ‘교육장님 조류 때문에 서둘러 빨리 오다보니 아직 점심시간이 안 되었습니다. 이 부근에 학생이 1명인 羅拜분교장이 있는데 한 번 들렸다 가시렵니까?’한다. ‘학생이 1명? 그런 분교장이 있어요? 그럼 한 번 들려 봅시다. 어느 학교 소속이요?’ ‘조도초등학교 소속입니다.’ 서무계장님! 조도초등학교 교장선생님에게 전화해서 분교장 가는데 교장선생님과 동행하지 못한 사정을 알려나주시오‘ 하신다.
<자기 이름도 못 쓰는 저능아! >
본교 교장선생님과 통화를 한 서무계장이 안 좋은 안색으로 나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본교 교장선생님 말씀이 ’그 애가 저능아라 아직까지 글을 못 읽는데 큰 일 났다고 합니다.‘ 한다. 선장이 점심시간을 맞추려고 갑자기 생각한 것이고 또 그 애가 글을 못 읽는다는 실정을 모르고 한 일이겠지만, 당초 예정에 없던 일을 즉흥적으로 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 일을 어쩌면 좋지?
우리가 찾아 간 곳은 鳥島초등학교 羅拜분교장이다. 예고도 없이 분교장을 가게 되니 분교장 교사도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교육장님이 그 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너 몇 학년이냐? 네 이름이 뭐냐?’하고 다정하게 묻는데 학생이 대답은 안 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어 말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교육장님이 어쩐 일이냐 는 듯 분교장 교사를 바라보는데 분교장 교사도 난감한 표정이다.
내가 교육장님 옆으로 다가가 낮은 소리로 ‘교육장님 이 애가 저능아라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교사를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했더니 ‘말을 잘 못하면 제 이름이라도 써 보라고 하시오.’하신다. 교사가 나를 보더니 손을 좌우로 살래살래 젓는다. 제 이름을 못 쓴다는 뜻이다. 공책을 보니 표지에 교사의 필체로 ‘박성환’이라고 쓰여 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내가 기지를 발휘해서 ‘이 애 이름이 ’박성환‘인데 세 글자 모두 쉬운 글자가 아닙니다. 이 애가 자기 이름을 못 쓰는 건 이 애 잘못이라기보다는 이름을 어렵게 지은 부모 잘 못 인 것 같습니다.’했더니 ㅎㅎㅎ 모두 함께 웃는다.
<학생 1명의 분교장 예산 1년에 4,000여 만 원? >
교육장님이 ‘서무계장님! 교육청에 전화해서 이 분교장 1년 총 예산이 얼마인가 알아보시오’한다. 그사이 내가 분교장 교사에게 물어서 알게 된 건 학생은 4학년이고 부모는 어업에 종사하고 교사는 금년 3월에 이곳에 왔다는 것이다. 이때 서무계장이 말한다. ‘이 분교장 1년 총 예산은 교사 인건비를 포함해서 4,000여 만 원쯤 된다고 합니다.’ 4,000여 만 원! 이 말을 듣고 나도 내 귀를 의심했다. 교육장님이 한마디 하신다.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다. 이 애 한 명을 위해서 국고를 1년에 4,000만원이나 쓰다니’ -- 서무계장님! 이런 애들 도시학교로 유학 보내는 제도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한 번 알아보시오.‘한다. 서무계장이 답하길 ’제 기억으로는 2년 전에 이곳 학생이 3명이었는데 한 명이 졸업해서 목포중학교로 가니까 그 동생도 함께 목포로 전학가고 이 애 하나만 남게 되었을 때 교육청에서 이 애 부모에게 한 달에 20만원씩 줄 테니 도시로 전학 시키라고 권했는데 부모가 반대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자연산 돌김이나 돌미역을 채취해서 먹고 살아가고 있고, 미역 채취권은 이곳에 살고 있는 사는 사람 수로 나누는데 이곳을 떠나면 채취권이 없어지거든요.‘ 한다.
사연을 들은 교육장님이 ‘육지 같으면 이웃학교로 합치면 되지만 섬이라 그럴 수도 없고 참---’ 혼자 말처럼 하시더니 ‘자 그만 갑시다.’하고 앞서서 나가신다. 내가 분교장 선생님에게 ‘이 애는 글을 못 읽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말을 안 하는 게 더 문제 인 것 같소. 이 애에게 뭣인가를 가르치려고 애 쓰지 마시고 친한 친구처럼 대하면서 입이 터지게 해야 할 것 같소. 더구나 이곳에는 말할 친구도 없으니--- 선생님! 고생이 참 많으시겠소.’하면서 헤어졌다.
<섬의 모양이 ‘새떼’ 같다고 해서 섬 이름이 ‘鳥島’>
배를 타고 오면서도 교육장님은 말이 없으신걸 보니 나배분교장에서의 언짢은 기분이 계속 되는 듯 했다. 서무계장도 말이 없고 선장은 나배분교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점심 먹으러 가는 잠간 동안의 서먹한 분위기를 깨려고 내가 선장에게 이것저것을 물어 보았다. 다음은 내가 묻고 선장이 답한 내용이다. ‘이곳을 ’鳥島‘하고 하는데 이 곳에 새가 많이 삽니까?’ ‘새가 많이 살아서가 아니라 흩어져 있는 섬의 모습이 ’새떼‘같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선장님 진도에 대해서 모르시는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이 아시게 되었어요?‘ ’내가 이곳 하조도 출신으로 40년 넘게 이곳에 살았고 또 행정선 선장한지가 지금 8년째 됩니다.‘ 선장을 하시면서 그동안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이었습니까?’
날씨가 안 좋은데 운행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가 가장 괴로웠습니다. 그런저런 이야기 하는 중에 배가 점심 장소인 上鳥島에 도착했다.
오늘 가 보았던 孟骨분교장과 羅拜분교장은 오래오래 내 기억 창고에 남아있을 것 같다.
파도 때문에 배가 잘 못 들어가는 외딴 섬 맹골도, 분교장 5명의 학생들, 학생이 1명인데 자기 이름을 못 쓰는 저능아가 있는 나배 분교장!
※ 우리가 다녀 온 20여 년 후 羅拜島는 下鳥島와 ‘羅拜大橋’로 연결 되었다고 하니 지금 나배도에는 分敎場이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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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맹골해협!!! 듣기만해도 가슴 아픈 사연, 한이 서려 울지도 못하는 바다. 아, 맹골도 바다여,
이제 그 한을 조용히 품으소서~~~이제 그 험한 파도를 거두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