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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4월 19일 화요일, 흐림, 비.
*걷기- 아홉째 날
*나헤라(Najera)에서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까지.
*이동거리 : 21.5km.
*누적거리 : 217.5km.
매일 같은 시각에 일어나고 시작되지만 같은 날은 없는 것 같다. 또 새로운 날이다. 아침식사로 어제 먹고 남긴 피자 두 조각을 겹쳐서 힘 있게 먹는다. 따로 주방에 갈 것도, 식당에 갈 것도 없이 침대에서 먹었다. 피자가 차고 딱딱하다.
침낭을 정리하고 세면을 간단히 한 후 짐을 챙긴다. 신발을 바꿔 신기로 했다. 그동안 등산화만 신었는데 운동화를 신기로 했다. 거기에 발에 니베아 크림을 바르고 발가락 양말 위에 양말을 신었다. 밖으로 나오니 날이 아직 어둡다.
공기는 서늘하고 상쾌하다. 카미노 표시를 찾아 방향을 잡고 걷는다. 스페인 광장을 거쳐 나바라 광장으로 이어져 간다. 커다란 성채 같이 생긴 산타 마리아 데 라레알 수도원(Monastery of Santa María la Real) 앞을 지나간다.
기념비가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전통복장의 순례자 모형들이 만들어져 있다. 날이 무척 흐리다. 비가 온다. 순례자들이 배낭에 방수 커버를 씌우고 우비를 꺼내 입는다. 나도 우비를 꺼내서 입고 모자를 쓴다. 따듯하고 편안하다.
나헤라 골목길을 벗어나니 바로 시골길로 이어진다. 비가 내려 길이 약간 질퍽거린다. 우리의 목적지는 산토 도밍고 이다. 안내 책자에 보면 오늘 걸을 길의 대부분은 넓고 쾌적한 시골길이란다. 농경지를 한적하게 지나가는 것이다.
그늘도 별로 없고 식수대도 거의 없단다. 출발 시간이 아침 7시다. 왼쪽에 펠로타(pelota) 경기장을 지나간다. 잔디가 넓게 펼쳐진 곳이다. 펠로타 경기는 코트에서 가운데가 고무로 된 공, 장갑, 라켓이나 배트 등을 이용하여 경기를 펼친다.
구기 종목의 통칭이란다. 프랑스와 스페인 그리고 중남미에서 벌어지는 경기란다. 자연 지구에 들어서 소나무 숲 사이로 널찍하게 난 붉은 흙길을 따라간다. 가파른 경사를 걸어가면 정상(460m)에 오른다. 계속 걸어가니 한적한 아스팔트길을 만난다.
계속 걸어가 아소프라(Azofra) 마을을 만났다. 500명이 될까 말까 한 인구가 사는 조용한 마을이다. 카미노 덕에 계속해서 존재하는 곳일 것 같다. 마을을 나서면 라 리오하의 수호자 비르겐 데 발바네라에게 봉헌된 작은 공원이 있다.
길의 다른 편에는 중세의 순례자 샘인 푸엔테 데 로스 로메로스 유적이 있고, 그 옆에는 현대에 만들어진 기념물이 있는 도로 대피소가 있다. 중세에는 순례자 구호 시설들이 몇 군데 있었다. 비가 계속 내려 동네가 우중충하게 보인다.
먼저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오전 9시가 넘어가고 있다. 우비를 벗어서 밖의 옷걸이에 겹쳐 걸었다. 안에는 온기로 따듯했다. 달콤한 빵과 카페라테를 주문해 먹는다. 커피가 아주 구수하고 맛있다. 행복한 시간이다.
서늘한 몸을 따듯하게 하고 잠시 쉰 후 다시 우비를 입고 카페를 나섰다. 중앙 분수대가 있는 광장을 지나간다. 천사들의 성모 교회도 지나간다. 교회에는 산티아고 페레그리노(Peregrino, 순례자)의 상이 있다.
교회는 길의 가장 꼭대기, 중앙 분수대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은 젖어 있고 조용하다. 커다란 마을 사진을 지나 다시 시골길로 접어든다. 우비에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도 보인다. 바람이 불 때면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우비자락이 펄럭인다.
들판은 새싹들로 파랗게 색칠되어있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늙은 갈대들이 봄 들판을 지키고 있다. 가을 느낌이 든다. 곡선으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오르고 내려간다. 초록색 밀밭이 대부분인데 가끔 노란색 유채 밭도 보인다.
시골길에 난 자동차 바퀴 자국으로 물이 흐르고 고여 있다. 회색빛 하늘이다. 비가 갰다. 그냥 우비를 입고 걷는다. 유채꽃 밭을 만났다. 싱싱한 물방울이 잎에 가득 올라있다. 빛이 난다. 언덕을 올라가고 내려간다. 붉은 색 포도밭도 축축하게 젖어있다.
금방 새싹이 나올 것 같다. 주변 경치가 참 좋다. 돌무더기를 지나간다. 자갈돌에 정성스럽게 쓴 글씨들이 보인다. 평화, 자유, 사랑이라고 쓴 한글도 보인다. 신발 한 짝이 올라가 있고 카미노 화살표도 있다. 커다란 소나무가 있는 쉼터를 만났다.
벤치도 서너 개 보이는데 비에 젖어 쉬고 갈 생각이 안 난다. 계속 걸어간다.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입구에서 새로 조성된 골프장 Rioja Alta Golf Club을 만났다. 반가워서 골프 클럽으로 들어갔다. 훈훈한 실내는 비를 피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직원이 한 분 보이는데 골프장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넓게 펼쳐진 페어웨이를 보니 기분이 좋다. 화장실도 이용하고 잠시 돌아본 후 나왔다. 밀단을 쌓아 놓은 벌판을 지나 마을로 들어선다. 시루에냐(Ciruena) 마을이다.
새로 만들어진 현대식 조합 주택이 예쁜 마을이다. 학교 운동장의 운동기구와 놀이기구도 모두 목조다. 세워진 순례자 모형과 인사를 나눈다. 언덕으로 이루어진 들판에는 낮은 안개구름이 하얀 띠로 이어진다. 노랑, 초록이 어우러져 멋지다.
질퍽대는 시골길, 좀 더 마른 흙을 찾아 가 길로 걸어간다. 유채 꽃밭이 예술적으로 조성되어있다. 구불구불 언덕을 내려가며 또 오른다. 이렇게 걸어가다가 우리의 목적지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에 도착했다.
스페인 라 리오하 지방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는 약 7천명이다. 도시 이름은 도시를 설립한 성(聖) 도밍고 가르시아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여전히 비는 계속 소리 없이 내리고 있다. 추위가 느껴진다. 숙소를 찾아간다. 오후 12시 20분이다.
수녀원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호텔, 파라도르 데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자다(Parador de Santo Domingo de la Calzada), 4성급 호텔이다. 호텔이라기보다는 성채로 보인다. 고급스럽고 역사가 느껴지는 세련된 분위기다.
그림, 가구, 조명 등이 중세의 성채를 연상케 한다. 샤워를 하고 빨래를 했다. 잠시 쉰 후에 우산을 들고 동네 한 바퀴를 하러 나왔다. 우리 숙소 앞에는 작은 광장(델 산토 광장)이 펼쳐진다. 먼저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걸어왔던 골목길에 작은 카페가 있다. 메뉴가 다양하다. 치킨을 주문했다. 날개와 다리로만 주문했는데 맛있다. 실컷 먹었더니 21유로다. 산토 도밍고 시내를 둘러본다. 이곳의 구불구불한 거리들은 카미노와 친숙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오래된 마을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소위 ‘길 위의 성 도미닉’으로 불리는 인물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순례자들의 실질적인 루트를 개발하는 데 헌신했다. 우리가 지나는 수많은 길과 다리들을 만든 장본인이다.
11세기의 일이었고, 이 길과 다리들은 그 이래로 몇 번 재건축을 겪었다. 하지만 성 도미닉의 정신만은 오늘날까지도 대성당 닭장 안의 수탉과 암탉처럼 살아있다. 거인이었던 그는 비야마요르 델 리오의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문맹이었기 때문에 산 미얀의 수도회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평생 종교적인 삶을 살기로 맘을 먹었고 오하 강 주변의 숲속에 은거하면서 순례자들의 위해 길을 닦고 다리를 놓으며 평생을 보냈다.
전설에 따르면 그가 기도하기 위해 잠시 길 닦기를 멈추면 천사가 내려와 그의 낫을 들고 일을 했다고 한다. 오래된 성당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대성당(Catedral de Santo Domingo de la Calzada) 버티고 있다.
그는 지금은 파라도르(국영관광호텔)가 된 순례자 병원과 대성당으로 발전한 성당을 만들었고, 이 둘은 모두 유서 깊은 마을의 산토 광장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종교적인 건축물들처럼 수많은 세월에 걸쳐 개축되었다.
여러 가지 다른 건축 양식이 뒤섞이게 되었다. 원래 성당은 12세기에 봉헌되었다. 따로 독립되어 있는 탑은 18세기까지도 만들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두운 내부엔 성 도미닉의 무덤과 라 막달레나 예배당, 제단 장식 등이 있다.
한 가지 믿기지 않는 전시물 중 하나는 성당 뒤쪽에 있는 닭장이다. 살아있는 닭 두 마리가 안에 있다. 닭장과 관련된 이야기는 ‘수탉과 암탉의 기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이야기는 세월이 지나며 윤색되어 ‘성 야고보 길’을 따라 펼쳐지는 전설들 중에서도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것이 되었다. 전설은 이렇다. 때는 14세기, 한 독일 청년이 부모를 모시고 함께 산티아고로 가는 여정 중에 이곳의 여관에 묵었다.
여관 주인의 아름다운 딸이 잘생긴 청년에게 눈길을 주었지만 독실한 젊은이는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거부했다. 그의 거절에 화가 난 여관집 딸은 훔친 금 술잔을 그의 가방에 넣었다. 청년은 절도죄로 붙잡혀서 교수형을 당한다.
몇몇 이야기에는 부모가 아들의 운명을 잊고 계속해서 길을 갔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들은 산티아고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여전히 교수대에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산토 도밍고 덕분에 기적적으로 살아 있었다고 한다.
부모들은 재판관의 집으로 달려가 막 저녁을 먹으려던 참인 재판관을 만났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재판관은 대꾸했다. “만약 당신 아들이 아직 살아 있다면 이 식탁의 구운 닭 두 마리도 살아있겠구려.”
그러자 갑자기 닭들이 접시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울었다. 기적은 재판관에게 효력이 있었다. 그는 교수대로 달려가 가엾은 청년을 내려주고 완전히 사면했다. 부모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간 청년은 더욱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평생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그 이후 이 마을의 성당은 매년 닭 두 마리를 새로운 닭으로 교체해 성당 안에 가두는 의식을 몇 백 년 동안 이어왔다. 이 닭들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례자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 내내 행운이 함께 한다기에 귀를 기울였건만 아무리 기다려도 닭들은 울지 않았다.
한편 산토 도밍고의 이름을 딴 마을은 리오하의 콤포스텔라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박물관은 대성당에 붙어있다. 1831년에 세워졌다는 글자와 신부님 모형이 만들어져 있고 닭 2마리 그림도 보인다. 오래된 현관을 갖고 있는 박물관이다.
마을에는 마요르 거리와 번잡한 파세오(골목길)을 따라 식당과 바, 상점들이 모여 있다. 성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마을의 큰 축제는 5월 첫 2주 동안 열린다고 한다. ⓘ 건물도 지난다. 작은 교회(Abadía Cisterciense)를 만났다.
작은 마당에는 기념물이 만들어져 있다. 자전거, 지팡이, 신발, 조개, 가방, 물통이 조합된 조형물이다. 스페인 광장이 있는 곳으로 간다. 시청사(Ayuntamiento de Santo Domingo de La Calzada)가 있다. 긴 회랑을 갖고 있는 건물이다.
광장에는 오래된 분수대가 조용한 광장을 지키고 있다. 오른편에는 커다란 철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중세에 세워진 성벽(Muralla Medieval s. XIII de Santo Domingo de la Calzada)으로 간다. 커다란 카미노 표시 조형물이 있다.
순례자의 모형을 만들어 놓은 석상이 로터리 부근에 있다. 커다란 성채, 아니 성당이 그 뒤에 버티고 있다. 오래전 병원이었던 수도원을 개조한 호텔(Parador de Santo Domingo Bernardo de Fresneda)이란다. 마을 끝에 있는 강으로 간다. 다리가 있다.
다리 앞에 작은 성당이 있다. 아마도 1917년에 세워진 성당인 것 같다. 귀엽다. Oja 강위에 세워진 다리는 견고해 보인다. 다리의 이름도 산토 도밍고 다리다(Puente de Santo Domingo). 다리를 건너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복도에 어둡게 그려진 예수님의 초상화가 눈에 들어온다. 저녁 식사를 오후 8시 30분에 호텔 식당에서 먹었다. 돼지목살을 주 요리로 감자 스푸가 먼저 나온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예쁘고 고급스럽게 보이는 식사다.
75세 된 노 교수의 고전무용이 분위기를 더욱 화려하게 했다. 산토 도밍고 마을에서 하루를 묶는다. 도밍고라는 인물을 생각하니 언젠가 아이들에게 들여 주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프랑스의 작가 아나톨 프랑스가 쓴 <수도사가 된 곡예사>라는 이야기다. 가난하고 비천한 곡예사 바르나베는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편하게 살아가는 것 같은 수도사가 되기로 맘먹고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수도원에는 많은 수도사가 있었다. 기도를 잘하는 수도사, 청소를 잘하는 수도사, 요리를 잘하는 수도사, 성경을 잘 연구하는 수도사, 모두 다양한 제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
무식한 곡예사는 하나님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몹시 슬퍼한다. 다음 날 성당 문을 닫고 성당 높은 공간에 줄을 매달고 줄타기를 하며 신나게 열심히 곡예를 부린다.
그의 거동을 수상하게 여긴 수도자들이 이 광경을 훔쳐보게 되었다. 신성모독이라며 분개한 수도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 그를 혼내려 했다. 그 순간 천사가 내려와 베르나르 곡예사가 흘린 땀방울을 닦아주고 있었단다.
산토 도밍고 이야기와 약간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이야기다. 발가락을 쳐다보니 좀 좋아지는 것 같다. 오른쪽 발이 부기도 좀 사라지는 것 같다. 운동회를 신고 걸은 것도 잘 한 것 같다. 걷는 것도 이제 익숙해 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