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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월 중순(10수)
하루시조 254
09 11
솥 적다 솥 적다ㅎ거늘
무명씨(無名氏) 지음
솥 적다 솥 적다ㅎ거늘 그 새 말을 곧이듣고
적은 솥 침쳐 주고 큰 솥 사 걸었더니
지금(至今)에 풍년(豊年)을 못 만나니 그 새 날 속인가 하노라
새 – 소쩍새 - 올빼밋과의 여름새. 등은 어두운 회색이고 온몸에 갈색 줄무늬가 있으며 귀깃을 가졌다. 낮에는 나뭇가지가 무성한 곳에서 자고 밤에 활동하여 벌레를 잡아먹는다. ‘소쩍소쩍’ 또는 ‘소쩍다 소쩍다’ 하고 우는데, 민간에서는 이 울음소리로 그해의 흉년과 풍년을 점치기도 한다. 조금 높은 산지의 침엽수림에 사는데 한국, 일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 분포한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이다.
소쩍새 울음 - 전설에 의하면 ‘솟적’하고 울면 흉년을 의미하며, ‘솟적다’하고 울면 ‘솥이 작으니 큰 솥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풍년을 예고한다고 한다.
옛 선인들은 참 딱도 하시지, 어찌 새 울음소리 하나로 풍흉(豐凶)을 점치고 믿었을까나요. 입춘날 보리 뿌리 개수로 점을 친 것은 그래도 과학적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시조를 뜯어보느라 한 가지 생각을 더해 봅니다. 허풍을 늘어놓기만 하고 훌쩍 떠나버린 ‘한 때의 남자’가 그 새일 수도 있겠구나.
암튼 소쩍새가 ‘소쩍 소쩍’ 짧게 울면 별로 안 좋군요. 저 또한 구닥다리가 되어 갑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55
09 12
벽해수 맑은 후에
무명씨(無名氏) 지음
벽해수(碧海水) 맑은 후(後)에 천년도(千年桃) 씨를 심어
그 나무 자라서 여름이 열린 후(後)에
그제야 가지께 꺾어다가 헌수준(獻壽樽)에 꽂으리라
벽해수(碧海水) - 짙푸른 바다의 물. 흔히, 바다 깊은 곳의 물을 이른다.
천년도(千年桃) - 천년을 사는 복숭아(나무). 천도(天桃)처럼 오래 산다는 의미를 가진 복숭아나무.
가지께 – 가지 근처. 께 - (시간이나 공간을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때 또는 그 장소에서 가까운 범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헌수준(獻壽樽) - 장수(長壽)하기를 축수하는 술동이.
오래 사십시오, 축수(祝壽)의 노래입니다. 초장 중장에 ‘뒤 후(後)’자가 나오고, 물이 맑아지고 천년 나무가 자라고 열매가 익고 하려면 아주 긴 시간이 걸릴 텐데 그 때까지 강건하게 살아서 헌수 잔을 받으소서. 옛사람들의 과장법이 비현실적(非現實的)이긴 해도 그냥 ‘오래 오래’ 사시라고 드리는 말이 맹물 맛이라면 이 노래는 그런대로 간을 맞추었다고 하겠습니다. 모두 백세시대를 살아가니 만큼 이런 축수의 노래 하나쯤 베껴 놓았다가 요긴하게 써봄직 합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56
09 13
봉래산 친구가
무명씨(無名氏) 지음
봉래산(蓬萊山) 친구(親舊)가 살뜰히 보냈구나 불사약(不死藥)을
내 나이 반백(半百)이요 먹음즉직도 하다마는
우리 양친(兩親)이 계신 고로 먹을지 말지
봉래산(蓬萊山) - 여름철의 금강산(金剛山)을 따로 부르는 말.
반백(半百) - 50세. 예전에는 먹을 만큼 먹은 나이입니다.
먹음즉직도 – 먹을 수 있을 것도. 먹음직도.
즉(卽)하다 - 어떤 사실에 의거하다.(동사)
직하다 - 앞말이 뜻하는 내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음을 나타내는 말.(보조형용사)
고로 - 앞말이 뜻하는 내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음을 나타내는 말.
부모를 모시는 효심(孝心)을 읊었습니다. 초장은 불사약이 주제어인데 도치법을 써서 강조하였습니다. 중장의 머뭇거림이 곧 양친 구존(俱存)의 형편을 생각하는 것이니 자기 몫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불사약이야 현실적 비유는 아닐지라도 효심을 가늠하는 데야 이만한 비유도 없겠습니다. 종장의 마지막 생략된 말은 ‘하노라’ 정도가 되겠는데, 이는 시조 창법에 따른 줄임이라 하겠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57
09 14
부귀를 바라지 마라
무명씨(無名氏) 지음
부귀(富貴)를 바라지 마라 부귀(富貴) 간 데 말 많더라
공명(功名)도 바빠 마라 백안(白眼) 모인 곳이러라
천작(天爵)을 닦아 두어라 바쳐 쓸 데 없으랴
부귀(富貴) -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음.
공명(功名) - 공을 세워서 자기의 이름을 널리 드러냄. 또는 그 이름.
백안(白眼) -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보는 눈.
천작(天爵) - 하늘에서 받은 벼슬이라는 뜻으로, 남에게서 존경을 받을 만한 선천적인 덕행을 이르는 말.
덕성(德性)을 닦아 놓으면 어찌 쓸 데가 없겠느냐. 아주 교훈적인 작품입니다. ‘바빠 마라’에 주목해 봅니다. 공명은 결과물이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쳐 쓸 데’는 작위가 받침목이어야 한다는 뜻도 있는 듯하고요, 설의(設疑)로 강조를 했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부귀와 공명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다시 짚어보니 새삼스럽습니다. 평생 추구해온 대상이 바로 이것들이었습니다.
<맹자(孟子)> ‘고자(告子)’ 상(上)에 나오는 천작(天爵)과 인작(人爵)의 비교를 기억해내니 더욱 고시조를 읽는 맛이 납니다. 공경대부(公卿大夫)가 인작일진대, 천작은 인자하고 정의롭고 충성되며 신의가 있어 선(善)을 즐겨서 게으르지 않는 것이라고 맹자가 갈파(喝破)했었지요.
요즘 아이들에게 ‘인성(仁性)’을 가르치면서 들려줄 만한 시조 작품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58
09 15
북소리 둥둥 나는 절이
무명씨(無名氏) 지음
북소리 둥둥 나는 절이 멀다하면 얼마나 되리 초산(楚山) 진산(秦山)은 백운지탑(白雲之榻)이요
일국(一國)에 제일명산(第一名山)이요 제불대찰(諸佛大刹)이라
원근(遠近)에 문종성(聞鍾聲)하니 다 왔는가
백운지탑(白雲之榻) - 흰 구름의 팔걸이.
제일명산(第一名山) - 첫 손가락 꼽는 이름난 산.
제불대찰(諸佛大刹) - 여러 부처를 모신 큰 절.
문종성(聞鍾聲) - 종소리를 듣다.
절을 찾아가는 길, 산 넘고 물 건너 가는 길. 명산대찰(名山大刹)일진대 제 멀면 얼마나 멀겠나. 한참 가다보니 종소리 들려오는구나, 다 와 가는갑다.
내용이야 간단한데, 문장으로 꾸며 놓으니 현실감도 있고, 특히 초장에서 길어진 장형(長型)
에서 높은 산 둘이 흰 구름의 팔걸이라 비유한 틀이 그럴싸합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문화재 하면 불교문화재가 가장 많습지요마는, 명산대찰 찾아가는 일은 눈이 호사하는 일에 더하여 신앙심의 발현(發現)이기도 했을 터라 자연스레 시조도 한 수 짓고는 했겠지요. 종소리 듣고 거리감각을 일깨우니, 한때는 무시로 종을 울려댔구나 싶기도 합니다.
종장의 끝구 생략은 시조창법에 따른 것으로 ‘싶구나’ 정도가 되겠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59
09 16
사랑과 사설과 둘이
무명씨(無名氏) 지음
사랑(思郞)과 사설(辭說)과 둘이 밤새도록 희꾸더니
사랑(思郞)이 힘이 물러 사설(辭說)에게 지단말가
사랑(思郞)이 사설(辭說)에게 이르기를 나중 보자 하더라
사랑(思郞) - ‘사랑’은 순 우리말 어휘라 한자어 표기가 오류이지만, 옛시조에는 한결같이 이리 적혀 있으니, ‘낭군을 생각함’이라는 해석과 함께 여인네가 낭군을 부르는 말로 적당하다고 보여집니다.
사설(辭說) - 가사(歌辭)의 내용을 다루는 말.
희꾸더니 - ‘힐(詰)후더니’. 힐난하다, 꾸짖다.
참 재미진 내용입니다. 우선 등장하는 단어 사랑과 사설이 각각 사람으로 의인화(擬人化) 되었습니다. 그 둘은 사랑은 낭군이요, 사설은 아낙입니다. 밤새도록 요리조리 말을 섞었으니 아직은 깨가 쏟아지는 신혼인가 봅니다. 중장의 끝구 ‘지단말가’는 ‘졌다는 말안가’로 설의(設疑)입니다. 지지 않을 수 있는데도 일단 진다는 것인데, 종장에서 나중에 보자고 했으니 ‘일단 접는다’가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인지라 지는 척해주는 배려와 아량이 우선인 것이지요.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60
09 17
사랑 모여 불이 되어
무명씨(無名氏) 지음
사랑 모여 불이 되어 가슴에 피어나고
간장(肝腸) 썩어 물이 되어 두 눈으로 솟아난다
일신(一身)이 수화상침(水火相侵)하니 살동말동 하여라
수화상침(水火相侵) - 물과 불이 서로를 침노한다.
사랑의 본래 모습에 대한 특별한 관찰을 노래했습니다. 가슴을 지피는 사랑의 불, 아이 뜨거워라. 애간장을 썩혀 만들어져 두 눈을 적시는 사랑의 물, 이 눈물도 뜨겁기는 마찬가지. 불과 물이 서로를 꺼뜨린다고, 침노(侵擄)한다고, 그래서 사랑에 빠진 자기는 살지 말지 모르겠다고. 어렵디어려운 사랑의 본질을 불과 물로 쉽디쉽게 풀어냈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61
09 18
사랑이 왠 것인지
무명씨(無名氏) 지음
사랑이 왠 것인지 잠들기 전에는 못 잊겠네
잠시나 잊자하고 향벽하여 누웠더니
그 벽이 거울이 되어 눈에 암암
왠 것 – 웬 것. 어찌 된 것.
향벽(向壁) - 벽을 향함.
암암 – 아물아물.
이 작품의 지은이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잠들기 전에는 절대 못 잊겠다네요. 꼭 사랑만 그렇겠습니까. 뭐든 잠이 들어야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겠지요.
잠.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상품(商品)이 되었답니다. ‘자겠다’는 자기 의지로 이룰 수가 없는 것이 잠일진대, 잠에 ‘들기’ 위해서는 누군가로부터의 시혜(施惠)를 받아야 한 대나요.
돌아누운 벽이 거울이 되다니요. 그 거울 가득 그리운 님의 모습과 말들이 굴러다닌답니다.
당구 입문 시절, 천장의 사각이 당구대 그라운드로 변했던 기억이 비슷한 정경일는지요.
종장의 끝 구절은 생략되었는데, 창법(唱法)에 따른 것으로, ‘하여라’ 정도가 되겠네요.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62
09 19
식불감 침불안하니
무명씨(無名氏) 지음
식불감(食不甘) 침불안(寢不安)하니 이 어인 모진 병(病)고
상사일념(相思一念)에 님 그린 탓이로다
저 님아 널로 든 병(病)이니 네 고칠까 하노라
식불감(食不甘) - 먹되 달지 않고. 달게 먹지 못하고.
침불안(寢不安) - 자되 편치 않고. 편케 자지 못하고.
상사일념(相思一念) - 서로 그리워하는 한결같은 생각.
제 겪고 이겨야 하는 병(病)은 제가 제일 잘 알지요. 된통 상사에 걸렸군요. 그런데 참 딱한 일이라,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사모하는 님이로군요. 그래서 옛 선인들은 곯다가 앓다가 그만 헤어나지 못하고 총각귀신 처녀귀신이 되었나 봅니다. 갑자기 황진이(黃眞伊) 여가객(女歌客)이 생각납니다. 자신을 상사하다가 죽어간 총각귀신을 위로하여 준 살뜰한 마음씨의 소유자. 그녀가 노래나 부르면서 한평생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책(方策)이었던 것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263
09 20
부모님 자시는 방을
무명씨(無名氏) 지음
부모(父母)님 자시는 방(房)을 만져 보아 덥게 짓고
일일(一日) 삼시(三時)를 효양(孝養)을 못할진들
부생(父生)ㅎ고 모육(母育)한 은혜(恩惠)야 잊을 줄이 있으랴
삼시(三時) - 아침 점심 저녁 세 끼 또는 세 때.
효양(孝養) - 효도하고 봉양함.
부생(父生) - 아버지 날 나으시고.
모육(母育) - 어머님 날 기르시고.
인간으로서 자식된 도리를 돌아다본 참 ‘착한’ 시조입니다.
사자소학(四字小學) 첫 구절이 ‘부생아신(父生我身) 모국오신(母鞠吾身)’입니다. 효양(孝養)이 곧 이런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고 가르치고 배웠던 것입니다. 초장은 천자문(千字文)의 한 구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숙흥온청(夙興溫凊) 즉, 일찍 일어나 (부모님 방이) 따뜻한가 서늘한가를 살핀다는 내용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첫댓글 시조 정형시의 정말 큰 특징은 노래로 불러진다는 것입니다. 빠르기와 높낮이의 특징을 살린 10여 개 가락에 얹기만 하면 어떤 시조든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그 디테일에 대해서는 정가로서의 시조를 접하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