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서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바울의 이 말은 요한이서의 제목으로도 적합하다. 수신인, 즉 택함 받은 부인과 자녀들은 분명히 선(stands) 자들이다. 그들은 진리 안에 거하며 아버지로부터 받은 계명에 신실했다. 요한은 그들에게 칭찬의 말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을 크게 기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어떤 것도 확고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선 것이 넘어진 상태에서 한 발짝 벗어난 데 지나지 않음을 깨닫고서 주저하지 않고 한 가지 계명을 상기 시킨다. 즉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새로운 계명이 아니나, 반복할 만한 중요성이 있음을 안다. 그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에 좇아 사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이 사랑에 통찰력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것이나 혹은 아무나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의 사랑은 선택의 문제다. 왜냐하면 무분별한 사랑은 위험하고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다. 거짓 교사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부인한다. 따라서 거짓 가르침에 문을 열어 놓는 행위는 거짓 자비심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해야 하며 성도와 교제해야 한다.
1절의 ‘장로’는 전통적으로 사도 요한과 동일인물이라고 생각되어 왔다. 그래서 헬라어 본문에는 ‘이오안누베타’(요한이서)라는 표제가 붙게 되었다.
저자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의 내용과 상황이 유사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두 책의 저자를 동일 인물로 간주할 것이다. 이 두 서신은 내용이 짧고, 소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 내용이 요한일서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초대교회의 교부들 작품에 거의 인용되지 않았다. 두 서신이 신약성경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주 서신의 저자가 요한이라는 사실을 동시대의 교부들이 의심하지 않고 받아드렸다는 것이 중요하다. 2 세기의 작가 이레네우스나 알렉산드리아 클레멘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 출처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있었으나 여러 가지 유리한 증거들로 말미암아 전교회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본문에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의 수신인들은 저자를 잘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두 서신의 1절에는 이들 대신 ‘장로’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요한의 저작설이 부인되지는 않았다. 그 내용으로 보아 저자의 권위가 교회 장로의 권위보다 훨씬 월등하기 때문이다. 사도 베드로도 자기를 가리켜 장로라 하였다.(벧전5:1) 요한도 여기서 자기 이름 대신 특별히 ‘장로’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문체나 어휘, 구조, 분위기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는 동일 저자의 작품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두 서신(특히 요한이서)은 요한일서 및 요한삼서의 저자가 사도 요한이라는 전통적 견해는 더욱 분명해진다.
시대적 배경
이 서신의 수신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1절)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부인과 그녀의 자녀를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고, 지역 교회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어서 어느 것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요한이 수신인들을 잘 알고 있었으며, 수신인은 에베소에서 멀지 않은 소아시아에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상징적 표현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13절의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는 자매 교회의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요한은 첫 서신에서 거짓 교사들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말했다.(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 하였나니,요일2:19) 그들 중 일부는 순회 교사가 되어 성도들의 개별적인 도움을 받으며 교회에 침투해 갔다.
요한이서는 그 내용과 상황으로 보아 요한일서와 같은 시기에 쓰여 졌거나, 조금 늦게 쓰여진 것 같다.(A.D.90년경) 요한의 세 서신은 모두 에베소에서 쓰여 졌을 가능성이 크다.(참조, 요한일서 서론[시대적 배경])
요한이서에 나타난 그리스도
첫 서신에서와 같이 요한은 여기서도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잘못된 견해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7절)는 미혹하는 자임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9절) 거하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사역에 관한 교리는 신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요한이서를 푸는 열쇠
주요낱말 : 거짓 교사와 사귀지 말라
이 짧은 서신의 근본 되는 주제는 ‘처음부터 들은’(6절) 사도의 교훈을 순수하게 지키며 실천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 고 하는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살 것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실천적인 권면,4-6절) 물론 본래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받아 드리지 않는 거짓 교사들에게 동조하거나 그들과 사귀지 말라고 경고하려는 것이다. (교리적 권면,7-11절)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는 요한이 교회(요한이서)와 가이오(요한삼서)에게 사적인 말을 전함으로서 요한일서를 보충할 목적으로 쓰여진 추신(追伸)이라는 설이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주요 절 : 요이 1:9,10
요해 (了解)
이 짧은 서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 등 요한일서와 공통점이 많다. 요한은 서로 사랑 안에 거하라 고 격려한다. 그러나 사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조심해야 할 점이 있음을 아울러 당부한다. 요한이서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님의 계명 안에 거하라’(1-6절)는 것과 ‘거짓 교사들을 멀리하라’(7-13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 안에 거하라 (1-6절)
인사말은(1-3절) 진리 안에 거하라는 것이다.(여기서 세 번 되풀이 된다) 이 서신의 수신인들은 진리에 거했기 때문에 ‘진리를 아는 모든 자’의 사랑을 받는다. 사도는 수신인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진리를 실천하는 삶을 살라고 명령하고(4절) 이 계명은 서로 사랑의 삶에 이어져야 함을 일깨워 준다.(5,6절) 5절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이, 6절에는 성도들의 응답이 이어진다.
거짓 교사들을 멀리하라 (7-13절)
그리스도인들의 행위에 대한은 기본적인 시험과(형제사랑)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대한 기본적인 시험을(그리스도인의 인성) 다룬 요한은 수신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7-9절) 곧 속이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훈계한다. 요한은 확고부동한 말로, 수신자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또한 구원에 대하여,10,11절) 그릇된 견해를 전하는 거짓 교사들의 어떤 가르침도 허용치 말고 배격하라고 당부한다.
이 서신은 요한이 이 서신을 간략하게 쓴 이유를 밝히는 것으로 끝난다. 즉 그는 장차 그의 수신자들을 방문하여 ‘대면하여 말’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예견하고 있기 때문이다.(12절) 13절의 인사말의 의미는 1절을 부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