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있는 그대로의 인정과 수용 그리고 사랑 >
“이번 주는 어떻게 보냈어?”
“잘 지냈어요.”
“요즘엔 잘 지냈다는 말을 자주 듣네?”
“네…. 최근에는 뭔가 제가 서 있는 땅이 조금은 단단해진 느낌이에요.”
수민이(가명)와 지난 주 상담에서 나눈 첫 대화입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1년도 더 지난 일입니다.
19살 수민이는 잦은 자해 및 자살 시도, 회피와 철수 등으로
대학 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주요우울장애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거듭하며 입퇴원을 반복하는 친구였습니다.
당시 수민이는 등과 어깨가 80대 할머니처럼 돌돌 말려 구부정했고
동공은 허무감과 무력감으로 꽉 차 있었으며
눈꺼풀이 너무나도 무거운 듯 힘겹게 깜박거렸고,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아 위태로웠습니다.
수민이를 만나고 있자면 흠뻑 젖은 솜이불을 진 것처럼
어깨가 무겁고 가슴이 짓눌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좀 추슬러 보냈다 싶었다가도 다음 주에 다시 만나면
공기가 다 빠져나간 튜브처럼 되어 돌아왔습니다.
수민이를 만나는 것은 정말이지 굉장한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꾸짖고 싶은 마음도 가끔 솟구쳤습니다. 답답했습니다.
저의 조언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무기력했습니다.
힘들어지는 결과가 뻔한데도 같은 선택을 하는 수민이의 모습을 보는 건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수민이는 자신의 아픔에 대해 ‘연기’라고 표현하곤 했습니다.
“아픈 척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진짜 아픈 건지 연기를 하는 건지 분간이 안 될 때가 있어요.”
“어째서 아파야만 했는데?”
“특별해져야 했거든요.”
“특별한 사람이 되면 어떻게 되는데?”
“부모님이 나를 봐주고 사랑해 주죠. 그리고 사람들도 인정해 주고요.”
특별해지기 위해, 아니 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쓰다 못해 자신을 망가뜨리면서까지 고군분투하는 수민이는
오늘 복음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숨막히게 많은 계명들을 다 지켜내는
부자 청년과 많이 닮았습니다.
부자 청년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바꿔서라도
얻고 싶은 중요한 것이었다면,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우리 어른들의 ‘있는 그대로의 인정과 수용 그리고 사랑’입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조건 없이 주어지는 부모와 어른들의 인정과 수용
그리고 사랑으로 인해 ‘내면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리하여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해도, 대기업에 취업하지 못해도
행복하고 살맛 나길 바랍니다.
청소년들은 특별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그 자체로 하나하나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정지원 바오로 신부 | 살레시오회(돈보스코 심리발달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