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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영배, 7대3 신앙원리
렘 25:1-38(7)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계영배, 7대3 신앙원리’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계영배(戒盈杯)라고 하는 것은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입니다.
공자의 말 중에 나온다고 그래요. 공자가 제나라 환공의 사당을 들렀는데 그 사당에 환공이 생전에 늘 옆에 두고 지켜보며 교훈을 삼았던 의식때 쓰는 그릇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게 바로 계영배입니다.
그러면 제나라 환공은 무엇 때문에 이 그릇을 늘 옆에 두고 교훈을 삼았냐? 계영배라고 하는 술잔에 담겨져 있는 비밀이 도대체 뭐냐 하는 겁니다.
이 술잔은 독특해서 술을 따르면 7할 정도 술을 따를 때까지는 그 잔이 술을 담습니다. 그런데 7할 정도가 넘어서 술잔을 가득 채우려고 술을 계속 붓다보면 이상하게 넘치는 부분만 술잔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부터 채워져 올라왔던 7할에 해당했던 부분까지도 다 밑으로 빠져버린다는 겁니다. 참 재미있는 술잔이지요?
이러한 술잔이 중국에서만 있었던 게 아닌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유명한 도공 중에 조선시대 우명옥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답니다. 이 우명옥이라고 하는 사람은 경기도 분원, 경기도 이천인가요? 거기 도자기를 만들어 내는 가마가 많지 않습니까? 거기서 왕실에서 쓰는 그릇들을 진상하는 아주 유명한 분원이었는데 그 경기도 분원에서 생도로 일을 하다가 설백자기라고 하는 것을 만듭니다. 스승도 만들지 못했던 설백자기라고 하는 것을 만들면서 아주 유명해졌어요. 유명세를 타면서 그만 허랑방탕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삶에서 뉘우치고 돌아와서 스승께 사죄하고 그리고 만든 그릇이 바로 계영배입니다.
자기의 생애를 뉘우치기 위해서 넘치면 망한다라는 것을 7할 이상을 채우려고 하면 반드시 망한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 일깨우기 위해서 만들었는데 이 그릇이 나중에 조선의 거상 임상옥에게 들어가서 이 임상옥이 늘 자기 옆에 두고 마치 제나라 환공이 그랬던 것처럼 그 계영배의 교훈을 잊지 않고 살면서 재물에 대해서 끊임없이 솟구쳐 오르는 자기의 물욕을 7할로 한정시키면서 탈없이 재산을 잘 모을 수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계영배의 7대3의 원리로 진행이 되어야 참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계영배의 7대3의 원리가 신앙에 적용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참 신앙이라면 어떻게 사는 것이 참 신앙인가를 한번 살펴봅니다.
오늘 본문이 내용은 BC 605년 느부갓네살 원년에 유다를 첫 번째 침입을 했을 때 사건을 배경으로 해서 예언을 합니다. 우리가 살펴보았던 22, 23장보다는 역사적으로 더 앞에 부분인데 지금 나와요.
왜냐하면 예래마야서 2장부터 25장까지 12편의 설교가 이제까지 진행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장별로 내용에 충실했지마는 지금 마무리 되어지는 단계에서 본문의 내용이 무엇을 예언하고 있느냐 하면 유다가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있고 그 다음에 유다의 주변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유다의 멸망이 유다만 멸망하는 게 아니라 주변 열방의 멸망을 함께 가지고 온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주변의 열방이 망하는 것을 진노의 술잔을 마시는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을 합니다.
진노의 술잔이 연쇄적으로 확장되어 가는데 재미있는 것은 신약성경에 성령의 역사가 확장되어져 가는 것과 똑같은 순서를 말합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1장 8절에 뭐라고 하지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루살렘, 유대, 그리고 유대나라 주변 사마리아 땅 끝 이렇게 퍼져나갑니다.
그런데 오늘도 이 망함이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지 18절 이하에 보면 예루살렘, 유다 성읍, 애굽, 우스, 블레셋, 에돔, 모압, 암몬 이런 식으로 퍼져나갑니다.
다시 말하면 선민들이 제대로 살았더라면 멸망 대신에 진노의 잔 대신에 마치 신약성경 시대 때 성령의 역사가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 인근 지역으로 확장되어갔듯이 그렇게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확장되어 갈 수 있었더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만 유다백성이 잘못함을 통해서 축복의 역사가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진노의 잔이 확장되어 간 것이에요.
여러분, 나 개인에게 딸려있는 연쇄반응을 일으킬 사람이 몇 사람일까요?
그들이 누구일까요?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을 가지면 연쇄적으로 축복을 받을 사람들이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을 갖지 못함을 통해서 진노의 잔을 마시게 될 경우가 혹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자, 그러면 도대체 선민의 신앙이 어디가 잘못되었기에 이렇게 연쇄적으로 멸망이 초래하게 되었느냐? 바로 계영배의 7대3의 원리가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그게 뭘 말하는 겁니까?
단순히 믿지 않는 사람들이 계영배를 교훈삼는 것 다시 말해서 임상옥이 교훈삼고 우명옥이 교훈을 삼고 제나라 환궁이 교훈을 삼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좀 비유적으로 말해서 도대체 계영배의 원리가 신앙에 적용될 때 어떤 뜻을 갖고 있는가? 7대3의 원리가 지켜지지 않을 때 나도 망하고 인근 주변이 다 망해간다는 거지요.
선민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차근차근히 찾아봅니다.
본문 15절을 보세요. 「진노의 술잔을 받아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하여금 마시게 하라」이 말씀 기억하시고 그리고 5절에 「너희는 각자의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준 그 땅에 살리라」
우리 생각에 하나님께서 주신 이것을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그 위에서 선민들이 뭘 하면서 살았느냐?
6절 「다른 신을 따라다니며」주신 것 위에서 다른 신을 따라다녔습니다.
다른 신을 따라다녔다는 얘기는 루터의 얘기를 빌면 신이라는 게 뭐냐?
우리가 마음으로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다 신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믿음이라는 말도 라틴어로 ‘크레도’라고 했지 않았습니까?
사도신경에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라는 말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께 내가 마음을 드리오며 라는 뜻이에요.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즉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내가 마음을 드리오니... 믿음이라는 건 내가 마음을 드리는 겁니다.
그러므로 신을 좇아 다닌다 할 때 이 신은 돈일수도 있고, 자식일 수도 있고, 건강일 수도 있고, 정치하는 사람 같으면 대권일 수도 있고, 오늘 수능시험 보지요? 수능시험을 보는 아이들에게는 마음을 두는 게 일류대학일 수도 있고, 마음을 두는 모든 것이 다 신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신을 따라 다니면서 섬기거나 경배하는데 그 섬기거나 경배하는 행동이 뭐냐하면 6절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써」우리가 손으로 만들어 간다는 겁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 내가 손으로 만들어 간다는 거예요. 물론 이 본문의 직접적인 뜻은 손으로 만든다는 것이 손으로 만들어진 우상을 숭배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다른 신을 따라 간다는 것 이것도 주로 바알과 아세라를 말합니다.
그런데 바알과 아세라를 따라 가는 이유는 부자되기 위해서 따라 가는 거예요. 그리고 손으로 우상을 만드는 이유도 결국은 부자되기 위해서 이 삶에서 내가 무언가 움직이고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손으로 움직이고 우리 손으로 만든 것들 우리 손이 움직인 시간들이 하나님으로 노엽게 해서 결국은 7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손발이 움직인 게 아니라 내가 손으로 움직여서 만든 것이 노여움을 일으켜서 스스로 너희를 해하였다 이렇게 말합니다.
자, 이 말을 한번 더 풀어보면서 신앙의 7대3의 원리를 생각해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것 그것은 복지 뿐만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주신 것은 우리 몸 우리 목숨을 그리고 나의 생김새를 주셨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계십니다. 부모없이 태어난 아기는 아무도 없어요. 부모가 같이 안 살 수는 있고 먼저 돌아가실 수는 있지만 부모없이 태어난 아기는 없어요.
부모가 주어집니다. 공기가 주어지고 불이 주어지고 물이 주어지고 나라와 민족이 주어지고 다 주어집니다.
이 주어지는 것에 그래서 내 인생을 전체적으로 볼 때 그 비중에 있어서 주어지는 것이 7할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다 주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느냐?
주어진 것을 기반으로 삼아서 나머지 3할을 내 손으로 활동하면서 채워가려고 합니다.
이게 바로 이방인의 삶이라는 것이에요.
여기서 7대3의 원리가 깨지고 100%를 채우려고 하는 모든 인간들의 삶이 궁극적으로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수없이 이미 있는 것까지도 다 잃게 되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되고 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에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는데 그게 바로 나 자신이 나를 해한 것이라는 겁니다. 스스로 해하였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퇴직금을 받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주어진 그것을 7할 선에서 끝나면 좋은데 그 돈을 가지고 100%를 채우려고 합니다. 뭔가를 마음에 따라가려는 신인 돈을 위해서 100%를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받은 퇴직금까지 다 없어집니다. 퇴직금을 받아서 투자를 해서 사업을 하면 그 중에 한 명이라도 성공을 합니까? 백명 중에 한 명이 성공 합니까?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증권투자하면 거기서 이익을 보는 사람 몇 사람 됩니까? 백 사람 중에 두 사람 됩니까?
이게 세상인 거예요. 여러분! 계영배의 원리가 세상 속에서도 믿지 않는 사람조차도 그것을 지킬 때 자기의 삶이 유지가 돼요.
그러면 신앙의 7대3의 원리는 뭡니까?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아담에게도 에덴을 주셨습니다. 에덴을 주셨다는 것은 여러분 생각하기에 무슨 뜻입니까? 7할 선에서 아담의 마음이 완전히 만족하라는 뜻에서 에덴이라는 거예요. 그럼 나머지 3할은 뭐에요? 하나님께서 아담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앞으로 이루어져야 될 부분인 겁니다.
우리 인간은 주어져 있는 것으로 그냥 마음이 이 세상에 대해서는 끝나는 거예요. 그것에서 끝나고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으로 매듭짓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생명이나 부모나 자식이나 얼굴 생김새나 이렇게 주어져 있는 것 말고라도 어제까지 일어난 일 어제까지 일어난 상황,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면 주어져 있잖아요. 그 주어져 있는 것에서 사도 바울처럼 더 이상에 대해서는 죽어버리는 겁니다. 그걸로 감사하고 끝나는 거예요. 그리고 나머지 3할은 하나님이 동행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대해서는 이미 주어져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이 세상에서 내 손으로 뭔가를 이루겠다고 하는 계획과 소원이 죽고 그래도 내 마음은 살아 있잖아요. 뭔가 해야 되지 않습니까?
하세요. 뭘? 이 세상에 대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마음에 모셔 들이기 위해서 내 마음을 전부 하나님께 드리는 겁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는 주어져 있는 것으로 끝내고 그리고 내 마음은 끝을 냈으니까 마음 둘 곳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하나님을 찾는 겁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더욱 더 많이 느끼게 해주시고 하나님과 더욱 더 친하게 해주시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게 하나님을 믿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면 하나님이 오셔서 내 인생의 3할을 당신이 하늘의 힘으로 채워가신다는 겁니다. 이 하늘의 힘으로 내 인생이 채워질 때 밑이 빠지질 않아요.
마치 이런 거지요. 모세가 소명을 받을 때 떨기나무 불꽃에서 하나님을 만나는데 이상하게 불꽃이 훨훨 타고 있는데도 그 떨기나무가 잿더미가 되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하늘의 불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인생의 7할이 주어져 있습니다. 내 인생은 계영배에요. 그러기 때문에 내가 손으로 나머지 3할을 이 땅의 무엇으로 채우려고 하면 반드시 7할까지 다 빠져버리고 맙니다. 멸망해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까지 일어난 상황 주어져 있는 것 그 상황이 부도의 상황이든지 아니면 자식이 말썽피우는 상황이든지 그냥 그 상황에서 끝내는 겁니다. 주어져 있는 7할로 끝내는 거예요. 그리고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내 인생의 마지막 3할을 활동해나가시는데 떨기나무 불꽃이 떨기나무를 재로 만들지 않듯이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들로는 내 인생이 점점 더 넘치도록 풍요로워질 뿐이지 밑이 빠지는 일이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주어지는 3할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이면 반드시 7할까지 있는 것까지 다 없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식을 향해서 공부! 공부! 하던 부모들이 자식이 죽을 병에 걸리면 얘야 공부 못해도 좋다. 그냥 살아만 다오. 이런 얘기를 하게 되지 않습니까?
지금 주어져 있는 것에 대해서 마음이 만족하지 못하고 끝나지 못한 채 계속 이 땅의 것을 찾아갑니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진하게, 더 깊게, 자꾸 잒 이 세상 것을 찾아가다 보면 반드시 주어져 있는 것까지 다 빠져버리는 계영배의 술잔의 현상이 그대로 나타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뭡니까?
계영배로 한잔 하는 겁니다. 계영배로 한잔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사도 바울의 날마다 죽는다는 이야기는 날마다 인생의 시간들을 계영배로 한잔씩 했다는 얘기에요. 그거 어떻게 하는 겁니까?
지금 주어져 있는 것에서 내 마음은 더 이상 이 세상에 대해 왈가왈부 욕망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냥 끝내버립니다.
그러면 내 마음은 저절로 하늘로 향해 갑니다. 하늘로 향해 갈 때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뜻이 이제는 내 마음의 소원이 되어서 내 손이 움직이는 것이지마는 실지로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것처럼 됩니다.
이때 선민의 계영배는 놀랍게도 100% 넘치게 찰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샘 솟듯이 솟아 올라서 이웃에게로 이웃에게로 그 축복의 활동이 넘쳐간다는 거예요.
나의 첫 번째 이웃이 부부 아닙니까? 그리고 두 번째 이웃이 부모 자식 아닙니까? 그 다음 세 번째 이웃이 그야말로 이웃이고 사장님이고 회사 직원이고 동료고 이들에게로 선민의 계영배의 잔은 이상하게도 3할이 하늘의 것이 부어지면서 넘치고 넘치고 넘치면서 계속해서 축복의 역사가 옆으로 확장되어 간다는 거예요.
이게 그러지를 못하고 내 손으로 계획하고 내 인생을 수습하고 내 인생을 채워가기 위해서 지금 주어져 있는 것을 토대로 해서 더 모으겠다고 설쳤다가는 반드시 주어져 있는 것 건강이라든지 자녀라든지 부부관계라든지 무엇이든지 간에 재산도 마찬가지고 이미 주어져 있는 것 조차도 다 밑둥이 빠져서 새버리고 말 것이에요.
계영배로 한잔 하기 위해서 오늘도 우리는 이미 주어져 있는 것으로 감사하기 위해서 어김없이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더 이상을 바라고 있는 오늘의 이 현실 이상을 바라려고 하는 내 마음을 십자가에서 죽이고 마음을 하나님에게로 보냅니다.
“하나님 내 마음을 가득히 채워주세요. 하나님을 더 많이 느끼게 해주세요. 하나님 한분 계시니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고 부족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주어져 있는 것들에 대해서 내 마음이 죽고 하나님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세요.”
십자가 붙잡고 계영배의 술잔을 들이키다 보면 어느 덧 내가 축복의 근원이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에요.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약속이 바로 이것입니다. 네가 복의 근원이 되리라...
우리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날마다 시간마다 순간마다 십자가 붙잡고 주어져 있는 7할에서 이 세상에 대한 나의 마음은 끝을 냅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하늘로 보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3할의 공간 안에서 역사를 하십니다.
이럴 때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 5) 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러지 않고 내 손으로 움직이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면 다른 신이 뭐라고요? 내가 이 땅에서 이루고 싶은 것들 그게 목사님들 같은 경우 교회부흥이든 멋진 교회당 건축이든, 사장님들 같으면 흑자든, 자녀들 같으면 멋진 취직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그게 다 신이에요. 그것을 따라 가면서 그걸 이루기 위해서 내 손으로 움직였다가는 반드시 있는 것까지 다 잃어버리는 계영배의 원리를 경험하게 될 것이에요.
인생은 계영배입니다. 계영배의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에요.
십자가 붙잡고 7할을 넘지 마세요. 7할이 뭐라고요? 이미 주어져 있는 것들 그 이상의 마음을 갖지 마세요. 주시는 대로만 이 세상을 사는 겁니다. 그리고 내 비즈니스는 하나님을 죽어라고 찾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엇을 이루어 나가실지는 한번 기대해보십시오.
계영배 7대3의 신앙원리!
이게 바로 복의 원리에요.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주고 찾고 싶어하는 신이 참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마음을 드리는 자가 되게 하여 주셔서 이 세상에 대해서는 70% 주어진 것으로 욕망의 활동이 끝이 나게 하시고 나머지 30%는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이 뜻대로 그 모양이 어떠하든지 간에 세상 사람들 보기에 성공이든 세상 사람들 잣대로 볼 때 실패건 하나님 뜻대로만 이루어지는 30%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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