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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 第一
此, 爲書之首篇 故所記多務本之意 乃入道之門 積德之基 學者之先務也 凡十六章
01-01-1 子-曰學而時習之면 不亦說音열乎아
해석
공자님이 말씀하셨다. “잘 배우고, 배운 것을 끊임없이 익힌다면 (연습하고 적용하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요해
學(배울 학): 본받는다는 뜻이고, 時習(연습과 적용)이 수반되어야 한다.
君子의 學은 절대선인 天道의 覺과 效(본받음)인 治人之學이고 그 과목은 經書와 六藝 (禮 樂 射 御 書 數)이다.
時習之
時(때 시): ‘때때로’. ‘항상’, ‘끊임없이’, ‘때맞추어’, ‘제때에’ 등으로 해석한다
習(익힐 습):복습하여 익힘, 알에서 새끼 새가 나오면 그 새끼 새는 날기 위해서 쉬지 않고 날개 짓을 연습하여 드디어 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끊임없이 연습(practice)하고 적용(application)하는 것을 習이라고 한다.
之(갈 지):學을 지칭하는 대명사
時習之의 時에 대한 해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成百曉(27p.), 柳正基(90p.), 이민홍(29p.) 김학주(5p.), 謝氷瑩(65p.)은 ‘時時’ ‘때때로’로, 류종목(13p.), 張基槿(82p.), 김영일((1)1p.)은 ‘때맞추어’ 로, 차주환(213p.)은 ‘제때에’ 로, 이강재(101p.)는 ‘계속하여’ 로, 王志遠(14p.)은 學了又時常溫習和實習不是很愉快嗎? ‘배운 뒤에 항상 익히고 실습한다면 매우 유쾌하지 않은가?’ ‘(時常)항상’으로, Legge (137p.)는 Is it not pleasant to learn with a constant perseverance and application? ’끊임없는 끊기로 배우고 적용하면 즐겁지 않은가?’ 라고 하여, with a constant ‘끊임없다’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때때로’. ‘항상’, ‘끊임없다’는 같은 뜻이고, ‘때맞추어’와 ‘제때에’도 같은 뜻이다.
亦 (또 역): 역시, 또한
亦의 해석은 몇 가지로 갈린다.
류종목(14p.)은 ‘역시’, 張基槿(82p.)과 차주환(213p.)은 ‘또한’, 이강재(101p.)는 ‘그 얼마나’, 이민홍(29p.)은 ‘어찌’, 李家源(23p.)은 ‘이야말로 다시없는’, 김학주(4p.)와 김영일(〔1〕11p.)과 ,王志遠(14p).과 謝氷瑩(65p.)은 매우, ‘很’(매우)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成百曉(27p.)는「論語」의 첫 장 첫 문장에서 그 앞에는 아무런 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또한’ 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부적합한 것으로 보고, 亦은 조사일 뿐이라고 하였다.
Legge(138p.)는 註에서 The occasion for pleasure are many, is this not also one? But it is better to consider as merely redundant. ’기쁜 경우가 많은 중에 이것 역시 하나가 아닌가? 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번거로운 글자’로 보는 것이 낫다‘ 고 하였다.
필자는 공자님은 사고가 한없이 열린 분(학이편 01-10-2, 자한편 09-04-1 참조)이므로, ‘亦’ 字는 사람이 기뻐할 일은 많으나, 이것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니겠느냐? 는 뜻으로 보고, ‘또한’이나 ‘역시’로 해석한다.
주석
程子(伊川)曰 習은 重習也이니, 時(항시)復思繹(단서-생각하고 풀어냄을 반복)하여, 浹洽於中(내면까지 무젖게 깨달음)이면 則說也라, 又曰 學者는 將以行之也(실천해 나가려고 함)이니 時習之면 則所學者在我라 故로 悅이니라. 謝氏曰 時習者는 無時而不習(어느 때고 익히지 않음이 無)이니, 坐(앉은 모습이)如尸(尸童)는 坐時(앉은 때)習也요 立如齊(재계할 재)는 立時(일어선 때)習也니라.
01-01-2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音락)乎아
해석
요해
自(스스로 자):부터 方(모 방):지방 樂: 밖으로 넘치는 즐거움
본문의 有朋은 몇 가지 해석으로 갈린다.
첫째 有字가 友字의 誤字라는 주장으로 有朋이 아니라 友朋이라는 입장이다. 생각하건대, 이 朋字의 의미는 가급적 넓게 해석하는 것이 취지에 합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有字가 友字의 誤字라 는 생경한 주장을 하지 않아도 주희와같이 朋을 ‘同類’로 해석하면 朋字의 의미는 朋友의 外延만큼 확장된다.
둘째 虛辭라는 주장이 있다. 이 경우에는 有字를 해석하지 않는다. 단 학자에 따라서는 有字가 있는 이유에 대하여 聲讀時에 음률을 맞추는데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謝氷瑩(65p.)은 同道的朋友從遠處來不是很, 快樂的碼? 에서와 같이 有字를 무시하였고, 차주환(213p.)도 ‘벗들이 먼 곳에서 오면’ 이라고 해석하였다.
셋째 虛辭가 아니라고 보는 측은 有字를 ‘어떤’ 이나 ‘있다’ 로 해석 한다.
김학주(5P.)와 김영일(〔1〕11p.)은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그가 찾아왔다면’으로, Legge(137p.)는 Is it not delightful to have friends coming from distant quarters? ‘먼 지방에서 찾아오는 벗을 가진 것이 즐겁지 않은가?’에서와 같이 ‘가지다’ 로, 王志遠(14p.)은 有志同道合的人從遠來 不是很令人高興的嗎? ‘멀리서 찾아오는 뜻이 같고 도가 맞는 사람이 있으니 매우 즐 겁지 않은가?’라고 해석하였다. 필자는 ‘있다‘로 해석한다.
주석
01-01-3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
해석
요해
君子란 말이 논어에서 106회나 나올 만큼 공자님의 윤리관, 교육관, 사회관, 정치관과 밀접하다. 원래 공자님이 말하는 군자란 높은 학문과 덕행을 겸비한 사회협조적인 지식인이며, 三達德 (知·仁·勇)을 갖춘 고매한 인격자를 의미한다. 君子란 말은 대부분 成德之名, 入德之名으로 쓰였으나 군주 등 在上之名으로도 사용되었다.
주희는 이 장에서의 군자를 成德之名(주희)이라고 하였다.
Legge는 이 군자를 a man of complete virtue. ‘완벽한 德을 갖춘 사람’ 즉 成德之名으로 해석하였고. 王志遠는 孔子理想中具有高尙人格的人. ‘공자의 이상에 맞는 고상한 인격자’라 하였고, 謝氷瑩(65p.)은 指有道德修養的人‘도덕과 수양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주석
01-02-1 有子-曰其爲人也-孝弟오 而好犯上者-鮮 矣니 不好犯上이오 而好作亂(音란)者-未之有也니라
해석
윗사람에게 거스르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동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다.
요해
干犯:남의 일에 간섭하여 남의 권리를 침해한다, 남에게 대든다.
其爲人의 其: 추측을 나타내는 부사, 아마, 어쩌면, 또는 다음 말을 강조하는 역할로 ‘그’ 라고도 해석한다. 爲人: 사람됨, 사람의 자질을 뜻한다.
논어에서 공자님의 제자는 ‘字’로 칭하는 것이 통례인데, 有若은 3번이나 ‘字’ 대신에 ‘有子’라고 칭해졌다. 그 때문에 有子曰로 표현된 論語의 章은 有若의 제자들에 의하여 작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有若(有子)은 공자님의 뛰어난 제자인데도, 孔門四科의 十哲로 거명되지 않은 이유는 알 수 없다.
有子의 말에는 이 장 이외도 아래와 같은 것이 있다.
(1)和之用 和爲貴 (01-12-1)
(2)信近於義言可復也, 恭近於禮遠恥辱也, 因不失其親亦可宗也 (01-13-1),
(3)哀公問於有若 年饑用不足如之何? 對曰, 蓋徹乎?(12-09-2)
주석
01-02-2 君子는 務本이니 本立而道生하나니
孝弟也者는 其爲仁之本與인저
해석
요해
이 君子에 대해 국내 학자와 王志遠은 특별히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다만 Legge는 The superior man. ‘덕이 출중한 사람’ 이라고 하여, 成德者, 入德者, 在上者를 아우르고 있다.
務本의 本: Legge(139)는 '註에 the root 'what is radical (根本) is here said of filial(子息의) and fraternal(友愛의) duties(義務).라 하여, 本은 자식과 형제의 의무인 孝悌이다. 라고 해석하였다.
道生의 道: Legge(139p)는 all practical courses of what is radical ‘근본적인 것의 모든 실천적인 행위’로, 王志遠(15p.)은 大道的指原則也 ‘대도적인 원칙’으로, 孔子提倡的仁道 ‘공자가 제창한 仁道’ 라고 한다.
其爲仁之本與의 仁: 주희는 仁을 愛의 理요 마음에 쌓은 德이라하였다. 또한 정자는 爲仁의 仁은 仁을 실행하는 ‘用의 하나’이고 仁의 體는 아니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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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ge.(139p.)는 Benevolence’(자비심) ‘Perfect virtue’(완전한 덕성), ‘principle of love’(사랑의 원리)라는 말로 仁을 표현하였다.
「中庸」에서 ‘仁者人也니 親親爲大라’(中庸 20章)하였는데, 학자는 爲仁의 仁을 ‘人’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주석
程子曰 孝弟는 順(순종적인)德也라 故로 不好犯上이니, 豈復(부)有逆理亂常(常道)之事리오, 德有本이니 本立則其道充大라,
孝弟行於家而後에 仁愛及於物이니 所謂(孟子之)親親而仁民也라 故로 爲仁은 以孝弟爲本이요 論性則以仁爲孝弟之本이니라, 或問 孝弟爲仁之本이라하니 此是由孝弟可以至仁否아, 曰 非也라, 謂行仁自孝弟始라, 孝弟는 是仁之一事니 謂之(孝弟)行仁之本則可커니와 謂是仁之本則不可하니, 蓋仁은 是性也(本性=體)요 孝弟는 是用(作用=情)也라, 性中에 只有箇仁義禮智四者而已니 曷(어찌 갈)嘗有孝弟來(어찌 일찍이 효제가 들어있겠느냐?)리오, 然이나 仁主於愛하고 愛莫大於(=보다=比較格)愛親(愛는 어버이에 대한 愛보다 더 큰 것이 없다)이라, 故로 曰 孝弟也者는 其爲仁之本與인저.
01-03-1 子-曰巧言令色이 鮮矣仁이니라
해석
요해
Legge(139p.)는 Fine words and insinuating appearance are seldom associated with true virtue. ‘공교한 말과 환심 사는 표정이 인(진정한 덕)과 어울리는 것은 흔하지 않다.’로 해석하였다.
주석
程子曰 知巧言令色之非仁이면 則知仁矣리라.
01-04-1 曾子-曰吾日三省吾身하노니 爲人謀而不
忠乎아 與朋友交而不信乎아 傳不習乎아
해석
남을 위하여 일을 해 줄 때 충실하지 않았던 적은 없는가?
친구와 사귈 때 신의를 잃지는 않았는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익히지 않고, 남에게 그것을 전하지는 않았는가?”
요해
忠(충성 충): 충성, 진심, 참마음, 진실, 정성을 다하다,
傳(전할 전): 전하다, 말하다, 보내다 習(익힐 습):익히다, 되풀이 하여 행하다, 배우다, 연습하다 泯(없어질 민)
三省은 ‘세 가지 면’, ‘세 번’, ‘여러 번’ 등으로 해석이 나뉜다.
주희와 成百曉(33p.), 張基槿(87p). 김영일((1)28p.), 류종목(22p.), 김학주(7P.), Legge 등은 (on three points) ‘세 가지 면’으로, 李家源(24p.)은 ‘세 번’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강재(192p.)와 王志遠 (16p.), 謝氷瑩(67p.) 등은 ‘여러 번(多次)’로 해석하였다. 필자는 ‘세 가지 면’ 으로 해석한다.
忠: 주희는 ‘자기 마음을 다하는 것’ (盡己之謂忠)을, Legge는 Faithful ‘성실한 것, 신뢰할 수 있는 것’을, 王志遠은 盡心竭力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것’을 충이라고 해석하였다.
信: 주희는 ‘자기가 한 말을 실행하는 것(以實之行)이라 하였고, Legge는 sincere ‘성실한, 진실한’을, 王志遠은 '誠實', 謝氷瑩은 ‘誠實信用’을 신이라고 해석하였다.
傳不習乎: ‘스승에게 傳受한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익히지 않고 그것을 남에게 傳授하지는 않았는가?’ 등으로 해석이 나뉜다.
成百曉(33p.), 김영일((1)30p.), 李家源(24p.), 이강재(103p.), 김학주(7P.)는 ‘傳受한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로, 謝氷瑩(67p.)은 老師敎我的 有不溫習熟了的碼? ‘선생님이 내게 가르쳐준 것을 복습해서 익히지 않았는가?’로, 王志遠은 老師傳授給我的學業沒有復習演練嗎? ‘선생님이 傳해 주신 나의 학업을 복습하고 단련하지 안했는가?’라 했고, Legge는 whether I may have not mastered and practised the instructions of my teacher.‘나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익히고 연습하지 않았는가?’ 로 해석하였다. 다만 류종목(22p.)은 曾子曰로 볼 때 자신이 스승이 된 뒤에 제자에게 한 말이므로, ‘弟子에게 지식을 傳授하면서 스스로 익숙하게 익히지 않았는가?’로 하였다. 필자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제 대로 익히지 않고 그것을 남에게 전해 주지(=傳授) 않았는가?” 로 해석한다.
논어에서 曾參은 17번이나 ‘子’로 불려졌다. 그는 魯鈍하였으나 남이 한 번에 해내는 일을 그는 백번에 해내고 남이 열 번에 해내는 일을 천 번에라도 해내고야 마는 노력가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一日三省吾身의 생활화로 인하여 顔淵이 죽은 뒤에는 공자님의 가장 뛰어난 제자가 되어 亞聖의 반열까지 올랐던 것이다.
주석
01-05-1 子-曰道千乘之國하되 敬事而信하며 節
用而愛人하며 使民以時니라
해석
요해
諦(살필 체) 淺(얕을 천) 慢(게으를 만)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를〈三事〉라하고, 敬, 信, 節,
愛, 時를〈五要〉라한다. 이것이 바로 仁政의 要諦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모든 공직자가 명심해야 할 점일 것이다.
주석
程子曰 此言至淺(=淺近之行=平凡)이나 然이나 當時諸侯果能此면 亦足以(五者)治其國矣라, 聖人은 言雖至近(淺近=평범)이나 上下皆通하니 此三言者(세 마디 말)를 若推其極(만약 그 지극한 곳까지 미루어 가면)이면 堯舜之治도 亦不過此라, 若常人之言은 近(=平凡)則淺近(천근한 言行)而已矣니라.
楊氏曰 上不敬(之政)則下慢(정사를 忽慢히 함)이요 (上)不信則下疑니 下慢而疑(上)면 事(작은 일도)不立(成立)矣니, 敬事而信은 以身先之也(자신의 몸으로 솔선함)니라. 易曰 節以制度(제도로써 절약)하여 不傷財하고 不害民이라하니, 蓋侈用則傷財로 傷財면 必至於害民이라. 故로 愛民이 必先於(=以)節用이라, 然이나 使之(民)不以其時(알맞은 시기)면 則力本者(=농자)不獲自盡(스스로 힘을 다 쓸 수 없게 됨)하여 雖有愛人之心(윗사람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지라도)이나 而人不被其澤矣(백성이 그 은택을 입을 수 없음)리라, 然이나 此는 特論其所存而已(마음에 담고 있어야 할 것을 논하였을 뿐)요 未及爲政也(정
사에는 언급하지 않았음)니 苟無是心이면 則雖有政(정치제도)이나 不行焉이니라. 胡氏曰 凡此數者는 又皆以敬爲主니라. 愚謂 五者는 反復(복)相因(原因)하여 各有次第하니 讀者宜細推之니라.
01-06-1 子-曰弟子入則孝하고 出則弟하며 謹而
信하며 汎愛衆하되 而親仁이니 行有餘力이어든 則以學文이니라
해석
요해
文(글월 문): 무늬, 채색, 흐름. 學文의 文은 詩,書, 六藝(禮, 樂, 射, 御, 數, 書)를 지칭한다.
弟子:젊은이, (Legge) A youth ‘젊은이’
謹而信: 삼가고 신의가 있다. Legge(140p.)는 earnest and truthful ‘성실하고 진실한’으로, 王志遠(17p.)은 言行謹愼而誠實可信 ‘언행이 근신하고 성실하여 믿음성이 있다.’로, 謝氷瑩(68p.)도 言行當謹愼信實 ‘언행이 근신 성실해야한다’라 하였다.
이 장은 공자님의 敎育觀에 관한 말씀이다. 이에 의하면 사람의 교육은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人性敎育)이 위주이고, 지식과 능력의 함양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은 공자님의 교육관과 정반대로 역행하고 있다.
주석
程子曰 爲弟子之職(초학자의 직분)은 力有餘則學文이니 不修其職而先文은 非爲己之學也니라. 尹氏曰 德行은 本也요, 文藝는 末也니, 窮其本末하여 知所先後면 可以入德矣리라. 洪氏曰 未有餘力而學文이면 則文滅其質이요 有餘力而不學文이면 則質勝而野(비루)니라. 愚謂 力行而不學文이면 則無以考聖賢之成法하고 識事理之當然하여 而所行이 或出於私意요 非但失之於野而已니라.
01-07-1 子夏-曰賢賢하되 易(音역)色하며 事父母하되 能竭其力하며 事君하되 能致其身하며 與朋友交하되 言而有信이면 雖曰未學이라도 吾必謂之學矣라하리라
해석
요해
易(바꿀 역):바꾸다, 교환하다, 새로워지다. 또한 易(쉬울 이): 쉽다, 賢賢에서 앞의 賢은 (존중하다, 어질게 받들다) 서술어이고 뒤의 賢은 명사(賢人)이다.
事(일 사):일, 일하다, 일삼다, 섬기다 竭(다할 갈) 致(보낼 치):보내다, 바치다, 정성을 다 한다,
雖(비록 수): 비록, 비록---할지라도 未(아닐 미): 아니다, 아직---못하다, 아직 ---하지 않다, 地支, 미래
吾(나 오) 必(반드시 필): 반드시, 꼭, 기필한다.
矣(어조사 의): 단정이나 의문 또는 반문을 나타내는 어조사
賢賢易色의 易은 해석이 如/輕/換으로 나뉜다.
張基槿(90p.)은 ‘如’로, 류종목(25p.)은 ‘輕’으로, 成百曉 (37p.)와 김영일((1)39p.)과 김학주(9P.)는 ‘換’으로 해석하였다.
Legge(140P)도 If a man withdraws his mind from the love of beauty, and applies it as sincerely to the love of the virtuous. ‘미인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그의 마음을 거두어 어진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 마음을 성심껏 적용한다면.’에서와 같이 換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王志遠,(18p.)은 與够妻子相處 能看重賢德而 不重容貌 ‘반려자와 평생을 함께 살면서 부인의 현덕을 중히 여기고 용모를 중히 여기지 않는다면’이라 하여, 易를 輕으로 해석했다. 필자는 易를 換의 의미로 해석한다.
주석
游氏曰 三代之學이 皆所以明人倫也니, 能是四者면 則於人倫厚矣니, 學之爲道 何以加此리오, 子夏以文學名이로되 而其言이 如此하니 則古人之所謂學者를 可知矣라, 故로 學而一篇은 大抵皆在於務本이니라, 吳氏曰 子夏之言이 其意善矣라, 然이나 詞氣之間에 抑揚大(太)過하여 其流之弊가 將或至於廢學이니 必若上章夫子之言然後에 爲無弊也니라.
01-08-1 子-曰君子-不重則不威니 學則不固니라
해석
요해
威(위엄 위):위엄, 두렵다, 협박하다, 남이 본볼만한 훌륭한 威儀를 지닌 모습. 固(굳을 고): 견고/ 고루
여기서의 君子는 入德之君子를 가르친다.
學則不固의 固는 고루와 견고로 해석이 나뉜다.
張基槿(92p.)은 ‘奢則不孫, 儉則固’에서의 固와 같은 의미의 ‘고루’라고 해석하였고, 王志遠(19p.) 역시 學習可以使人不固執蔽陋 즉, 學了可以就不固陋 ‘학습하면 사람을 고집스럽거나 고루하지 않게 한다.’ 즉 배우면 고루하지 않게 될 수 있다‘ 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주희와 김학주(9P.), 김영일((1)44p.), 류종목(27p). 이강재(105p.), 成百曉(39p.), 謝氷瑩(69p.) 등은 ‘견고(堅固)’로 해석하였고, Legge(141p.)도 his learning will not be solid. ‘배움이 견고하지 못하다.’ 로 해석하였다. 필자도 ‘견고’로 해석한다.
주석
也라, 輕乎外者(외면에 경망한 자)는 必不能堅乎內라, 故로 不厚重이면 則無威嚴하여 而所學이 亦不堅固也라.
01-08-2 主忠信하며
해석
요해
主忠信의 主: 張基槿(92p.) 김학주(8P.) 김영일((1)45p.) 류종목(28p.) 成百曉(39p.) 이강재(105p.) 등 諸氏는 충과 신을 ‘위주로 하다.' '굳게 지킨다.' '주로 한다.' '주축으로 한다.' 라고 표현하였고, 王志遠(19p.)은 行事要以忠信爲主 ‘일을 행할 때는 충신을 주로 해야 한다.’고 해석하였으며, Legge(141p.)는 Hold faithful- ness and sincerity as first principles. ‘충직하고 진솔한 것을 제일의 원칙으로 견지한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謝氷瑩(69p.)은 ‘충신한 사람과 친근하라’ 하여 主를 親으로 해석하였다.
주석
程子曰 人道惟在忠信이니 不誠則無物(올바른 事物=도리)이요,
且出入無時하여 莫知其鄕(향할 향=方向)者는 人心也니 若無忠
信이면 豈復(부)有物(=人心)乎아.
01-08-3 無友不如己(音기)者오 過則勿憚改니라
해석
요해
過猶不及: 過(지나침)와 不及(못 미침)은 中庸에서 벗어난 점에서 차이가 없다.
勿(말 물): 말아라, 말라 憚 (꺼릴 탄) 改(고칠 개)
無友不如己者를 Legge는 Have no friends not equal to Yourself. ‘네 자신과 같지 못한 친구들을 두지 마라.’고 하였고, 王志遠은 不要同與自己不同道的人交朋友 ‘도덕적으로 자기만 못한 사람과 벗으로 사귀지 마라’고 하여 如己와 不如己의 기준을 도덕성에 두었다. 주희도 友란 輔仁관계이므로 ‘어질기가 자기만 못한 자를 벗하지 마라’ 고 하였다.
주석
程子曰 學文之道는 無他也라 知其不善이면 則速改以從善而已니라. 程子曰 君子自修之道 當如是也니라. 游氏曰 君子之道는 以威重(威와 重)爲質하여 而學以(배워서)成之요 學之(=조동사)道는 必以忠信爲主하고 而以勝己者(나보다 나은 사람을 가지고) 輔之(=조동사) (나를 돕게 함)라, 然이나 或吝於改過면 則終無以入德하여 而賢者未必樂(락)告以善道(선한 도로써 말해주기를 未必樂)라, 故로 以過勿憚改로 終焉하시니라.
01-09-1 曾子曰-愼終追遠이면 民德이 歸厚矣리라
해석
요해
愼終: 마지막 길을 愼重하게 예를 다한다(喪盡其禮)
追遠: 먼 조상을 추모하다
‘愼終追遠’은 「禮記」祭統篇의〈孝子之事親也 有三道焉 生則養 沒則喪 喪畢則祭를 요약한 말이다. 증자의 이 말씀은 임금이 愼終追遠을 솔선하면 백성들이 溫柔敦厚해 진다는 뜻이다.
주석
01-10-1 子禽이 問於子貢曰夫子-至於是邦也하사 必聞其政하시나니 求之與아 抑與之與아
해석
요해
是邦(나라 방)=每邦, 抑(누를 억): 反語辭이다. 누르다, 굽히
다, 물러나다, 물리치다, 그렇지 않으면, 亢(짐승 길 항/강)
求之與:정사를(之) 요구(求)하여 聞(與)하는 것인가?
抑與之與: 그렇지 않으면(抑) 그것을 스스로 말해줘서(與之) 聞(與)하는 것인가?
주석
01-10-2 子貢이 曰夫子는 溫良恭儉讓以得之시니 夫子之求之也는 其諸(音저)異乎人之求之與인저
해석
요해
求 (구할 구) 諸(모든 제):모든, (=之於) 에게
與(줄 여): 주다, 동아리가 되다, 허여하다, 편들다,
핵심어휘에 대한 Legge의 영어표현을 보면 다음과 같다.
溫(따뜻할 온): benign(인자하고 온화함)
良(좋을 량(양)): upright(올바르고 정직한)
恭(공손할 공): courteous(정중하고 예의바른)
儉(검소할 검): temperate(절제하고 삼가는)
讓(사양할 양): complaisant(공손하고 친절한)
彛(잡을 병, 떳떳할 이)
其諸: 어조사 강조하는 어세를 나타낸다.
異乎:乎는 於와 같아서 ‘~과는 다르다. ~과는 틀리다’의 뜻임.
주석
也라, 人은 他人也라, 言夫子未嘗求之(참여하여 듣기를)나 但其
德容如是(溫良恭儉讓)라, 故로 時君(당시의 임금)敬信(공경하고 믿어서)하여 自以其政就而問之耳요 非若他人必求之而後得也라, 聖人過化存神之妙(성인이 지나가는 곳마다 감화하는 신묘함이
存)를 未易(쉬울 이)窺測(엿보고 헤아림이 쉽지 않음)이나, 然이나 卽此(여기에 나가서)而觀이면 則其德盛禮恭而不願乎外를 亦可見矣니 學者所當潛心(마음을 가라안치고)而勉學也니라. 謝
氏曰 學者觀於聖人威儀之間이면 亦可以進(增進)德矣니 若子貢이면 亦可謂善觀聖人矣요 亦可謂善言(표현)德行矣라, 今去聖人이 千五百年이로되, 以此五者로 想見(想像)其形容이면 尙(아직까지도)能使人興起는 而況於親炙(직접 가르침을 받은)之者乎아
張敬夫曰 夫子至是邦하사 必聞其政이로되 而未有能委國而授之(=공자)以政者는 蓋見聖人之儀刑(=型 본뜰 형)而樂告之者는 秉彛好德之良心也(태어날 때부터 덕을 좋아하는 양심을 지니고 있으되)而私欲害之(사욕이 이를 해침)라 終不能用(登用)耳니라.
01-11-1 子-曰父在에 觀其志오 父沒에 觀其行이니 三年을 無改於父之道라야 可謂孝矣니라
해석
요해
觀其行의 ‘其’:
주희와 成百曉(43p.), 謝氷瑩(77p.)는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자식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는 없으나, 그의 뜻(志向)은 알 수 있으므로 ‘其’를 代指兒子 ‘자식의 지시대명사’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 장은 효도에 관한 교훈을 말하고 있으므로 차주환(214p.), 김학주(11p.), 張基槿(96p.), 李家源(27p.), 김영일(57p.), 류종목(33p.), 王志遠(20p.), Legge(142p.) 등 제씨는 其를 父의 지시대명사로 보았다. 필자도 父로 해석한다.
주석
尹氏曰 如其道(만약 부모님의 뜻과 행동이 正道에 합당함)면 雖終身無改라도 可也어니와 如其非道면 何待三年이리오, 然則三年無改者는 孝子之心에 有所不忍故也(차마 고치지 못할 것 이 有)니라. 游氏曰 三年無改는 亦謂在所當改而可以未改者耳(마땅히 고쳐야 될 것은 있으나 아직 고치지 않아도 되는 것을謂)니라.
01-12-1 有子-曰禮之用이 和-爲貴하니 先王之道-斯爲美라 小大由之니라
해석
요해
用(쓸 용):작용, 효용, 적용
和(화할 화): 조화, natural ease(자연적인 편안함)
爲(할 위): 하다, 되다, 인정하다, 정치하다, 병을 고치다, 만들다, 여기다
貴(귀할 귀): 귀하다, 중요하다, 값이 비싸다, 신분이 높다
斯 (이 사):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
由(말미암을 유): 말미암다, 따르다, 곡절, --에서, --부터 ---통하여 연유하다.
禮之用(以)和爲貴:Legge(143p.)는 In practising the rules of propriety, a natural ease is to be prized. ‘예절의 적용에서는 자연적인 편안함이 귀중하다.’고 하였으며, 王志遠(21p.)은 禮節的作用 是實現人與人之間 和氣 ‘예절의 작용은 사람과 사람 간의 화한 기운을 실현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그는 和의 뜻을 調和, 和諧, 協調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小大由之: Legge는 in things small and great we follow them. ‘크고 작은 일에 우리는 그들을 따랐다.’고 하였다. 주어를 We라고 한 것은 해석과 다른 점이다.
주석
01-12-2 有所不行하니 知和而和-오 不以禮節之면 亦不可行也-니라
해석
요해
知和而和: Legge(143p.)는 If one, knowing how such ease should be prized, manifests it. ‘만약 그러한 편안함이 어떻게 높임을 받는 것인지를 알고 그것을 실천하려 한다면.’ 으로.
不以禮節之는 without regulating it by the rules of propriety ‘그것을(=자연적인 편안함) 禮로써 조절함이 없다면’ 으로 해석하였다.
주석
程子曰 禮勝則離(간격이 생겨서 거리가 생김)라, 故禮之用이 和爲貴하니, 先王之道 以斯(예의 조화를 귀하게 여김으로써)爲美하여 而小大由之(조화)니라, 樂勝(즐거움이 지나치면) 則流(감정으로 휩쓸리게 됨)라, 故로 有所不行者하니 知和而和요 不以禮節之면 亦不可行이니라. 范氏曰 凡禮之體는 主於敬이요 而其用則以和爲貴하니, 敬者는 禮之所以(이유)立也(예가 확립되는)요, 和者는 樂(악)之所由生也라 若有子면 可謂達禮樂之本矣로다, 愚謂 嚴而泰 和而節은 此理之自然이요 禮之全體也니 毫釐有差면 則失其中正하여 而各倚於一偏이니 其不可行이 均矣(똑 같음)니라.
01-13-1 有子-曰信近於義-면 言可復(音복)也-며 恭近於禮-면 遠恥辱也며 因不失其親이면 亦可宗也-니라
해석
요해
義(옳을 의):옳다, 바르다, 마땅함.
復(돌아올 복): 돌아오다, 돌려보내다, 뒤집다. (주희): 踐言也
恭(공손할 공): 공손하다, 삼가다, 섬기다, 직분을 다하다
恥(부끄러워할 치) 辱(욕보게 할 욕)
因(인할 인, 주인 삼을 인):(주희)猶依也, 의지하다, 기대다,
뒤를 봐주다. 宗(마루 종): 주인, 지도자, 존중받음
信近於義,言可復也을 Legge(142p.)는 When agreements are made according to what is right, what is spoken can be made good. ‘언약이 의에 따라 이뤄진 것이면 말한 것이 잘 이행될 수 있다.’로 해석하였다.
因不失其親 亦可宗也을 Legge는 When the parties upon whom a man leans are proper persons to be intimate with, he can make them his guides and masters. ‘사람이 기대어 있는 당사자들이 친하기에 적당한 사람이면, 그는 그들을 그의 인도자와 주인으로 삼을 수 있다.’ 라고 하였다.
주희는 所依者不失其可親之人이면 則亦可以宗而主之矣라 ‘의지하는 사람이 그와 친할 수 있는 사람을 잃지 않는다면 또한 그들을 높여 주인으로 삼을 수 있다’고 하였다. Legge와
주희는 ‘因’을 ‘의지하는 사람’, ‘기대는 사람’으로 해석하고, 이것을 不失이란 동사의 주어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김학주(13p.)는 ‘의지하는(=주인 삼은) 사람에게 그의 친근함을 잃지 않는다면 역시 그로부터 존중받게 될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이를 해석에 인용한다.
주석
01-14-1 子-曰君子-食無求飽하며 居無求安하며 敏於事而愼於言이오 就有道而正焉이면 可謂好學也已니라
해석
요해
愼(삼갈 신) 就(이룰 취):나아가다, 쫒다
正(바를 정): 바로 잡다, 바르다 有道:올바른 도를 가진 사람 正焉: 잘못된 것(焉)을 바로 잡다(正) 也己:--이다. --하는구나
아래는 君子에 대한 張基槿(102p.~103p.)의 해설을 전재한 것이다.
“君子는 仁의 세계를 창건할 휴머니스트다. 자기 한 몸의 안락을 구하기에 앞서, 天下萬民의 평화와 행복을 앞세워야 한다. 군자는 학문과 덕행을 높여야 한다. 공자의 학문정신은 知識과
德行의 一致이다. 덕행의 기준은 천도이며, 절대선인 천도를 따르고 실천하여 지상에서 현실적인 成果 즉 地德을 세우는 것이다. 天道는 공평무사하고 光明正大하고 또 영구히 불변하는 절대선의 진리다. 그러므로 군자는 먼저 天道를 알고 天道에 맞게 행하며 남에게 덕을 베풀어야 한다. 그것이 修養이며 인격완성이다. 이를 就有道而正焉이고 했다. 正은 문자학 적으로 ’한일(一)과 머무를 지(止)의 합자다. ‘바르게 함’은 곧 ‘하나인 絶對善의 도리에 가서 머문다.’는 뜻이다. 수양이나 인격완성은 실천을 통해서 성취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食無求飽하고 居無求安하며 敏於事而愼於言하라’고 한 것이다. 그래야 지도자로서 남을 다스릴 수 있다.”
就有道而正焉:Legge(144p.)는 he frequents the company of men of principle that he may be rectified. ‘그는 자기를 바로잡아 주게 될 만한 군자를 종종 방문한다.’고 해석하였다.
주석
尹氏曰, 君子之學이 能是四者면 可謂篤志力行者矣라, 然이나 不取正於有道면 未免有差하니 如楊朱(爲我)墨翟(兼愛)學仁義而差者也라, 其流至於無父無君하니 謂之(이들이)好學이 可乎아.
01-15-1 子貢이 曰貧而無諂하며 富而無驕하면 何如하니잇가 子-曰可也나 未若貧而樂(音락)하며 富而好禮者也니라.
해석
요해
樂(즐길 락/ 풍류 악/ 좋아할 요) 未若=不如 --만못하다 可也:그런대로 괜찮다 (주희):僅可而有所未盡之辭也
자공은 원래 가난하였으나 스스로 貨殖에 힘써 큰 부자가 되었으나.(11-18-2 참조), 그는 빈부를 초월하여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자신의 태도에 대하여 선생님의 평가를 들어 보려고 한 것이다.
주석
01-15-2 子貢이 曰詩云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라하니 其斯之謂與-인저
해석
요해
琢(쫄 탁): 쪼다, 다듬다,
磨(갈 마):갈 다, 숫돌에 갈고 다듬어 광을 내다(磨光).
如: 여기서는 음률을 고르는 역할을 한다.
其~與: 아마도~ 이겠지요? 의문이나 추측을 나타낸다.
詩云切磋琢磨: Legge(144p.)는 It is said(云) in the Book of Poetry(詩經), "As you cut(切) and then file(磋), as you carve(琢) and polish(磨)"
其斯之謂與: The meaning is the same(其與), I apprehend, as that which(斯之) you have just expressed(謂).라고 표현하였다.
주석
으나) 聞夫子之言하고 又知義理之無窮하여 雖有得焉이나 而未可遽(갑자기 거)自足也라, 故로 引是詩而明之(이 詩를 인용하여공자님 말씀을 밝힌 것)니라.
01-15-3 子-曰賜也는 始可與言詩已(音이)矣로다 告諸(音저)往而知來者-온여
해석
공자님이 말씀하셨다. “사(자공)는 비로소 시에 대해 함께 말할 수 있구나! 지난 일을 말해주니 올 일을 아는 구나!”
요해
與(더불어 여/ 줄 여)
告諸(音저)往:그에게(諸) 지나간 것을 알려주다. 諸:之와 같은 지시대명사로 쓰였다.
賜也始可與言詩已矣:Legge(145p.) With one like Ts'ze(與賜), I can begin to talk (始可言) about odes(詩).
告諸往而知來者: I told him one point, and he knew it's proper sequence(來=연달아서 일어날 일).
주석
01-16-1 子-曰不患人之不己(音기)知오 患不知人也-니라
해석
요해
己(몸 기):자기 知己의 어순을 己知라 하여 己를 강조하였다.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論01-01-3)와 맥을 같이 한다.
주석
之不己知요, 不知人이면 則是非邪正을 或不能辨(분별할 변)이라 故로 以爲患也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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