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1조를 보면 교육의 목적을 정확하게 명시 해놓았다.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하여 민주 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인류 공영의 이상 실현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교육목표는 학생들이 지, 덕, 체를 통한 인간다움을 함양하여 사회에 봉사하고 민주 국가 발전에 기여하게 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학교 교실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우리 아이들이 무엇이 라고 답을 할지 몹시 궁금하다.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간다움을 위해서 교육을 받고 있다고 자신 있게 “예” 라고 답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고심이 된다.
지난 몇 년 전 전주에 있는 모 중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친 적이 있다. 대체 교사로 2주간 짧은 시간을 보내면서 배움의 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을 보고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였다. 학생들은 학교가 좋아서 오고 싶은 학교가 되어야 하는데, 내가 보았던 현상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꿈도 비전도 없이 책가방만 들고 왔다가 들고 가는 모습이 기억난다. 수업 시간에는 잠을 청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쉬는 시간 10분, 정말 달콤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의욕이 없이 누워 있다가 끝나는 종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 같았다.
상징적 상호작용론을 말하는 미드(G.Mead)는 사람들 간의 모든 상호작용은 상징들의 교환을 수반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언어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 몸짓 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한다. 희망의 빛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교실 안에 갇힌 청소년들도 무언가와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나의 눈에 발견되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학교 안 청소년들이 꿈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면서 학교에서 생활할 수 없는지 또 다른 눈으로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청소년 시절은 우울하였고, 학교 수업이 끝나면 저 너머지는 노을 그림자 속에 나를 감추고 싶었다.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뚜벅뚜벅 걷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려주는 멘토도 선배도 없었다. 나에게 멘토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고의 멘토로 유명한 앤 설리번이 떠오른다. 앤 설리번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었다. 앤 설리번은 아일랜드의 전통과 풍속을 아버지에게 이어받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결핵을 앓고 있었으며, 그녀가 여덟 살이 되던 때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나중에 그녀의 친척들은 건강한 그녀의 여동생만 돌보기로 하고 그녀와 남동생은 매사추세츠 주립 병원에 버려졌다. 앤 설리번은 어린 시절 대부분을 결핵에 걸린 남동생을 간호하며 지냈지만 결국 남동생 지미는 죽고 말았다. 최고의 멘토였던 그도 인생의 굴곡이 있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멘토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직업 진로와 관련된 특강을 많이 하고 있다.
작년 무주고등학교에서의 특강은 참 의미가 있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학생들을 보면서 꿈을 심어 주고 싶었고, 할 수 있다는 믿음 또한 심어 주고 싶었다. 젊음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청소년들을 만나면 애인을 만나듯 설레임과 동시에 가슴이 뛴다. 그래서 그들과의 라포(rapport)를 형성하여 교차점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청소년들은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른다. 아니‘공부를 안 하면 안 되는 일인가’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스스로 필요에 의해 찾아서 할 수 있는 자립을 길러 준다면 공부가 쉬워질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집단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또 한 우리에게는 학습이고 공부이다. 그 속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소통하며 지식과 정보를 나누고 토론하면서 나의 지식으로 담아내는 훈련들이 우리 학교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나라 교육은 교육과정에 얽매여 있어서 진도에 맞춰 나가기 버겁다.
우리 학교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입시에 모든 교육의 초점이 맞춰진다. 내 기억에 체육 시간은 자율학습 시간으로 대체되곤 하였다. 하나고등학교는 지, 덕, 체의 순위가 아니라 체, 덕, 지의 교육철학을 내세우고 있다. 지식 습득은 3번째다. 모든 학 생이 체육에서 한 종목을, 음악 또는 미술에서 하나를 배우도록 만든 제도이다. 학교는 감옥과 같은 답답한 공간이 아니라 나를 향상시키고 발전시켜주는 디딤돌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행복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학교들이 공부만을 강조하는 공간에서 창의적 사고를 하고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교육 목적이 현장에서 올바르게 재정립될 수 있도록 새 정부의 교육부 장관의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꿈이 없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음을 깊이 깨달아야 할 때이다.
글쓴이인 서용완 교수는 건양사이버대학교 노인복지학과(평생교육)에 재직하며 청소년자치연구소 성인조직인 청소년실천연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진로고민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멘토가 되고 싶다고 말하며 교육현장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있다. |
위에 글은 '달그락꿈뜨락'의 글입니다. 지역사회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민들의 관점들이 녹아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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