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권력은 한 곳으로 엄청나게 집중되었다. 이제 전쟁을 만들어 낼 때가 되었다. 정말 큰 전쟁이었다. 바로 세계 제1차 대전이다. 물론 연준의 은행가들에게 전쟁의 정당성 여부를 따지는 정치적 논란 따위는 전쟁에 따르는 잠재적 이익에 비하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전쟁만큼 빚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영국이 걸어왔던 길이 가장 좋은 예이다. 영란은행 설립과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쟁 패배 사이에 119년 동안 영국은 그 중 56년 동안 전쟁 중에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의 대부분은 전쟁 준비 하느라고 바빴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로스차일드는 독일에 돈을 빌려주었다. 영국 로스차일드는 영국에 돈을 빌려줬고 프랑스 로스차일드는 프랑스에 돈을 빌려줬다.
미국에서는 제이피모건(John Pierpont Morgan)이 영국과 프랑스에 전쟁 물자를 판매하는 대리인이었다. 사실 6개월 만에 모건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소비자가 되었다. 하루에 1천만 달러를 썼다. 월스트리트 23번지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계약을 맺으려고 온 중개인들과 영업 담당직원들로 북새통이었다. 은행의 모든 문 그리고 직원들의 집까지 경비원을 배치해야 할 정도였다. 뉴욕 은행가들도 상당수가 전쟁을 통해 짭짤하게 이득을 보았다.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버나드 바룩(Bernard Baruch)을 전시 산업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역사가 제임스 펄로프(James Perloff)에 따르면 바룩과 록펠러는 둘 다 전쟁 중 약 2억 달러의 이익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익을 보는 것이 유일한 동기는 아니었다. 돈치기들은 남북전쟁 동안 짜르(tsar)가 링컨을 지원한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또한 러시아는 주요 유럽 국가들 중에 사립 중앙은행이라는 속임수에 마지막까지 넘어가고 있지 않은 나라였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지 3년 후 러시아혁명에 의해 황제는 쓰러지고 공산주의라는 끔찍한 체제가 세워졌다. 쿤롭(Kuhn, Loeb & Company)의 야곱 시프(Jacob Henry Schiff)는 그의 임종 당시에 짜르를 물리치기 위해 2천만 달러를 썼다고 자랑했다.
공산혁명을 지원하기 위하여 영국에서도 돈이 쏟아졌다. 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공산혁명에 돈을 대주었을까? 그들을 부자로 만들어준 자본주의를 파괴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체제를 말이다. 게리 알렌(Gary Allen)이란 학자가 이렇게 말했다.
사회주의란 것이 부를 분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부를 집중시켜서 독점하는 게 목적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겉으로 보기에 말도 안돼 보이는 초대형 부호들이 사회주의를 도모하는 현상이 전혀 모순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대신 권력에 집착하는 과대망상증 환자들에게는 완벽한 도구가 된다는 것과 논리에 잘 들어맞는 얘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산주의, 더 적확하게 사회주의라는 것은 압제 당하고 있는 민중들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경제 독점 세력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클레온 스카우센(Willard Cleon Skousen)은 1970년 벌거벗은 자본주의자(The Naked Capitalist)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느 분야에서든 일단 권력을 갖게 되면 다른 쪽 권력도 탐하게 된다. 초대형 부호들이 언젠가는 자기들의 부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부를 다 갖고 싶어 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 목적을 위하여 그들은 반드시 권력을 갈망하는 정치 모사꾼(공산주의자)의 야망을 충동질 할 것이다. 그 정치인들은 기존의 각국 정부를 전복(공산화)시킨 다음에 전세계를 지배하는 단 하나의 권력을 만드는 일에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혁명가들이 통제불능 상태에 빠져서 부자들로부터 권력을 빼앗으로 한다면 어쩌려고 그랬던 것일까? 1938년에 마오쩌둥이 권력에 관한 자기생각을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정치의 힘은 총구에서 나온다.
월스트리트와 런던의 패거리들은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뒤에 숨은 채 혁명을 일으킨 공산주의자에게 순종할 때는 엄청난 양의 돈을 먹여 통제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그들에게 주는 돈을 줄이거나 그들의 반대파에게 자금을 대주는 식으로 조종했다.
레닌(Vladimir Lenin)은 그가 새로운 소비에트 연방의 절대 독재자였지만 돈에 관해서는 을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누군가 은밀하게 통제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 나라는 우리 뜻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 말을 듣지 않는 자동차와 같다. 운전석에 사람이 있고 운전도 직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동차는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 차는 다른 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그 뒤에 누가 있었겠는가?
1920년대와 1930년대 대 공황기를 거쳐 하원 및 통화위원회(House Banking and Currency Committee) 위원장이었던 루이스 맥패든(Louis Thomas McFadden) 의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러시아 역사의 향방은 국제 은행가들의 조작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소련 정부는 연준위(Federal Reserve Board)의 주도하에 미국 재무부 자금을 받았다. 체이스은행(Chase Bank)이 직접 창구 역할을 했다.
영국은 연준은행(Federal Reserve Bank)으로부터 돈을 받아서 다시 소련에게 고율의 이자를 매겨 다시 빌려주었다. 드니에페스또리 댐(Dnieperstory Dam) 같은 것도 부패한 연준위와 연준은행에 의해 불법적으로 전달된 미국 재무부 자금으로 지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연준과 영란은행은 국제은행가들의 명령에 따라 그 뒤로 70년에 걸쳐 공산혁명과 전쟁을 일으킬 괴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은행가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빚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돈치기들이 공산주의를 일으킨 뒤에 통제력을 잃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도 있다. 1992년 워싱턴 타임즈는 이런 보도를 했다.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Boris Jeltsin)이 들어오는 외국원조의 대부분이 금새 빨려나간다며 화를 내고 있다.
옐친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빚을 갚느냐고 서방 은행의 금고로 바로 들어가 버린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 중 제1차 세계대전만큼 큰 전쟁에 단 하나의 원인만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전쟁은 많은 요인을 가진 복잡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쟁으로 많은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1차 세계대전의 최고 요인임을 무시한다면 그것도 똑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돈치기들의 역할은 터무니없는 음모론이 아니다. 그들은 개별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단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장기적으로 전체주의 정권을 만들어내려는 동기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돈치기들은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는 정치인이 있으면 그게 누구든지 그들 손 안에 두기 위해 금전적으로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