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하나가 올라왔다.
흔하디 흔한 포스터가 아닌 무언가 역사속에 기념비적인 밀롱가를 대변하는 듯한 숫자 '22'
동네 편의점처럼 편한 마음으로 들락거리기를 4개월째이던 아수까가 그런 곳이었다.
신청자는 몇일 사이에 부쩍 늘어나더니 예상인원 100명은 충분히 짐작이 되어진다.
작년이다. 2021년 코로나로 인해서 한국으로 복귀를 한 후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 지
땅고에 입문을 하고 딱 만 1년이 되어가는 나에게 아수까의 규모와 참석인원의 숫자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찬조금 좀 보태고 나같은 초보 땅게로는 먼발치에서 축하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이 기념비적인 밀롱가에 선배 땅게로스들의 자리를 빼앗으면 결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그 오지랖의 배려심은 결국 바뀌었다.
생전 처음 접할 기회인 그들. 연하늘 탱고밴드!
라이브 땅고음악에 내 몸을 싣고 걷는 기분이 어떨 지 상상해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 가끔은 이기적이어야지. 하는 마음을 품고 참석 신청을 하였다.
연하늘 탱고밴드의 이력을 보고 난 후에 흔한 공연밴드가 아닌 라틴의 DNA가 후천적으로 가미된 이들의 특별한 공연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실례일 지, 결례일 지 모르지만 이기적인 심정으로 참석을 확정하였다.
그 결정은 '아수까 22주년 기념 밀롱가'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내내 "참 잘했어" 하며 스스로를 칭찬하게 된다.
매주 열리던 평상시의 밀롱가와는 다른 규모의 특별한 밀롱가이기에 아수까의 화석 아수까의 여신 라퓨타님의 인상도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다. 많은 고심들로 한 주 사이에 많이도 늙어가는 듯 한 모습에 측은지심이 생긴다.그렇다고 딱히 재주없는 내가 보태줄 힘도 없으니 방관자의 모드로 있을 수 밖에는 도리가 없다.
아수까의 기둥이 되어버리신 디타님과 H.K님, 천사같은 아수까의 땅게라 비비님, 글로리아님, 에비타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지런히 손을 보태고 보태서 드디어 윤곽이 드러난다. 손님맞이 끝!!!이제 대전에서 청주에서 광주에서 서울에서 부산에서 대구에서 전국에서 오실 손님만 맞이하면 되는 긴장의 순간.악기 튜닝과 스피커와 앰프점검을 위해서 오신 연하늘 탱고밴드와 전국구 제일의 DJ 에르난님을 먼저 뵙게 된다.물론 어색함에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옆에서 조심스레 그들의 연주를 맛보게 되었다.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많이 먹고, 일찍 아수까 생일 파티에 오는 땅게로스가 연하늘 땅고밴드의 연주를 먼저 듣는다는 말이 있다.(없다? 그건 중요치 않으니 파~~~스!)
대한민국 최고의 땅고 DJ이라 일컬어지는 사람. 조명발 없이도 자체발광하는 땅고 DJ계의 태양계
바로 에르난님이 [아수까 22주년 기념 밀롱가]의 시작을 알린다.
"시작하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드디어 막이 오르고야 말았다. 긴장의 순간이다.
아수까의 큰 어르신 라퓨타님과 그를 도와 이 큰 그림을 완성시킨 이들의 긴장감도 고조되는 순간이다.
텅 비었던 아수까의 론다는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채우는가 싶더니만 한 딴따가 지나자 빈자리를 찾기 힘들어진다.내심... 외지분들 편하게 내가 일어서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면서 쭈뼛 쭈뼛 눈치를 보기도 했으나......몇 해 전부터 안 좋아진 오른쪽 무릎 관절과 선천적으로 발병하여 함께 하고 있는 척추분리증을 염려하여 배려심은 때려치기로 했다.
론다를 채우는 이들의 대부분이 생전 처음 뵙는 분들로 가득하다. 이야기를 엿 듣자니 서울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대구에서 정말 전국 각지에서 아수까의 22주년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먼걸음을 하셨다고 한다. 이 비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말이다.땅고가 열정의 춤이 아니라 땅고를 추는 이 땅게로스들 자체가 열정이지 않을까 싶다.아브라소가 따뜻한 것은 체온이 주는 열기로 따뜻해지는 것이 아닌 그들의 따뜻한 마음에서 전해지는 열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몇 분의 외지에서 오신 분들이 계신다. 광주쪽에서 오셨다는 분들 중에 진한 핑크빛 드레스를 입고 오신 분과 그의 파트너인 듯 한 반듯한 외모를 가지신 분들의 춤사위가 매력적이었다.
그래!!! 결심했어 저분에게는 절대 까베세오의 '까'도 시도치 말아야 한다.
시간이 무르익어가자 론다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빼곡한 숲이 되어간다.그래도 긍정의 무기를 동원해 보았다. 그래! 발 디딜 틈도 없는 나이트 클럽에서 소싯적에 발바닥을 비비던 내가 아니던가? 길이 없다면 길을 만드는 방법이 있겠지.
건방떨지 말고 알음알음 인사를 나누던 라분들께 까베를 하면서 나도 그들의 틈 속에서 일년의 내공을 뿜어보자
그래 가는거야. 호기롭게 론다 한 켠에 섰지만 첫 살리다를 찾지 못해서 헤매인다.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아직은 무리야. 뭐 그럼 어때 내가 라이브 공연 들으러 왔지 춤추러 왔나? 췟~~!"
정신 승리를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 옛날 원효대사의 해골물의 전설을 떠올리면서 마이드 컨트롤을 한다. 효과 있다.
DJ 에르난님의 아름다운 탱고 선곡에 맞춰 나도 그도 그녀도 우리는 모두 하나의 심장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어떤 밀롱가에서도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른 적을 느낀 적이 없었다.
오늘이 땅고의 신세계를 맛보는군아. 이런 생각을 내내 하게 된다.
시간은 2시간을 채우고 드디어 그들이 소개된다.
오늘의 기쁨을 축하해주기 위한 소중한 땅친님들 [연하늘 탱고밴드]
리허설을 잠시 들었지만 본연주가 아니었기에 아직은 어떤 감동일 지 가늠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첫 곡이 흘러나오면서 마법이 일어났다. 내가 주체할 수 없는 속도로 눈을 뒤집고 까베세오 할 상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건 흡사 몹쓸 마약에 취해서 무아지경에 빠져 손을 허우적 거리는 행태와도 같았다고나 할까?
한 시간 동안 이어진 그들의 라이브 음악은 밖에서 내리는 비와는 다른 무언가를 우리의 영혼 위에 뿌리고 있는 마법의 비에 젖셔지는 듯 한 느낌이었다.
심지어 우리는 그들이 연주하는 꼬르띠나에서 마져 감동을 받고 있었다. 나는 주책맞게도 꼬르띠나 연주곡에도 나의 상대 땅게라를 잡고 론다에서 춤을 이어가고 있었다. 연주자 한 분이 당황하셨는 지 이렇게 말씀하신다.
"꼬르띠나입니다. 그래도 춤 추실 분들은 추셔도 괜찮아요"
그랬다. 이 모든 것은 나에게 마법같은 시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처음 느껴보는 북쩍임(서울은 매일이 이렇다 하지만 만 1년 차 땅게로인 나는 모른다. 가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비좁은 틈 사이에서의 어색한 움직임, 대전의 땅게로스마저 제대로 인사하는 분들이 전무하다시피 한 데 게다가 오늘 처음 뵙는 외지분들까지 그 생소한 첫 경험들을 오늘 모두 느끼고 있는 것인데..... 그런데? 흥겹다. 즐겁다.
그들의 연주가, 우리의 살리다가 끝나고 나서 우리는 그들에게 환호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그들의 가는 다른 밀롱가에도 그들의 라이브 탱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위해서 탱고 유랑을 시작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연하늘 탱고밴드]&[DJ 에르난] 소중한 탱고의 시간을 만들어 주신 것을 이 공간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다시 뵙는 날이 온다면 먼저 찾아가 오늘의 감사함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 듯, 음악과 춤과 그들이 준비한 많은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 같은 초보 땅게로스, 선배 땅게로스, 외지에서 먼걸음 하신 땅게로스 분들이 행복하게 [아수까 22주년 기념 밀롱가]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아수까와 한동안 썸을 더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약간의 음주로 결례를 하시는 분들, 공간의 비좁음 속에서 살짝씩 보여진 짜증 섞인 얼굴들, 그 외에도 불편함이 존재했던 것들이 있었지만 세상에 사람이 모이면 그 곳에는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가고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우리가 있기에 우리의 행복과 즐거움, 그리고 탱고라는 공통분모 안에서 묻어두고자 한다.
저의 [아수까 22주년 기념 밀롱가]에서 유일하게 한딴다를 허락해주시고 까베를 청해주신(제가 초보티가 안나서 실수하신 것 같기는 하지만) 부산에서 오신 피오나님이라는 천사같은 라~분께 특별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이 감사의 글이 라퓨타님께서 메신저가 되어 전해주시리가 믿어 봅니다.
저와 기꺼이 아브라소를 허락해주신 에비타님, 라라님, 향기님, 짱이님, 도브님, 스컬릿님, 까뮈님 그리고 천사같은 저의 첫 외지분과의 딴다를 만들어주신 부산의 피오나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조금씩 성장을 해서 다음 23주년 아수까의 생일 밀롱가에서는 함께 아브라소를 나누지 못했던 분들께도 감히 까베를 청해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려주실거요? 그래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내년 3월 31일부터 4월 3일까지 비엣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탱고 마라톤이 있습니다.
아마 내년 봄바람이 불면 저는 그 곳에서 있을 듯 합니다. 인연이 된다면 그 곳에서도 함께 볼 수 있기를....
땅고는 사랑입니다. 모두 사랑하며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수까 23주년 기념 밀롱가]에서 모두 모두 행복하고 건강한 얼굴로 다시 뵙기로 약속하며 이만 줄입니다.
-땅고 입문 만 1년을 기념을 자축하고 아수까의 22주년 기념 밀롱가를 축하하며 대전에서 단테가 씁니다.-
첫댓글 이 글은 절대 아수까의 라퓨타님의 협박에 의해 쓰여진 글이 절대 아님을 밝힙니다.
이 멋진 후기라니 ㅎㅎ 절때 저는 협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두겠습니다.
글을 읽으셔서 아시겠지만 미션 하나가 라퓨타님께 주어졌으니 꼭 미션수행 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Dante 미션이 어디있데요?? 난 모르것는디?
@라퓨타 대충 읽지말고 정독을 부탁드립니다 ^^
@Dante 서너번 정독했는디요
@라퓨타 난독증 치료에는 약이 없습니다. 그냥 제가 포기하겠습니다 ㅎㅎ
어느 잡지책의 중간 부분을 들여다 본 기분이네요. 역시 단테님은 글을 참 맛깔나게 잘 쓰시는 듯해요. 부럽습니다^^
우리 23주년에는 꼭 좀 아브라소 합시다.
그때까지 제가 살아남는다면 첫까베 예약입니다 ^^
@Dante ㅋㅋㅋ 넵^^
뭐 이리 리뷰를 잘 쓰십니까? 저는 댓글로 돗자리나 얘기했는데 ㅠㅠ
영상으로 남겨볼까 하다가 귀차니즘에 그냥 간단하게 소회를 적는 정도로 마쳤습니다. ^^
단테님 진심이 느껴지는 후기글이네요~~^
멋지세요~~^^ ㅎㅎ
네 진심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장포님은 다른 공간에서 황홀한 밤을 지새셨다는 후문을 들었습니다. ^^
이번 주부터 있는 땅고 입문반에서 훨훨 날개짓 하시기 바랍니다.
게다가….궁서체야!!!!
저의 신분이 이렇게 노출되는군요.
네 맞습니다. 저 궁에서 노닐던 놈입니다. ^^
어쩜 모두의 마음을 대변해주셨네요. 아수까는 전설입니다. 탱고는 사랑입니다. 그 안에서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을 만들어가며 성숙해가는 땅고인이 되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