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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2006년 1월1일 새해아침의 해맞이 산행 겸 백두대간 구간산행을 위해 우명길회원(필명:시인마뇽, 저는 하이맛)과 제가 S산악회 버스를 타고 설악에 갔었습니다. 새벽 2시에 한계령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대청봉을 거쳐 공룡능선까지 주파할 수 있었던, 지금와서 생각하니 전설같은, 겨울산행이었습니다.
산행 며칠 후, 그때 대청봉에서 겪고 상상했던 이야기를 소설형식(사실fact과 허구fiction가 섞인 faction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판타지fantasy 소설이라고도 하는 것 같습니다.)으로 써서 산악회 카페에 발표했던 것인데 조금(약 10% 가량) 수정해 보았습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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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 정상의 북서풍바람이 저의 결코 가볍지 않은 둔중한 몸조차 날려 보낼 듯이 거세게 붑니다. 눈앞은 캄캄하고 산사람들의 헤드랜턴만이 공중에서 춤을 춥니다. 2006년 1월 1일 새해 아침 6시 25분 저는 해발 1,708m인 설악의 정상 대청봉에 섰습니다.
새해 첫 시간을 아주 중요한 장소에서 그분과의 만남을 계획했기에 이번 산행에서 제가 대청봉을 들르는 일은 아주 중요했습니다. 1970년 대학 3학년 여름방학 때 친구인 시인마뇽과 함께 대청봉을 처음 오른 이래 이번으로 다섯 번째 설악정상에 서게 되었습니다.
몸을 가누기에도 힘들게 하는 세찬 바람과 뼛속으로 파고드는 추위를 헤치고 중청휴게소에서 약20분에 걸쳐 돌부리에 채이고 바람에 맞서느라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힘들게 여기까지 오려니 머리속이 몽롱한 채 무언가에 홀리거나 취한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머플러로 입을 감싸자 입김이 안경에 닿아 안경이 뿌옇게 되어 앞도 잘 안 보입니다. 제가 겨우 그분과의 약속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새해 아침 설악정상에서 그분과 만나리라는 약속 말입니다. 그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어제 저녁, 그러니까 2005년의 마지막 날(12월 31일) 오후 9시 10분전에 위기가 있었습니다. 10분 있으면 잠실 산행버스 출발지로 떠나야 할 시간, 륙색은 다 싸 놓았겠다 거실 바닥에 턱을 괴고 누워 반은 졸면서 나름대로 멋진 산행의 상상에 젖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가끔은 텔레비전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며 혹시 일기예보 같은 걸 뒤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미 2005년의 마지막 날, 날씨가 푹하다는 얘기와 눈이 올 것 같고 새해 첫날 해를 보기 힘들다는 사실 정도는 낮부터 일기예보로 확인하였는데, 혹시 저녁에 다른 갑작스런 변화는 없나 궁금해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안방 침대에 누워있던 하마부인의 느닷없는 어퍼컷 공격이 들어왔습니다. 혼자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아유 아퍼, 내가 죽으려나봐. 당신은 사람도 아냐, 내가 이렇게 아프다는데 관심은 커녕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구. 남들은 부인이 아프다고 하면 초밥도 사다 주구 간병도 한다는데, 당신과 나는 전생에서 웬수였나 봐. 허구한 날 산에 갈 생각만 하고. 그래 거기서 밥이 나와, 돈이 나와?’
갑자기 들어온 어퍼컷 공격에 명치끝이 얼얼합니다. 하마부인, 뭘 던진 것 같은데 뭔지는 못 보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사람이 아니라고? 난 사람인데, 그리고 산에서 돈은 안 나오지. 거기선 돈을 써야지. 이제라도 잘 못했다고 빌어볼까?)
이렇게 생각해서, 허술하게 대답하면 말려드는 겁니다. 그러다 잘 못하면 산에도 못 가고 시인마뇽과의 약속도 못 지키는 엉뚱한 결과가 나지요. 잠실에서 떠날 한 시간 전이라 지금 집을 나서야 하는데 시간은 별로 없고 급히 역공으로 세게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세게 말하는 동시에 삼십육계가 최고일 듯합니다. 사실 며칠 전부터 하마부인 몸살이 나서 아픈 것도 사실이고 제가 산행만을 생각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몸살이 났는지 아니면 지병인 목 디스크가 재발했는지 며칠 째 아프다고 호소하고 있는 하마부인에게 요 며칠 제가 너무 등한했었나 봅니다. 저는 그저 의례적으로 병원에 가라, 약을 먹어라 하는 말과 함께 등에 부황을 떠 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산행버스에 오르기 한 시간 조금 전에 사단이 터지고야 만 겁니다.
‘갑자기 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여? 그래서, 아프면 병원에 가보라고 내가 그랬잖아. 나 산에 가는 거 당신한테 벌써 다 말했잖아. 몸이 좀 아프다고 그렇게 막 나와도 되는 거야? 나 이제 당신과 얘기 안 해’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지만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집니다.)
한마디 볼멘소리를 던지고 나니 마음이 편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묵비권을 행사하기로 하고 륙색을 메고 등산화를 꺼내 끈도 매지 않고 구겨 신은 채 현관문을 냅다 열어젖힙니다. 저의 이런 결연한 행동에 하마부인이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같지 않은 저의 막가파식 행동에 그미의 공격이 조금 움츠러듭니다.
현관문을 열고 '여보, 여보' 하며 저를 애타게 부릅니다. 저는 들은 척도 안하고 어둠 속으로 재빨리 사라집니다. 보통 때 같으면 꼬리를 흔들며 배웅할 우리집 강아지 후치도 공기가 심상치 않은지라 방에서 못 나오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화나면 무섭군요.)
애새끼들은 12시는 되어야 들어올 터이고 허구한 날 혼자서 초저녁을 지키다 보니 하마부인이 화도 날 것 같습니다. 거기다 요즘 며칠 몸도 안 좋으니! 이런 판단은 지금 얘기고 그 순간 저도 불타 올랐습니다. 말은 안 했지만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마음속에선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래,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이제 나가면 집에 들어오나 봐라. 그분을 꼭 만나서 이 집구석으로 오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해야지.)
버스를 타고 잠실로 향하는데 핸드폰 벨이 여러 번 울립니다. 액정에 찍힌 번호를 보니 하마부인입니다.
(화해일까? 아니면 분풀이일까? 혹시 자결?) 별 생각이 다 나고 혹시 극단적으로 나가지 않을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마저 듭니다.
그러나 이때 마음 약하게 전화기를 펴서 통화했다간 아까의 공격이 계속될 염려가 있습니다. 굳어진 표정으로 애꿎은 배낭의 어깨끈만 당겨서 조여 봅니다. 근래 그럭저럭 제가 점수를 잘 딴 것으로 알고 오늘밤에 제 편한대로 행동한 것이 화근이었나 봅니다. 특히 최근 아침마다 새벽미사에 차를 운전하여 다섯번 이상이나 동행을 해 준 데에서 하마부인이 크게 감동 받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봅니다.
(그래 나는 이제 이 순간부터 출가한다. 출가하기 위해선 먼저 出山이다. 출산 후 출가할 거다. 근데 난 불교도가 아닌데 출가가 맞나? 그럼 카톨릭 수도자가 되자. 수사가 되어 수도원 졸병으로 들어가면 그게 출가지. 결혼했던 사람도 되나? 이혼해야 되나? 필요하면 해야겠지. 이왕이면 계급이 높은 신부가 될까?)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계속 울려대는 휴대폰을 주머니 속 깊이 넣고 꺼내보지 않았습니다. 왕십리역에서 버스를 버리고 전철로 환승, 8시 45분 잠실역에서 내렸습니다. 버스 두 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롯데호텔 앞 높은 대위에 세워진 너구리 조각을 사진 찍으며 제 기분을 추스르려고 애썼습니다. 기분이 너무나 울적하여 산악회의 여성 산행대장인 들국화대장과 낯을 익힌 몇몇 사람들과 마주칠세라 살그머니 1호차 뒷자리로 가서 앉았습니다. 그분들과 평상심으로 대화를 나눌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인생아, 인생아!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더냐?)
오늘 따라 유행가 가사가 절실하게 다가옵니다.(그런데 이런 가사 있었나요?) 친구인 시인마뇽도 오늘 같이 산행하기로 약속했기에 그를 불러야 합니다. 제자리로 오라고 하려면 휴대폰을 걸어야 했습니다. 휴대폰을 펴고 갈무리된 전화번호를 되찾는 단추를 누르는 순간 또 벨이 울렸습니다. 저는 무심결에 통화버튼인지 뭔지를 누르고 ‘여보세요?’ 하고 얼결에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마부인이었습니다.
‘당신, 화났어, 내가 너무 했나봐. 나 화내서 미안해. 산에 가는 날인데. 잘 다녀오세요.’
(그럼 왜 질렀냐? 지르기는)
‘겨우 그것 땜에 전화한 거야?’(저는 다시 전의를 불태웁니다.)
‘아니, 미국에서 전화가 와서 알려주려고,’(슬기로운 그미는 역시 피해간다. 저의 승리인 듯.)
‘누구한테서.’
‘오빠지, 누군 누구예요. 우리 가족 새해 잘 지내라고…….’
‘……그래, 알았어. 끊자.’
(넌 풀어졌다고? 나는 아니다. 나 정말 집 나간다. 설악산 조난사고를 너도 당해 봐라.)
독한 마음을 풀지 못하고 친구에게 전화해서 1호차 뒤쪽의 제 좌석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2주 만에 만나는 반가운 친구와도 형식적인 대화만 이어집니다. 집 나올 때의 깔끔하지 못한 처리가 제 마음 속을 어둡게 칠해 놓았기 때문이지요. 그 밤 가장 불행한 자가 되어 잠도 들지 못하고 저는 1호차 창밖의 어둠을 노려보며 옆자리 시인마뇽의 코고는 소릴 들어야 했습니다.
2005년 12월 31일 밤에 있었던 실화였습니다. 다시 기억하기도 싫군요. 보통 때 너그러운 하마부인입니다. 그런데 가끔 화가 나나 봅니다. 하필 그 밤에 터질 게 무언지요? 그러나 클린턴인지 힐러리인지 하는 휴게소에서 내려 잠시 쉬고, 친구가 잠에서 깨어 같이 이야길 나누고, 다시 내일 새벽의 산행을 예상하다 보니 저의 평상심은 그럭저럭 회복되었기에 집에 전화라도 해야 될 것 같은 마음까지 회복되었습니다.(그래 내일 아침 정상에서 집으로 전화를 해서 멋있게 화해해 보자. 저도 시집와서 고생 많이 하긴 했지!)
지난 번 산행기에서 그분께 오늘 5시에서 6시 사이에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으로 꼭 오시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었는데 지금 시각을 보니 6시25분으로 제가 25분이나 늦었군요. 그분은 너그러우셔서 그 정도로 화를 낼 분은 아니시기에 주변을 살펴봅니다. 검은 복장들이 여기 저기 보입니다.
오늘 늦음에 대해 구차하게나마 이유를 댄다면 산행 초장부터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아이젠을 신고 4시간 이상을 한계령->중청대피소->대청봉에 걸친 8.3km의 돌길을 걷다보니 평소 산행속도보다 늦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젠이 발바닥의 중간을 계속 압박하고 눈이 아닌 돌 위에서 걸을 때는 다리까지 충격이 왔습니다. 또한 아이젠 줄 두 개 중 뒷줄이 가끔 풀려 그때마다 멈춰 서서 다시 얽어매야 했습니다.
짙은 어둠속,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서게 된 것입니다. 동쪽, 해 뜨는 쪽을 보아도 해가 뜰 기미는 보이지 않고 허연 구름들이 거센 바람에 밀려가고 별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은 날이 흐려 해가 뜨는 걸 보지는 못할 거라는 이야기가 방송에서 이미 있었기에 공룡능선을 뛸 사람은 해맞이에 좋은 대청봉으로 오지 않고 중청대피소에서 희운각으로 직행하여도 좋았습니다만, 저는 그분을 만나 부탁할 일이 너무나 많았기에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방은 캄캄하고 멀리 속초시와 양양시의 불빛들도 구름인지 봉우리인지에 가려서 안 보입니다. 정상에는 정상석을 배경으로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는 산사람들이 몇 분 계시고 띄엄띄엄 등불을 비추며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었습니다. 어둠 속 한 쪽에 바람을 등지고 비켜서서 저는 그 동안 설악정상에서 하려고 생각해 두었던 기도를 올렸습니다. 형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성호를 긋고 주님의 기도를 먼저 올린 다음 생각했던 기도를 풀어 놓았습니다.
‘당신의 도움으로 제가 정상에 설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저와 동행한 산악회 식구들의 산행 무사히 끝나도록 해 주세요. 우리 가족의 건강과 바르게 사는 것 도와주세요. 그리고 남북통일, 더 나아가 세계평화 이루어 주십시오. 참, 제 친구 시인마뇽에게도 희망과 행운을 주세요. 제 친지와 친구와 친척들 모두 다 당신께서 인도하시길…….’
할 말이 많았던지라 계속해서 그분께 더 부탁을 하려고 하는 중인데 바람 속에서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하이맛아!’
‘네. 주님! 말씀하십시오.’ 저는 깜짝 놀라 비죽비죽 솟은 돌과 얼음위에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번 했습니다.
‘장소가 험하니 그대로 서서 눈을 감아라. 너를 축복해 주고 너의 기도를 들어주마.’
‘고맙습니다. 모세처럼 신발은 벗어야 합니까?'(이 넘이 성경 어디서 줏어 읽은 실력이다.)
'지금은 추우니, 됐다.'
'좀 더 차원 낮은 걸 여쭈어 봐도 되나요?’
제가 아까 드렸던 중요한 기도는 이미 허락받은 듯 했습니다. 이제는 슬슬 그분께 평소 하마부인에게 물었다간 치도곤으로 맞을 얘기나 친구나 선배들에게 물어도 천덕꾸러기로 보여질 어리석지만 제가 꼭 그분께 부탁하고 싶었던, 말하기 힘든 것들을 물어 보고 부탁드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분은 아주 근엄하시고 과묵하시기에 평소에는 제가 말도 잘 못 부칩니다. 그저 두손을 모으고 조용히 부탁할 뿐이지요. 그러나 이날은 제가 한계령에서 대청까지 밤의 고행을 했었기에 그분께 졸라도 될 것 같았습니다.
‘묻거라.’
‘저는 언제 부자가 되나요?’
‘너는 이미 부자다.’
‘아닙니다. 아직은. 이건희라는 분도 있고 진짜 부자를 모르십니다.’
‘부자이지만 그가 마음 고생하는 걸 난 다 안다. 너는 마음이 편한 부자가 되거라. 지금 네가 가지지 못한 것이 무엇이냐?’
‘사실은 거의 다 가지고 있긴 합니다.(그분은 제 말문을 막으셨습니다.)
‘다음 걸 물어라.’
‘저는 언제 하마부인과 헤어집니까?’
‘예끼 이놈, 그것도 질문이라고 하느냐?’
‘진정입니다.’
‘참아라. 어제 밤 하마부인도 나한테 똑같은 걸 물어 보더라.’
'제가 항복해야 합니까?'
'거기까진 아니다. 항복하기 싫으면 화해를 해라. '
'이제부터 제가 설거지해야 합니까?
'행동이 아니라 마음이 문제인 걸 모르느냐?'
‘죄송합니다. 더 묻겠습니다. 제 임플란트는 언제 끝납니까?’
‘내 소관이 아니구나. 치과의사에게 물어라.’
‘그 의사가 돈은 깎아 줄까요? ‘
‘그에게 물으렴. 그러나 네 걱정은 내가 전하마'
‘저는 언제 지겨운 직장 그만두고 전업산악인이 됩니까?’
‘하마부인을 또 울리지 마라. 그때는 자연스럽게 오고 전업산악인이 산 밑에서 살기엔 더욱 어렵단다.’
'정말입니까?'
'나도 한 때는 허름한 목수였다. 나도 세상을 좀 알지'
‘저도 출세할 수 있을까요?’ 혹시 총장이 되지 않을까요? ‘
‘하이맛아, 맛이 가는구나. 꿈을 깨라. 너는 지금 네 처지로도 차고 넘친다.’
‘그럼 제 대신 시인이 대통령되면 안 될까요? 그러면 그가 절 복지부장관에…….’
‘시인이라니 누구?’
‘시인 마뇽 말씀입니다. 아까 기도 중에도 나왔쟎습니까?’
‘마뇽이라고? 불란서인이냐?’
‘조상이 크로마뇽인이라고 하옵니다.’
‘그만 웃겨라. 마뇽에겐 만용을 조심하라 일러라. 2, 3년후 사고가 날 수도…….'
'그런 일 없게 해주십시오.'
'명심해라.'
'저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산행은 일생 계속하게 됩니까?'
'너희는 산행에만 목숨 걸지 말고 그 나라와 의를 구하도록 해라.'
'저는 웅변도 못하고 글도 못 쓰옵니다.'
'시인이 있지 않느냐?'(그분이 친구를 더 높이 평가하시나?)
'이제 시간이 없다. 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걸 부탁해 봐라.’
'혹시 다음 주 로또 번호 아십니까?'(떡 본김에 제사지낸다고 그분이 당첨시켜 주시지 않을까하는 이악스런 생각이…….)
'로또 같은 얘긴 집어 치워라. 네가 언제부터 이런 속물이 되었느냐?'
'당신을 믿은 담 부텁니다.'
'이 놈이 그래도. 너 막가자는 거냐?'(저는 그분이 내리치시는 스틱을 오른손을 뻗어 간신히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분이 저를 봐주느라 약하게 내리치시길 다행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시인은 살이 빠질까요?'
'덜 먹으면 살은 빠진다.'
'먹는 게 취미라는데요. 먹기 위해 산다나 봐요.'
'친구를 헐뜯지 마라. 다이어트는 학습해야 된다. 그는 훌륭한 학생이다. 근데 왜 살을 빼려 하느냐?'
'산행 속도 때문이라 하옵니다.'
'향상되었다고 하던데.'
'제가 보니 아직 이옵니다. 그랬으면 하는 겁니다.'
'친구를 헐뜯지 말래두.'
'하마부인이 강남처방이라고 말하던데 푸르죽죽하고 허연 가루약 같은 걸 두유에 타서 먹으면 되나요?'
'그럴 것 까진 없다. 밥이나 덜 먹도록 해라.'
'솔직히 누굴 더 좋아하십니까? 저와 시인 중'
'사실을 말하면 시인이다.'
'왜라고 묻겠습니다.'
'건방진 녀석. 그는 너보다 성실할 뿐 아니라 엉뚱한 질투나 상상 같은 거 안 한다. 친구를 헐뜯지도 않는다.'
'그럼 그는 성인입니까?'
'아직은 아니다.'(다행이다!)
‘오늘 산행도 여느 때처럼 안전하게 해주실 거죠?’
‘그건 들어주마.’
‘저와 시인은 오늘 꼴찌로 설악동에 골인하나요?’
‘무사히 내려가면 되지 않느냐?’
'제가 시인을 안내하나요?'
'그 반대이다.'(이럴 수가?)
‘친구들에 대해 여쭙니다. 김이사와 부인에게 한 말씀,’
‘수지맞게 해주마.’(의외로 관대하시다.)
‘정사장은 어찌 됩니까? 지금 알바중이랍니다.’
‘산행은 꼬이겠으나 크게 배우고 나중엔 좋은 산행기를 쓰게 될 거다.’
'고산자는 어찌 됩니까?'
'김정호라고 불리우겠지.'
‘오사장은 어떻습니까?’
‘지금 옷 매출에 걱정이 많구나. 내가 봐줄 터이니 맘 놓으라 전해라.’
'들꽃과 자운영은요?'(같이 온 여성 산님들의 닉네임이다.)
'풀 말이냐?'
'꽃들이자 사람들이옵니다.'
'지금 그대로가 아름답다고 전해라'
여기까지 주거니 받거니 그분과의 대화가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돌풍이 불어왔습니다. 저는 바람에 날아가 쓰러지지 않을까 몸을 추스르다가 그만 기우뚱 옆으로 넘어지며 감았던 눈을 뜬 채 그분의 모습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분과의 대화가 바람에 끊어져 약간은 미진했지만 그분의 말씀을 아주 높고 험한 설악정상에서 들을 수 있었기에 저의 2006년 새해아침은 정말로 축복받은 시간이라는 것을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룡능선을 타려면 서둘러야 했습니다. 이제 중청대피소로 내려가야 할 시간입니다. 안경에 입김이 서려 앞을 보기도 힘들었지만 바위길 옆에 매어놓은 쇠줄을 잡아가며 길에 솟아오른 바위에 걸리적거리며 그럭저럭 중청대피소에 도착해 보니 시간이 6시46분이었습니다. 희운각까지는 내리막길을 조심해서 내려가야 할 것이고 다시 무너미고개부터는 험난한 공룡능선이 버티고 있을 것입니다. 길에 눈이 얼어붙어 있지나 않기를 바래면서 걸음을 빨리 했습니다.
험악한 날씨에 가슴 졸이고 그분과 대화를 하느라 정상에 오르면 하마부인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분께서 알아서 다 해 주신다니 걱정은 안 했습니다.
2006년 1월 1일 새벽시간에 대청봉 정상에서 그분을 만난 이후, 높은 산의 정상처럼 중요한 장소에선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닌 마음으로 펼쳐보는 상상력이 한없이 춤출 수 있다는 것을 이 넘이 체험하였답니다. 이거야말로 저는 이름하여 ‘백두대간이 주는 상상력’이라 부르고 싶었습니다. (끝)
첫댓글 ‘그만 웃겨라. 마뇽에겐 만용을 조심하라 일러라. 2, 3년후 사고가 날 수도……. 2,3년 후가 2008년, 2009년이니 그 분의 경고가 들어맞았습니다. 만용을 조심하라는 말씀을 되새깁니다.
예언을 맞추는 것이 판타지 내지는 픽션의 힘입니다.
형님 3년전에 오사장은 누구이옵니까? 아무튼 문장 실력이 신년 신문의 신춘문예보다 훨 뛰어납니다. 재미있게 읽었읍니다.
오회원님, 글 중의 오사장이 자기인 줄 다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아마츄어같이. 대저 픽션이라는 게 짜고 치는 고스톱인지라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지네요.
계속되어질 형님의 글속에 제 이미지가 활자화 된다면 어떤 인물로 태어날까 상상해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손총무님, 굴비글 감사합니다. 서서히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아주 좋은 역을 드리지요.
저도 좋은 산행기를 쓸수 있도록 마음 정제하겠습니다....형님글은 위트가 있어 읽기 편합니다. 바쁘신중에도 이런 글을 남길수 있는 형님을 배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