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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늘 비로소 내 잘못을 기억합니다.
<그 후에 사막의 바람에 말라붙어 쭉정이가 된 다른 일곱 이삭이 그 줄기에서 나와 먼저 나온 무성하고 알찬 일곱 이삭을 삼켜 버렸다 그리고서 바로가 깨어 보니 그것이 꿈이었다. 아침에 그는 번민하다가 이집트의 모든 마법사들과 지혜로운 자들을 불러 그들에게 자기 꿈을 말했으나 그 꿈을 해석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창세기 41;6〜8)
바로는 살진 일곱 암소와 파리한 일곱 염소, 충실한 일곱 이삭과 마른 일곱 이삭의 꿈을 꾸게 만들었습니다. 본문을 이해하는데 이것이 전제 되지 않으면 마음대로 상상하게 됩니다. “하나뿐인 내편” 드라마를 본 사람이면 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알면서 시청하게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바로로 하여금 요셉을 높이기 위하여 꿈을 꾸도록 사건을 벌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거짓된 해석도 없었던 이유는? 1. 하나님이 모든 마법사들과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을 중단시키셨습니다. 2. 요셉과 바로 왕의 만남을 에비하야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술 따르는 신하가 바로에게 말하였다. '내가 오늘 비로소 내 잘못을 기억합니다. 폐하께서 빵 굽는 신하와 나에게 노하셔서 우리를 경호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 우리가 같은 날 밤에 서로 다른 꿈을 꾸게 되었는데 그 곳에 경호대장의 종으로 있던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에게 우리 꿈 이야기를 했더니 그가 우리 꿈을 각각 해석해 주었습니다.‘>(9〜12)
술 관원장은 마법사들과 지혜로운 자들이 꿈을 해석치 못하는 것을 본 순간 요셉이 떠올랐으며 바로에게 요셉을 소개합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인 술 관원장을 통하여 일을 하십니다. 2.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축복 코드를 준비합시다.
어제는 수원장로 교회에 다니는 안준혁 형제님을 만나서 교제를 하였습니다. 과거 약 14년 전 쯤에 일을 하러 권선구청 세무과에서 잠깐 일을 하였습니다. 같은 교회에 다녔고 잘 어울리지 못해서 마음을 많이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를 감사하여 만나 보고 싶다기에 교회 친교실에서 만나서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화장품 회사를 하고 있는데 요즈음 사정이 별로 좋지 않다고 하면서 그래도 열심히 사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 드렸습니다. 앞으로 더욱더 사업이 번창하여서 좋은 일에 사용하도록 기도를 하여 주었습니다. 향후에 하나님의 영에 감동 된 사람이라고 불리워지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두라노 아버지학교 ~ 정 현철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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